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의 좋은 어린이책 <안녕, 베트남>의 전문가 추천사입니다.

 

글 : 정도선(꿈꾸는책방 책방지기)

 

평화는 미안하다는 말을 통해 시작되는 것

부대에서 일병으로 근무하던 어느 날이었다. 온갖 수모와 압박을 근근이 버텨내며 새벽 근무 끝나는 시간만을 기다렸다. 드디어 주어진 나만의 시간, 삶의 입맛을 되찾으려 봉지라면의 입을 벌려 뜨거운 물을 받으려는 순간 어디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 왔다. 가슴이 미친 듯이 요동치고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라면을 버리고 막사로 뛰어갈까, 온 힘을 다해 소리를 지를까 찰나의 순간에 많은 걸 고민하다가 나도 모르게 소리가 나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주임원사였다. 안도감과 동시에 내 소중한 시간을 방해한 주임원사에게 짜증이 났다.

 

“아, 원사님 여기서 뭐 하시는 거예요!!”

 

병사들과 격 없이 친하게 지내는 분이라고 해도 무려 일병 따위가 주임원사에게 짜증을 내다니 말을 내뱉어 놓고 아까보다 더 큰 소름이 돋았다. 천천히 다가가 공손히 다시 물었다.

 

“원사님, 무슨 일 있으세요?”

 

“흐흑. 내가 월남에서 사람을 많이 죽였어. 정말 많이 죽였어.”


흐느껴 우는 그의 숨에서 지독한 술 냄새가 풍겨왔다. 원사님은 가끔 일하다가도 멍하니 하늘을 보는 일이 잦았는데, 병사들은 그때마다 애인이 생겼나, 하면서 키득거리며 웃곤 했다. 그게 아니라는 걸 그제야 알게 되었다. 이해가 가면서도 한편으론 의문이 생겼다.

 

‘그게 그렇게 힘든 일인가? 전쟁이었으니까 당연한 일 아닌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넘어간 이 일을 제대하고 10년이 지나서야 정확히 이해하게 되었다. 한베평화재단의 활동을 통해서.

 

자료에 따르면 베트남전쟁 당시 한국군이 저지른 민간인 학살이 약 80여 건, 그 희생자 수는 무려 9,000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그중 어린아이도 상당수라고 한다. 전쟁이 끝난 후 3년 뒤, 베트남 여기저기서 한국군의 만행을 밝히는 증오비가 수십 군데 생겨났다. 그중에는 하루에 피죽 한 그릇도 못 먹는 가난한 이들이 쌀을 각출해 만든 증오비도 있다고 한다. 얼마나 억울했으면, 얼마나 증오했으면 기념이나 위로의 목적이 아닌 증오비를 세웠을까. 나는 비로소 그때 주임원사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이 책 《안녕, 베트남》에서는 주임원사와 똑같이 베트남 참전 군인이면서 평생을 고통스러워하는 순배 할아버지가 주인공으로 나온다. 다른 점이 있다면 주임원사는 죄책감을 가슴에 간직한 반면 순배할아버지는 죄책감을 드러내 용서를 구했다는 것. 오랫동안 가슴에 담아두다가 손자를 데리고 베트남으로 간 할아버지. 그곳에서 뜻밖의 시간여행을 통해 과거 베트남전쟁 전장으로 떨어지게 된 손자 도현이는 한국군 만행으로 부모를 잃게 된 베트남 소년 티엔과 그를 도우려 했던 과거의 젊은 할아버지를 만나 가까스로 현실로 돌아오게 된다. 그리곤 이제는 할아버지가 되어 있을, 베트남 어딘가에 살고 있을 티엔을 찾아 용서를 구하려 한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부터 평화가 시작된다는 것을 자연스레 익힐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늘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군의 만행에 분노한다. 그 고통을 몸소 느껴봤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느꼈던 그 고통이 다른 나라 어딘가에서도 똑같이 느껴지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길 바란다. 이 책을 계기로 과오를 인정하고 사과하는 역사를 만드는 일에 조금 더 적극적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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