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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두리 없는 거울
츠지무라 미즈키 지음, 박현미 옮김 / arte(아르테) / 2015년 1월
평점 :
품절
츠지무라 미즈키의 <테두리 없는 거울> 중 두 번째 이야기인 「그네를 타는 다리」를 다 읽고 나니 만화 <플라워 오브 라이프>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아아, 그렇다. 학창 시절에는 한 교실 속 친구와의 사소한 트러블에도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고, 차라리 내가 경미한 부상을 입어 학교를 못 간 게 그 트러블을 없앨 수 있는 자그마한 계기가 되어주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곤 했다. 어디선가 부주의한 자동차가 나를 의식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그렇지만 너무 아픈 건 싫으니까 적당한 정도, 를 기대한다거나, 감기 몸살이 나를 덮치길 바란다거나, 하다못해 등굣길 버스가 잠깐 고장이 나 움직이지 못한다면 어떨까─하는, 누가 들으면 큰일 날 소리라고 할 망상을 펼치곤 했었다. 그리고 나는 학교를 무사히 졸업했다. 초, 중, 고 개근!
아마 「그네를 타는 다리」의 주인이었던 미노리도 그런 생각을 했던 게 아닐까. 그런데 그 마음에, '무언가'가 응답한 것이다. '무언가'는 미노리의 마음일 수도 있고, 정말 그네의 주위를 부유하던 유령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수수께끼의 정답을 찾으려 애쓸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 소설집은 그 알 수 없는 수수께끼에서 공포를 느끼게끔 하는 것이 작가의 애초의 목적이 아니었을 테다. 어린 시절 무언가 금기시되는 듯하면서도 귀를 막을 수 없었던, 끊임없이 계속 들여다보게 만드는, 뱃속을 간질거리게 만드는 그 '두려움'과 어린 시절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테두리 없는 거울>은 그런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다.
'우리 학교 부지가 옛날에는 공동묘지였대.' '히익, 진짜?'
낮 동안에는 전교생의 떠들썩한 활기로 가득찬 학교는, 사실 모두가 하교하고 난 다음에는 을씨년스러울 정도로 조용해진다. 아마 낮 시간 동안의 우렁찬 소리가 더욱 대비가 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 갭에서 많은 학교 괴담들이 변주되지 않았을까? 「계단의 하나코」 역시 그런 학교 괴담의 변주곡 중 하나다. 들어보면 허접하고 허술하기 그지없는 금기사항임에도, 아이들의 입에서 입으로 하나코를 상대로 '해서는 안 될' 규칙과 '해야할' 규칙이 전해진다. 그리고 이는, 피치 못할 사정으로 '혼자' 을씨년스러운 학교를 지켜야 하는 당직 교사에게도 적용될지도 모른다. 학생이 아닌, 선생님에게도.
「아빠, 시체가 있어요」라는 외침은 기묘하다. 그들은 시체를 발견했음에도 그다지 놀라지 않고, 오히려 덤덤하게 이 시체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에 대한 고심에 빠진다. 오히려, 끝없이 나오는 시체를 보며 정리하기 힘든데 왜 이렇게 많이 죽이냐는 짜증까지 몰려온다. 이들의 신경줄은 도대체 어떻게 생겨먹은 것인가. 더더욱 기묘한 것은, 일주일에 한 번 방문할 때마다 지난 주에 있었던 일을 마치 모른다는 듯 행동한다는 점이다. 과연 치매에 걸린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계신, 시골집에서 그들은 무엇을 본 것일까. 개인적으로는 이 이야기는 아직도 무슨 얘기를 하는지 모른다.
「테두리 없는 거울」이란 어떤 거울일까? 액자에 씌워지지 않은 거울마저 그 끝의 경계는 분명히 존재하건만. 어린 시절 영심이는 미래의 남편감을 보기 위해 입에 칼을 물고 소복을 입은 채 거울을 살며시 들여다본다. 누구나 미래를 궁금해하는 마음을 품고 있다. 하지만 천기누설이라 했을까? 미래의 일을 현재로 끌어들이는 순간, 시공간은 뒤틀려버릴지도 모른다. 마치 빛을 반사해 거울 앞의 물체를 투영해주는 그 경계가 흐릿해진, 거울 속의 세상이 거울 밖으로 스물스물 흘러나오는 '테두리 없는 거울'처럼 말이다.
무엇보다 노스탤직 호러의 극치를 보여주는 것은 「8월의 천재지변」을 꿈꾸는 소년의 이야기다. 반에서 나름대로 중심적인 역할을 하던 소년 신지는, 반에서 가장 겉돌고 있던 소년 교스케을 우연찮게 돕는다. 그리고 그들은 함께 변두리로 밀려나버렸다. 친구가 한 명도 없는 것은 쓸쓸하니까,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자신의 세계를 구축해 나간다. 신지는 '유짱'이라는 친구를 만들고, 교스케는 묵묵히 그 가상의 친구에 대해 맞장구친다. 하지만 '유짱'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소문이 퍼지고, 신지는 반 친구들의 의혹어린 눈총이 두렵다. 그러나 그 때, 홀연듯 나타난 '유짱'… 유지매미의 허물을 함께 바라보며 신지와 교스케는 어떤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그 시절의 이야기는 각자의 비밀로 묻어두지만, 언젠가는 문득 이야기를 꺼내 '천재지변'의 전말을 함께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을테다. 그 따스함이 아름답다.
일본의 '분신사바'는 동전을 이용해 유령님이 글자판을 움직여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게 하는 것 같다. 지역마다 다를지는 모르지만, 우리 동네의 '분신사바'는 두 명이 한 개의 펜을 맞잡고 힘을 빼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유령의 움직임을 따라 종이 위에 글씨를 쓸 수 있으니까. 한 번은, 친구들이 물었다. '훙치뿡캭이 좋아하는 남자애가 누군지 알려주세요!' 참 나, 유령이 그걸 알긴 뭘 알아, 하고 코웃음쳤지만, 종이 위의 움직임은 글씨라기보다는 요상한 그림에 가까웠지만, 펜의 움직임이 멎고 난 다음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너무나도 뚜렷하게 보이던 마음 속의 이름… 황급히 부정했지만, 발개진 얼굴은 감추지 못했던 기억이다. 미노리는 동전을 의도적으로 움직였을까? 내 친구들은 이미 모른 척 하고 있던 내 마음을 알고 있어 은근슬쩍 글씨를 썼던 걸까? 나는 아직도 그 진실을 모른다.
하나코와 만나고 싶으면 하나코가 사는 계단을 진심을 다해 열심히 청소할 것. 당신은 깨끗하게 청소했어._p.82~83, 「계단의 하나코」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지금 붕 날아서 이 계단에서 굴러떨어지면 어떻게 될까?_p.122, 「그네를 타는 다리」
정리하느라 얼마나 힘든데, 대체 왜 이렇게 죽이는 거야!_p.168, 「아빠, 시체가 있어요」
이 미래를 내동댕이치고 싶다. 다시 고치고 싶다._p.228, 「테두리 없는 거울」
옛날의 예민한 터부를 날렵하게 찌르다니. 이 녀석, 정말로 듬직해졌구나._p.322, 「8월의 천재지변」
_20150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