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말엔 무슨 영화를 볼까?> 마지막 인사

 부조리한 세상을 향한 진검 승부,

 

<부러진 화살>(2011), 감독 : 정지영, 출연 : 안성기 박원상

 

 

<부러진 화살>은 2007년 ‘석궁 테러 사건’에 바탕을 두고 있다. 김명호 전 성균관대 교수는 억울하게 교수 재임용에서 탈락하자, 1년 6개월에 걸쳐 여러 정부 부처에 수많은 진정서를 내고, 1인 시위를 했다. 아무런 성과를 얻지 못한 그가 마지막으로 기댔던 곳이 사법부였으나, 교수 지위 확인 재판에서 상식 밖의 재판으로 패소하였다. 제도권을 불신하고 재판 결과에 불복하여 담당판사였던 박홍우를 찾아가 석궁으로 위협하면서 김명호 교수는 ‘석궁 교수’라고 불명예를 짊어졌다. 그는 현재 4년 형기를 마치고 지난 1월 출소했다. 이 영화는 실제 사건을 극화했고, 사법부의 재판 결과와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뜨거운 논쟁의 도마 위에 올려있다.

 

 

영화는 노동 전문 변호사인 박준이 김경호 교수의 항소심을 변호하게 되면서 시작한다. 캐릭터의 이름과 성격이 살짝 바뀌고, 영화적 구성을 위해서 몇몇 가상 인물이 삽입되었지만, 재판 속기록에 바탕을 두고 있는 만큼, 기소 과정, 재판 내용은 당시의 사실 보도 자료와 크게 다르지 않다. 실제 사건의 법정에서 이루어지는 공방을 다루고 있으므로, <의뢰인>과 같은 법정 장르물로 보는 것은 무리가 있다. 법정의 규칙과 논리보다는 실제 일어난 사건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부러진 화살>은 5억이라는 저예산으로 제작되어 2012년 흥행가도의 첫 주자가 되었다는 점에서도 시사하는 바가 크지만, <남부군>, <하얀 전쟁>의 정지영 감독이 1998년 <까>라는 영화 이후, 13년만에 연출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더 큰 의미가 있다. 현재 개봉 당시 보다 두 배 이상의 상영관으로 확대되면서 헐리웃 영화들에 대적하고 있다. 이는 오로지 관객의 입소문과 영화 자체의 힘이다.

 

 

부조리한 세상을 묘사하는데 코미디만한 것이 없다. <부러진 화살>의 강점은 사건 자체의 무거움을 그대로 옮기지 않았다는 점이다. 당사자인 김경호 교수는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주어진 장애들을 하나하나 뛰어넘거나 한계 상황을 인정하고 수용한다. 대한민국 민주공화국의 법정에서 현시대에 일어나고 있는 상식 밖의 사건 앞에서 마땅히 느껴야 할 분노는 유머가 대신한다. “유머는 가장 큰 슬픔에서 나온다.”는 마크 트웨인의 말이 생각나는 대목이기도 하다. 주연, 조연 모두 코미디 캐릭터를 변주해서 오락가락하기 때문에 비장함이 상쇄되고, 그것이 이 영화의 강점으로 작용하다.

 

코미디 설정으로 새롭게 구성된 캐릭터들은 김경호 교수가 피고이고 피해자일 뿐, 범죄자이거나 가해자가 아니라는 점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억울한 피고인 김경호 교수는 변호사를 선임하고서도, 스스로 재판을 준비하는 데, 그 과정이 관객을 숙연하게 만든다. 이는 권위와 위엄을 상징하는 대한민국 사법부에 대한 도전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다. 또한 ‘보수 꼴통’이라고 자처하는 김경호 교수를 통해서 진정한 보수가 존재하지 않는 한국 사회를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보수는 원칙을 가지고 신념을 실천한다면, 한국의 보수를 꼴통이라고 하는 이유는 원칙도, 철학도 모두 부재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강점에도 불구하고, 다큐멘터리나 고발 프로그램이 아니기 때문에 ‘영화적’ 아쉬움이 남는다. <부러진 화살>은 팔구십년대 영화의 클래식함을 벗어나지 못했다. 임권택 감독의 백한번째 영화 <달빛 길어 올리기>를 보면서, 감독의 전작들을 뛰어넘지 못했다는 불편한 느낌을 발화하기가 쉽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부러진 화살>의 클래식한 우직한 느낌은 촌스러운 영화 용법으로, 영화의 젊은 감각과 방식을 따라잡지 못했다는 평가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배우들의 연기와 대사, 도식적인 관계 구성은 과거 영화로 회귀한 듯 답답한 느낌을 준다. 노장의 손길과 뚝심이 느껴지지만, 그 클래식함은 21세기 관객의 눈높이를 맞추지는 못했다.

 

 

다만 관객들이 이 형식적 취약성을 보지 않거나, 볼 수 없는 것은 영화의 진정성이 압도하기 때문이다. 저예산으로 홍보도 약했고, 상영관 수도 적었으나, 이것이 이렇게 개봉관을 늘려가면서 흥행에 성공하는 까닭이기도 하다. 사실과 허구의 경계에서 적절한 균형을 유지하면서 시대를 비판하고 대안을 찾고자 하는 시민들의 바람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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