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6년 11월 28일 뉴욕의 날씨는 음산했다. 흩뿌리는 비, 축축한 보도는 애써 단장한 옷차림을 거추장스럽게 느껴지게 할 정도였다. 그럼에도 플라자 호텔 근처는 '세기의 파티'의 언저리라도 엿보고 싶어하는 구경꾼들과 상류층의 일거수일투족을 취재해 덧붙여 하나의 소비재로 만드는 데 혈안이 된 각종 언론사에서 나온 기자들, 초대받지 못한 잔치에 몰래 잡입해 들어가 보려는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루었다. 이 날 뉴욕은 누군가가 발칙하게 고안해 낸 가장무도회로 전부 뒤덮인 것만 같았다. 그 누군가가 노린 것은 바로 이러한 것이었다. 자기 자신을 잘 포장해 파는 데에 탁월한 재능이 있었던 그는 바로 트루먼 커포티였다.





그는 이미 캔자스 주 홀컴 마을 일가족 살인 사건의 범인 두명을 거의 6년 동안 직접 취재해 쓴 'In Cold Blood'의 성공으로 작가로서 정점에 서 있었다. 그는 직업적 은둔이나 절제와는 거리가 멀었다. 유명한 사람들, 사교계 인사들과 교유하는 것을 즐겼고 그들의 내밀한 사생활을 염탐해 가십거리를 모아 전달하기도 했다. 작은 체구에 새된 목소리의 트루먼 커포티의 묘한 매력은 수많은 유명 인사들을 친구로 만들었고 그 자신 또한 그것을 의식하며 철저히 즐기고 이용했다. 그리고 마침내 이 모든 추상의 성공을  가장 효과적으로 과시할 세기의 가장무도회를 기획하기로 한다. 오백 명을 넘는 엄선된 초대받은 자의 명단은 마치 이 시대의 주류 세력에 자신이 당당히 들어갈 수 있는지 없는지를 심판하는 기준처럼 때로 여겨졌다. 초대받지 못한 자는 마치 초대 받았는데 갈 수 없었던 것처럼 일부러 파티 당일 자신의 따뜻한 집이 있는 도시를 떠나야 했다. 어쩌면 가장 속물적인 모습의 집약체이자 절정인 시간은 한 작가의 탁월한 내러티브 능력으로 하나의 서사의 대단원인 것처럼 편집되어 가공되어 제공되었다. 




가진 자들은 열광했고 절망했고 시기했고 사랑했다. 베트남전을 비롯한 각종 사회의 현안들은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었었다. 낭비와 과시와 끈적임이 용인되었다.  그러나 인생의 모든 절정이나 그럴듯해 보이는 것들이 그러하듯 트루먼의 성대한 파티도 하루 아침에 막을 내렸고 파티에 참석했던 마치 그 하루를 위해 영원을 다 소진할 듯 했던 그들도 죽거나 절망하거나 파멸했다. 무엇보다 파티의 기획자이자 그 자신 주인공이었던 트루먼 커포티의 전락은 더 비참했다.  아름답고 외로웠던 소년 시절을 노래했던 작가는 이제 자신이 그러쥐었던 그리고 선망했던 그 모든 현란해 보이는 생의 가치들에 철저히 배신당하며 죽어갔다. 마치 프루스트처럼 그는 생이 제공하는 환락과 영원을 약속할 것만 같은 온갖 명예와 권력이 빛나는 그 종이 별이 스러져가는 것을 목격해야 했다.


아름다운 시절과 빛나는 시간의 덧없음을 가장 절절하게 그렸던 두 작가가 사실은 가장 속물적인 욕망에 충실했었다는 반전은 사실 우리 모두의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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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03 21:3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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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05 00:0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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