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
페터 회 지음, 박현주 옮김 / 마음산책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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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마지막 문장 '결코 결론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한 남자아이의 의문의 죽음으로 시작되는 이 책은 무려 600페이지에 달하는 추리소설이다. 대학교 2학년때인가 이 책이 두권짜리로 나왔을때 매일 도서관문을 닳도록 드나들었던 시절 이 책을 읽기를 시도하다 포기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거의 10년이 지난 이 시점에서 왜 이책이 다시 출간되어 관심을 받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그때 읽지 못했다는 기억이 있어 서점에서 이 책을 샀다. 보통 소설은 잘 사지 않는 편인데 오기로라도 읽어야겠다는 생각에서... 그리하여 나의 책장에는 소설책의 경우에 한해서는 재밌게 읽었던 책보다 오기로 꼭 읽어야지 하는 두툼한 소설들이 주류를 이룬다.

이 책을 잡고 거의 한달이 다 되어서야 책을 덮을 수 있었다. 첫째는 하루에 찔끔찔금 30분이나 그 이하의 시간만을 이 책을 읽는데 할애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추리소설이면서 스밀라의 심리묘사나 실제적으로 사건과는 상관없어보이는 관념적인 문장들이 많아서 읽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었다. 김훈이 그랬던가.. 소설가가 한달음 소설을 쭉 내려가듯이 독자도 책을 읽을 때 한달음 쭉 읽어내려갈수가 있어야 한다고. 그런데 나는 하루에 찔끔찔끔 읽었으니 이 책의 중요한 부분인 문장의 흐름을 음미하기는 커녕 비슷비슷한 등장인물의 이름이 생소하기까지 한 사태가 발생했지 무언가.. 이 인물이 누구였지 앞으로 가서 찾다가 하는 행위를 반복..

아이의 죽음을 파헤쳐가면서 다다른 결론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세상에 이해되지 않는 것만이 결론이 날뿐이며 그 외의 것들은 결론이 나지 않는다라니.. 이 문장에 대해 한참을 생각했다. 겨울, 얼음, 눈, 빙하 온통 차가운 것들 뿐인 스밀라의 세계, 살면서 한번도 사랑을 하지 않았다고, 타인에 대한 동정은 없다고 냉정하고 차갑게 말하는 그녀가 한 아이의 죽음의 원인을 파헤쳐가는 힘은 역설적이게도 결국은 모든 것이 다 사라져도 마지막에 남는 인간의 따뜻함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한번 읽고 끝내야할 책이 아니라고 생각된다. 그 언젠가 또 매력적인 스밀라의 또다른 내면세계를 발견하게 될 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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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읽기의 방법
유종호 지음 / 삶과꿈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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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읽기 시작한 것은 대학교때도 아니고 대학을 졸업하고도 한참 뒤의 일이었다. 왠지 시집은 봐도 내용이 와 닿지 않았고 내가 느끼는 것이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바였을까가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 이렇게 생각한 것 부터가 우리가 중고등학교때 시를 공부했던 방식이 잘못된 되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 같다. 어떤 시를 읽고 내가 느끼는 바가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것일까 라는 의심을 벗어던진 뒤에야 비로소 그 시 속으로 들어가 감상이란 것이 이루어질 수 있는 것 같다.  김수영의 풀에서 풀은 억압받는 민중 밑줄 쫙 이런식으로밖에 가르쳐주지 않았던 것, 참으로 안타까운 우리나라 국어 교육의 현실이다. 지금은 좀 달라졌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공부하던 시절에만 해도 그랬다.

교과서에서나 어딘가에서 한번 보았을 법한 시들을 읽으며 이 시가 교과서에 있을 때는 왜 아무런 감흥이 없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중학교 1학년 때 국어 선생님이 하셨던 말씀이 생각난다. 취미란에 독서라고 쓰는 것보다 시 외우기 이렇게 쓰는게 훨씬 멋지지 않냐고.. 왜냐하면 살면서 독서하는 것은 우리가 밥을 먹는 것처럼 당연하고 기본적인 일이고 이에 더하여 시를 외우거나 하면 얼마나 멋진 일이냐고... 그때도 멋진 말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도 그런 것 같다. 시를 외우는 것을 고품격 문화라고 생각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나만의 생각이겠지만 누가 뭐라하든 나는 영화 한편을 보는 것 보다 시집 한권을 보는 것을 더 고품격이라고 생각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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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
페터 회 지음, 박현주 옮김 / 마음산책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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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제껏 한번도 다른 사람들의 불행한 연애사건에 대하여 관용을 베푼 적이 없다. 그들의 연약함을 싫어한다. 그리고 그들이 무지개끝에 있는 남자를 찾는 것을 안다. 그들이 아이를 낳고 실버 크로스제로열 블루 유모차를 사서 봄 햇살 속에 강둑을 걸으면서 짐짓 겸손한 체 나를 비웃으며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을 본다. 불쌍한 스밀라, 자기한테 없는 게 뭔지도 모른다니까. 우리처럼 아이도 있고 결혼 증명서도 있는 여자들의 삶이 어떤지 모르지. 네 달 뒤 옛 임산부 친목회가 열리는 날, 다시 나쁜 병이 재발하여 거울 앞에 마약 주사를 죽 늘어놓던 사랑하는 남편 페르디난드가 급기야 욕실에서 행복한 엄마 중의 한 사람과 놀아나고 있는 모습을 목도하는 순간, 10억분의 1초만에 그녀는 위대하고, 자부심 강하며, 최상이고 절대 흔들리지 않는 어머니의 위치에서 난쟁이 요정으로 격하된다. 한방에 내 수준 이하로 굴러 떨어져 곤충, 벌레, 지네가 되어버린다.
-250쪽

그렇게 되면 그 여자들은 오랜만에 내 생각을 하고 연락을 해온다. 그러면 나는 이혼 후의 독신모의 삶이 얼마나 힘든지, 스테레오를 나눠갖기 위해서 어떤 싸움을 했는지, 애들 때문에 청춘이 어떻게 날아가버렸는지, 애들은 자기를 이용해 먹고 아무것도 보답하지 않는 기계라느니 하는 얘기를 들어줘야 한다.
"그럼 대체 네가 원하는게 뭔데?"
나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251쪽

사랑에 빠진다는 것은 대단히 과장된 얘기다. 사랑에 빠지는 것은 상대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으리라는 두려움 45퍼센트와 이번에는 그 두려움이 무색하게 되리라는 굉적인 희망 45퍼센트, 거기에 소박하게 사랑의 가능성에 대한 여린 감각 10퍼센트를 더하여 이루어진다.
나는 더이상 사랑에 빠지지 않는다. 내가 더이상 볼거리에 걸리지 않는 것처럼.
그렇지만 물론, 누구나 사랑에 압도될 수는 있다. 지난 몇 주간 나는 매일 밤 몇 분씩 그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나 자신에게 허락해 주었다. 나는 내 마음에 승낙을 내려놓고 내 몸이 그를 갈망하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한다. 나는 그의 고독을 안다. 더듬거리던 습관, 포옹, 개성의 거대한 핵심에 대한 깨달음을 기억한다. 이런 이미지들이 지나치게 갈망을 발산하기 시작하면 나는 이들을 잘라버린다. 적어도 그렇게 하려고 노련한다.
나는 사랑에 빠진 적이 없다. 그러기에는 지나치게 명확하게 사물을 바라본다.-44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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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면일기
미셸 투르니에 지음, 김화영 옮김 / 현대문학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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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미셸 투르니에의 매력을 이제야 알아 버렸다.

일기는 보통 초등학생의 그림일기가 아닌 다음에는 자신의 내면을 적어나가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 책은 자신의 주변에서 일어난 사실들에 대해 적어가고 있다. 계절의 변화에 발맞추어 여기저기 끄적거려놓은 메모들을 모아 책으로 만든 것이라고 한다.

일상의 관찰, 삶에 대한 유머러스함, 죽음을 받아들이는 유쾌한 태도가 곳곳에서 보여지고 그때마다 미소를 머금게 한다. 80을 훌쩍 넘긴 나이.. 에는 인생의 앞날을 기약할 수가 없다. 갑작스런 심장의 통증에도 이게 내 죽음일지 모른다고 그는 유쾌하고 말하고 있다. 아버지가 76세에 돌아가셨는데 그래서 자신도 그때까지만 살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던 그는 오히려 지금 죽음에서 멀어져가고 있는 것 같다고 말한다. 요즘 평균 수명이 여자는 80이 훨씬 넘는 다는데 그 나이에 이렇게 유쾌하게 조심스럽게 작게 가볍게 살 수 있다면 참 좋겠다고 나는 생각해 본다. 뒷부분에 번역가 김화영과의 인터뷰가 실려 있다. 인터뷰를 읽으며 미셸 투르니에의 따뜻함이 느껴진다.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지만 어린이를 굉장히 좋아하고 어린이를 위한 철학책들도 여러권 썼다고 한다. 나이에서 나오는 여유, 잘 늙는 것이 참 중요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나는 어떤 학교의 어린이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매일 큼지막한 공책에다가 글을 몇 줄씩 쓰십시오. 각자의 정신상태를 나타내는 내면의 일기가 아니라, 그 반대로 사람들, 동물들, 사물들 같은 외적인 세계쪽으로 눈을 돌린 일기를 써보세요. 그러면 날이 갈수록 여러분은 글을 더 잘, 더 쉽게 쓸 수 있게 될 뿐만 아니라 특히 아주 풍성한 기록의 수확을 얻게 될 것 입니다.
...... 중략
위대한 사진작가가 하나의 사진이 될수 있는 장면을 포착하여 사각의 틀 속에 분리시켜 넣게 되듯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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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정복한 남자 류비셰프
다닐 알렉산드로비치 그라닌 지음, 이상원.조금선 옮김 / 황소자리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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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비셰프는 러시아의 유명한 곤충학자라고 한다. 82살동안 살면서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끊임없이 계획하고 기록하여 마치 자신의 생 동안 이루어야할 사명을 알고 태어난것처럼 살았다고 한다. 26세의 나이부터 자신의 생활을 시간기록하였는데  내면세계나 감정을 기록한 것이 아니라 객관적 사실만을 건조하게 나열하고 그런 행위를 하는데 드는 시간을 기록했다고 한다. 면도하는 시간, 휴식하는 시간, 신문을 읽는 시간처럼 별 의미가 없어보이는 자투리 시간까지도 기록하여 연간단위로 통계를 내고 5년뒤에 공부할 내용까지 계획을 세울수 있었다고 한다. 그 통계가 너무나 정확했기 때문에 예를 들어 한편의 논문을 작성하는데 얼만큼의 시간을 소요될 것인지 예측할 수 있었다고 한다.

참, 이렇게 살았던 사람도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늘 시간을 죽이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무엇하나 하기에는 절대적인 시간이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나에게 류비셰프의 생활 방식은 획기적이었다. 하루에 잠도 10시간정도로 매우 충분히 잤고, 지인들에게 편지를 쓰는 시간도 있었으며 평소에 운동도 좋아했다고 한다. 이렇게 여유롭게 생활하면서도 자신의 학문세계를 탄탄히 구축해나갈 수 있었다니 보통사람이 갖기 어려운 강한 정신력을 가지고 있었던게 틀림없다.

또 그 관심의 분야가 대단했는데 생물수리학(?)이 그의 전공이었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학, 역사, 음악 과 같이 전공과는 전혀 상관없는 분야에까지 관심을 보였는데 단순한 취미차원의 관심이 아니라 논문을 낼 정도의 열정이었다고 한다. 칸트가 궁금하면 그와 관련한 책을 독파하고 논문까지 낼 정도였다니.. 왕성한 호기심이 그의 인생을 이끌고 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살면서 반드시 무언가를 이루어야 할까. 가시적인 성과를 내고 죽어야만 할까. 그래야 남들이 나를 인정하니까? 인정받아서 뭐하려고?
류비셰프의 생활방식이 대단한건 알겠지만 이렇게 까지 살아야하는 생각은 든다. 하지만 학자로서의 그의 정신력과 추진력은 감탄해 마지 않는다.

시간이 없다고 투덜대지 말아야겠다. 결국은 의지 부족의 문제 아니겠는가. 반성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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