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슈렉>과 줄리아 크리스테바 ⑩

 

10. 동화의 철책에 갇힌 주인공들 (2) 



동키 : 당신은 그렇게 못생기지 않았어요. 흠, 거짓말이었고요, 사실 못 생겼어요. 하지만 밤에만 그렇잖아요. 슈렉은 하루 종일, 24시간 못생겼어요.
피오나: 동키, 나는 공주야, 공주는 이렇게 생기지 않았어……. 


   영화 속에 등장하는 ‘괴물’, 동화 속에 나오는 각종 도깨비, 다양한 괴담 속에 존재하는 ‘귀신’들이 매혹과 공포의 양가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들이야말로 크리스테바가 말한 ‘아브젝시옹’의 대표적 대상들이다. 그 더러움과 끔찍함이 ‘우리’의 정체성을 더럽힐까 봐 추방하고 배제했던 아브젝트들. 우리는 의식의 차원에서는 아브젝트를 밀어내지만 무의식의 차원에서는 아브젝트에 대한 미련과 애정을 버리지 못하는 게 아닐까.


   <슈렉>에서 각종 동화 속 생물을 배제해버린 ‘살균된 세계’ 듀록은 예전처럼 활기도 없고 아름답지도 않다. 그처럼 우리는 우리 자신의 ‘치부’, 아브젝트를 버림으로써 점점 우리 자신에게서 멀어지는 것이 아닐까. ‘야만’으로 치부된 것들을 금지할수록 ‘문명’의 다양한 가능성이 사라져버리듯이, 우리 안의 아브젝트를 지나치게 배제할수록 우리 안의 ‘코라’는 질식되어버리는 것이 아닐까. ‘나다운 것’을 찾기 위해 ‘나답지 않은 것’을 오려내다 보면 언젠가는 ‘나’조차 사라지지 않을까. 


   동키에게 먼저 ‘밤의 모습’을 들켜버린 피오나는 ‘공주답지 않게’ 못생겼지만, 금발의 바비인형이나 디즈니형 백설공주과는 전혀 다른 매력을 지니고 있다. 우리가 아는 슈렉은 분명 그녀만의 매력을 발견해낼 것이며 반드시 그녀의 ‘마법’이 풀려 ‘진정한 모습’으로 돌아와야 한다는 동화 속 스토리의 압박도 느끼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피오나는 아직 한 번도 누군가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보지 않았다. 혼자서 용을 때려눕히고 얼마든지 세상 밖으로 나와 사랑을 찾을 수 있으면서도 그녀가 스스로를 거대한 성 안에 가둔 것은 스스로의 운명에 대한 자책감 때문이 아니었을까.


 동키 : (‘못생긴’ 피오나로 변해버린 공주를 바라보며 깜짝 놀라) 당신은 누구세요? 우리 공주님을 도대체 어떻게 했어요?
 피오나 : 동키, 조용히 해! 내가 공주야.
 동키 : 맙소사! 당신이 우리 공주님을 먹어버렸군요!
 피오나 : 아니, 이게 바로 나야. (……) 그래, 난 못생겼어. (……) 해가 지고 나면 이렇게 변해. 낮에는 예쁘고 밤에는 못생겼어. 이렇게 지내왔어. 진정한 사랑의 첫 키스를 받을 때까지. 그러면 사랑으로 진정한 모습을 찾게 될 거야. (……) 밤마다 이렇게 변신해. 이 끔찍한 못생긴 괴물로 변신해! 탑에 갇혀서, 진정한 사랑이 구해 주는 날이 오길 기다리게 되었어.
 그래서 해가 지고 내 변신한 모습을 보기 전에 파쿼드 군주랑 결혼해야 하는 거야. 그래야만 해, 진정한 사랑의 첫 키스만이 주문을 풀 수 있어.


 그녀는 영원히 성 안에 갇히는 것이 두려워 스스로를 동화 속 마법의 환상에 가둠으로서 오히려 스스로를 ‘아브젝트’로 전락시킨 것은 아닐까.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해 줄 수 있는 상대가 눈앞에 있는데도 그녀는 깨닫지 못한다. 그녀는 동화 속 스토리의 실현만을 믿으며 자기 안의 무한한 ‘코라’도 미처 개발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 위기상황이야말로 그녀가 ‘마법’이 아닌 ‘사랑’으로 스스로 변신할 수 있는 진정한 기회가 아닐까.
   사랑하는 것을 영원히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끔찍한 불안이야말로 우리 안의 무한한 가능성의 에너지, 즉 코라의 활동을 촉발하는 가장 위력적인 촉매가 될 수 있다. 마찬가지로 피오나의 사랑을 받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슈렉의 불안이야말로 한 번도 타인을 자신의 늪으로 초대하지 않았던 그의 후천적 자폐증을 치유할 수 있는 결정적 계기가 될 수 있다. 


   우리 안에서는 내가 사랑하는 ‘불완전한’ 대상을 ‘완벽하게’ 만들고 싶은 욕망, 자신의 사랑이 궁지에 몰렸을 때 대상을 ‘좋은 대상’과 ‘나쁜 대상’으로 분열시키려는 욕망이 공존한다. 크리스테바에게 커다란 영감을 주었던 정신분석의 대가 멜라니 클라인은 애정의 대상을 상실할 것만 같은 불안과 공포야말로 우리가 ‘사랑’이라 부르는 정서의 핵심적 요소임을 간파했다. 사랑은 완벽한 대상에 대한 매혹이 아니라 불완전한 대상에 대한 불안과 슬픔과 혼돈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곳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좋은 대상을 어떻게 추리고 나쁜 대상을 어떻게 없애는가. (......) 애정 대상을 구하고 그것을 보상하고 회복하려고 하는 모든 시도들, 우울증 상태에서 절망과 연결되어 있는 시도들은, 자아가 이러한 회복을 성취하는 자신의 역량에 의심을 품고 있기 때문에 모든 승화와 전체적 자아발달을 위한 결정 요소들이다. (......) 나는 애정대상이 파괴되어 형성된 조각들의 승화와 그리고 그 조각들을 하나로 합치려는 노력의 구체적인 중요성을 언급할 것이다. 그것은 조각나버린 ‘완벽한 대상’이다. 이와 같인 완벽한 대상이 약화되는 붕괴의 상태를 원래대로 되돌리려는 노력은 그 애정의 대상을 아름답고 ‘완벽하게’ 만들 필요성이 있다는 사실을 전제한다. 게다가 완벽의 개념은 대상의 붕괴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더욱 강제적이다.
 증오하는 어머니로부터 외면당해왔던, 혹은 어머니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각종 메카니즘을 사용했던 환자들. 그들의 마음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머니에 대한 아름다운 상(picture)이 존재함을 발견했다. 실제 대상은 아름답지 않은 것, 정말로 상처받고 치료할 수 없으며 따라서 두려운 사람으로 느껴짐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운 상은 실제 대상과 분리되어 왔지만 절대 포기되지는 않았으며 그 환자들의 구체적인 승화 방식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완벽함에 대한 욕망은 붕괴의 우울 불안에 뿌리를 두고 있는, 그 결과 모든 승화에서 커다란 중요성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 멜라니 클라인, <조울증의 심리적 기원>,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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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kffkthkffk 2010-01-15 1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피오나 공주, 보면 볼수록 '복스러운' 얼굴^^
 



영화 <슈렉>과 줄리아 크리스테바 ⑨

 

9. 동화의 철책에 갇힌 주인공들 (1) 



 동키 : 두 사람 서로 좋아하잖아. 이봐. 슈렉, 감정을 무시하면 안 돼. 그녀에게 네 감정을 말해 줘.
 슈렉 : 안 돼. 그녀는 공주야. 나는, 나는……
 동키 : 괴물이라고?
 



   오랫동안 성 안에 갇혀 있던 공주답지 않게 우울증의 기미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었던 명랑소녀 피오나. 특히 동화 속 캐릭터 중 하나인 로빈 후드가 나타나 그녀를 슈렉에게서 빼앗아 가려하는 대목에서 명랑소녀 피오나의 진면목이 발휘된다. “전 당신의 구원자입니다! 당신을 구출하러 왔습니다! 저 녹색 괴물로부터!” 잘난 척, 잘생긴 척, 멋진 척은 혼자 다 하는 로빈 후드에게 슈렉이 괴력을 보여주기도 전에, 피오나는 <미녀삼총사>의 유쾌한 패러디 액션으로 로빈 후드 일당을 일거에 퇴치해버린다. 슈렉의 엉덩이에 꽂힌 화살을 빼주며 두 사람 사이에는 로맨틱한 감정이 싹트는데.

 


   이렇게 유쾌 ·상쾌 · 통쾌한 성격을 지닌 피오나는 황혼녘만 되면 히스테리 증상을 보인다. 슈렉, 동키 일행과 함께 듀록으로 가던 중 피오나는 어둠이 밀려오자 겁에 질린 얼굴로 황급히 은신처를 찾는다. 그녀는 저녁마다 ‘괴물’로 변하는 자신의 모습을 아무에게도 보여줄 수 없어 황혼녘만 되면 숨을 곳부터 찾는 것이다. 로빈 후드뿐만 아니라 성을 지키고 있던 거대한 핑크 드래곤도 한방에 기절시킬 것 같은 괴력을 지닌 피오나는 왜 그동안 얌전히 누워 백마 탄 기사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일까.  





   피오나를 가두고 있었던 것은 핑크 드래곤이나 거대한 성벽이 아니라 왕자가 자신을 구해주면 마법이 풀릴 것이라는 동화 속 환상의 스토리가 아니었을까. 피아노 공주를 옭아매고 있었던 것은 동화의 교과서적 내러티브였다. 영화 <슈렉>은 동화의 낭만적 환상으로부터 ‘해방’되는 두 남녀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피오나는 “내 신랑이 될 파쿼드 군주는 어때요?”라고 물어보면서도 사실 자신을 구해준 ‘진짜’ 영웅 슈렉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다. 




 피오나 : (슈렉이 구워주는 고기를 맛있게 뜯어 먹으며) 이게 뭐죠?
 슈렉 : 들쥐에요, 들쥐 바비큐.
 피오나 : 그래요? 맛있어요.
 슈렉 : 들쥐국을 해 먹어도 맛있어요. 자랑하려는 건 아니지만 제가 끓인 들쥐국은 정말 맛있어요.
 피오나 : (슈렉과의 이별을 아쉬워하는 눈빛으로) 내일 밤에는 조금 다르게 식사를 하고 있겠군요.
 슈렉 : 언제 절 보러 늪으로 놀러 오세요. 맛있는 요리해 드릴게요. 개구리 수프, 생선눈 타르트, 말만 하세요.(……) 저 석양을 보세요. 정말 아름답죠?
 피오나 : 석양? 이런, 이런! 늦었어요. 정말 늦었어요.
 슈렉 : 왜 그래요? 잠깐만요, 이제 알거 같아요. 어둠을 두려워하시는 거죠?
 피오나: 네, 맞아요! 정말 무서워요. 안으로 들어가는 게 좋을 거 같아요. 
 




   슈렉은 태어나 처음으로 타인에게 ‘우리 집에 놀러 오세요’라는 말을 한다. 사랑스런 피오나는 누구도 들이고 싶지 않은 슈렉의 늪으로 초대받은 첫번째 주인공이 되었다. 하지만 슈렉은 아직 두렵다. 파쿼드 군주와의 ‘약속’도 약속이지만 피오나가 정말 자신을 좋아하는지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녀가 나를, 이 괴물을 사랑할 수 있을까’라는 공포를 딛고, 아무도 우리를 축복해주지 않을 거라는 불안을 딛고, 슈렉과 피오나는 사랑에 빠질 수 있을까. 백마 탄 왕자에 대한 피오나의 상상이 틀렸듯이 우아하고 얌전하게 왕자님만을 기다리는 공주에 대한 상상도 틀렸다. 우리가 ‘그러리라’고 믿었던 공주와 왕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 시대의 지배적 담론에 맞게 변형된 공주와 왕자의 전형이 존재할 뿐.  






 

   
  우리가 씹어 먹은 아동 동화는 아직 우리 위장 속에 들어 있다. 아동 동화는 우리의 진정한  정체성이다. 백설공주와 그녀를 구해준 영웅 왕자는 우리의 두 가지 거창한 픽션이다. 이 두 픽션 사이에서 우리에겐 정말이지 별다른 승산이 없었다. (……) 소년들은 백마에 올라타고 난쟁이를 찾아가서 백설공주를 사오는 꿈을 꾸고, 소녀들은 시간증(屍姦症) 환자의 욕망의 대상(순결한 희생양인 잠자는 공주, 최고로 어여쁜 살덩이, 잠자는 상품)이 되기를 소망한다. 우리는, 자기도 모르게, 때로는 알지만, 원하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우리가 배웠던 역할을 연기한다.
 - 안드레아 드워킨Andrea Dworkin, <여성혐오Women hating>, Plume, 19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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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손체조 2010-01-13 15: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디즈니>와 <꿈공장>의 차이를 대표하는 <슈렉>! 들쥐 바베큐가 정말 어떤 맛인지 궁금하게 만들었던 <슈렉>!

qlqk 2010-01-13 17: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우리가 씹어먹은 동화는 아직 우리 위장 속에 들어 있다! 움찔했습니다^^
 



영화 <슈렉>과 줄리아 크리스테바 ⑧

 

8. 동화 속의 세계는 너무 안전하다? (2)

   슈렉 : 당신은 제가 상상했던 공주하고는 좀 다르네요.
   피오나 : 제대로 알려고 하지도 않고 판단을 내리면 안 되겠죠.
   - 영화 <슈렉> 중에서
 



    나는 가끔 ‘사람 미워하는 데는 이유가 없다’는 말이 잘 이해되지 않았다. 사실 우리는 그 이유를 알고 있지 않은가. 우리는 누군가를 싫어할 때 그 이유를 곰곰이 따져보면 알 수 있지만 그 이유를 따지기도, 말하기도 싫어하는 것이 아닐까. 우리가 누군가를 싫어하는 이유를 말하려면 결국 우리 자신의 치부가 드러나게 되어 있다. 내가 ‘견딜 수 없는 한계’를 넘어서버린 존재, 그 한계를 똑바로 노려보기엔 우리의 자의식이 너무 견고한 것은 아닐까. 내가 싫어하는 사람들의 블랙리스트는 곧 나의 ‘한계’를 드러내는, 숨기고 싶은 마음의 카탈로그이기도 한 셈이다. 
  




    우리는 싫어하는 것에 대해 침묵함으로써 자신의 ‘아브젝시옹’을 숨기려고 한다. 내가 무엇을 증오하고 은폐하고 배제하는지 모두 다 말하고 산다면 하루도 멀쩡한 정신으로 견딜 수 없을 것이다. 아브젝시옹의 목록은 우리가 견딜 수 없는 고통의 목록이기도 하다. 그런데 정말 우리는 우리가 싫어하는 대상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일까. 우리는 혹시 증오의 대상에 대한 ‘지식’이 없이 뜬소문이나 가벼운 인상만을 토대로 판단을 내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내가 증오하는 대상들은 정말로 내 증오를 받을 만큼 대단히 혐오스러운 것일까.
   




   슈렉은 언뜻 보면 인간혐오증에 걸린 괴물 같다. 하지만 슈렉이 진짜 사람들을 만나지 않는 이유는 그가 사람을 싫어해서가 아니라 사람들이 그를 싫어해서이다. 피오나 공주를 파쿼드 영주에게도 데려오는 길에서 슈렉은 그 오랜 ‘인간혐오증’의 비밀을 동키에게 털어놓는다.

 동키 : 슈렉, 우리 늪을 다시 돌려받으면 뭘 하지?
 슈렉 : 우리 늪?
 동키 : 우리가 공주를 구하고 이번 모험이 다 끝나면 말이야.
 슈렉 : 우리? 당나귀야! ‘우리’라는 건 없어. ‘나’밖에 없어. 거긴 우리 늪이 아니라 내 늪이야. 어쨌든 가장 먼저 할 일은 늪 주위에 높은 울타리를 짓는 거야.
 동키 : 나 상처받았어, 슈렉. 상처받았어. 내 생각을 말해줄까? 내 생각에 네가 울타리를 짓고 싶다는 건 딴 사람이 못 오게 하려는 거 같아.
 슈렉 : 그래?
 동키 : 뭘 숨기고 있냐?
 슈렉 : 아냐.
 동키 : 오호! 네가 말한 그 ‘양파’ 같은 거구나?
 슈렉 : 그만해. (……) 당나귀, 경고한다! 그만 해!
 동키 : 누굴 못 들어오게 하려는 거야? 그것만 말해줘.
 슈렉 : 모두! 이 세상 누구도 내 늪으로 오지 말라고! 이제 됐어?
 동키 : 와우, 이제 말문이 트였군. 문제가 뭐야? 왜 다른 사람들을 그렇게 싫어하는 거지?
 슈렉 : 내가 문제가 있는 게 아냐. 딴 사람들이 날 싫어하는 게 문제야. 사람들은 날 보면 "악! 도와줘! 도망쳐! 멍청하고 못생긴 오우거다!"라고 한다고. 사람들은 날 제대로 알려고도 하지 않고 판단부터 해. 그래서 혼자 사는 게 더 좋아.
 동키 : 있잖아…….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난 네가 멍청하고 못생긴 오우거라고 생각 안 했어…….
 슈렉 : 알아…….




   슈렉은 ‘우리’라는 말이 너무 낯설다. 동키가 ‘우리’의 모험이 끝나면 ‘우리’ 함께 늪에서 살자고 말하자 내심 기분이 좋으면서도 한 번도 ‘우리’라는 틀 안에 자신을 넣어본 적이 없어 낯설기만 하다. 하지만 슈렉은 안다. 동키는 자신을 ‘괴물’이라고 판단하지 않고 자신의 장점과 단점을 있는 그대로 보려고 했던 첫번째 친구임을. 동키가 ‘겉보기 등급’과는 달리 따스한 마음씨와 깊은 이해심을 지니고 있듯이, 슈렉 또한 사람들 사이에 퍼진 루머와는 달리 너무도 지적이고 용감하며 사랑스러운 캐릭터다. 
 




    우리의 피오나 공주 또한 그녀를 만나기 전까지 우리가 가졌던 ‘편견’과는 다르다. 우아하고 세련되며 얌전한 ‘공주’일 것이라는 따분한 편견을 날려버리는 피오나의 거침없는 성격과 장쾌한 액션! 하지만 아직 피오나의 진짜 장점은 발휘되지 않는다. 그녀는 여전히 ‘동화의 환상적 내러티브’ 안에 갇혀 있는 것이다. 피오나는 스스로 동화의 전형적 스토리에 몸이 꽁꽁 묶인 채, 눈앞의 슈렉의 아름다움을 보지 못하고 ‘파쿼드 영주’를 동화 속 왕자로 착각하고 있다.   


    피오나는 환상 속 왕자의 도움 없이도 스스로 탈출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성 바깥에 나가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밤마다 모습이 바뀌는 마법보다 끔찍한 것은 그녀를 아브젝트 수용소로 추방해 버리고도 마법의 왕자만 기다리게 방치해 둔 부모의 이기심이 아니었을까. 파티에 데려가 사교계로 진출시키기에는 사랑스런 딸의 외모가 너무 끔찍했으니까. 더 끔찍한 것은 스스로 탈출할 능력이 있으면서도 한 번도 시도하지 않은 것, 그러니까 피오나 스스로가 자신을 ‘아브젝시옹’의 대상으로 인정해버린 것이었다.

  

 

   
  아브젝시옹은 도덕을 알면서도 그 가치를 부정하는 것이어서 훨씬 더 음흉하고 우회적이며 석연찮은 어떤 것이다. 즉 자신을 숨긴 테러 행위, 미소 짓는 증오, 껴안는 대신에 품는 육체에 대한 욕망, 당신을 팔아치우는 채무자, 비수로 나를 찌르는 친구. 이런 것들이 그 예가 될 것이다.
 - 크리스테바, 서민원 역, <공포의 권력>, 동문선, 2001, 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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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손체조 2010-01-12 1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미소 짓는 증오>! 직장 생활에서 재일 빈전한 저 태도^^*

니모 2010-01-12 2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비수로 나를 찌르는 친구, 흐억 ㅠㅠ

someday 2010-01-13 07: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우리'라는 말이 너무 낯선 슈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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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밀크 2010-01-07 17: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F.미르치아 엘리아데-매트릭스~ 네오보단 모피어스죠! =b

linasaga 2010-01-08 15: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A.조셉 캠벨-어린 소녀의 신화 탄생기,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B.바슐라르-상상력의 한계 없음을 보여준, 원령공주
C.롤랑 바르트-폭력의 틈새로 보이는 지순함, 색계
D.들뢰즈-잃어버린 시간을 찾는 건 불가능할까? 시간을 달리는 소녀
E.니체-진정한 자유의 의미를 말해준 쇼생크 탈출
F.융-한 인간으로서의 천재의 이야기, 뷰티풀 마인드
G.수잔 손택-가장 중요한 건 사람임을 말해준 굿 윌 헌팅
H.부르디외-그들만의 세계, 순수의 시대
앞의 글들 찾아보느라 힘들었습니다.;;

fnffnfkffk 2010-01-10 0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congratulations!!^^*

리턴 2010-01-10 0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A 조셉 캠벨 -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B 바슐라르 - 원령공주
C 롤랑 바르트 - 색계
D 들뢰즈 - 시간을 달리는 소녀
E 니체 - 쇼생크 탈출
F 융 - 뷰티플 마인드
G 수잔 손택 - 굿 윌 헌팅
H 부르디외 - 순수의 시대

연재될때 잘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었는데 책으로 다시 한번 읽어봐야겠어요~

비로그인 2010-01-11 09: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책으로 나오는군요. 축하합니다.
A는 센과 치히로와 여행을 떠났던 조셉캠벨, B는 수염이 인상적인 것이 바슐라르(원령공주)네요. C는 뷰티풀 마인드의 내쉬와 많은 공통점이 있었던 융입니다. D는 모자가 인상적인 것이 들뢰즈군요. 마코토와 시간을 함께 달렸죠. E는 콧수염이 인상적인 것이 니체(쇼생크 탈출), F는 융(뷰티풀마인드)입니다. G는 유일한 여성분인 수잔손택(굿윌헌팅)입니다. H는 센과 치히로를 가르키고 있지만 사실 순수의 시대를 본 부르디외죠. ㅋㅋ 어렵네요. 사진을 찾아봤어요.

changgoguisin 2010-01-11 1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단행본으로 나오는군요. 기대됩니다~
A. 부르디외: 순수의 시대
B. 바슐라르: 원령공주
C. 조셉 캠벨: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D. 들뢰즈: 시간을 달리는 소녀
E. 니체: 쇼생크 탈출
F. 엘리아데: 매트릭스
G. 수잔 손택: 굿 윌 헌팅
H. 롤랑 바르트: 색계

sotkfkd 2010-01-11 2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A. 조셉 켐벨 :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을 무진장 존경하기 시작하게 한...... .
B. 바슐라르 : 원령공주, 돌아가고 싶어라 그곳으로!
C. 롤랑 바르트 : 색계,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 왜 함민복 시인의 시가 생각나는 거 있죠.
D. 들뢰즈 : 시간을 달리는 소녀, 어서 자라고 싶은 적이 있었나? 남들은 그런다는데...... .
E. 니체 : 쇼생크 탈출, 익숙해지기에서 탈피할 것, 가장 무서운 것......, 그리고 희망.
F. 융 : 뷰티플 마인드, 수학을 엄청 못했기로......, 나 최후가 어때도 좋으니 수학자였으면, 좀. 희망사항이었음.
G. 수잔 손택 : 굿 월 헌팅, 내 생애 최고의 순간을 나도 만들고 싶어. 언제?
H. 부르디외 : 순수의 시대, 이룬다, 이루지 않는다. 한계. 허무, 때로 아름답다? 무엇일까, 사랑이란.

한달쯤 세 끼의 공기밥 한 그릇과 김치찌개와, 물만 있으면 가능한 삶이 있었으면 했는데...... . 무지 기뻤습니다. 읽을 때마다.

모모momo 2010-01-11 2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앙~+_+ 드디어 출간되는 군요. 앗싸라~비용~~ㅎㅎ
전 즐겨찾기 해놓고 자주 읽었던 블로그였는데 축하드려용ㅎ

A. 롤랑 바르트 - <색,계> 탕웨이와 양조위의 섹시함도 느낄 수 있지만, 역사적인 무거움과 사랑의 아픔까지 느낄 수 있었던 영화였죠 ^^
B. 가스통 바슐라르 - <원령공주> 이모에게 추천받아서 봤던 영화였는데, (하울의 움직이는 성 세대인 저는ㅋ)미야자키 하야오의 새로운 면을 알게 되었답니당ㅎ
C. 조셉 캠벨 - <센과 치히로의 행방 불명>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영화중에 제일 재밌는거 같아요! 완전 짱~재밌음ㅎ 사촌동생들 보여줬는데 너무 반응이 좋았던 영화~~+_+ㅋ
D. 질 들뢰즈 - <시간을 달리는 소녀> 미래에서 온 남자친구와 안타까운 이별이 생각나는 영화. <시간을 달리는 소녀> 작가가 최근에 <썸머워즈>란 장편영화를 내놓았는데, 이것도 재밌게 봤어용ㅎ
E. 프리드리히 니체 - <쇼생크 탈출> 비오는 날 탈출의 기쁨을 느끼며 입벌리고 포효하는 장면이 인상적인 명작중에 명작이죠ㅎ 주말의 명화로 봤던 기억이 납니다 ㅋ
F. 칼 구스타프 융 - <뷰티플 마인드> 비디오로 빌려봤던 영화. 천재적으로 풀어내는 암호들이, 실제상황이 아닌 자신의 정신병 때문이였다는 것이 안타까웠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사실에 또 한번 놀랐던 기억이ㅎ참 좋은 영화 중 하나입니다 ^^
G. 수전 손택 - <굿 윌 헌팅> 이 영화도 비디오로 빌려봤었는데, 로빈 윌리엄스의 따뜻한 매력을 느낄 수 있었던 영화죠~맷 데이먼이란 참한 배우도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한 영화였던 것 같습니다ㅎ
H. 피에르 부르디외 - <순수의 시대> 씨네필에 연재된 영화중에 유일하게 아직 못본 영화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 나온 영화라서 ㅠ_ㅠ 구할 수 있다면 언젠가 꼭 보고싶어요ㅎ

꼭 정답이길 간절히 바래봅니당ㅎ작가님 사인 받고 싶어요~^^










비로그인 2010-01-12 1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A 신화학자 '조셉캠벨'
_ 일본의 신들이 쉬어가는 온천을 그린 '센과치히로의 행방불명'
B 상상력의 '가스통 바슐라르'
_상상력이 풍부했던 아름답고 거대한 숲을 그린 '원령공주'
C '롤랑 바르트'
_폭력, 상처, 욕망등이 떠오르는 영화 '색계'
D 시간의 '질 들뢰즈'
_내가변하면시간도 변할수있다 '시간을 달리는 소녀'
E 지상에서 영원으로 '프리드리히 니체'
_자유를 꿈꿨던 앤디의 영화 '쇼생크 탈출'
F '칼 구스타프 융'
_진한 감동이 그 제목그 자체였던 '뷰티풀 마인드'
G 자유 지성으로 세계를 이끈 문화아이콘 '수잔 손택'
_타인의 고통에 눈을 뜨고 세상과 만나게되는 천재이야기 '굿 윌 헌팅'
H '피에르 부르디외'
_제목대로 도덕적인 영화 현실과이상의 출돌을 감명 깊게 본 '순수의 시대'


저랑 같은 정답이 많네요...책 받을 수 있을까요??
작가님 파이팅~~

태엽 2010-01-12 16: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랑 철학을 둘다 좋아해서 정여울 작가글 글 재밌게 읽었습니다 ^^
단행본이 나오는건가요? 추카추카 !
A.롤랑 바르트 : 색계~한 여인의 일생이 역사의 수레바퀴 때문에 겪는 아픔이 느껴지던 영화
B.가스통 바슐라르 : 원령공주~학창시절에 원령공주 재밌게 봤던 기억이~요즘 아바ㅏ 보는 기분으로 봤다랄까?ㅎ
C.조셉 캠밸 : 센과치히로의 행방 불명~조카들 보여주니까 인기짱이였던 영화ㅎ너무 재밌음
D.질 들뢰즈 : 시간을 달리는 소녀~애니메이션에서 느껴지는 감성이 좋은 영화
E.프리드리히 니체 : 쇼생크 탈출~출소하고도 허락받고서야 화장실에 갔던 흑인주인공의 장면이 인상에 남는 영화.
F.칼 구스타프 융 : 뷰티플 마인드~암호해독의 천재가 겪었던 실제 상황을 그린 이야기. 안타깝기도 하지만, 너무나 아름다운 영화~~^^
G.수전 손택 : 굿 윌 헌팅~맷 데이먼이 이럴때도 있었나 느끼고 싶다면ㅎ나름 꽃미남 시절 풋풋했던 맷 데이먼을 볼 수 있는 영화ㅋ
H.피에르 부르디외 : 순수의 시대~이런 시대에 살았다면 정말 답답했을 것 같아요~ㅡㅡ:ㅋ
정답이면 좋겠네요~~ㅎ날씨 또 추워지네요~감기조심!!

cynical 2010-01-13 1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A. 롤랑 바트르 <색,계>
B. 가스통 바슐라르 <원령공주>
C. 조셉 캠벨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D. 질 들뢰즈 <시간을 달리는 소녀>
E. 프리드리히 니체 <쇼생크 탈출>
F. 칼 구스타프 융 <뷰티플 마인드>
G. 수전 손택 <굿 윌 헌팅>
H. 피에르 부르디외 <순수의 시대>

영화와 철학의 멋진 만남~ 기대됩니다^^

msa 2010-01-14 1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A. 부르디외 - 순수의 시대
B. 바슐라르 - 원령공주
C. 롤랑바르트 - 색, 계
D. 들뢰즈 - 시간을 달리는 소녀
E. 니체 - 소생크 탈출
F. 융 - 뷰티풀 마인드
G. 수잔 손택 - 굿 월 헌팅
H. 조셉캠벨 -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만삭 2010-01-20 14: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A : 롤랑 바르트 - <색, 계>
B : 가스통 바슐라르 - <원령공주>
C : 조셉 캠벨 -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D : 질 들뢰즈 - <시간을 달리는 소녀>
E : 프리드리히 니체 - <쇼생크 탈출>
F : 칼 구스타프 융 - <뷰티풀 마인드>
G : 수전 손택 - <굿 윌 헌팅>
H : 피에르 부르디외 - <순수의 시대>

정여울 작가님의 사인본 꼭 받고 싶습니다.
한두 개 틀린 거 있어도 좀 뽑아주세요^^ (아마 틀린 건 없을 거예요ㅋ)
영화 중에서는 <순수의 시대>를 빼고 다 봤는데 별 생각없이 본 영화들인데 새롭게 다가오네요. 책이 기대됩니다.

찐빵 2010-01-26 1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A. 롤랑바르트 - <색, 계>
B. 가스통 바슐라르 - <원령공주>
C. 조셉 캠벨 -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D. 질 들뢰즈 - <시간을 달리는 소녀>
E. 프리드리히 니체 - <쇼생크탈출>
F. 칼 구스타프 융 - <뷰티풀 마인드>
G. 수전 손택 - <굿 윌 헌팅>
H. 피에르 부르디외 - <순수의 시대>

전 다른 분들보다 못 본게 더 많아서 ㅡㅜ 이 기회를 통해 여러 영화 정보 얻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_< 꺄~~ ㅎㅎ

doingnow 2010-02-11 1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잉 저도 참여하고 싶었는데..아쉽지만 전 이미 책을 구입했으닝..ㅎㅎ
선물 받으신 분들 왕 축하축하해용
 



영화 <슈렉>과 줄리아 크리스테바 ⑦

 

7. 동화 속의 세계는 너무 안전하다? (1)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소모되어버린, 추방되어 사실상 굶고 있는 나를 보라.”
 - 디즈니 애니메이션 <인어공주> 중에서, 마녀 어슐라의 대사
 
   

   디즈니가 각색한 애니메이션에서는 막판에 주로 악당이 살해되거나 마녀가 추방된다. 소름끼치고 역겨운 것들을 반드시 배제해버려야만 세계가 유지될 수 있다는 듯, 디즈니형 애니메이션은 동화에서 선악의 경계, 미추의 경계를 확실히 구분한다. 그러나 실제 세계도 그럴까. 디즈니의 ‘우월한 유전자’를 향한 지독한 선망은 ‘나와 다른’ 사람들의 주체성을 희생시켜서라도 ‘안전한 세계’를 유지하고자 하는 또 하나의 질병 아닐까.  


 

    슈렉은 피오나를 구하지만 피오나는 자신의 ‘이상형’에 슈렉이 맞지 않는다는 것을 조금씩 깨달으며 실망하기 시작한다. 자신을 우아한 백마에 태워 주기는커녕 계속 걷고 뛰게 만드는 슈렉을 보며 피오나는 토라져서 한마디 던진다. “무슨 기사가 이래요!” 슈렉은 자신이 좀 구식이고 특이종이라며 변명을 해보지만 피오나는 ‘공주답게’ 새침을 떤다. 
   그녀는 핑크 드래곤의 유혹에서 간신히 빠져나온 동키를 ‘백마’로 오인하고 이제는 고생 끝 행복 시작인가보다 하는 기대감을 가져보지만, 어림없다. 게다가 성에 갇힌 자신을 구해준 기사님은 ‘얼굴’을 보여줄 생각을 안 한다. “전투에 승리했습니다, 기사님. 이제 헬멧을 벗으셔도 됩니다.” 슈렉은 헬멧 때문에 머리가 헝클어졌다며 말도 안 되는 변명을 늘어놓지만 피오나는 자신을 구해준 기사님이 헬멧을 벗는 순간 키스를 퍼부으며 곧바로 사랑에 빠질 태세다. 

 

 피오나 : 어서 헬멧을 벗어요. 저를 구해 주신 분의 얼굴을 보고 싶어요.
 슈렉 : 아뇨, 보고 싶지 않을 거예요.
 피오나 : 하지만, 저하고 어떻게 키스하실 건가요?
 슈렉 : (당황하며) 뭐라고요? 이 일을 맡았을 때 그런 얘긴 없었는데?
 피오나 : 아니, 운명이에요. 동화 속 스토리를 모르세요? 탑에 갇힌 공주가, 용감한 기사로부터 구출된다. 그다음 진정한 사랑의 첫 키스를 나눈다!
 동키 : 슈렉하고요? 잠깐만요. 슈렉이 당신의 진정한 사랑이라고 생각하시는 거예요?
 피오나 : 네, 그럼요.
 동키 : 우헤헤헤! 슈렉이 진정한 사랑이래. 

 

 피오나 : (엎치락뒤치락 실랑이 끝에 드디어 슈렉이 헬멧을 벗자 실망을 감추지 못하는 표정이다) 당신은, 오우거군요…….
 슈렉 : 오, 멋진 왕자를 기대하셨나 보군요.
 피오나 : 네, 실은……. 오, 안 돼! 모든 게 틀렸어! 당신이 오우거면 안 되는데!
 슈렉 : 공주님, 파쿼드 군주가 당신을 구하려 절 보냈습니다. 아셨죠? 당신하고 결혼하려는 사람은 그 분이에요.
 피오나 : 그럼 왜 저를 구출하러 직접 오지 않은 거죠?
 슈렉 : 좋은 질문이네요. 도착하면 직접 물어 보세요.
 피오나 : 저는 진정한 사랑에 의해 구출 받아야 해요. 오우거와 애완동물에게 구출 받는 게 아니라고요! (……) 파쿼드 군주에게 절 제대로 구출하고 싶다면 여기서 기다린다고 전해주세요. 



   문제는 이 세계가 디즈니 애니메이션이 묘사하는 세계처럼 깔끔하게 재단될 수 없다는 것이다. 타자를 끝내 배제하는 세계에서는 타자가 촉발하는 새로운 세계의 가능성도 닫힌다. 불쾌하고 모호하고 이질적인 무엇, 아브젝트를 배제하는 것은 곧 세계를 왜곡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타자 없는 세계, 살균된 세계의 폭력성은 그것이 비폭력을 표방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 위험하고 기만적이다. 디즈니의 전형적인 세계관은 ‘비정상’을 삭제해야 ‘정상’이 행복할 수 있다는 식으로 전개되지만, 실제 세상은 그렇지 않다. 다양성은 ‘정상적인 것 내부의 차이’가 아니라 ‘정상’과 ‘비정상’을 가르는 경계 위의 수많은 이질성과 모호성 위에서 꽃피는 것 아닐까.  



 

   
 

  아브젝트가 되는 것은 부적절하거나 건강하지 않은 것이라기보다 동일성이나 체계와 질서를 교란시키는 것에 더 가깝다. 그것 자체가 지정된 한계나 장소나 규칙들을 인정하지 않는데다가 어중간하고 모호한 혼합물인 까닭이다.
 - 줄리아 크리스테바, 서민원 역, <공포의 권력>, 동문선, 2001, 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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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lsend 2010-01-11 1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저는 진정한 사랑에 의해 구출받아야 해요, 오우거와 애완동물에게 구출받는 게 아니라!^^ 그때 졸지에 '애완동물'로 전락한 동키의 표정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