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시대에 뒤쳐진 습관
  종이신문을 들고 다니면 '지성인'으로 취급받던 시기가 있었다.
  그때의 신문은 읽기에 참으로 불편한 것이었다. 

  어쩌면 그 불편함이 '지성인'에 들지 못들지 구분하는 잣대가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지성인'이라면 불편한 신문을 '해석'해 내는 힘든 작업을 거친 후에
  '세상 참.. 이래서는.. 이래야 하는데..' 라고 한마디 뱉어내야 하는거랑 생각했다. 

  그래서, 가부장제에 익숙한 몇십년전 이 땅에서조차 그 역할은 아버지의 역할이었고,
  아버지의 권한을 세워주는 중요한 무기가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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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이야 그 불편함(세로쓰기, 한자)이 다 사라져 버린 착한 신문들이 넘쳐나고 있지만
  어느새 힘센 아버지의 시대가 가버린 것처럼 신문을 읽는 사람이 힘 쓰는 시대는 가버렸다.
  아직 신문을 읽는 나같은 사람과 신문사에 밥줄을 맨 사람들은 아니라고 우기지만,
  그건 어짜피 우기는것.  

  이제는 새벽에 일어나 현관앞에 있는 신문을 들고 들어와
  책상다리를 한 채 바닥에 깔린 신문을 쓱 읽는 '촌스런 사람이 없어지고 있다. 

  어떤 사건이 터졌을때 그걸 제일 먼저 알려주는 것은 TV가 선점을 해버렸다.
  그나마 짧은 사실 위주의 보도에서 더 깊게 들어가 내면을 알고 싶어하는 욕구를 해결해 주던
  신문의 역할도 이제는 인터넷 신문이 죄다 뺏어가 버렸다.
  그건 어찌보면 신문보다 기자의 밥그릇을 뺏는것이 더 문제가 된다. 더 깊은 소식, 더 앞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많은데 옛날에는 어느곳에서도 그것을 해결할 수 없었다. 그 소스와 내용을
  '기자'라는 사람들이 모두 알고 있었고 나누지 않았기 때문인데 이제는 '블로거'라는 듣도 보도
  못했던 아마추어들이 '기자'보다 더 많은 소식들을 쏟아내고 있다.  

  이제 권위 있는 가부장의 말은 손자들의 클릭질로 얻은 지식보다 밀리는 세상이다. 
  밀리지 않으려면 인터넷을 배워 RSS 피드를 받아보고, 무선으로 속보를 챙기고,
  적어도 한두개의 블로그는 운영해야 할까? 아.. 트위터도 하나 생겼다.  

  내가 신문을 읽는 이유는 따로 있다. 어쩌면 인터넷에 피로해졌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인터넷의 변화에 따라기 벅찬 나이듦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렴 어떤가.
  내가 좋다는데... 

  하나. 실시간 업데이트 압박에서의 해방감
  실시간 지식의 유입에 허둥대는 내 머리에 휴식을 주기 위함이다. 신문을 대할 때면, 더이상의
  업데이트를 걱정할 필요없다. 그저 그 시점에서 가장 충실한 정리본을 받아보고 있기 때문에
  실시간 업데이트의 압박에서 해방돼 편안하게 세상을 바라볼 수 있다.  

  둘. 나와 이야기 할 수 있는 단방향성.
  인터넷의 기사들과 글에서는 수 많은 쌍방향 메시지가 난무한다. 이렇게 생각하지 말고 저렇게
  생각한다는 다른 사람의 의견. 이렇게만 보지 말구 그렇게 봐야 제대로 본다는 주장.
  그 속에서는 나는 어느것이 '옳바른 것'인지 파악하기 위해 머리를 굴린다.
  신문은 나하고 이야기하게된다. 남의 이야기에서 진실과 사실을 유추하느라 놓치는 '나'의
  생각과 '나의' 느낌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다.  

  셋. '접속'의 단절에서 얻게되는 '축적'
  인터넷은 '접속'의 연속성이 가장 큰 장점이다. 내가 '축적' 할 필요없이 누구라도 '축적'해 놓은
  것에 가장 효과적으로 '접속'할 수 있으면 된다. 신문은 '접속'이 불가능하다. 인터넷 신문의
  링크를 따놓으면 된다고 말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보다 나의 '머리속'에 잘 축적해 놓는 것이
  더 큰 장점이라고 말하고 싶다. 링크는 그 모습 그대로 찍어서 보관하는 것이라며, '축적'은
  나의 삶의 궤적에서 얻어진 생각과 연결되어 '나에게 맞게' 변형되어 '보관'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넷. 오프라인의 손 맛.
  종이에 찍힌 활자의 매력은 '네이티브 온라인'이 알 수 없는 매력이다. 어느정도 익숙해져야
  느낄 수 있는 그런 맛. 그건 '네이티브 오프라인'이 온라인의 매력을 뼛속 깊이 느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 나는 오프라인에 익숙하기에 이 맛을 계속해서 보고 싶다.
  보통 사람은 낯섬을 즐기기 보다는 익숙함에 편안함을 느끼는 것을 더 좋아하지 않을까? 

  그외에도 신문은 명절에 전을 부치거나 튀김을 할때 튀는 기름이 바닥에 뭍지 않게 깔아주는
  데 쓰기도 하고, 야구장에서 햇빛을 피하는 모자로, 잘게 찢어 응원도구로 쓰기도 한다.
  추울때 덮고 자기도 하고, 비가 오면 비를 잠시 피할 우산대용으로도 사용한다.
  야외에서 바지에 흙이 뭍지않게 깔아주기도 하고, 생선이나 고기를 싸는 포장지로도 쓴다.  

  이 모든 것들 때문에 난 아직도 신문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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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야기 목록에는 무슨 글이 들어가야 할까?
  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어떤 아이의 이야기로 할까?
  아니면 40대 중년의 이야기로 할까?
  죽음을 앞둔 노년의 이야기?
  아니면 동물, 외계인?신? 

  이야기는 이야기일뿐일지 모르지만
  이야기를 읽고 떠올리는 생각들은 이야기가 아닌 사실이 됩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때문에 하나의 세계가 만들어지는 것이지요. 

  그런거 보면 세계를 창조하는 것은 참 쉬운 일입니다.
  말로만 가능할 수도 있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 세상은 모두의 머리속에서 존재하면서 살아가게 됩니다.
  모두다 사라지면 그 세상이 사라질까요?
  글쎄요? 

  그 이야기로 들어가봅시다.
  언제 들어갈지는 저도 모릅니다. 

  그 세계가 열리는 것은 그 세계가 열려야 할 바로 그 때에 열리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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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트북이 가진 여러가지 장점들이 있지만 
  그 중에서 키보드 자판을 두드리는 감이 참 좋다.  

  노트북의 키보드는 굉장히 납작하게 되어 있지만
  볼록 나온 보통의 키보드보다 더 통통 튄다고 해야 할까? 

  무언가 내용을 채워야 한다는 생각보다는
  쉼없이 노트북 자판을 치고 싶다는 바램때문에 글을 뚜닥거리고 있다.  

  그러니 글의 내용은 읽을 많한 것은 없을게다
  글의 자판을 도드리는(왜인지 몰라도 '두드리다'보다 더 작은 느낌이 든다)일은 유쾌한 일이다. 

  하지만, 자판을 치면서도 아무런 내용이 없으면 아닌거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남에게 보여질지 모른다는 생각때문에 글의 내용이 들어 있는 것일까? 

  알수 없는 일이다. 

  소설을 써봐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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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몽유도원도는 정상적인(?) 주입식 교육을 착실하게 받은 사람이라면 
  쉽사리 알고 있을 그림이다. 

  안평대군이 꾼 꿈을 안견이라는 화가가 그린 그림
  그 그림이 너무 아름다워 수많은 선비들이 그 그림에 글을 덧붙였다는 그림
 

  도원(桃園)은 복숭아 나무 가득한 정원으로 이상향을 뜻하는 말이라 생각된다. 
  중국의 오래된 이야기 중에 어느 시골 촌부가 복숭아 꽃잎이 떠내려 오는 곳을
  따라 올라 갔다 발견했다는 낙원. 그 사람들은 진시황의 폭정을 피해서 숨어살고 있었다.
  진시황은 죽은지 이미 수백년 전의 사람이었으니 놀라울 따름. 이 이야기에서 '무릉도원'이라는
  말이 나왔고 이후에도 지상낙원은 복숭아 나무가 있는 정원- 즉, 도원-이 되었다. 

  몽유(夢遊)는 꿈속에서 놀았다는 것을 뜻하는 말. 결국 몽유도원도는 꿈속에서 노닐던
  지상낙원의 그림이라는 뜻일게다.  

  이리도 유명한 그림이 왜 왔다 갈까? 커서야 알았지만, 이 그림은 현재 우리나라에 있지 않다.
  일본의 덴리대학교 소장품이다. 그러다보니 이 유명한 그림을 보려면 일본으로 건너가야 한다.
  대학에서도 상시적으로 전시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으니 결국, 우리나라 사람이
  우리나라의 유명한 그림을 보기위해서는 이번이 절호의 기회라는 씁쓸한 결론이 난다. 

  용산에 위치한 중앙박물관에서 특별전시회로 연다고 한다.  

  몽유도원도 9.29~10.7
  천마도·훈민정음해례본 9.29~10.11
  석가탑 무구정관대다라니경 10.8~10.18
  강산무진도 10.20~11.8
  태조 이성계 어진 10.30~11.8 

  몽유도원도외에도 천마도 - 요즘 머리에 뿔이 발견되어 말이 아니라 기린이네 라는
  이야기가 돌고 있다. 그럼 천마도에서 천린도로 바뀌어야 할까?  

  추석연휴가 되면 한번 들러볼까 생각중이다.
  그래도 오랜만에 들어온 그림인데 언제 또 보게될지 알수 없는 노릇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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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책, 이제 가까운 편의점에 맡기시면 됩니다.

  20090912000098 

  알라딘에서 중고샵을 오픈한지는 꽤 되는것 같다.
  하지만, 실제로 책을 내보낸지는-왠지 '팔았다'는 단어는 가슴이 아프다 -
  이번이 처음이었다. 

  편의점 택배라는 것이 있지 않았다면 아마 실행하지 못했을게다.
  택배아저씨를 기다리는 것만큼 이 모든 실행을 주저하게 만들 일이 있을까? 
 

  이 세상에 여러가지 거짓말이 존재하는데
  중국집에 배달으르 시켰을때 언제나 전화하면 나오는 답이 "방금 떠났다"는 것이다.
  택배아저씨(왜 꼭 아저씨인지는 모르겠지만)들 역시 '오늘 중'에 도착한다는 것만 확실하다.
  그분들 역시 모든 사정이 있기 때문에 약속한 시간에 오는 것이 힘들다는 것을 알지만
  기다리는 사람으로서는 참으로 못할짓이다.
  애꿋게 택배아저씨께 욕을 해야 하고, 그 분들은 늘 바쁘게 움직이면서도 욕을 먹어야 하니
  서로간에 참 민망한 상황이다. 

  하지만, 편의점 택배라. 이것 썩 괜찮은 방법이었다.
  몇가지 무시무시한 경고문들이 있었지만
  (내용이 다르면 보낸사람의 비용으로 택배를 다시 받아야 한다는 둥...알라딘 짱 살벌)
  택배아저씨와의 갈등을 해소시켜주는 방법으로 바람직하다. 

  내보낸 책들을 잘 포장한 뒤에 (박스가 없으면 책도 못팔겠다 -_-)
  그 안에 주문 내역서를 넣고
  책들이 흔들리지 않게 나름 신문지로 장치를 해주고
  (아무리 생각해도 종이신문의 역할은 참으로 다양하다. 잘 구겨서 넣어주면 좋다.
   물론, 책을 받고 신문지들을 버려야 하는 알라딘 직원분들에게는 죄송하지만
   흠집없는 책을 받아볼 이용자들의 얼굴을 떠올리면 신문지 분리수거는 기꺼이
   감수할 만한 일이라 생각한다. 아님 말고..) 
  택배를 배송할 수 있는 집근처의 편의점으로 간다.  

  편의점에 가보니 무게를 잴 수 있는 앙증맞은 저울이 있다.
  그곳에서 우리나라  IT발전에 감탄을 한번 하고
  (알라딘에서 설정한 신청번호를 꾹꾹 누르면 보내는 사람과 받는사람의 주소가
   자동적으로 인쇄된 스티커가 나온다. 놀랍지 않은가? 난 놀랍던데..)
  인쇄된 스티커를 박스위에 잘 붙인 후 편의점 직원에게 상자를 넘기고
  영수증을 받으면 된다.  

  내보낸 애들이 여행을 잘 하고 있는지 웹으로 확인을 하고
  '몸값'이 입금 된것까지 확인하면 끝난다.
  (어째, 꼭 인신매매범이 된것 같은 느낌이 조금 들기도 한다) 

  택배아저씨의 등장을 기다리며 마음 졸일 필요도 없고
  얼굴 붉히며 '지금 몇신데 안오는거야'라며 모르는 사람을 욕할 필요도 없다.
  비가 오면 그 다음날 나가면 되고, 마음이 울적하면 한밤중에 나가도 된다.
  알다시핀 편의점은 24시간 아니던가..  

  서로에게 득이 되는 - 사업에선  win-win이라 한다던데 - 
  그보다는 서로 행복한 얼굴로 지낼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구조라 마음에 든다. 

  이제 택배아저씨와의 화해가 시작되는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 약간의 불편함... 

  1) 아직 정착이 안되었는지 쓰이는 말이 여러가지가 되어 햇갈린다.
     - 내가 기억해야 하는 숫자를 부르는 말이 여러가지이다.
       접수번호 (이건 알라딘과의 관계에서 중요한 숫자)
       신청번호 (이건 택배사와의 관계에서 중요한 숫자)
    - 알라딘내에서도 아직 잘 정립이 되어있지 않은가 보다.
      이벤트페이지에서는 '주문번호'를 기억하라고 하는데 아무리 뒤져도
      페이지에는 '접수번호'밖에 보이지 않는다.
      결국, 주문번호=접수번호라는것. 사소한 것이지만 통일시켜야 하지 않을까 싶다 

  2) 주문 수정때 '삭제'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 첫 주문을 하다가 깨달았다. 아 1~2권이 더 있는데...
      주문 수정이란 것이 있었다. 무슨 실험 정신인지 모든 책들을 다 취소했다.
      (1~2권 추가만 해도 되는데 -_-) 그랬더니 더이상 추가도 안되고
      깡통 계좌만 남아 버렸다.
    - 결국, 다시 주문하고 알라딘에 팔기로한 하나의 주문은 깡통으로 남고
      깡통 주문이되었던 아니면 사정이 있던, 이행할 수 없는 주문은 지울 수 있게
      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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