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의 좋은 어린이 책, <설탕 따라 역사 여행>의 추천글입니다. 

 

초콜릿, 쿠키, 케이크, 사탕, 아이스크림. 설탕이 들어가 있어 군침을 돌게 하는 음식이다. 지금은 설탕을 누구나 값싸고 쉽게 먹을 수 있다. 하지만 옛날에 설탕은 부자와 높은 지위를 가진 사람만 맛볼 수 있는 음식이었다는데...

 

처음으로 설탕을 만든 건 인도사람들로 알려졌다. 유럽인 가운데 처음 설탕을 본 사람은 기원전 4세기쯤 인도에 갔던 알렉산더 대왕의 병사들이다. 이들은 인도 사람들이 설탕을 먹는 것을 보고 놀라 "벌도 없는데 벌꿀을 만든다"고 했다.

 

설탕이 유럽인들에게 본격적으로 알려진 것은 이슬람 국가들과의 십자군 전쟁 때였다. 1148년 2차 십자군 원정을 다녀온 사람이 유럽으로 설탕을 가져왔다. 설탕은 이때도 음식이라기보다는 너무나 귀하고 비싸 약국에서 약으로 팔 정도였다. 무시무시한 흑사병이 돌 때 의사들의 처방전이기도 했다.

 

설탕은 이후 음식에 쓰이면서 유럽 식탁 풍경을 바꿔 버렸다. 고기와 만나면 비릿한 맛을 없애 주기도 하고, 빵 반죽에 넣으면 빵을 부풀어 오르게 하면서 맛을 살려 줬다. 음식의 맛과 향을 오랫동안 지속시켜 주는 보존료 역할도 했다.

 

17세기 영국인들은 홍차에 설탕을 넣어 마셨다. 이때 설탕은 신분의 상징이었다. 뜨겁고 달콤한 홍차가 영국인들의 식단과 날씨와 잘 어울렸기 때문이기도 했다. 영국을 중심으로 유럽 각국에 '커피하우스 문화'를 만들어 낸 것도 설탕이었다.

 

설탕은 18세기 초 영국의 가난한 이들의 열량 공급원 중 20% 이상을 차지할 만큼 널리 먹는 음식이 됐다. 왜 이런 변화가 생겼을까?

 

설탕이 대량 생산되고 널리 퍼져나간 것은 콜럼버스와 관련이 깊다. 그는 1492년 에스파냐를 떠나 항해를 하다가 아프리카 북쪽 카나리아 제도에서 사탕수수를 발견했다. 그는 사탕수수를 아이티 섬에 심게 했다. 카리브 해의 섬 전체가 사탕수수 농장으로 변했다. 그런데 설탕을 만들기 위해서는 엄청난 노동력이 필요해 원주민에게 강제로 일을 시켰다. 고된 노동으로 원주민들이 더 이상 일할 수 없게 되자 유럽인들은 아프리카 사람들을 노예로 잡아와 일을 시켰다.

 

유럽인들은 자기 나라에서 생산한 면직물, 무기를 아프리카에 팔고, 노예 사냥꾼에게 사람을 잡아오게 해 아메리카로 끌고 왔다. 그리고 이들이 생산한 설탕을 유럽에 다시 팔았다. 아메리카-유럽-아프리카 세 대륙을 잇는 악명 높은 삼각무역이 펼쳐졌다.

 

영국은 삼각무역으로 얻은 자본을 바탕으로 철도를 놓는 등 산업화에 박차를 가했다. 영국은 노예 폐지에 찬성했고 19세기 중반부터 전 세계에서 노예 해방 선언이 일어났다. 노예 해방은 우리나라의 최초 이민과도 연결됐다. 노예제가 폐지되자 아시아인들이 그 자리를 메웠기 때문이다. 1902년 한국인도 하와이 사탕수수밭에서 일하기 위해 처음으로 이민을 했다. 이들은 머나먼 나라에서 적은 월급을 받고 고된 노동을 했다.

 

'식탁에서 약국까지 설탕 따라 역사 여행'은 설탕이 바꾼 식탁의 풍경과 역사의 흐름을 보여 주는 그림책이다. 동서양을 넘나들며 설탕을 둘러싼 사람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재현했다. - 김상훈(부산일보 문화부 기자)


 


전문가가 선택한 3월의 좋은 어린이 책 이벤트 보러가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