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위한 시간을 봤다. 산드라 잘했어요 짝짝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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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위한 책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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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4호 인터뷰들이 전반적으로 좋다(꿈과 용기를 준다). 버드맨 기사는, 이 이상으로 리뷰하기가 힘들겠다 싶을 만큼 밀도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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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 모노레일

166쪽. 읽다보니 어릴 때 하던 RPG가 생각났다. 우연과 필연의 겹치기로 엔딩까지 도달하기...게임에 대한 이야기인데 어느 순간 진짜 게임을 하는 기분이 든다.

171쪽. 모노와 대비되는 고우창에 대한 설명이 재밌다. 김중혁은 인물의 내면이 형성된 역사를 잘 짜놓는다. 틈이 있는 것 같은데, 헐렁헐렁한데 따져보면 틈이 없는 문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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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와 황정은, 이건 분명 '네' 취향이다, 라는 이야기가 들리는 것 같다. 말하자면 확실히 이 둘은 '좀 쉽게' 읽히는 문장과 고집스럽고 부드럽게 독자를 납득시키는 스타일, 때론 대중적이며, 문학적으로 무시할 수 없다는 점에서 당당하게 이건 '내 취향'이라고 말할만 한 작가들이다. 그리고 타인에게도 추천하기 좋고, 추천하면서도 이 작가들 분명 '좋아하게 될 거야'라고 말할 수 있다. 작품의 퀄리티를 떠나 본격적으로 취향의 문제로 들어왔을 때도 이들은 결코 추천자를 민망하게 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이들은 '보편적'이면서도 '선별적'인, 아이러니를 충족시킨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는 말이 많았다. 좋다 아니다(나쁘다 까지는 아니지만). 전작에 비해 좀 아니었지 싶어, 라는 둥. 하루키에 대해 순차적인 독서가 불가능한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가령 십 년 만에 <먼 북소리>를 다시 꺼내 읽고, <상실의 시대>는 이십 여 페이지를 훑어본 뒤 못 읽겠어 덮어버리고,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1973년의 핀볼> <양을 쫓는 모험>을 그나마 순서대로 읽었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결국 기억에서 뒤죽박죽 섞여버린 채 이 세 작품에 대해서는 제대로 뭐라 얘기하지도 못하고, 도서관에서 <더 스크랩> <무라카미 라디오>를 발견해 몇 번이고 대출해 읽었지만(정작 구매로 이어지지 않은, 그래서 절판되었을 때, 왜 안 샀지 하다가 재출간 된 책으로 일단 서가에 꽂아넣었던) 독자로서  <색채가 없는...>이 책은 그간의 독서에 비교하면 특별히 좋은 건 없었지만, 그렇다고 나쁜 것도 없었다. 하지만 <1Q84> <해변의 카프카> <태엽 감는 새> 등등 하루키 장편은 잘 읽지 않아서인지 '하루키의 장편'을 모처럼 읽었다는 마음, 드디어 하루키 월드에 입성한 기분이 들었다.

 

벌써 예순 다섯쯤 되었을 하루키를 생각하면, 그가 소설을 시작할 무렵 창조한 인물들: 무기력한 남성과 두 가지 인격으로 나뉘는 여성들이 등장한다는 점, 스무 살 무렵의 일들, 그 즈음에서 나타나는 주인공(혹은 화자)의 변화에 대한 욕구(분열 욕구)가 연장선상에 놓여, 작품의 큰 틀을 구축한다는 점이 '한결'같다. 화자(남성)와 여성 등장인물의 관계 뿐아니라, 화자(남성)과 다른 남자 사이의 관계에서 나타나는 '삶의 형태를 관찰'하는 태도-그 태도를 불러일으키는 다른 남자에 대한 동경- 역시 반복되고 있다. <토니 타키타니>에서 세밀화를 그리던 남성은 역을 설계하는 다자키 쓰쿠루가 된 격이고, 이번 소설에 등장한 '하이다'의 경우 <여자 없는 남자들>의 단편 <예스터데이>에 출연한 '기타루'가 된 격이다(솔직히 말해 <여자없는 남자들>단편은 하나 읽었다). 화자 자체는 타인으로부터 신뢰받는 인물이지만 어쩐지 밋밋하고 재미없는 존재, 그러나 그의 주변에 갑자기 등장하여 삶에 밀착한 남자들은 그와 달리 유쾌한 존재들이다. 다시 말해 여성들의 두 인격만큼이나 남성들의 두 인격도 존재하고 있다. 그러니까 주인공이 느끼는 분열에 대한 욕구, 두 여자 사이에서 오고가는 기분을 짐작 못하는 건 아니다. 결과적으로 하루키는 두 인격을 창조하는 데 탁월하다. 이 '두 인격'을 탐미하는 것이 하루키의 책을 집어들게 하는 요소 중 하나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보다 심층적인 독서경험을 원한다면 빨간 책방 39, 40회 참조)

 

한때, 정말 한때, 황정은 소설을 읽지 않으려 했다. 까닭은 여백이 너무 많다는 것이었다. 아니, 여백보다 글자가 더 많잖아, 하더라도 다른 작가들에 비하면 한없이 텅 비어있는 작가 같았다. 당시 나는 빡빡한 소설이 좋았다. 천운영, 조경란, 하성란 같은 여성작가들. '삶이란 이런 것'하고 보란 듯이 보여주는 여성 작가들이 좋았고, 물론 지금도 좋아하지만, 황정은 <파씨의 입문>을 읽고 난 뒤 스스로에게 욕이 나올 뻔 했다. '뒌장, 이걸 이제서야 보다니'(영화 <이터널 선샤인>을 보고 같은 후회를 했다). <백의 그림자>도 안 읽고. 이 미천한 독서. 그나저나 이 단편집에서 <대니 드 비토>와 <낙하하다>는 꼭 봐야한다. 누군가가 아직 안 읽었다면 꼭 봐야 한다. 하지만 소설집의 마지막 단편인 <파씨의 입문>은 심약한 분이라면 자제하시는 게. 끝에 다섯 장을 남겨두고 볼 수 없었다. <파씨의 입문>을 그렇게 끝내고 동시에 <계속해보겠습니다>를 아는 이에게 빌렸다. 나도 말이지, 일단 계속해보겠다는 기분, 황정은 월드에도 입성할 수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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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쯔 2015-01-05 08: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왜 하루키 책을 집어드는가-에 대한 흥미로운 관점이로군요. 하루키 장편 중에서는 전 <해변의 카프카>를 가장 좋아해요. <1Q84>도 완성도가 높은 편이고 <댄스댄스댄스>는 이제 와서 보면 좀 옛날 책 같아요. ^^
저랑 황정은 입문기가 비슷하시네요!

김토끼 2015-01-05 09:52   좋아요 0 | URL
저는 셋 다 안 읽었습니다. 이제 부지런히 읽어야겠어요. 당분간은 다른 작가들을 좀 읽어보고 시작하려고요. 해변의 카프카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