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nterview with jedai2000 님
Q. 추리소설을 읽는 이유/추리소설 읽는 즐거움은?
A.
강군: 야, 내가 어저께 기묘한 일을 겪었어.
공군: 뭔데?
강군: 점심 때 일어나보니까 엄마도 없고, 집에 아무도 없다라구. 배고파서 컵라면이라도 사다 먹으려고 나갔는데, 1층 현관 앞에 웬 아줌마가 서 있더라구. 그 아줌마가 막 허공에 대고 삿대질을 하면서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주절거리는 거야, 거기 아무도 없었는데 말야.
공군: 그래서?
강군: 그런가 보다 했는데 엄마가 저녁에도 안 들어와. 라면은 질려서 저녁에는 빵을 먹자 싶어 또 나갔지. 그런데 다섯 시간이 지났는데도 그 아줌마가 계속 서서 점심 때랑 똑같이 그러고 있는 거야. 너무 궁금하잖아. 그래서 물어봤지, 왜 그러시느냐구?
공군: 뭔데? 왜 그러는 거였는데? 빨리 말해봐!
미스터리 소설을 보는 이유는 바로 이런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호기심의 노예인 법, 궁금한 것은 참고 지나칠 수 없습니다. 쉬이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의 해답을 찾으려 노력하고, 지성과 논리, 추리력을 이용해 마침내 해답을 찾는 미스터리 소설의 원초적인 즐거움이야말로, 궁금한 것은 반드시 알아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의 본질적인 마음을 건드리는 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 제가 미스터리 소설을 읽는 이유는, 궁금증이 풀리는 짜릿한 쾌감이 좋아서라고 할 수 있겠네요.
Q. '내 인생의 추리소설' 5권을 꼽는다면?
A. 질문이 너무 광범위하네요. 같은 질문으로 50편도 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애거서 크리스티나 윌리엄 아이리시같이 누구나 읽어봤을 고전은 빼고 비교적 최신작으로 그냥 머리에 떠오르는 작품들만 몇 개 언급합니다.
1) <가라 아이야 가라>, 데니스 루헤인 지음
보스턴의 사립탐정 콤비이자 애인 사이인 켄지와 제나로는 한 여자아이의 유괴 사건에 말려듭니다. 얼기설기 얽히고설킨 미로를 통과하고 마침내 진실에 닿게 된 켄지와 제나로는 하나의 선택을 해야 합니다. 어느 것이 아이에게 더 행복한 일일까를. 미스터리 소설이 유치하고 남는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 책을 읽어보시길. 작가 데니스 루헤인은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최악의 범죄인 유괴에 대한 본능적인 적개심을 바탕으로 마음을 송두리째 부숴버릴 가슴 아픈 도덕극을 만들어냈습니다. 책장을 다 덮어도 한동안 잊혀지지 않을 정도의 정서적 충격에 사로잡히게 되는 작품입니다.
2) <화차>, 미야베 미유키 지음
부상을 당해 휴직하고 있던 혼마 형사에게 처조카가 찾아옵니다. 결혼식을 얼마 남겨두지 않고 사라진 약혼녀를 찾아달라는 처조카의 부탁을 받고 조사에 착수하지만 그녀에게는 어떠한 신분증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사건에 깊이 파고들수록 드러나는 그녀의 애절한 비밀... 단언컨대 이 작품은 90년대 일본 소설의 최고봉 중 한 편입니다. 단서를 모아 실종된 여자를 찾는 미스터리적 재미는 물론이고, 신용카드 사업과 카드 빛에 매몰된 사람들을 통해 현대의 자본주의가 낳은 비극을 날카로운 눈으로 뒤쫓는 사회파적인 시선도 간직한 걸작입니다.
3) <넘버원 여탐정 에이전시>, 알렉산더 매콜 스미스 지음
아프리카 보츠와나에서 ‘여자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직업’을 가진 한 명예로운 여성이 주인공입니다. 바로 그 아프리카 최초의 여성 탐정의 이름은 음마 라모츠웨. 남편의 폭력에 눈물짓기도 하고, 단 5일간 엄마가 될 수 있어서 행복했던 라모츠웨는 아픈 과거를 묻고 늘 새로운 태양이 찬란하게 떠오르는 아프리카의 대지를 밟으며 씩씩하게 살아갑니다. 의뢰인들이 가져오는 소소한 사건을 차근차근 해결하는 재미와 더불어 눈부신 아프리카의 풍경들, 시원한 바람과 한 잔의 차가 가져오는 여유, 항상 곁에 있어주는 좋은 친구들과 다시 시작되는 사랑 예감, 이 모든 것이 행복한 독서를 보장합니다.
4) <독약 한 방울>, 샬롯 암스트롱 지음
연구 외에는 세상일에 도무지 관심이 없어 장가도 안 갔던 교수가 스무 살 넘게 차이지는 여자에게 애정과 연민을 느껴 결혼합니다. 하지만 심한 나이차와 자신의 매력에 자신이 없는 교수는 내가 아내에게 못할 짓을 한 거 아닌가라는 번민을 하게 되고, 결국 자살을 결심합니다. 교수는 올리브유 병에 담아둔 독약을 들고 버스에 탔다가 그것을 잃어버리고 이제 대모험이 시작됩니다. 다른 사람이 우연히 주워서 먹어버리면 큰일이지 않은가. 교수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은 이 사실을 알고는 선뜻 ‘독약 회수행’에 참여하게 되고, 애먼 피해자가 나오지 않게 하기 위해 어떤 수고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이 과정에서 교수는 사람 사이의 선의와 온기를 깨닫고 자신의 절망을 걷어치우게 됩니다. 너무도 흐뭇하고 따뜻한 작품!
5) <내 아이는 어디로 갔을까>, 기리노 나쓰오 지음
남편의 친구 이시야마와 불륜에 빠진 카스미. 두 사람은 각자의 가족과 함께 이시야마의 별장으로 가족여행을 떠납니다. 그곳에서도 애욕을 참지 못해, 각각의 배우자와 자식들의 눈을 피해 관계를 갖는 두 사람. 카스미는 생각합니다. 이 사람과 함께 할 수 있다면 가족을 모두 잃어도 좋아, 아이를 잃어도 좋아. 하늘의 단죄였을까, 다음날 아침 카스미의 딸 유카는 정말 사라져버립니다. 카스미는 미친 사람처럼 후회하고 절망하고 슬퍼합니다. 아이를 찾기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태세인 그녀는 전직 형사 우츠미와 함께 조사를 벌이지만 아이의 흔적은 쉽게 나타나지 않습니다. 카스미가 바라보던 바닷가 풍경처럼 쓸쓸함과 황량함이 내내 작품을 지배하는 문학성 짙은 미스터리 소설.
Q. '올해 여름, 필독을 권하는 추리소설' 5권은?
A.
1) <도시 탐험가들>. 데이비드 모렐 지음
빈 건물을 탐험하며 예전에 거기 살았던 사람들의 삶을 재구성하며 즐거움을 찾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도시 탐험가들’이라고 자신들을 소개하는 역사학 교수 로버트와 그의 제자들. 기자 프랭크 발렌저는 잡지에 쓸 기사 취재를 위해 그들의 모험에 동참하는데, 이번 목적지는 오래 전에 문을 닫은 패러곤 호텔입니다. 어렵게 호텔에 잠입하자 수십 년간 폐쇄된 장소에서 근친교배를 해 돌연변이를 일으킨 쥐와 고양이가 그들을 반깁니다. 하지만 진짜 무서운 존재는 아직 만나지 못했으니, 각종 특수무기와 영리한 두뇌를 가지고 호텔에 숨어 사는 사이코. 액션과 서스펜스, 공포가 잘 버무려진 일급의 스릴러로 무더운 여름밤에 보면 딱 좋을 듯.
2) <시티즌 빈스>, 제스 월터 지음
마피아와 손잡고 카드 사기를 벌이던 마티 하겐은 일이 꼬이고 꼬여 결국 마피아를 배신하는 증언을 하게 됩니다. 그는 증인 보호 프로그램에 의해 빈스 캠든이라는 새 이름을 받고 시골 마을에 숨어 살아야 합니다. 이럭저럭 잘 살아가고 있는데, 어느 날 마피아의 암살자 레이가 마을에 나타나고 빈스는 살기 위해 주특기인 잔머리를 필사적으로 굴립니다. 한편 당시는 레이건과 카터가 붙은 선거전이 한창이고 빈스는 쫓기는 가운데서도 어떻게든 선거에 참여하고 싶어합니다. 전과자 마티는 선거권이 없지만 새로 태어난 빈스는 선거권이 있으므로. 이 선거를 계기로 모든 걸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어하는 빈스의 분투가 눈물겹습니다. 곧 대선이 다가오는데 선거를 이렇게 크고 깊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대권후보들은 항상 명심하고 올바른 정치하시길.
3) <검은 집>, 기시 유스케 지음
평범한 보험회사 직원 신지는 보험금을 타내려고 아들을 죽인 혐의를 받고 있는 부부를 조사하게 됩니다. 부부가 사는 검은 집을 방문한 순간, 신지는 심장이 얼어붙는 공포와 맞닥뜨리게 됩니다. 제4회 일본 호러소설 대상을 받을만큼 압도적인 공포와 음산한 분위기를 자랑하는 작품으로 다른 사람들 같은 감정이 존재하지 않아 끔찍한 범죄를 아무렇지도 않게 저지르는 ‘사이코패스’라는 정신병리현상을 거의 최초로 소개한 선구자적인 작품입니다. 최근 영화화되어 많은 화제를 부르고 있는데 영화와 소설을 비교해가며 읽는 재미가 쏠쏠할 듯. 개인적으로는 이 책을 읽고 혼자 엘리베이터도 못 탔을 정도니 여름에 보면 무더위도 느끼지 못할 것입니다.
4) <살육에 이르는 병>, 아비코 다케마루 지음
여성만 골라 잔인하게 난자하는 연쇄살인을 소재로 한 작품입니다. 사건의 관련자 3명의 시점을 오가며 충격적인 결말로 매조지하는 이 작품은 최강의 반전과 엽기적인 살인 행각의 가감없는 묘사가 시선을 잡아끕니다. 하지만 단순히 눈길을 끌기 위해 처절한 살육 장면을 그렇게 길고 자세하게 그렸다고 보기는 힘들어요. 사실 이 작품은 현대 일본 사회와 가정이 한 사람의 정상적이고 온전한 성인 남성을 길러내기 힘든 구조적 모순을 가지고 있다는 주제의식을 그것과 호응하는 훌륭한 반전을 통해 공감가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그동안 많은 미스터리 소설을 보았지만 주제를 이렇게 잘 살려주는 트릭, 트릭을 이렇게 훌륭하게 뒷받침해주는 주제를 가진 작품은 흔치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결코 딱딱한 작품은 아니며 반전의 '깜짝쇼'만으로도 충분히 즐길 만한 작품입니다.
5) <종신검시관>, 요코야마 히데오 지음
'종신검시관' 구라이시는 L현경 수사과에서 매우 특이한 존재입니다. 경찰 공무원이라면 누구나 보직 변경을 피할 수 없지만 그만은 예외인데, 경찰 생활의 시작부터 끝까지 검시관으로만 활약해 명예로운 종신검시관으로 불리게 된 것입니다. 워낙 검시 능력이 뛰어나서 단 한 번의 실수도 없이 그동안 맡은 사건을 퍼펙트하게 처리해낸 게 종신검시관이 된 가장 큰 이유지만, 거칠고 퉁명스러운 것 같으면서도 세심하고 은근하게 부하 직원들을 돌봐주는 특유의 인간적인 면모가 선후배 경관들의 존경을 사기 때문이기도 하구요. 구라이시의 날카로운 추리력과 카리스마, 은은한 매력을 느낄 수 있는 8편의 단편이 수록된 뛰어난 미스터리 단편집으로, 여름이 아니라 사계절 언제 읽어도 좋습니다.
Q.내 인생의 '첫' 추리소설은?
A. 누구나 마찬가지겠지만 초등학교 때 코넌 도일의 ‘셜록 홈즈’로 시작했습니다. 거기서 애거서 크리스티의 작품까지 나아갔지만 중학교 이후 입시난에 미스터리 소설을 거의 읽지 못했죠. 대학교를 졸업하고 백수 생활을 하면서 뭐 재미난 거 없나, 고르다 다시 잡은 게 존 딕슨 카의 <황제의 코담배 케이스>. 제게는 미스터리 소설의 진정한 즐거움을 다시 찾게 해준 고마운 작품이랍니다.
Q. 재출간을 바라거나, 국내에 본격적으로 소개되길 바라는 추리소설/작가가 있다면?
A. 역시 너무 많습니다. 일본 쪽에서 하세 세이슈의 <불야성> <진혼가> <장한가>, 다카무라 가오루의 <레이디 조커>, 가사이 기요시, 심포 유이치, 노리츠키 린타로, 아리스가와 아리스 등이 보고 싶고, 미국 쪽에선 제임스 엘로이의 ‘LA 4부작’, 데니스 루헤인의 ‘켄지&제나로 시리즈’, 영국에선 도로시 세이어즈, 조세핀 테이, 마저리 앨링햄, 에드먼드 크리스핀 등이 보고 싶습니다.
# 자기 소개
출판사 편집자. 어려서부터 책 없으면 죽고 못 살다 뜻하지 않은 백수생활로 시간이 엄청 많아져 우연히 읽게 된 미스터리 소설에 인생이 바뀌다. 미스터리 소설을 읽고 느낀 감상을 공유하고 싶어 독후감을 많이 썼는데, 그걸 좋게 봐준 분에 의해 출판사 편집자로 스카우트되었다. 좋아하는 책을 만드는 일을 하게 됐지만, 일을 잘 못하는 바람에 자주 깨져 역시 독자가 가장 행복한 법이야, 를 하루에도 몇 번씩 외치며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