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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보는 유목민 여인 - 알타이 걸어본다 6
배수아 지음 / 난다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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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여행기가 아니다.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이것은 여행기라고 불리기에는 어떤 요소가 너무 부족하거나 혹은 너무 넘치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것은 결코 여행과 함께 시작하거나 끝나지 않는다. 나는 여행을 떠났지만 어떤 의미에서 그것은 여행이 아니라 나로부터의 도피였으며, 특별히 흥미진진하거나 남다른 사건이나 경험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처음 보는 유목민 여인」中 11p.

 

여행기를 읽었다. 그런데 너무나도 이상하다. 여행기를 읽고 나면 언젠가는 꼭 여긴 가봐야지~!! 하고선 부푼 기대와 상상을 펼치기 마련인데... 이곳으로 여행을 가고싶다는 욕망이 전혀 생기지 않는다. 어쩌면 나는 누구나 한번쯤을 들어봤을 법한 이름난 관광지를 관광책자와 지도를 살피며 그곳의 멋진 배경과 풍경들을 카메라에 담는 그런 흔한 여행자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여행책자의 홍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요즘, 그 흔하디 흔한 여행책자도 찾기 힘든 곳, 몽골. 거기에서도 잘 들어보지도 못했던 곳 서북부 국경지대인 알타이와 수도인 울란바토르를 여행한 독특한 여행자. 소설가이자 번역가인 배수아는 어느날 독일어로 글을 쓰는 몽골 소설가 갈잔 치낙의 작품 '귀향'을 선물을 받게 되었고, 단숨에 읽게 된 그 책으로 스스로 이유를 잘 알지도 못한 채 갈잔 치낙을 만나러 가야겠다는 막연한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곤 도저히 저항하지 못할 운명의 힘에 이끌려 몽골을 찾게 된다.

 

여기서는 세상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전혀 알 수가 없을 뿐만 아니라 오늘이 도대체 며칠인지, 무슨 요일인지 알 도리가 없었고, 사실상 알 필요도 없었다. 그리고 ㄸ다른 사실도 깨달았다. 이곳에서 나는 내가 누구인지조차 거의 절반쯤은 정말로 잊어버리고 있었음을. 그건 예상치 못하게 아주 행복한 기분이었다.

 

「처음 보는 유목민 여인」中 138~139p.

 

운명의 힘에 이끌려 가게된 곳, 몽골. 이곳에서 겪은 특별히 흥미로운 사건들이 있는 여행기가 아니라 작가 본인이 직접 유목인이 되어 체험하고 그린 삶의 이야기 같았다. 몽골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가 투박하고 황량함이었다면, 그녀가 쓴 글에서는  그런 황량함보다는 사람냄새가 났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몽골 평원에서 불어오는 혹독한 바람을 견디며 유르테에 머물고, 야크똥을 주워 태우며 온기를 더하고, 옷에서는 냄새가 나는데도 불구하고 빨래도 않고 씻기도 힘든. 진정 여행이라고 하기에는 뭔가 비현실 적인.. 자연에 동화되어 자연인의 모습과 같은 그런 생활. 흔한 여행자들은 전혀 상상도 하지 못하는 여행일테지.. 

 

책의 곳곳에는 마치 형관펜으로 줄을 치듯 강조된 부분들이 있다. 작가 자신이 중요하다고 강조하고픈 부분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읽는내내 은근히 거슬렸다. 뭔가 그 부분을 자꾸만 강조하는 것 같아서 오히려 숨이 막히는 듯한 느낌, 그리고 자꾸만 숨은 의미를 찾으려고 해서 맘에 들지 않았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전혀 재미있지 않는 여행 에세이였던건 사실이다. 하지만 꾸며쓰려고 하지 않았기에 오히려 읽기에 수월했고, 뭔가 더 자연스러웠고, 사실 작가에 대해선 잘 모르지만 그녀 다웠다라는 느낌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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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을 끓이며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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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위와 시장기는 서로를 충동질해서 결핍의 고통을 극대화한다. 추운 거리에서 혼자 점심을 먹게 될 때는 아무래도 김밥보다는 라면을 선택하게 된다. 짙은 김 속에 얼굴을 들이밀고 뜨거운 국물을 마시면, 콱 쏘는 조미료의 기운이 목구멍을 따라가며 전율을 일으키고, 추위에 꼬인 창자가 녹는다.

 

「라면을 끓이며」中 16p.

 

책을 선택하는 기준엔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작가만 믿고 구입을 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아무리 뛰어난 작가라도 나와 맞지 않으면 선뜻 손이 가지 않기 마련이다. 출간과 동시에 말도 많았던 김훈 작가의 산문집 '라면을 끓이며'. 한국 문학을 대표하는 손꼽히는 작가이긴 하지만 나에겐 너무 어려운 듯한 느낌의 작가이기도 하다. 출판도 안된 책이 사재기 논란에 휩싸이고.. 나오자마자 단번에 베스트셀러에 진입을 하고.. 물론 유명한 작가의 책이니 그만큼 많은 독자의 관심을 받는 건 사실이겠지만 어찌보면 뭐지?하는 의문이 들 수도 있다.

 

제목과 어울리게 이 책을 구입하면 함께오는 사은품이 양은냄비였다고 한다. 라면을 끓여먹으라는 센스~!!였나보다. 하지만 이게 도서정가제 위반이 될 줄이야;;; 어쩌면 책은 책의 가치로만 판단받아야 하는데 사은품으로 독자를 현혹한 셈이고 이같은 이벤트로 베스트셀러 순위를 올리는데 큰 영향을 끼쳤을 수도 있다. 오죽하면 사은품을 위해 책을 구입하고, 상품을 구입했는데 책이 딸려오더라 하는 우스갯 소리도 나오니까 말이다. 말도 많고 논란도 있었기에 더 읽기에 망설여졌던 책이기도 하고 그렇기에 더 궁금해 졌던 책이기도 했다.

 

전기밭솥 속에서 밥이 익어가는 그 평화롭고 비린 향기에 나는 한평생 목이 메였다. 이 비애가 가족들을 한울타리 안으로 불러모으고 사람들을 거리로 내몰아 밥을 벌게 한다. 밥에는 대책이 없다. 한두 끼를 먹어서 되는 일이 아니라, 죽는 날까지 때가 되면 반드시 먹어야 한다. 이것이 밥이다. 이것이 진저리나는 밥이라는 것이다.

 

「라면을 끓이며」中 71p.

 

오래전에 절판된 김훈의 산문 '밥벌이의 지겨움','바다의 기별' 과 같은 기존의 산문집에 실렸던 글의 일부와 그 이후에 새롭게 쓴 원고지 400장 분량의 산문들을 합쳐서 엮은 책이라고 한다. 말하자면 작가 자신이 쓴 산문들 중에서 꼭 남기고 싶은 글들을 모은 것이라 '김훈 산문의 정수'라고도 할 수 있겠다. 물론 김훈의 작품은 한번도 접해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모든 글들이 처음이었지만 말이다.

 

산문은 글을 쓴 사람의 개인적인 감정이나 주관적인 내면, 그리고 자신이 겪었던 일들을 고스란히 담을 수 있는 글이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밥', '돈', '몸', '길', '글' 과 같은 주제에 맞춰 그의 가족 이야기나 만난 사람들. 유년 시절의 추억 등 김훈의 어제와 오늘이 고스란히 한 권의 책 속에 담겨있었다. 짧은 문장, 짧은 내용으로 쓰여져있는 글들이긴 하지만 뭔가 모를 힘있는 문체와 깊은 인상을 남기며  어쩌면 우리 시대의 아버지를 대표하는 듯한 느낌도 받았다.

 

행복에 대한 추억은 별것 없다. 다만 나날들이 무사하기를 빈다. 무사한 날들이 쌓여서 행복이 되든지 불행이 되든지, 그저 하루하루가 별 탈 없기를 바란다. 순하게 세월이 흘러서 또 그렇게 순하게 세월이 끝나기를 바란다.

 

「라면을 끓이며」中 137p.

 

무명의 작가의 책이었다면 큰 사은품을 주고 베스트셀러 차트에 단숨에 진입한다고 해서 크게 화제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라 생각된다. 아마 김훈 이라는 작가의 이름이기에 더 화제성에 한 몫하지 않았나 싶다. 논란이야 어쨌든 간에 내가 만난 김훈은 멋드러진 문장에 기교를 부린 글을 쓰는 작가가 아닌, 김밥 속에 단무지와 시금치 또는 우엉 한 줄만 넣어 한 두 가지 재료만으로 맛을 낸 것을 좋아하는 그 답게 솔직하면서 강한 여운을 남기는 작가로 기억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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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온다
한강 지음 / 창비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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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올 것 같아.

너는 소리 내어 중얼거린다.

정말 비가 쏟아지면 어떡하지.

너는 눈을 가늘게 뜨고 도청 앞 은행나무들을 지켜본다. 흔들리는 가지 사이로 불쑥 바람의 형상이 드러나기라도 할 것 처럼. 공기 틈에 숨어 있던 빗방울들이 일제히 튕겨져나와, 투명한 보석들같이 허공에 떠서 반짝이기라도 할 것처럼.

 

「소년이 온다」中 7p.

 

책의 무게가 너무 무겁다.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이 아니다. 아프다. 어쩌면 모르고 싶어서.. 알면서도 모른체 하고 관심도 없었던.. 하지만 외면해서도 잊어서도 안될 이야기다. 쉽게 말하기도 쓰기도 힘든 이야기다. 책을 읽고 나서 저려오는 가슴에 먹먹해지는 감정, 그리고 자꾸만 주책없이 흐르는 눈물 때문에 한동안 멍~하게 앉아있었다.

 

그만큼 한장한장 넘기는 것도 너무 버거웠던 '소년이 온다'. 나는 솔직히 아주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정치에도 관심이 없고, 역사도 언제나 시험에 출제되는 그 빈칸을 채우기 위해 공부한게 다다. 그래서 이 책이 나에게 더 크게 다가왔고 또 의미하는 바가 많았던 것 같다. 그동안 내가 참 무관심하고 무지했구나 하고서 말이다. 물론 책의 내용은 허구다. 소설이니까.. 하지만 실제 사건을 배경으로 쓰여진 너무도 몰랐던 이야기. 말도 안되는 있어서도 안되는 어처구니가 없는 이야기다..

 

너무 많은 피를 흘리지 않았습니까. 어떻게 그 피를 그냥 덮으란 말입니까. 먼저 가신 혼들이 눈을 뜨고 우릴 지켜보고 있습니다.

남자의 목소리 끝이 갈라져 있다. 반복되는 피라는 단어가 어쩐지 가슴을 답답하게 해, 너는 다시 입을 벌려 심호흡을 한다.

혼한테는 몸이 없는데, 어떻게 눈을 뜨고 우릴 지켜볼까.

 

「소년이 온다」中 22p.

 

5월의 그 날, 중학생 동호는 자신의 집에 세 들어 살던 친구 정대를 찾다가 도청 상무관에서 시신을 관리하는 일을 돕게 된다. 하지만 사실 동호는 시위 현장에서 계엄군의 총에 맞아 쓰러지는 정대의 죽음을 목격했다. 자꾸만 쌓여가는 주검들을 기록하고 초를 밝히고, 시신이 도착할 때마다 정대일까봐 확인한다. 친구의 손을 놓고 도망가버린 자신을 원망하면서... 집으로 돌아오라는 엄마의 손을 뿌리친채.. 그리고 그날에 죽어간 소년과 수많은 희생들, 그리고 남겨진 사람들의 가슴 아픈 사연들. 영혼이 된 채 하지못했던 말을 전하고, 지독하리만큼 잔인했던 고문의 아픔을 가진 이들의 이야기. 그리고 아들을 가슴에 묻었던 엄마의 이야기까지.. 

 

꽃피는 5월, 그 날. 당신은 그날에 대해서 얼마만큼이나 잘 알고 있는가?! 소설의 배경은 바로 1980년 5월, 대한민국 광주에서 일어났던 열흘 동안의 이야기 그리고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다. 언론 통제와 왜곡으로 인해 계엄군의 폭력은 엄폐되고 시민들의 폭력성만 언급되었던 그날의 진실들. 공식적으로 기록된 사망자는 150여 명 정도. 하지만 암매장으로 인한 행방불명인 사람들을 고려한다면 추측컨데 사망자는 훨씬 더 많을 것이라고 한다. 전혀 어울리지는 않지만.. 비공식적인 작전명은 '화려한휴가' 그리고 그 책임자를 처벌하기까지 17년이라는 오랜 시간이 걸렸던 5.18 광주 민주화 운동. 바로 그날의 이야기다.

 

더이상 나는 학년에서 제일 작은 정대가 아니었어. 세상에서 누나를 제일 좋아하고 무서워하는 박정대가 아니었어. 이상하고 격렬한 힘이 생겨나 있었는데, 그건 죽음 때문이 아니라 오직 멈추지 않는 생각들 때문에 생겨난 거였어. 누가 나를 죽였을까, 누가 나를 죽였을까, 왜 죽였을까. 생각할수록 그 낯선 힘은 단단해졌어. 눈도 뺨도 없는 곳에서 끊임없이 흐르는 피를 진하고 끈적끈적하게 만들었어.

(...)나를 죽인 사람과 누나를 죽인 사람은 지금 어디 있을까. 아직 죽지 않았다해도 그들에게도 혼이 있을 테니, 생각하고 생각하면 닿을 수 있을 것 같았어. 내 몸을 버리고 싶었어. 죽은 그 몸뚱이로부터 얇고 팽팽한 거미줄같이 뻗어나와 끌어당기는 힘을 잘라내고 싶었어. 그들을 향해 날아가고 싶었어. 묻고 싶었어. 왜 나를 죽였찌. 왜 누나를 죽였지, 어떻게 죽였지.

 

「소년이 온다」中 51~52p.

 

페이지를 한장씩 넘길 때마다 너무 힘들어서 계속 읽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읽는 내내 망설였다. 또 누군가에게 꼭 읽어보라고 선뜻 권하기엔 좀 복잡한 감정이 먼저들게 되는.. 하지만 모두가 알았으면 하는 세상에서 가장 슬프고 아픈 책이다. 사실 역사시간에 배우던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은 단지 역사 속에 존재하는 있었던.. 그런 수많은 사건들 중 하나로만 기억되었던 것 같다. 남겨진 사람들의 슬픔 따위는 생각조차도 해본 적 없었다. 어쩌면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인데...

 

나혼자만의 명예와 이익을 위해서 싸운게 아닌, 인간의 누릴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싸웠던 수많은 고귀한 희생을 기억하며.. 참 복잡했던 마음과 많은 걸 생각해 볼 수 있었던 책이었다. 잊지 않을 께요.. 당신들을..

 

그 발소리가 누구의 것인지 나는 몰라.

언제나 같은 사람인지, 그때마다 다른 사람인지도 몰라.

어쩌면 한사람씩 오는 게 아닌지도 몰라. 수많은 사람들이 희미하게 번지고 서로 스며들어서, 가볍디 가벼운 한 몸이 돼서 오는 건지도 몰라.

「소년이 온다」中 17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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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션 - 어느 괴짜 과학자의 화성판 어드벤처 생존기
앤디 위어 지음, 박아람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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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좆됐다.

그것이 내가 심사숙고 끝에 내린 결론이다.

나는 좆됐다.

내 인생 최고의 시간이 될 줄 알았던 한 달이 겨우 엿새 만에 악몽으로 바뀌어버렸다.

 

「마션 ; 어느 괴짜 과학자의 화성판 어드벤처 생존기 」中 14p.

 

혼자 남겨졌다. 구조요청을 할 수도 없는 곳, 함께 해줄 수 있는 사람도 없고 식량도 구할 수 없는 곳. 바로 저 먼 우주, 화성 한가운데. 나!홀!로! 생각도 하기 싫을 상황. <마션>은 화성 탐사에 나선 한 우주비행사가 착륙 후 엿새 만에 모래 폭풍으로 인해 화성에서 홀로 조난을 당하게 되고, 다음 탐사가 있을 때까지 생존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로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화성판 로빈슨 크루소의 지구귀환기라고 할 수 있다.

 

함께 탐사에 나섰던 동료들은 모래 폭풍에 떠밀려간 그가 죽은 줄 알고 떠나버렸고, 통신 장비도 고장나버려서 자신이 살아있다는 사실 조차도 알리지 못한다. 하지만 주인공 마크 와트니는 식물학자라는 자신의 전문분야를 이용해서 화성에서 감자를 심고, 또 과학적인 지식들을 이용해서 물을 만들고.. 박학다식한 우주과학 지식을 한껏 활용하여 자신이 가지고 있는 제한된 장비들로 극한 상황에 맞서 생존하고자 한다.

 

"어떤 기분일까?"

그는 잠시 생각한 뒤 다시 말을 이었다.

"저 먼 곳에서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었으니. 자기가 온전히 혼자이고 우리 모두가 자기를 포기했다고 생각하겠지. 그런 것들이 한 사람의 정신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그는 벤커트를 돌아보며 다시 말했다.

"지금 마크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궁금하군."

 

「마션 ; 어느 괴짜 과학자의 화성판 어드벤처 생존기 」中 111p.

 

내가 읽어본 화성과 관련된 책이라곤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SF 작가로 불리운 필립 K. 딕 의 단편집이자 영화 '토탈리콜'의 원작이던  '도매가로 기억을 팝니다' 정도. 사실 이마저도 읽다가 말았던 기억이 ㅋㅋ 다른 화성 관련 소설 책보다 앤디 위어에게 천재작가라는 수식어를 붙여준 마션이 출간과 동시에 SF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 서점가를 석권하고 영화로까지 나온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듯 싶다. 막연하게 꿈꾸던 미지의 세계가 아닌 실제 화성의 모습과 탐사결과들을 반영한 현실적인 이야기이기에 허구라기보다는 실제로 화성을 탐사하고 돌아온 사람의 후기를 읽는 듯해 더 피부에 와닿는 건지도 모르겠다.

 

자신을 구해줄 수 있는 화성 탐사대는 약 4년 뒤에나 도착을 할 예정이고, 남아있는 식량은 그 오랜 기간동안 견뎌낼 수 없는 양이다. 보통의 사람이었다면 살기를 포기했을지도 모를 순간 와트니는 자신의 생존기간을 늘리기 위해 인분을 활용하여 화성의 토양으로 감자를 길러내고, 동료가 남기고간 나무 십자가로 불을 붙여 물을 만드는데 쓰고.. 주어진 환경에서 창의적으로 활용해서 위기를 극복하는 모습은 참으로 존경할 만했다.

 

"언제나 희망을 있습니다. 의외로 빨리 알아차리고 방향을 돌릴 수도 있습니다. 폭풍이 갑자기 사라질 수도 있고요. 어쩌면 와트니는 우리가 찾지 못한, 적은 에너지로도 생명 유지 장비를 돌리는 방법을 찾아낼 수도 있습니다. 마크 와트니는 이제 화성에서 생존하는 데 전문가가 되었습니다.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친구뿐일 겁니다."

 

「마션 ; 어느 괴짜 과학자의 화성판 어드벤처 생존기 」中 466p.

 

책의 시작은 이랬다. "아무래도 좆됐다." 처음엔 잘못된 번역인가 하고 원서도 찾아봤다. "I'm pretty much pucked." 하긴, 지구의 어느 섬 무인도도 아니고 저정도 말로는 표현이 부족하다고 할 수 있겠다. 마크 와트니가 화성에서 처음으로 사망한 인물이 아니라 화성에서 처음으로 작물을 재배하고 지구로 성공적으로 다시 귀환한 인물로 기록될 수 있었던 건 누구나 포기할 만한 상황에서 포기를 모르던 그와 그의 동료들 때문이지 않을까싶다.

 

처음엔 과학적 용어와 생소한 우주관련 지식으로 인해 읽기에 너무 힘들었지만, 뒤로 넘어갈 수록 점점 몰입하면서 읽는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600쪽이나 되는 방대한 화성판 로빈슨 크루소+라이언일병구하기 이야기를 영화로 보면 이해할 수 없었던 부분에서 좀 더 이해를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빨리 영화 보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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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옆에 있는 사람
이병률 지음 / 달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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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는 한 사람을 알게 되고, 알게 된 그 한 사람을 사랑하고, 멀어지다가 안 보이니까 불안해하다가, 대책 엇이 마음이 빵처럼 부풀고 익었다가 결국엔 접시만 남기고 고스란히 비워져가는 것. 이런 일련의 운동(사랑)을 통해 마음(사람)의 근육은 다져진다. 사랑한 그만큼을 앓아야 사람도 되고 사랑한 그만큼을 이어야 사랑도 된다.

 

「내 옆에 있는 사람」中

 

가을은 가을인가 보다.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과 함께 자꾸만 떠나고픈 생각에 여행 관련 책자들을 뒤적뒤적 이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다 집어든 책 한 권. 오랜만에 다시 만나는 이병률 작가의 책이다. 뭔가 많은 걸 생각하지 않아도 가슴에 와닿는 글들로 가득 차 있는 그의 책. 많은 사람들이 이병률 작가의 책이 나올 때 마다 하는 말이 있다. "아껴 읽고 싶다". 그만큼 오래오래 옆에두고 꺼내보고 싶을 정도로 좋다는 말이겠지.

 

'끌림',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 두 권의 여행에세이로 많은 독자층을 가진 이병률 작가의 신작.. 사실은 나온지 좀 지났지만.. 아무튼.. 이번 책도 역시 .. 제목에서 부터 끌리더니 언제나처럼 나를 실망 시키지 않았다. 작가의 전작들의 배경이 해외의 어느곳, 이라면 이번 책의 배경은 진안의 터미널이나 비양도로 가는 배 안 처럼 국내 곳곳의 낯익은 곳들을  돌아다니며 만난 인연, 사람들의 이야기 그리고 직접 찍은 사진들로 담겨져 있다.

 

시간은 또 그렇게 흘러가게도 합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부정할 수 없는 것은, 어떻게든 낫는다는 것입니다. 일 년이 걸리든 십 년이 걸리든 우리는 그 아픔을 영원히 붙들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고통스러울 때는 그 고통을 잘 넘기라고 언덕을 보여줍니다. 힘이 들 때는 이제 곧 바닥이니 잘 넘기라고 바닥을 보여줍니다. 힘이 들 때는 이제 곧 바닥이니 잘 넘기라고 바닥을 보여줍니다. 시간이 하는 일입니다. 사람이 하는 일은 억세고 거칠어서 마음을 도려내지만, 시간이 하는 일은 훈하고 부드러워 그 도려낸 살점에다 힘을 이식합니다.

 

「내 옆에 있는 사람」中

 

보통의 여행 에세이들이 보여주는 내용들은 주로 풍경에, 여행지 소개에... 그런 것 처럼 나에게 여행이란.. 그저 좋은 곳을 돌아다니며 멋진 풍경들을 두 눈에, 가슴에 담고 오는 그런 관광, 혹은 힐링이란 의미로 컸다. 나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여행이란 나와 같은 의미일 것이다. 하지만 이 책에선 여행의 풍경을 담고 있기는 하지만,  주가 되는 내용은 사람이다. 여행에서 접하게 되는 일상적인 느낌에 솔직 담백한 감각적인 이야기, 아름답고 섬세한 그만의 감성적인 이야기 처럼 작가가 말하는 여행이란 그저 풍경을 관광하는 것이 아닌, 여행이라는 여정 속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그 사람들 사이로 걸어들어가 더 가까워지는 것이란 의미를 담고 있는 듯 하다.

 

같은 상황이라 해도 봄에 보는 것과 가을에 보는 것은 다르다. 봄에 봐서 아련하다라고 반응하는 것을, 가을에 볼 때는 보고 싶다라고 중얼거리게도 한다. 봄에 피어난 꽃들에게서 뭔가를 수혈받는다면 가을에 떨어지는 것들 앞에서는 마음이 호릿해져서 뭔가 빠져나가는 기분마저 드는 것이다. 봄에 가슴 뭉글뭉글해지는 것이 가을에는 뭉클뭉클해지지 않는가 말이다.

 

「내 옆에 있는 사람」中

 

평범한 일상들에 관한 이야기 인듯 하지만, 예상치 못한 만남과 인연으로 좋은 사람들을 만나는 여행. 좋은 사람이라.. 흔히들 하는 말로 '내가 좋은 사람이 되어 내게 좋은 사람이 오도록..'이란 말을 한다. 누군가가 나에게 무언가를 해주기를 바라기 이전에 내가 먼저 해준다면 물 흐르듯이, 바람이 불어 오듯이 자연스레 이루어 진다는 말일 것이다. 늘 좋은 사람이, 누군가가 먼저 내게 다가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그 사람들은 늘 내 옆에 있었다. 언제나.. 단지 인생을 살아가면서 자신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가치를 모르고 살아갈 뿐.. 시간이 지나서 보면 다 고맙고 좋은 사람들인데..

 

책을 읽다 문득 깨닫게 된 사실!! 목차나 페이지가 없다. 좋았던 페이지 구절을 기록하려고 보니... 그리고 다 읽고 난 지금. 작가의 여행길에 함께 동행한 기분도 드는 건 나만의 착각일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오늘도 나는 길을 걷고 인생이란 여행을 하고 있다. 그저 풍경 속으로 걸어들어가는 그런 여행이 아닌, 지금 이 순간, 이 시간을 함께 하고 있는 사람 속으로 들어가는 그런 여행 말이다.

 

일 년에 네 번 바뀌는 계절뿐만이 아니라 사람에게도 저마다 계절이 도착하고 계절이 떠나기도 한다. 나에게는 가을이 왔는데 당신은 봄을 벗어나는 중일 수도 있다. 나는 이제 사랑이 시작됐는데 당신은 이미 사랑을 끝내버린 것처럼.

그러니 '당신은 지금 어떤 계절이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나는 지금 어떤 계절을 어떻게 살고 있다고 술술 답하는 상태에 있으면 좋겠다. 적어도 계절은 지금 우리가 어디에 와 있는지를, 어디를 살고 있는지를 조금 많이 알게 해주니까.

 

「내 옆에 있는 사람」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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