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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학교 ㅣ 푸른숲 어린이 문학 31
크리스티 조던 펜턴 외 지음, 김경희 옮김, 리즈 아미니 홈즈 그림 / 푸른숲주니어 / 2013년 9월
평점 :
북극에 슬금슬금 외지인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던 때, 이누이트 소녀 올레마운은 외지인들이 운영하는 학교가 너무나 궁금했다. 학교에 다녀본 언니는 그곳에 가면 머리카락도 잘라야 하고 허드렛일도 해야 하고 무릎 꿇고 회개도해야 한다고 하지만, 올레마운은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글을 배워서 스스로 책을 읽고 싶을 뿐이다. 당시에 언니가 읽어주던 책은 공교롭게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였다.
앨리스가 토끼를 따라 굴로 들어가고, 마시지 말라는 약을 마셔서 몸이 커졌다 작아졌다 하고, 괴상한 사람들과 만나면서도 겁에 질리지 않고 모험을 계속할 수 있었던 것은 호기심 때문이었다. 호기심은 인간의 본성, 특히 어린이의 본성이다. 글을 배우는 일은 어떤가. 글자를 익히는 것 자체도 호기심의 대상이지만, 글자는 넓은 세상(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포함해서)을 향한 호기심을 충족시켜줄 강력한 도구다. 아빠가 '외지 사람들은 살코기 보관하는 법도, 생선 다듬는 법도, 파카나 카믹(신발) 만드는 법도 가르쳐주지 않으면서 이누이트의 풍습을 버리게 한다'며 허락하지 않아도, 올레마운은 학교에 가고 싶다는 마음을 털어놓지 않을 수 없다.
"이 돌멩이 보이니? 이 돌멩이도 한때는 끝이 날카롭고 뾰족한 돌덩이였단다. 하지만 바닷물이 철썩철썩 때리고 또 때려서 모진 부분을 다 없애 버렸지. 이제는 그저 조그만 돌멩이에 지나지 않아. 이게 바로 외지 사람들이 학교에서 너에게 하려는 일이란다."
"하지만 아빠, 바닷물이 돌멩이 자체를 바꾼 건 아니잖아요. 게다가 전 돌멩이가 아니라 사람이에요. 제 뜻대로 움직일 수 있다고요. 전 바닷가에 영원토록 처박혀 있지 않을 거예요." (19쪽)
가까스로 아빠의 허락을 얻어 찾아간 기숙학교는 처음부터 쌀쌀맞게, 아니 모질게 올레마운을 맞이한다. 머리카락을 자르는 것은 물론 옷과 신발도 그들의 것을 착용하게 하고 학기 시작 전까지 고된 일을 시키며 기도를 강요한다. 이름도 바꾸고 영어만 써야 한다. 설상가상으로 가족들은 여건이 나빠져 올레마운을 보러 올 수 없고, 올레마운은 검문 때문에 사정을 솔직히 전할 수도 없다.
그러나 고집 센 올레마운을 미워하는 '까마귀 수녀'에게 학대를 받을수록 올레마운은 더 이누이트다워진다. 까마귀 수녀가 우스꽝스러운 스타킹을 신게 해 '뚱뚱 다리'로 놀림받게 되자, 올레마운은 아무도 모르게 스타킹을 불태워버린 것이다. 그런 올레마운을 눈여겨보고 따뜻하게 대해준 맥퀼런 수녀 덕분에 위기를 넘긴 올레마운은 마침내 집으로 돌아온다. 맥퀼런 수녀에게 선물받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품에 안고서.
호기심을 따라 아주 멀리까지 갔다가 꼬박 두 해를 보내고서 돌아왔다. 이제 나는 하얀 토끼를 따라 굴속으로 들어간 앨리스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게 되었다. 그것만으로도 만족스러웠다. (93쪽)
책 뒤에는 역시나 학교에 가고 싶어 안달이 난 동생들을 위해 올레마운이 그들과 함께 다시 학교에 가는 뒷이야기가 실려 있다. 호기심 때문에 학교에 가 보았지만 역시 우리 민족이 최고다, 하는 결말이 아니라, "우리 이누이트는 고집불통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상처에 대한 회복력이 강했다."며 동생들과 동행하는 결말인 것이 무엇보다 마음에 들었다. 탄압받는 소수민족문화 이야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시혜적인 시선 없이, 어린이책답게 어린이의 본성에 주목하고 주인공의 열망과 좌절, 용기와 성장에 대해 씩씩하게 써내려간 동화다. 사실을 바탕으로 하면서 이처럼 감동을 강요하지 않는 동화를 만나기란 그리 쉽지 않다.
이 책은 실제로 원주민 기숙학교 경험을 가진 마거릿 포키악 펜턴이 며느리(!) 크리스티 조던 펜턴과 함께 쓴 것이다. 이야기가 끝난 자리에 실제 올레마운(아마도 작가?)의 옛 사진들이 실려 있어, 읽고 생각할 거리를 준다. 또 이누이트란 어떤 사람들인지, 왜 그들에게는 학교가 없었는지-추위를 견디며 사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가정에서 배웠으니까!), 외지 사람들이 왜 캐나나 몰렸고 어째서 그런 학교를 지었는지 설명하는 페이지도 있다. 덕분에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들에 대해 알게 됐다. 예를 들어 올레마운처럼 기숙학교에서 학대받던 아이들은 이누이트의 생활 감각을 잃어버리고 이누이트 사회와 외지인 양쪽 모두에게 소외받기 일쑤였다고 한다. 그런 이들이 용기를 내어 지난 일을 알리고, 자신들의 문화를 새로 배우면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책도 그 일환으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고통받던 당사자뿐 아니라, 이제라도 거기 귀 기울이는 이들이 진정한 '다양성'을 보여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야기를 읽고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하는 책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