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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적 불감증 - 유동적 세계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너무나도 소중한 감수성에 관하여
지그문트 바우만.레오니다스 돈스키스 지음, 최호영 옮김 / 책읽는수요일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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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적 거울 앞에 비친 자화상

도덕적 불감증, 지그문트 바우만·레오니다스 돈스키스, 책읽는수요일, 2015. 12.

 

도덕적 불감증에 앞서 사족 하나를 달고 시작하련다. 나 스스로 자주 묻는 질문이 있다.

 

숱한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공부를 하면서 무엇을 얻었는가?”

 

나는 지식을 쌓지도 않았고, 지적인 사람이 되지도 않았다. 대신 타고난 감수성에 후천적 감수성까지 개발되었다. 내 주변인들은 나의 감수성이 타고난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단언컨대, 나의 감수성의 상당량은 후천적으로 개발된 것이다. 감수성은 달리 말하면 공감 능력이다. 타인의 고통을 온전히 내 것으로 느끼는 능력이다. 이는 노력 없이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런 나의 태도가 다정이 병()”인 듯 받아들여져 타인의 냉소를 불러일으키기도 하지만, 나는 가급적 남은 세월도 이 능력을 개발하는데 사용할 것이다. 나는 상대의 이야기에 몰입하기 때문에 한 사람을 만나도 에너지가 많이 소비된다. 여럿을, 여러 번 만나는 일이 쉽지 않다. 드문 만남이 각별한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지그문트 바우만의 책은 통찰의 열쇠다. 평범하다 못해 이제는 진부하기까지 한 악의 모습을 들춘다. 윤리적 거울에 우리 자신을 비추어 우리 자신의 본질에 직면하게 한다. 바우만은 이론 중심의 강단 사회학과 차별화된 일상, 상상, 감정의 사회학자다. 일상 안에서 이루어지는 권력의 포섭 속에서 어떻게 주체로 살아갈 것인지에 대해 고민하게 한다. 그것은 결국 시선의 교란이다. 나의 시선에서 벗어나 바라보는 자의 시선이 되는 일이다. 바우만은 보는 자를 보고 생각하는 자를 생각하며 말하는 자를 말한다(14).

 

기술은 당신을 방관자로 머물게 두지 않는다.(14)”

    

원치 않아도 페북을, 블로그를, 밴드를, 카톡을 한다. 지인들이 수시로 올리거나 링크한 글들을 눈팅하면서, 그들의 일상을 짐작한다. 보여주고 싶은 선택된 모습으로 존재를 구성한다. 서로 염탐하고, 누설하고, 댓글을 단다. 이 모든 행위는 자발적이다. 보여주기에 선택된 모습으로 각자의 정체성을 확보한다. 광장에 확성기가 내걸린 고백사회(confessional society)’(54)은 현대사회를 적절하게 표현하고 있다.

 

반면, 거리와 카페 같은 공공장소에서 시선을 나누거나, 서로의 이야기를 듣는 일은 매우 드물어졌다. 폰에 고정된 시선으로 타자의 시선과 마주칠 일이 적어졌고, 우연히 마주쳐도 동시에 무심히 흘려보낸다. 이어폰까지 꽂으면, 소리까지 완벽하게 차단한다. 자신의 성 안에 들어가 있는다. 이런 태도는 누구와도 접촉하지 않겠다는 갑옷처럼 보인다. 이제 낯선 사람과 마주치는 우연의 필연을 경험할 기회는 매우 희박해졌다.

 

인간은 사이의 존재다. 선과 악의 경계 또한 모호하다. 우리가 경험하는 것은 극적인 도덕 선택의 상황이기 보다도, 우리가 자발적으로 선택하는 일상의 상황이다. 내가 소비하는 물건이 나를 표상하고, 내가 링크한 사진이 곧 나의 가치관이 된다. 시민은 사라지고, 소비자만 존재한다. 이러한 미시적인 일상에 현미경을 들이대는 일이 사회학이다. ‘우린 서로 다를 뿐이라고 말하면서, 가치 개입 자체를 거부한다면, 성찰과 통찰을 얻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도덕 불감증 상태다.

 

다섯 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과 철학자 레오니다스 도스키스의 대담을 담고 있다. 두 사람은 ‘1. 우리의 모습을 닮은 평범한 악에 관하여, 2. 정치의 위기, 감수성의 언어를 찾아서, 3. 감수성의 상실, 공포와 무관심 사이에서, 4. 소비하는 대학, 새로운 무의미와 기준의 상실, 5. <서구의 몰락>을 다시 생각하며를 주제로 깊이 있는 대화를 펼친다.

 

1. 우리의 모습을 닮은 평범한 악에 관하여

 

악은 늘 어디에나 존재한다. 단 시대마다 다른 형태와 모습으로, 새롭게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대체되는 것(61)이다. 현대 사회의 악은 눈에 띄지 않는 평범함에 있다. 이제 악마는 오래되고 우리에게 익숙한 괴테의 메피스토나 그것의 갱신된 형태인 이스트반 자보의 메피스토가 아니라 일종의 DIY, 즉 우리가 손수 만든 악마(51). “우리의 악마는 이케아, 페이스북의 모습을 한 DIY(52).” 거대한 사건에서 발생하는 악은 공통의 분노를 유발하지만, 악이 일상성은 우리의 감수성을 무감각하게 만든다. ’헬조선을 만든 것은 권력자이기 이전에, “도살장에 끌려 가는 소와 같은시민의 자발적 복종에서 기인한다.

 

2. 정치의 위기, 감수성의 언어를 찾아서

 

소셜 네트워크가 사람들을 연결하고 있으나, 우리는 매체가 의도한 방향을 향해 흘러간다. 그 자체로 민주주의와 인권을 보장해주지 않는다. 대중매체에 의한 시뮬라시옹(모사)이 진품을 대신한다. 실제는 사라지고, 환영이 진실을 대신한다. 정치인은 이제 연예인, 스타의 자리를 탐한다. 탈정치화는 신자유주의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국가와 이데올로기를 자본과 세계화가 대신하며 민영화의 길을 걷는다. 바우만은 정당이 고전적 운영 방식을 탈피하고, 진정한 의미의 대의제 민주주의를 통해서 정당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더불어 정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비판적 집단 지성의 참여가 필연적일 것이다.

 

3. 감수성의 상실, 공포와 무관심 사이에서

 

위험 사회에 대한 공포, 노후에 대한 두려움은 현재의 삶을 살기 못하게 하는 신자유주의 기본 지침이다. 바우만은 공포의 이유가 무지, 무기력, 굴욕감이라고 말한다. 불안에서 유발하는 공포는 자발적 복종을 불러 온다. 이 지점에서 바우만은 대중매체를 비판적으로 분석한다. 타인과 자신에게 모멸적인 발언을 퍼붓는 것은 하나의 짝패를 이룬다. 이는 건강한 비판과 무관하다. 자신과 타인을 비하하며 느끼는 대중매체의 즐거움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추적하는 것이 해법이 될 것이다. 바우만은 대중매체를 이렇게 만든 것이 권위주의라고 생각한다.

 

4. 소비하는 대학, 새로운 무의미와 기준의 상실

 

대학의 위기가 한국 사회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헬싱키에서의 삶은 늘 일요일 오후 같은데 반해 리가(라트비아의 수도)에서의 삶은 언제나 월요일 아침이다.”라는 라트비아 출신 대학원생의 말에서 - 동유럽을 비롯해서 한국과 같이 2차 세계 대전 이후 성장한 - 개발도상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현실적인 삶을 인지할 수 있다.

미국에 살고 있는 나의 동생에게 어떻게 지내는지 물었더니, 정말 심심하다고 한다. 겨우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집 앞의 눈 치우기, 그리고 집안 꾸미기가 전부라고 한다. 그래서, ....고 하는데, 그 말에 저절로 공감했다. 저녁이 있는 삶은 그런 것이리라. 부서질 것 같은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에서 살아나기 위하여 쌓고 또 쌓아야 하는 스펙 이외에는 선택지가 별게 없다. 능력주의 신화가 계속되는 한, 대학은 학문을 하는 곳이 아니라, 산업인력 양성소의 역할을 벗어나기 어렵다.

 

5. <서구의 몰락>을 다시 생각하며

 

근대 국가 개념은 사라지고 있다. 바우만은 미셸 우엘벡의 어느 섬의 가능성, 예브게니 자먀찐의 우리들21세기의 경고서로 본다. 이 책들은 근대 초기의 우정과 사랑, 달리 말하면 감수성이 사라졌을 때, 인류가 직면할 사회가 어떠할지에 대하여 경고한다. 우엘벡은 니체와 다른 방식으로 신의 죽음을 폭로한다. 신은 사회적이고 인간적인 유대가 완전히 파괴됨과 동시에 죽는다(338). 돈스키스는 이 지점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인간관계의 생로병사 주기를 벗어나는 연인 또는 친구라고 말한다. 우리의 존재함은 사랑하는 사람의 눈으로 존재하는 것(밀란 쿤테라)이다.

 

대담에 기초한 책이기 때문에 목차에 맞춰 촘촘하게 쓰인 글을 기대해서는 안된다. 하지만 전 방위로 사상을 펼쳐가는 두 사람의 대등한 담화는 고전문학에서 현대 일상생활까지 거침이 없다.

 

도덕적 불감증을 읽으면서, 연말, 나에게 또 다른 응답시리즈였던 <스타워즈 7>가 떠올랐다. 가면은 아주 중요한 장치다. 주인공 핀(존 보예가)이 저항군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휴머니즘을 느끼게 되는 순간, 저항군의 피와 고통은 더 이상 대상으로 머물지 못한다. 그 순간 핀은 가면 안에 숨겨왔던 자신의 표정을 드러낸다. 또한 카일로(아담 드라이버) 역시 아버지 루크를 만나는 순간, 가면을 벗고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낸다. 가면을 하나의 메타포로 읽는다면, 우리는 표정을 드러내면 안 되는 도덕적 불감증 사회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참조한 문학들이다. 두 사람이 활용하고 있는 문학서를 알고 있다면, 더 없이 좋은 길잡이가 될 것이다. 저자들이 최고의 책이라고 지칭한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와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 조지 오웰의 1984는 오래 전 읽었으니, 우리들, 아서 퀘슬러의 한낮의 어둠와 같은 디스토피아 문학을 구해 읽어야겠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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