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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 - 제120회 나오키상 수상작
미야베 미유키 지음 / 청어람미디어 / 2005년 12월
평점 :
10여년전, 2년 가까이 사귄 여자 친구의 집에 결혼 승낙을 얻기 위해 찾아갔을 때 일입니다. 변변찮은 가정 환경이 켕겨 차일피일 미루었던 가정 방문이었는데 여자 친구가 하도 조르는 통에 하는 수 없이 저지르기로 했습니다.
여자친구 부모님과의 Q&A에 시간에 대비해 예상 질문을 뽑아가며 준비를 잔뜩 해 갔지만 막상 밥상을 사이에 둔 거리에 앉자 제 머리는 공갈빵 속처럼 맹랑해져 버렸습니다. 밥상이 물러가고 간소한 술상이 그 자리를 대신할 때 쯤, '미트 페어런츠'를 대비해 준비한 예상 문제집의 첫번째 질문이 날아들었습니다. "그래 집안 어르신은 다 잘계시고?"
출제 확률이 100%였던 이 질문에 대해선 여자친구와 미리 얘기가 있었지만 내일이면 들통날 거짓말을 당장을 모면하기 위해 할 수는 없었습니다. "부모님께서는 오래 전에 이혼하셨고 저는 따로 나와 있습니다."
제 말이 끝나고 100미터 달리기 선수가 스타트 라인을 떠나 피니쉬를 통과할 때까지 걸리는 시간처럼 느껴졌던 10초가 흐르자 아버님께서 급히 비우신 술잔을 조용히 내려놓으시더니 "얘기들 나누게"하고는 안방으로 사라지셨습니다. 그리고 어머님도 뒤를 따랐습니다.
시골에서 농사 지으시며 다섯자녀를 키우신 분들이라 어느정도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 일찍 나가떨어지실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아직 시작도 안했는데...씁쓸하긴 했지만 한편으론 그나마 아버님께서 제 싹수를 일찌감치 알아보시고 물러난 것이 피차 불편했던 저녁식사 이후의 소화촉진에 도움될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도데체 가족이란게 뭐지?" 제 부모님이 별거에 들어가셨던 초등학교 5학년때 이후로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생각이었지만 그날 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엔 그 그림자의 길이가 웬지 더 늘어져 보였습니다.
[ '미야베 미유키'의 <이유>는 '반다루 센주기타 뉴시티'라는 초고층 아파트에서 일어난 4인가족 살해사건의 진실을 밝히는 이야기인 동시에 그 사건에 얽혀있는 인물들 각각의 개인사와 그 개인들이 구성원으로 속해있는 가족들의 가족사의 나열이기도 합니다.
'재연'과 '인터뷰''나레이션'으로 구성 되어있는 다큐멘타리 형식의 작품인데 - '나오키상' 심사위원은 '르포르타쥬'라는 말을 썼는데 그 말이 정확히 어떤 뜻인가요? - 우리가 TV를 통해 보는 일반 다큐멘타리 프로그램보다 구성이 훨씬 꼼꼼하고 치밀합니다. ]
[...]을 부분을 몽땅 들어내고 제 개인적인 이야기들로 주울줄 써내려갔으면 하는 생각이 굴뚝같지만 혹시나 갈 곳없는 이 글이 퇴출될까 무서워 그냥 몇줄 끼워넣습니다. 그리고 위에 늘어놓은 다소 막되먹은 제 에피소드는 이 작품 <이유>에 등장하는 수많은 주인공중 한명인 '살인범'의 심금을 울리는(?) '살해동기'에 마음이 동해 옛 생각에 빠져 적어본 글입니다.
길이가 제법 되었지만 시간 날 때마다 펼치고 싶었고 적어도 책을 읽는 동안만큼은 등장인물들 이야기에 빠져 제 시름을 잊게 해준 작품이었습니다.
덧붙임 1 :
만약 출산율이 이대로 간다면 어쩌면 십수년 이내에, 이혼은 금지되고 정해진 나이 이전에 이성과 결혼해 2명이상의 자녀를 양육하는 것이 국민의 7대의무로 헌법에 규정될 지도 모른다. '사랑의 스튜디오'가 우리동네 동사무소에 차려지는 그런 때가 만약 온다면 '가족'의 의미는 어떻게 바뀔까?
덧붙임 2 :
동네 어린이집에 쳐박혀 우글거리는 애들을 볼때마다 '대체 저 어린이집이 <핸드메이즈>의 '길리아드 공화국'이나 <이퀄리브리엄>의 '미래세계'랑 뭐가 다르단 말인가?'하는 생각이 든다. '대체 가족이란게 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