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홍준의 한국미술사 강의 2 - 통일신라 고려 유홍준의 한국미술사 강의 2
유홍준 지음 / 눌와 / 2012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유홍준의 <한국미술사 강의>는 기존 몇몇 개설서처럼 여러 필자가 나누어 쓴 것이 아니라 단독 저술이기에 문장 서술에 일관성이 있다. 게다가 유홍준 특유의 감상적 서술이 자칫 단조로울 수 있는 문장에 적당한 변화를 주었다. 그러나 저자의 <답사기>에서 보여준 만큼 과도하게 흐르지는 않아서 스스로 꽤 자제한 듯한 인상이다. 파토스가 강한 문장이 자칫 빠지기 쉬운 함정이 어조로만 모든 것을 설명하려고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은 그런 함정을 잘 피했다. 자료는 성실하게 준비했으며, 필요한 곳에서는 적절하게 설명하였다.

조형언어를 문자언어로 변환하는 것이 매우 힘들고 어렵지만, 그 한계를 인정하고 최대한 그것을 정확하게 문장으로 옮기고자 노력한 흔적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유물 서술에서 딱딱한 팩트 위주 서술보다는 꼼꼼하게 형식 분석을 시도한 부분이 특히 그렇다. 이런 문장들은 미술작품을 '역사를 설명해주는 자료' 이상으로는 이해하지 못하고, 이해하려고 하지도 않는 연구자들과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는 것이다. 유홍준의 글들은 유물을 다시 보게 만드는 힘과 테크닉이 있다. 그것은 문장 자체에서 오는 것이기도 하고, 저자가 성실히 수집하고 정리한 자료들과 논거들에서 오는 것이기도 하다.

 

미술은 물질로 만드는 것이므로 눈으로 보는 것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미술사 저서에서 도판의 질이 좋으면 좋을수록 큰 장점이 된다. 더욱이 적절하고 개연성 있는 서술과 함께 어우러진 도판이라면 보는 즐거움마저 있을 것이다. 오래된 미술사 저서들이 도판을 뒤로 몰아서 (그것도 흑백으로) 편집하던 것에 비하면 이 책은 요즘에 나오는 책들이 대개 그렇듯 도판과 글을 잘 어울리게 편집하였으며 사진의 질도 매우 훌륭하다. 유물의 외형과 빛깔을 제대로 드러내는 이 도판 사진들은 모두 선명한 컬러로 인쇄되었다. 필요한 경우 유물의 세부 사진을 제시하기도 하여 디테일이 주는 감흥과 작은 시각정보까지도 충실하게 전달하려 하였다. 한 예로 <법화경 사경보탑도>는 전체 도판에 이어 일부러 그 세부 도판을 크게 제시하고 있는데(아래),  이를 통해 고려 사경에 담긴 고려인의 정성과 정교한 솜씨를 실감할 수 있게 된다. 이밖에 나전칠기나 고려불화의 세부 도판도 제시하고 있다. 결국 도판만으로 따지면 이 책을 따를 개설서는 아직까지 없다고 본다.

 

 

일본 교토의 도지[東寺]에 소장된 <법화경 사경보탑도>는 사경 제작에 얼마나 정성을 다했는지를 보여주는 아주 특별한 작품이다. 얼핏 보면 감지에 금물로 7층탑을 그린 것 같지만, 실제로는 법화경 전7권의 내용을 글씨로 써서 7층 보탑도를 이룬 것이다. 후대에 가면 《반야심경》같은 짧은 경문을 써서 탑의 윤곽을 이룬 것도 나오지만 이처럼 탑신부는 물론 용마루와 기와까지 모두 글씨로 새긴 엄청난 공력의 작품은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았다. (471-473)

 

여기에서 저자는 미술을 역사를 보완하는 자료로써 다룬 것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예술품으로서 인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형식이나 양식 분석에만 치우친 책은 아니다. 통일신라와 고려시대의 역사를 미술의 흐름으로 풀어낸 개설 부분은 역사와 미술의 관계를 이해하는 데에도 크게 도움이 되는 글이다. 다만 이런 서술은 미술을 역사에 꿰어 맞추는 일반화라는 비판도 가능하다. 미술품은 역사의 흐름 속에서만 탄생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 내는 작가의 창의성이나 영감에 의해 시대를 뛰어넘기도 하기 때문이다.

 

아무튼 저자가 자신의 전공 분야인 서화 유물 외에도 건축, 석조미술, 도자기, 불상과 불화까지 충실하게 개설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간 <답사기> 집필 과정이나 교단에서 쌓아 온 자료들 덕분이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야외 석조미술 도판들이 매우 충실하고 다양하다고 느꼈다. 저자가 과거 문화재청장을 역임하면서 직간접으로 유물을 관리했던 경험과 그 과정에서 나온 성과물도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특히 북한의 유물이나 신발굴 자료들을 현장감 있는 서술로 소개한 점은 기존 개설서와 차별된다.

또 유물의 기능을 고려한 설명도 눈에 띄었다. 예를 들어서 용머리포수와 풍경을 건축의장 기능을 강조하여 설명하고, 도판도 이들을 따로 분리하지 않고 연계하여 제시하고 있는 점은 유물의 쓰임새를 독자가 직관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228)

 

반면 일부 확인하지 않고 쓴 듯한 유물 서술과 학계의 낡은 통설을 반복하고 있는 부분들도 있다. 예를 들어 고려 13세기 상감청자를 설명하면서 중국에서는 상감기법이 도입되지 않았다고 썼는데(365), 이 부분은 단정적으로 말하기는 어렵다. 중국 하북성 등 북부 지역 도자(예를 들어 자주요) 중에는 주도적인 기법으로 쓰이지는 않았지만 일부 상감이 사용된 예가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이외에도 몇 군데 유물 형식 서술에서 사소한 오류가 보이기는 하지만 그다지 큰 문제라고 보기는 어렵다. 전반적으로 (통일신라와 고려미술의) 나열식 서술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던 기존 한국미술사 개설서에 견주면 크게 달라진 책이라 할 수 있다.

 

또 각종 명문이나 문헌기록의 내용을 적절히 번역, 인용하여 제시한 것도 돋보인다. 1차사료인 명문과 기록은 역사와 유물을 남의 글에 기대지 않고 직접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주는 자료이기 때문에 미술사에서도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따로 이 사료만을 수집한 책이 출판되었을 정도이다. 나도 이 책에 인용된 몇몇 기록을 통해 유물과 그 시대에 대해 새롭게 인식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성덕대왕신종> 명문 중에 나온 아래와 같은 글을 읽으면서 그 시절이 오히려 요즘보다 낫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성덕대왕 때에는) …… 항상 충직하고 어진 사람을 발탁하여 백성들을 편안히 살 수 있게 하였고, 예와 악을 숭상하여 미풍양속을 권장하였다. 들에서는 농부들이 천하의 대본인 농사에 힘쓰고 시장에서 사고파는 물건에는 사치한 것이 전혀 없었다. 풍속과 민심은 금과 옥을 중시하지 아니하고 문학과 기술을 숭상하였다. (187-189)

 

#

미술은 형태와 색채를 지니고 있는 조형작품들이다. 형태가 없는 미술이란 없다. 그러니 이 미술이란 눈을 통해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미술 작품을 제대로 깊이 있게 바라보는 일은 눈만으로는 가능하지 않다. 눈으로 보고 머리로 이해하거나 그도 아니면 글로 읽어내야 하는 경우도 있다. <한국미술사 강의>는 그런 점에서 한국 미술을 좋은 도판과 재미있는 글로 두 번 보게 이끌어주는 아주 대중적인 개설서라고 할 수 있다.

풍속과 민심은 금과 옥만을 숭상하고, 문학과 기술을 천시하는 시대에 이런 책이 얼마나 읽히겠냐만, 그나마 한국 미술에 관심이 있는 일반인과 학생들에게 추천할 수 있는 책이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곰곰생각하는발 2016-02-12 16: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림책이나 사진책이나 마찬가지일 것 같습니다.
이런 책들에서 중점을 두어야 할 것은 그림과 사진이잖아요.
하, 저 어느 사진 평론집 읽다가 뚜껑 열린 적이 있는데 사진을 개미 똥구멍만한 크기로 삽입했더라고요...
별 하나 줬습니다. 내용은 훌륭했는데 출판사의 저능한 편집 능력에 좌절했다고나 할까요..


설 연휴 잘 보내셨습니까요, 돌궐 님 ?

돌궐 2016-02-12 17:52   좋아요 0 | URL
곰곰님도 연휴 잘 보내셨는지요. 저야 명절에는 늘 운전이죠. 뭐. 이리갔다 저리갔다. 마지막 날은 뒹굴뒹굴 하고요.
좋은 도판이 실린 책은 가격이 올라가는 치명적 단점이 있긴 합니다. ㅋㅋㅋ

만병통치약 2016-02-12 18: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분 책은 저같은 초심자도 읽기 편해서 좋습니다. 특히 양식의 발전퇴락을 설명해주는 부분이 유익했습니다. 두고 두고 참고자료로 쓸만해요 ^^

돌궐 2016-02-12 18:46   좋아요 0 | URL
예 그렇지요. 유홍준 글은 읽기 편합니다. 대단한 달변가이기도 하지요. 자세히 읽어보면 참 성실하게 잘 쓴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