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미워했던 나의 두 번째 엄마
전은수 지음 / 달꽃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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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은수 작가님에게 할머니는 두 번째 엄마이다.

자신을 낳아준 엄마와의 상실을 경험한 이후로 가족들이 싫었다.

자신 때문에 엄마가 죽었다는 말과 엄마가 떠났기에 더 열심히 살라는 말이 싫었다.

그래도 자신을 돌보아주는 이는 친가쪽 사람들이었다. 

자신과 남동생 그리고 아빠와 할머니가 모여 새로운 가족이 되고 정이 쌓였다.

미우면서도 정이 쌓이니 기가 막힌 노릇이었지만 

결국 여행을 가서 빈자리를 생각할 만큼 익숙해졌다. 그리고 사랑하게 되었다.

<안녕 미워했던 나의 두 번째 엄마>는 가족과 상실에 대한 이야기다.


작가님이 할머니와 여행을 가서 알게 된 사실은 많았다.

할머니가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알게 되었다. 

할머니가 요리해주는 밥을 먹고, 깨끗하게 청소한 방과 물건을 사용하는데도 할머니에 대해 잘 몰랐다. 할머니가 손주들을 위해 들이는 시간을 당연하게 여기면서 단 한 번도 자신의 시간을 할머니를 위해 쓴 적이 없었다. 캐나다에 와서 할머니와 떨어져 있는 하룻밤 동안 알았다.

할머니가 쓴 시간에 익숙해진 만큼 그 빈자리도 허전하단 사실을.

그래서 더욱 할머니와 행복한 추억을 쌓고 싶다고 다짐을 했다.

우리는 익숙함이란 이름 아래 소중한 이를 잊은 것은 아닌지?


작가님은 항상 여행이 끝나면 다음 여행을 생각한다. 힘든 일은 힘들다고 말하는게 가능한 세대여서 그렇게 말할 수 있다. 같이 여행을 갔던 할머니와 고모들은 그렇지 않았다.

자신의 역할에 맺인 체 처음이자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여행은

일상에서 잠시 자리를 비우는 한순간의 일탈이었다.

정해진 자리에서 나와 자신을 위해 시간을 쓰는 일이 그들에겐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서 작가님은 계속 넌지시 다시 여행을 가도록 제안한다.

그들에게 여행이 마지막이 아님을, 그들 스스로를 위해 시간으 써도 된다고 말하는 것이다.

우리는 역할이란 이름 하에 자신보다 다른 이를 위해 시간을 사용하도록 하고 있을지도?


우리는 겉에 있는 가족들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늘 옆에 있어서 알려고 하지도 않았고 그저 돌봄에 익숙해져 당연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단 둘이서 여행을 가고 나서야 일상에서 벗어나 부딪히게 된다.

자신의 일상을 지탱하는 이들이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된다.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어떤 활동을 선호하는지? 그들에게 여행은 어떤 의미인지?

우리가 몰랐던 그들의 모습을 비로소 본다. 그리고 깨닫는다.

사랑하는 익숙한 이들과 보낼 시간이 얼마 안 남음을.

그리고 더 많은 추억을 쌓고 싶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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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리는 일 - 동물권 에세이
박소영 지음 / 무제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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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이벤트에 선정되어, 출판사에서 해당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작가님은 다양한 정체성을 가졌다. 

사회부기자, 페미니스트, 캣맘, 비건, 동물권 옹호주의자이다.

작가님이 이렇게 다양한 정체성을 가지게 된 시작은 고양이었다.

반려동물로 들인 고양이가 생각나서 집 앞의 고양이를 챙기다보니 캣맘이 되었고, 점차 영역을 넓혀가면서 동물권 옹호주의자가 되었다.

자신과 가족의 안위만을 생각했던 인간은 비인간 동물에게 관심을 갖게 되고, 관심은 의문으로 이어졌다. 가축과 반려동물의 차이, 동물권을 위해 할 수 있는 일로 이러진 의문은 행동이 되고 글이 되어 <살리는 일>이 되었다.


가축과 반려동물의 차이가 무엇일까?

반려동물은 인생의 동반자이며 귀여운 존재이고 가축은 육식을 위해 사육되고 먹히는 존재라고

누군가는 대답할 수도 있다. 그러나 가축과 반려동물 간에 차이는 없다.

우리가 반려동물이라고 말하는 개와 고양이조차 가축이었고 지금도 가축이다.

인간은 비인간 동물의 고기로부터 식량을, 가죽으로부터 옷과 도구를 얻는다.

대표적인 예로 소를 들 수 있다. 고기는 소고기로 먹고, 가죽으로 옷이나 장구를 만든다.

뼈는 끓여서 먹고 꼬리와 생식기조차 한약재로 먹는다.

반려동물도 넓게 보면 사람에게 편안함과 따스함을 준다는 점에서 가축이다.


반려동물과 가축 간의 차이점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이후부터 작가님은 채식을 시작했다.

육식이 만연한 사회에서 채식을 하는 일은 힘들다.

해산물을 먹는 채식부터 시작되서 낮은 단계의 채식주의자라거나 

"식물은 생명이 아니냐?"는 조롱에 시달리고 졸지에 육식을 하는 사람들을 설득해야 하는 자리에 앉게 되었다. 작가님이 채식을 시작한 이유는 육식에 대한 비난이 아니다.

공장식 사육 시스템의 문제점을 알고 공급을 멈추기 위해서는 소비가 없어야 한다는 법칙에 따라거부하는 것일 뿐이다. 문제를 알고 멈추기 위해 채식을 한 것이다.

인공육과 곤충 단백질처럼 대체할 수 있는 기술이 발전하고 있는 만큼 

앞으로 육식은 대체될 수 있다.


동물의 권익을 위한 권리가 동물권이다. 동물도 고통을 느끼고 감정이 있는 생명체이다.

우리는 종종 그 사실을 망각한 체 동물을 재산이란 대상으로 보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책 속에 나온 육식곰과 육식견만 보아도 그렇다. 

동물이란 인간이 관리하고 지배해야 하는 대상이 아니다. 

코로나로 인해 사람이 돌아다니지 않는다고 해도 그 자리에는 동물이 남아있다.

마치 사람이 없어진 콘테이너 밑에 고양이가 있듯이 자연 속에 동물은 원래 있었다.

우리는 그 사실을 망각한 체 동물을 대상으로 대한다.

박소영 작가님의 <살리는 일>은 동물을 대상에서 벗어나게 하는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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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앱테크로 기적을 만들었다
엠찌 지음 / 빈티지하우스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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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 스무살이 된 나도 재테크가 중요하다는 사실은 잘 안다. 그러나 두렵다.

재테크를 할 종자돈도 없는데 어떻게 투자를 하란 건지? 의문만 쌓인다.

재테크로 이익을 얻은 사람들은 종자돈이라도 모을 재력이 있어서 성공했다고 생각했다.

엠찌 작가님의 <나는 앱테크로 기적을 만들었다>란 책을 만나기 전까지 말이다.

앱테크란 애플리케이션과 재테크의 합성어로, 스마트폰을 통해 하는 재테크를 의미한다.

보통 출석체크를 해서 받은 포인트를 적립하는 좁은 의미로만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앱테크는 모바일 가계부 작성부터 금융상품 투자까지 그 범위가 넓다. 

우리가 알고 있는 방식만 재테크인 것은 아니었다!


엠지 작가님은 종자돈도 없이 앱테크를 시작했다.

남편의 투자 실패로 빚이 생기고, 빚을 청산해도 약 4억원의 대출이 남아 있었다. 

직장으로 조기 복귀를 해야 하나 고민했지만 아직 엄마의 손이 필요한 어린 딸과의 삶을 포기할 수 없었다. 그래서 언제 어디서나 할 수 있는 앱테크를 시작했다.


첫 시작은 가계부였다. 종자돈도 없는 상황에서 지출부터 줄여야 했다. 

처음 본 소비액은 430만원이었다. 외벌이인 상황에서 소비가 430만원이라니!

그 중에서 고정지출인 생활비를 계산하니 270만원이었다. 그보다 더 소비를 줄여야 했다. 

그렇다고 먹고 싶은 음식을 먹지 않으면서 절약한 것은 아니었다.

270만원에서 절반보다 적은 100만원으로 생활비를 잡았다. 그 결과 약 2만 5천원이 초과했다.

그 이후 매달 일정 비율로 생활비를 줄여 나갔다. 그 결과 40만원에 도달했다. 

다양한 할인과 발품을 통해 일정 비율로 생활비를 계속 줄일 수 있었다.


생활비를 줄이면서 엠찌 작가님은 적립과 소액투자도 신경썼다.

적립은 우리가 생각하는 출석체크를 통해 포인트를 받는 걸 말한다. 엠지 작가님은 매일 매일 꾸준히 포인트를 모으고, 30원, 50원이라도 전환했다. 

티끌 모아 태산은 지나간 시대라지만 여러 앱으로 실천한다면 달라진다. 

티끌을 모아 만든 작은 태산은 소액투자에 사용되어 또 다른 태산을 만든다.

주가가 천 원도 안 되는 동전주, 0.01 배당주도 투자하고 기다리면 이익이 된다.

우리는 재테크를 엄청나게 거창한 존재로 생각한다. 그래서 알고 있지만 실천하지 못 한다.

엠찌 작가님과 함께 습관처럼 실행할 수 있는 절약, 적립, 소액투자를 실천하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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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의 평범성에 대한 보고
문정수 지음 / 바른북스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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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당신이 2000년 이후 출생자라면 이 책을 추천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당연한 사실들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혹시 디지털 네이티브라는 단어를 아는가? 어릴 적부터 디지털 환경에서 자라 디지털 기기를 마치 원어민처럼 다루는 세대를 이르는 말이다. 대충 연도를 따지면 인터넷이 활성화되기 시작한 1990년대 생부터 디지털 네이티브라고 볼 수 있다. 

같은 디지털 네이티브인데 왜 Z 세대에게 이 책을 권하지 않냐고?

아직 사회에 나가서 활동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Z세대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20살이 사회에 나가서 직원으로서 일을 하려면 아직 3~4년 정도 남았다. 취업 준비까지 하면 더 늦어질 것이다.

그런데 그때쯤이면 이미 기업조차 Z 세대에게 적합하게 변해 있을 확률이 크다.


2025년 정도가 되면 베이비 부머 세대인 X 세대가 은퇴를 하고도 남을 기간이다.

기업 구성원의 75% 정도가 밀레니엄 세대로 교체된다. 이른바 디지털 네이티브가 기업에 들어가서 왕성하게 활발할 시기라는 것이다

지금 기업은 기성세대 위주로 맞춤제작된 상태이다.

그저 군대처럼 상부의 명령을 받고 활동하는게 편한 구조에 머물고 있다. 

디지털 세상에서 자유롭고 개성이 강하게 자란 밀레니엄 세대와는 맞지 않는 구조다. 

그래서 기성세대는 라떼는 말이야 하면서 지금 세대는 끈기가 없다고 하고, 밀레니엄 세대는 기성세대를 꼰대로 보는 세대 차이가 생긴다. 부모에서 자식으로 생산인구가 교체되면서 우리는 그 과도기에 있다. 그래서 세대 차이가 생기고 다툼이 생긴다.


그래서 <혁신의 평범성에 대한 보고>는 세대 차이가 나는 원인을  깊고 자세하게 설명해준다. 

3저호황, 한강의 경제를 겪은 세대와 역대 최악의 취업난을 겪는 세대는 다를 수 밖에 없다.

군대식 구조에서 다수의 의견을 따르면, 기업에서 복지를 제공받던 세대와 취직을 해도 언제 자기 자리가 없어질지 모르는 세대가 기업을 생각하는 방식은 다를 수 밖에 없다.

아날로그 시대를 거쳐 디지털 시대에 적응한 디지털 이주민과 원래부터 디지털 시대에서 태어나고 자란 디지털 네이티브는 다른 가치관을 가질 수 밖에 없다. 

서로 경제적으로 디지털 혁명적으로 잘 모르기 때문에 세대 차이가 생긴다. 그래서 기술 발전과 경제 상황을 서로 엮어서 설명하면서 서로의 상황을 설명해준다.


그래, 여기까지는 이해가 잘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왜 예시로 인도가 나오는지 의아해 할 수도 있다

저자인 문정수 작가님은 인도에서 10년 간의 시간을 보냈다. 사업적으로 갔다고는 하지만 다양한 인종, 언어, 계층이 섞인 인도에서의 경험은 특별했다. 예시로 나온 주가드 정신과 핸드폰 라디오 서비스인 Missed Call을 본다면 이해할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인도의 잠재력은 어마어마하다. 한 4년 정도 뒤면 인도는 중국보다 인구가 많아진다. 소프트웨어, IT, 수학 강국인 인도는 향후 IT 세계를 평정할 국가가 될 수 있다. 19~21세기가 공존하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 어떤 혁신이 일어날지 알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도에도 관심을 가져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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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냥팔이 소녀를 잊은 그대에게 - 소외받은 이를 향한 공감·연민·실천
최충언 지음 / 책읽는고양이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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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제목이 성냥팔이 소녀일까? 

작가님은 우리가 소외된 사람들으 보는 시선이 성냥팔이 소녀 이야기와 비슷하다고 본 것 같다. 성냥팔이 소녀는 성냥을 한 개도 못 팔아서 결국 얼어서 하늘로 갔다. 우리가 한 번이라도 관심을 가졌다면 소외된 이들은 생기지 않았다. 

현 사회는 후원이라는 단기간의 관심만 줄 뿐이지 장기적인 관심을 주지 않는다. 한순간의 안도를 바랄 뿐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주지 않는다. 그래서 여전히 소외된 이들이 생기는 것일지도 모른다. 작가님은 <성냥팔이 소녀를 잊은 그대에게>를 통해 소외된 이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노숙자, 이주노동자, 의료빈민, 도시빈민, 장애인을 우리는 어떤 시각으로 보고 있을까?

우리와 다르다고 모욕적인 언행을 하거나 우리 일이 아니라고 외면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평소 모습을 생각하면서 답을 찾는 동안 작가님은 현실을 전한다.

일하다 다쳤는데도 산업재해 보상을 받지 못한 체 평생을 장애인으로 살아야 하는 환자, 돈이 없어서 죽음을 넘나들었던 환자, 식당에 갔다가 아무런 이유도 없이 거부당한 친구.

우리는 그들을 다른 눈으로 본다고 하지만 짙은 색안경을 끼고 보고 있다. <성냥팔이 소녀를 잊은 그대에게>는 우리가 숨기고픈 시각을 드러낸다. 현실과 그들에게 공감하는 시야가 교차되어 보이는 파노라마는 소외된 이들에 대해 다시 보게 한다.


장애인이 가장 힘들어하는 부분은 사람들의 시선이다. 당사자를 고려하지 않은 체 불쌍해하거나 안타까운 눈빛을 보낸다면 누가 좋아할까? 무례할 수도 있는 행동을 우리는 장애인을 볼 때 하고 있다. 당사자가 스스로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아도 어딜 가나 그런 시선을 본다면 어떤 기분이겠는가? 당연히 기분이 좋지 않다. 우리가 망각하는 점은 여기에 있다.

우리 모두 언제든 그런 시각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노숙자, 이주노동자, 의료빈민, 도시빈민, 장애인에 속하지 않는다고 다른 색안경이 없지 않다. 오히려 사람 수 만큼 많다.

그러니 우리는 단정짓고 보지 말아야 한다. 우리 또한 그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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