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쓰다 신조의 작품을 간만에 읽었다. '도조 겐야 시리즈'에 이어 단편집 <붉은 눈>에 이어 호러를 중점으로 하는 장편을 읽게 된 것은 <노조키메>가 처음인데, 일단 간단히 말하자면 호러와 미스터리의 융합, 그것도 물리적인 결합이 아닌 화학적인 변화까지 일으키는 융합인 것일까 하는 측면에서 <노조키메>는 상당히 뛰어난 작품이라 할 수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도조 겐야 시리즈의 스타일을 더 선호하게 된다. 호러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고 끊고 맺는 것이 확실한, 논리적인 추론을 나름대로 따라가는 것을 좋아하는 내 성향과 취향이 반영된 결과일 테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조키메>가 실마리를 얻어 '어떤 의문점'을 풀어나가는 과정은 상당히 흥미롭다.
일단 <노조키메>의 화자는 작가 '미쓰다 신조'다. 심지어 서장에서 이 이야기를 쓰게 된 경위를 간략하게 설명하는 과정에서는 애초에 내가 <붉은 집>을 읽으면서 만나봤던 구체적인 작품명이 들먹여지면서 리얼리티를 강조하기까지 하는데, 이 시점에서 이미 나는 함정에 걸려들고 만다. 이건 진짜 이야기일까, 아닐까?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서장에서부터 무너뜨리는 솜씨, 정말 탁월하다.
그리고 '노조키메'라는 존재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시작하는데, 이 시점에서는 이미 작가 미쓰다 신조는 이야기 밖으로 물러나고 두 명이 다른 시기에 경험했던 이야기를 연달아 들려준다. 대학생 시절 아르바이트를 떠난 곳에서 겪은 '엿보는 저택의 괴이' 그리고 민속학 연구자가 50년동안 수기로 담아둔 채 세상 밖으로 꺼내지 못했던 '종말 저택의 흉사'. 이 역시 누군가의 경험담이라는 형태로 이것이 현실인지 허구인지 아리까리하게 만들고 있어 모호함과 공포심을 슬쩍 배가시킨다는 것은 두 말 하면 입 아플테고.
'엿보는 저택의 괴이'에서는 리조트에 아르바이트를 떠난 네 명의 대학생이 리조트를 둘러싸고 있는 산 너머의 폐촌에 방문하면서 벌어진 기묘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기묘한 순례자 모녀의 존재, 마치 깨어진 경계를 나타내는 듯한 사각형의 바위, 그리고 폐촌이 틀림없는 마을의 빈 집에서 느껴지는 찌를 듯한 시선, 그 이후 한 걸음 뒤에서 자신을 지켜보는 일행들의 시선과 기묘한 죽음, 그리고 어딘가 빈 틈이 있으면 나타나는 한 소녀.
'엿보는 저택의 괴이'에서는 그 모든 사건의 원인을 알 수 없다. 그러나 민속학자의 수기 속에서는 친구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친구의 고향을 방문하면서도 집락촌에서 친구의 본가의 미묘한 위치와 친구의 기묘한 죽음에 대한 호기심을 숨기지 못한다. 게다가 흉사가 벌어지는 당시의 분위기가 꼼꼼하게 그려지면서 '엿보는 저택의 괴이'에서의 실마리들이 하나 둘 엮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 때 <노조키메>의 포인트는 바로 '나름의 조리'다. 분명 이론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기괴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고 있으니 그에 대한 원천을 찾아갈 법도 하지만, 오히려 소설은 그에 대한 설명은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조키메'라는 존재는 나름의 조리를 가지고 행동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이러이러한 이유로 이 사람에게는 시선을 느낄 수 있고, 또 누군가는 노조키메의 시선을 전혀 의식하지도 못한다. 이러한 흐름을 기저로 '엿보는 저택의 괴이'에서 '미스터리'로 남아있던 기묘한 이야기들이 '종말 저택의 흉사' 속 실마리를 단서로 '나름의 해석'을 내릴 수 있는 '조리 있는 이야기'로 치환된다. 이것은 마치 '사건'편에서 단서를 흩어두고 '해결'편에서 그 조각들을, 조리 있게 맞춰나가는 과정과 흡사하지 않은가. 그럼에도 모든 것을 속시원히 설명하지는 않는다. 미쓰다 신조는 아마 그런 이야기를 쓰고 싶었던 것일 테다. 기괴한 죽음의 본질은 알 수 없지만, 그 조리는 알 수 있다니, 이것 참 묘한 이야기이다.
그런 존재를 이론으로 생각하는 건, 우스운 얘기죠. 그렇지만 무슨 일에나 조리가 있는 법입니다. 어디까지 인간의 지식으로 파악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지만, 사실은 괴이한 현상도 그 조리를 따라 발생하는 경우가 많지 않을까 하고 저는 생각합니다._p.3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