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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호 기자 X파일 - 진실은 스스로 말하지 않는다
이상호 지음 / 동아시아 / 2012년 7월
평점 :
절판
들어가기 전에...
이 책은 이상호 기자의 개인 회고록입니다. 이상호 기자에 대한 의견이 분분한데요. 삼성 X파일로 비리를 파헤치고 대안언론 GO발뉴스로 나름 기자정신을 보여주고 있어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똑같은 기레기로 여기며 탐탁지 않게 여기는 사람도 있습니다.(저는 이 책을 읽었던 지금도 이상호 기자를 반신반의하고 있습니다.) 특히 세월호 침몰 사고 때 이종인 대표 인터뷰나 욕설 진행 등으로 망신을 당하기도 했죠. 이 분의 개인 의견, 보도 태도 등에서 장단점과 공과가 있는 만큼 어느 정도 감안하고 걸러들을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이상호 기자의 삼성 X파일은 한통의 전화로 시작됩니다.
p19
“그래, 이기자, 잘 있었지? 사실은 내가 말이야……, 제보를 하나 해주려고.”
‘제보’라는 말에 솔깃해 전화기를 귀에 밀착시켰다.
(중략)
“이야기해줄게. 삼성 거야. 삼성이 주도한 대선자금 게이트야. 삼성인데…… 할 수 있겠어?”
이 책은 이상호 기자가 삼성 X파일을 취재하고 보도하는 여정을 담은 회고록입니다. 평소에도 MBC에서 탐사취재를 도맡아 하던 기자죠. 그전에 SBS와 모기업인 태영건설의 뒷거래를 취재하고 있었는데 그 전화로 삼성과 운명을 건 싸움을 한 겁니다.
초반부에 민 차장의 꾐에 넘어가 태영 부회장의 샤넬 핸드백을 얼떨결에 받는 부분(물론 뒤에 되돌려주긴 합니다.)이 나옵니다. 이상호 기자는 이 일로 위기에 봉착하게 됩니다. SBS와 태영의 비리를 취재하다 인맥으로 뭉친 민 차장 – 태영 라인에 말려든 셈이죠. 그는 이 일로 기자들과 보도국, 경영진의 미움을 사게 되고 삼성 X파일 취재 과정에서 발목을 잡힙니다. 당연히 후회하고 있다는 마음을 드러냈죠.
p60
애초에 민 차장은 김기찬 국장에게 저녁을 모시겠다는 생각 따위는 없었을 것이다. 단박에 자신이 미끼였다는 사실을 깨닫고 애꿎은 술만 축낸 것이리라.
(중략)
후배가 이미 세 차례나 거부한 자리를 끝내 함정을 파서 참석하게 한 그의 속셈은 무엇일까? 그걸 생각하자 입안에 털어 넣은 배추벌레들이 스멀스멀 몸으로 퍼지는 환영이 느껴졌다. 치욕적이고 불결하다.
위의 과오를 극복하고 삼성 X파일을 취재하고 보도하기 위한 이상호 기자의 노력은 끝이 없습니다. 홍석현 당시 주미 대사의 UN 사무총장 도전과 삼성/중앙일보를 통한 노력을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는 사명감 때문이겠지요. MBC 내부에서 가해지는 눈초리, 삼성과 중앙일보의 방해공작, 자신이 앓고 있는 공황장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주변 사람의 도움을 받아 녹취록 감정, 제보자를 통한 자료 수집을 하게 됩니다.
결정적 단서인 녹취록과 관련 자료를 확보하고 보도 준비에 박차를 가하지만 통신비밀보호법과 윗선의 망설임이 그를 가로막습니다. 그러다 조선일보에서 먼저 보도를 하자 뒤늦게 허락을 받아 보도하고 결국 삼성의 사과를 받아냅니다.
p290~291(엄기영 당시 앵커와 인터뷰)
앵 커 그런데 이 문건을 입수한 지 근 반년이 지났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아직까지 보도하지 못한 이유가 뭡니까?
이상호 빨리 보도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그렇지 못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사안이 사안이다 보니까 테이프가 진정한 것인지를 확인하는 데 많은 노력이 필요했습니다. 성문분석이라고 들어보셨죠? 이중, 삼중으로 목소리의 당사자를 분석한 결과 문제가 되고 있는 두 분의 목소리와 실제로 일치한다 하는 내용과 또 편집 조작된 흔적이 없다 하는 판정을 받아낼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추가 취재도 이어졌지만 방송은 그렇게 쉽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통신비밀보호법을 지켜야 한다고 하는 신중론과 그래도 국민의 알권리를 우선시해야 한다는 입장이 대립되면서 그동안 갈등을 빚어온 것입니다. 하지만 어제 일부 언론에 안기부 도청문제의 일단이 거론되면서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판단이 이루어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는 이상호 기자의 삼성 X파일 취재 회고록을 접하면서 많은 시련과 극복 과정을 볼 수 있었습니다. ‘진정한 탐사보도란 이런 것이다’란 점을 독자에게 전달한 셈이죠. 과연 나도 그런 상황에 직면했을 때 이상호 기자처럼 해낼 수 있을까를 읽는 동안 생각했었습니다.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자기 의지를 관철해 나가는 의지는 분명 배워야 할 점이라 봅니다. 다만 취재 과정에서 생긴 오해를 빨리 풀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점이 아쉽습니다. 물론 그랬다면 지금의 이상호 기자는 없었을 수도 있습니다.
p327
겨우 아물어가는 상처를 헤집는 건 고통이었다. 다시 숨쉬기가 힘들어졌다. 복원된, 적어도 그렇게 봉합된 조직 내 관계를 드러내는 건 공표였다. 하지만 예정된 일, 이 또한 삼성 X파일을 제보 받은 기자가 처음부터 감당해야 할 몫이었다.
저는 이상호 기자의 보도에 관심을 가진 적이 없고 그저 주변인의 말에 설왕설래할 뿐입니다. 이 책을 읽었지만 그다지 개운하지 않았습니다. 천국과 지옥을 오간 극적인 자랑거리를 내놓는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지켜봐야겠다는 생각이 조금씩 들게 되었습니다. 진실을 향한 그의 기자정신은 위기의 순간마다 특종을 터트리며 신뢰를 얻기 충분했다는 걸 이 책을 보면서 느꼈거든요. 이상호 기자의 노력은 어디까지 갈 것인가, 위기를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가 한번 지켜보렵니다.
p324
꼭 상식대로 법이 가는 것은 아니라고요? 당장은 그럴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언젠가는 상식이 몰상식의 법리를 몰아낼 것이라고 저는 굳게 믿습니다. 하루아침에 해결될 일도 아니겠지요. 저 역시 제 생각만 옳다고 고집부리지 않겠습니다. 그저 이렇게 제 위치에서 이렇듯 주장할 따름입니다. 부담 갖지 마십시오. 저 역시 큰 기대 않겠습니다. 다만 역지사지의 입장에서 한번쯤 찾아봐주십시오. 상식의 손수건을 말입니다. 구겨진 채로 지금 어느 두꺼운 법전 밑에 깔려있을지도 모르니까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