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실적용' 출판 범람...5백부만 넘겨도 대박
반론 : 학술출판에 대한 저자들의 오해

2004년 06월 24일   박성모 소명출판 

박성모 / ‘소명출판’ 대표

지금 우리에게 학술출판은 어떤 의미일까. 어느 일방의 측면과 범박한 오해로 누더기가 되고 또 고정관념으로 뭉뚱그려져 각주 달린 책 또는 그럴 듯한 제목으로 학문의 외피를 입은 출판이 아니라, 진정으로 학문과 출판이 만나서 하나를 이루는 일, 그 현장에 대한 이해는 진정 없는 것인가. 6월 7일자 ‘교수신문’의 ‘안목 갖춘 편집자와 소통하고 싶다’를 읽고 새삼스레 드는 생각이다. 오해의 첫 단추는 어디서 시작됐으며 또 지금 여기의 학술출판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 답답함에 몇 가지 생각을 추슬러 본다.

번역자의 역할과 출판사의 역할을 구분해야

먼저, 가장 긴밀해야 할 출판사와 저자 사이에 건너기 힘든 깊은 강이 가로 놓였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부정할 수 없는 것은 저자와 출판사가 서로의 역할에 대한 엇갈린 이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저자들은 출판사의 전문교정능력 부재를 지적한다. 옳은 말이다. 내가 근무하는 ‘소명출판’ 역시 이 문제는 늘 더부룩한 체증과 같은 부담이다. 그럼에도 해법은 쉽게 보이지 않는다. 아직도 일부의 저자는 전문적 원고내용에 편집자가 감히 어디 손을 대느냐고 질타하기도 한다. 반면 또 다른 저(역)자는 교정 차원을 넘어 고난도의 교열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극과 극의 요구는 출판 현장에서 낯선 풍경이 아니다. 번역의 경우 출판사로서 감당키 어려운 요구도 따른다. 우리 출판사만 해도 공동번역된 원고에 대한 출판을 진행하다가 반려한 경우도 있었다. 문제의 발단은 이랬다. 중국학 전문가들이 일정 부분씩 나눠 번역한 원고였는데 일관된 원칙에 따라 음가를 통일하는 과제를 출판사가 맡아 달라는 것이었다. 대중적 인지도를 지닌 ‘노신’을 ‘루쉰’으로 통일하는 일은 간단할 것이었다. 그러나 번역자 스스로에게도 낯설고 또 무수한 고유명사가 출현하는 원고에 대한 적확한 음가를 적용하는 일은 중국학 전문가 사이에도 이견이 있을 수 있는 감당키 어려운 난제라 여겨, 출판사에서는 정중히 번역자들의 통일안을 요청했다. 그런데, 그렇다면 출판사는 뭘 하는 곳이냐는 질타가 돌아왔다. 번역자보다 더 높은 수준의 교정과 교열 요구를 출판사로서 끝내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원고 교정이 끝없는 원고 수정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출판사에서 레이아웃을 거쳐 조판을 뜨고 교정쇄가 나가면 양상은 달라진다. 끝없는 원고 수정이 그때부터 이뤄진다. 오자와 탈자에 대한 교정이나 최소한의 문장에 대한 의견을 달고 손보는 ‘교열’의 개념이 아니다. 거의 새로 쓰다시피 하는 원고는 말 그대로 편집자를 과로하게 만든다. 깔끔한 교정쇄를 보면 연구 당사자로서 새로이 단점이나 결함이 보일 수도 있다. 이런 경우 당연히 수정하고 다듬어야 한다. 그런 의미의 교정은 출판사에서 당연히 감수해야 하는 몫이다. 그러나 초교에서 수정된 2차 교정지를 다시 초교 만큼 많이 고치는 저자들이 적지 않다면 문제는 근본적으로 달라진다. 너무 쉽게 쓰여진 원고이거나, 자신감 없는 원고다. 이럴 때 출판사로서는 나름의 출판 결정이라는 판단에 대한 뒤늦은 후회가 들만큼 난감해진다. 학술출판에 대한 천박한 이해가 급기야 천박한 출판 풍토를 낳고야 마는 것이다.

‘필요’와 ‘공급’의 우울한 곡선

이렇듯 출판사를 무시하거나 아니면 너무 의존하려 드는 양극단의 입장들이 있다. 그럼에도 학술출판사에 대한 이런 시선과 요구를 근본적으로 해소하기는 불가능해 보인다. 출판사에 따라 요령껏 저자 성향별로 눈치를 살피고 탄력적인 적용을 할 수는 있겠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은 게 문제다. 지금 대한민국에서의 순수 학술출판은 그 무엇보다도 자생력을 상실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매스컴을 횡단하는 일부 소수 명망가를 제외하고 본연에 충실한 거의 대부분의 학문 종사자들의 연구 결과를 순수하게 출판한다는 것은 지금의 현실에서 매우 회의적이다. 말 그대로 자생력을 상실한 게 어제오늘의 일도 아니거니와 이 문제는 학술출판사의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이기에, 그 어떤 오해와 불협화음이 저자와 출판사간에 존재한다고 해도 나는 그것이 우선 순위가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오늘날 학술출판은 최소한의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따라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저자의 현실적 ‘필요’와 어쩔 수 없는 ‘공급’이라는 기형적 법칙이 언제부턴가 학술출판가의 현실이 돼버린, 그러니까 이렇듯 우울한 현실이 문제다. 공급은 출판사가 하되 ‘수요’가 없다 보니 ‘필요’에 의해 출판한다는 것이다. 필요는 무엇을 말하는가. 시장의 수요가 없는 상태에서 저자만이 책이 필요한 현실을 말한다.


이런 현실에서 전문 교정능력을 확보하는 일은 거대한 벽이다. 아이러니하게도, 1인 다역으로 출판사 사장이 혼자서 또는 직원 한두 명과 함께 운영하는 출판사의 경우는 사장이 그나마 어느만큼 전공영역을 감당할 만한 경우에 해당한다. 특정 전공분야의 범주 안에서 출판하는 경우가 이 예에 해당할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학술출판사는 교정능력 하나에 있어서도 좌절의 쓴맛을 보고 있다. 그나마 자본력과 전문인력을 확보한 대형 출판사가 학술출판을 성실하게 감당해 주는 길이 있긴 하다. 그러나 이마저도 출판 상업주의에 매몰돼 갓 쓰고 장사한다는 눈초리를 피하기 위한 체면치레에 머무는 정도다. 순수 판매율 5백부를 넘기면 대박인 현실에서 교정은 고사하고 누가 어떻게 학술출판을 감당할 것인가.


사실, 순수 학술출판은 취업용이나 연구 실적용 책을 발간하는 것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가 않다. 저자로서 학술출판과의 첫 만남은 대부분 박사논문을 출판하는 일로부터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는 ‘취업용’을 위해 출판사를 찾는다. 또는 이런저런 기회에 발표한 논문들을 한 데 모아 찍는 논문모음집의 형태가 있다. 단단한 주제아래 하나의 연구 결과를 책으로 내 놓는 경우도 있으나, 책을 위한 책이 많다. 또 고도의 연구결과가 집적된 것이 아닌 ‘거기서 거기’인 학습교재들이 있다. 이런 교재성 책은, 다 알다시피 연구서가 아니다. 그럼에도 한결같은 공통점이 있다. 특정 시점에 맞춰달라는 주문이다. 취업용이나 연구 실적용이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책의 역할은 그것으로 끝이다. 장사는 안되면서 학술출판사가 가장 바삐 움직이는 연유가 여기에 있다. 연구는 길고 출판은 짧다.


안에서 싸워야하고 밖에서는 방어해야 하는 학술출판의 현실, 참으로 진퇴양난이다. 과연 지금 여기에서의 학술출판,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원죄’를 안고 있기는 한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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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lmas 2004-07-04 2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난 번에 올린 [교수신문] 6월 7일치 기사에 대한 출판사 쪽의 반론입니다.
 
 전출처 : 모모 > 이라크 파병반대를 위한 영화인 선언

어제 친구랑 교보 앞을 지나다가, 영화인들의 파병 반대 기자회견을 우연히 보게 되었어요. 박찬욱, 임순례 등 얼굴이 비교적 익숙한 사람들이 몇몇 있더군요. 선언문이 생각보다 '과격'해서 흠칫 놀랐는데, 흐, 아무튼 꽤 좋은 글이라서 퍼옵니다.

 

 

이라크 파병반대를 위한 영화인 선언


미국이 이라크침략의 불가피한 조건으로 내세웠던 대량학살 무기는 애당초 이라크에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9.11과 이라크가 아무런 관련도 없음이 밝혀졌습니다. 오히려 우리가 확인 한 것은 더러운 침략전쟁을 정당화하기 위해 미국이 얼마나 많은 거짓 정보들을 조작했는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듣는 것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이라크 민간인의 죽음이었습니다. 아무런 이유도 없이 최소한의 저항수단 조차 갖지 못한 민간인의 죽음을 우리는 거의 날마다 듣고 있습니다. 포로들에 가해진 미군의 조직적인 고문과 강간을 통해 우리가 본 것은 이 더러운 침략전쟁의 악마성입니다. 온갖 혐오스러운 방법을 동원하여 조직적인 고문과 강간을 자행한 미군에게 이라크인은 인간이 아니었습니다. 갖은 역겨운 방법으로 이라크인을 조롱하고 무참히 살해한 미군 역시 더 이상 인간이기를 포기했습니다.

정상적인 상식을 가진 자라면, 시작부터 더러운 음모로 점철된 이 침략전쟁이 당장 끝나길 바래야 합니다. 조그만 힘이라도 민간인의 학살을 막는데 보탬이 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나 일부 언론은 일찍부터 파병을 외쳐댔고, 마침내 노무현 정부와 17대 국회는 파병을 결정했습니다. 고 김선일씨의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있는 상황에서도 그들은 파병의 정당성(?)을 외쳤습니다. 그들은 미친 것입니다. 미쳤다는 것 외에 그들을 이해할 수 있는 단어는 우리에게 존재하지 않습니다.

누군가는 이라크 파병으로 우리가 얻게 될 경제적 이익을 이야기 합니다. 이라크 유전과 전후 복구사업으로 얻게 될 이득을 위해 파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마도 우리가 살아가며 들을 수 있는 가장 역겨운 이야길 것입니다. 이라크의 철없는 어린 아이들마저 무차별 폭격에 죽어가고 있는 마당에 자신의 경제적 이익을 위해 군대를 파병하자는 주장을 공공연하게 외쳐 댑니다. 철저히 이라크의 석유와 군산복합체의 이해관계로 침략전쟁을 시작한 미국조차 명분을 만들기 위해 온갖 정보를 조작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경제적 이익을 위해 파병해야 한다는 자들에겐 이러한 거짓 명분조차 거추장스러워 보입니다.

보다 책임 있는(?) 자들은 북핵 문제를 들어 파병 강행의 불가피성을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주장엔 늘 약소국, 주변국으로서의 한숨이 뒤따릅니다. 그러나 북핵 문제 때문에 파병을 할 수 밖에 없다는 주장은 명백히 국민에 대한 공공연한 협박입니다. 그것은 아마도 부시 정권의 북한에 대한 '악의 축' 규정과 북핵 문제에 있어서의 미국의 강경한 태도를 고려할 때, 혹시라도 있을지 모를 한반도에서의 무력 충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파병을 통해, 국제 사회에서 벼랑에 몰린 미국의 손을 들어줌으로써 만에 하나 있을지도 모르는 한반도에서의 미국에 의한 무력사용의 가능성을 배제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이라크 국민의 목숨을 담보로 한 한미간의 더러운 거래를 의미하는 것이며, 파병을 안 하면 한반도에서의 무력 충돌 가능성이 고조된다는 대국민 협박인 것입니다.


베트남에서 아프가니스탄까지 미국이 원하는 대로 파병을 하라면 파병을 하고, 돈을 내라면 또 그렇게 했던 그간의 역사에서 보듯 우리가 약소국임은 사실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또다시 선택의 기로에 서 있습니다. 파병을 통해 미국이 자행한 범죄의 공범자가 될 것인지, 아니면 파병을 거부하고 국제적인 반전의 거대한 흐름에 동참할 것인지 선택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미국의 범죄행위에 대항한국제적인 반전 운동만이 전 인류에 부끄러움 없이 정당한 결정이며, 나아가 한반도에서의 평화를 보장하는 방법이라고 확신합니다.

우리는 파병을 반대하다 파병 찬성으로 돌아선 국회의원들을 주목합니다. 그들은 마치 구국의 결단을 위해 자신의 양심을 배반한 듯한, 그래서 고통스럽다는 표정을 연출합니다. 그들은 마치 국민에게는 공개할 수 없는 자신들만의 절대적인 정보라도 갖고 있는 듯한 뉘앙스로 이야기하고 애매한 행동으로 국민을 기만합니다. 이 더러운 침략전쟁에 군대를 파병하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에 있어서 숨겨야 될 비밀은 없습니다. 더 이상 정보를 숨겨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미국이 이라크 침략을 감행하기 위해 정보를 조작하고 자국민을 기만하였던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모든 정보가 밝혀지고 면밀히 검토되었다면 이번 전쟁은 애당초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점을 명심하여야 합니다.

정부와 국회는 우리의 파병목적이 전투가 아니라 복구, 재건에 있음을 애써 강조함으로써 면죄부를 받으려 합니다. 그러나 이는 우리 사회 내부에서만 맴도는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합니다. 미국이 벌인 침략전쟁에 동참하느냐 반대하느냐는 세계 지형과 하등 무관한 주장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이라크 침략전쟁의 근본적인 성격이 폭로되면서 세계는 급격히 반전으로 돌아섰습니다. 이미 파병했던 국가들마저 전쟁의 부당성과 자국 군대의 보호를 이유로 철군하고 있습니다. 세계 대다수의 국가들이 미국의 침략 전쟁에 반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흐름은 미국을 국제사회 속에서 더욱 고립시키는 것이며, 전쟁의 고통에 시달리는 이라크 국민들에게 이는 분명 희망의 메시지가 되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의 파병 결정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는 분명합니다. 이 결정은 국제사회 속에서 궁지에 몰리던 미국의 손을 들어주는 것이며, 이라크 국민들의 희망을 짓밟는 것입니다. 뒤집어서 생각해 보면 이는 보다 명확해 집니다. 미국은 애당초 전투부대를 원했습니다. 그런데 당장 전투력에 도움도 되지 않을 복구 재건을 위한 군대를 미국이 지금도 그토록 간절히 원하는 까닭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지금 이라크에 보내려는 것은 복구 재건을 위한 건설업체가 아닙니다. 군복을 입고 총을 든 군대입니다. 우리가 뭐라 주장하든 외부에서 볼 때, 그것은 단지 파병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입니다.

고 김선일씨의 죽음은 우선적으로 미국과 우리 정부. 국회의 책임입니다. 그러나 고 김선일씨의 죽음은 파병 결정을 막지 못한 우리 모두의 책임이기도 합니다. 또한 우리는 지금 이 시간에도 죽어가는 이라크 국민들로부터도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오늘 우리가 나서지 않는다면 우리는 앞으로도 더욱 많은 죽음을 보게 될 것입니다. 더 이상의 죽음을 막기 위해, 미친 자들의 망동을 막기 위해 우린 나서야 합니다.
끝으로 파병에 반대하여 거리로 나선 국민과 민주단체와 노동단체 그리고 특별히 직접적인 불편부당을 감수하면서 파병 수송업무 거부를 선언한 항공조종사노조 여러분에게 무한한 애정을 보냅니다.


2004년 7월 1일
이라크 파병반대를 위한 영화인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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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이크! 벌써 날짜가 하루 지났군요), 아니 그저께, 영국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후배가 오랫만에 귀국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하버마스 연구자, 또는 소위 비판이론 제 3세대에 속해 있는 연구자인 피터 듀스Peter Dews 교수의 지도로 하버마스에 관한 논문을 준비하고 있는 친구인데, 논문 마무리가 잘 안돼서, 머리도 식히고 조언도 구하고 할겸 해서 2주 정도 일정으로 귀국했다고 하더군요.

박사논문 주제에 관해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누고, 영국에서의 생활 이야기, 가족 이야기(부인과 딸 해서 3식구가 영국에 살고 있지요. 그의 부인 역시 제 후배인데, 국내에서 스피노자로 석사 논문으로 써서, 개인적으로는 그 친구보다 훨씬 더 가까운 사이입니다.) 등을 나누느라고 시간가는 줄 몰랐습니다.

2-3시간 가량 이야기하다가 저녁식사를 하고, 다시 이야기를 계속 하던 도중, 이번에는 화제가 파병 문제로 넘어갔습니다. 그 친구 역시 저만큼이나 파병에 분노하고 있었고, 영국에서도 파병철회를 위해 인터넷에 여기저기 글을 쓰면서 사람들을 독려하기 위해 꽤 애를 썼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그 날 마침 영국에서 추가파병을 철회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신문에 보도되어, 영국의 사정은 어떤지 물어봤습니다. 그 친구 이야기로는 단지 추가파병을 철회하기로 한 것만이 아니라, 현재 이라크에 머물고 있는 영국군 전체의 철수 일정을 블레어가 공식적으로 밝혔다고 하더군요. 계속 되는 영국 사람들의 파병철회 집회와 여론 조사 지지도 하락, 선거에서의 패배 등 때문에 결국 블레어가 견뎌내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김선일 씨 피랍 사건이 보도되고 그 이후 얼마 안 있어 결국 사망 소식이 전해졌을 때, 그의 영국 친구들이 그에게 했다는 말을 제게 전해주더군요.

"너희 대통령 극우파니?"

왜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걸 모를까요? 너무 가까이에 있어서 그런가? ...

그 친구나 저나 모두 이 이야기에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고, 파병은 미친 짓이라는 데 흔쾌히 동의를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7월 3일 시청에서 다시 만나 함께 파병철회 구호를 외치기로 했습니다. 오랫만에 귀국해서 여기저기 들를 데도 많고 해야 할 일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집회 참석에 동의해준 후배한테 고마움을 느꼈습니다.

이제 굳이 강조할 필요도 없겠지만, 파병철회는 어떻게든 막아야 할 야만적인 행위이고, 국가적인 수치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기어이 파병을 강행하겠다면,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국제적인 인권 연대의 이름으로, 파병을 강행하는 노무현 정권의 퇴진을 위해 총력을 기울이는 수밖에 없겠지요. 이 싸움 자체는 분명히 한국의 민주주의를 한 단계 더 전진시키는 데 크게 기여할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 힘냅시다!

노무현은 파병을 철회하고 국민에게 사죄하라!! 

미국은 이라크에서 즉각 철수하라!! 

내가 김선일이다! 먼저 나를 죽이고 파병하라!! 

진상은폐 파병강행, 노무현 정권 퇴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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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케 현상 2004-07-03 1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뭐 그럴 수 있죠. 하지만 그렇게 얘기하기 전에 영국놈들은 블레어가 극우파라고 먼저 얘기해야지요. 나라마다 입장이 다르지 않습니까? 영국이 한반도 긴장 위기 같은 게 있습니까? 그런 것도 없으면서 미친 짓 다했지 않습니까?

balmas 2004-07-03 1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그렇지요. 블레어보고 <부시의 푸들>이라고 하는 게 아마 그런 뜻이겠지요.
사태의 심각성에 비하면 너무 안이한 조롱이긴 하지만 말입니다.

Sunshine 2004-07-03 1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후배분이 박사과정에 계시는 분이니까 우리나라에서 선거로 "선출된" 대통령에 대해 그렇게 얘기하는 영국"사람"도 물론 상당히 비판적이고 또 실천적일 수 있는 지식인이겠죠. 그렇게 얘기할 수 있다고 봅니다. 한반도의 현안과 세계평화를 위해 연대할 수 있는 사람들 일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왕"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고 부쉬편에 서서 애초부터 이 전쟁을 시작한 한 때의 "대영제국"의 사람들이 과연 우리 대통령을 비난할 자격이 있을까요? (절대로 "Nationalism"테두리에서, 서양근대의 민족국가범위내에서 얘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이번 대통령과 정치권의 결정에 대해 동의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들은 먼저 블레어와 "영국"의 도덕성을 걱정해야 할 것입니다. balmas님 서재에서 좋은 것 많이 배우고 갑니다. 하지만, 여름아이님께서 위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저도 영국사람들의 멘트에 대해서 그리 기분이 좋지는 않네요. 이만 물러갑니다.

balmas 2004-07-03 14: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후배를 만나면, 두 분이 하신 이야기를 그대로 전해주겠습니다.^^
 

[김규항,진중권 특별 좌담]
"대한민국은 균열중, 전쟁세력 살아남지 못 한다"

김규항, "개혁의 후퇴, 변질이란 말은 부적절, 개혁은 지배세력의 자구책이었을 뿐"
진중권, "노무현지지 세력 정신분열증 겪고 있어. 패러다임 변화에 새로운 발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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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오 기자
인터넷 논객으로 잘 알려진 김규항 씨와 진중권 씨가 마주 앉아 정세 좌담을 진행했다. 두 논객은 여러 파병 논리들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파병을 주장하는 개혁세력을 향해 거침없는 비판을 가했다.

김규항 씨는 김선일의 죽음 이후 개혁세력을 바라보는 대중의 판단에 대해 "김선일 씨의 죽음을 통해 대중들은 개혁의 정체를 의심하게 되고 개혁은 진보가 아니라는 걸 자연스럽게 깨닫고 있다"고 진단하고, "20년 가량 승승장구해온 개혁에 근본적인 균열이 생기고 있다"고 밝혔다.

진중권 씨는 "파병세력의 논리를 파헤쳐 깨는 것이 우선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면서 "노무현이 대통령이라서 파병에 반대해야 할 사람들이 침묵하고 있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대통령이 이회창이었다면 엄청난 반대로 1차 파병도 어려웠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진중권 씨는 무엇보다 개혁세력이 실질적인 파병세력이라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진중권 씨는 "파병 철회가 안 되었다는 것은 수구세력의 문제도 아니고, 조중동의 문제도 아니고, 미국 문제도 아닌, 순전히 열린우리당의 문제"라고 규정하고 "열린우리당이 원하면 파병 철회가 되는데 문제는 그들이 원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고 밝혔다. 덧붙여 "그들이 소수정당일 때는 파병에 전부 반대해도 파병은 되는 상황이었지만 총선이 끝나고 다수당이 된 후 태도가 바뀌었다"고 비난했다.

유시민을 필두로 한 개혁세력에 대해서도 거침없는 발언이 쏟아졌다. 김규항 씨는 "유시민 같은 사람의 논리적 파탄은 200자 원고지 한두 장으로도 정리가 된다"면서 "누구나 조금만 생각해보면 이 사람 참 나쁜 사람이구나 알 수 있는데 그런 상태로 개혁 정치인으로 각광을 받았으니 세상에 겁나는 게 없어졌다"고 지적했다. 진중권 씨는 "유시민도 옛날에는 좌파였다가, 방법적 자유주의라고 하다가, 지금은 자유주의도 아닌 허접이 되어버렸다"며 유시민의 변절을 비난했다.

이날 두 사람은 파병 철회 운동을 전개중인 '파병반대비상국민행동'의 대응 기조에 대해서도 거침없는 말을 쏟아냈다. 또한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노무현 퇴진' 구호에 대한 생각을 밝히기도 했다. 특히 미국만을 문제삼거나, 꼬리만 자르고 이번 사태를 정리하려는 모든 시도에 대해 각각의 특유의 언어와 논리로 문제를 짚었다.

두 사람은 개혁 세력의 균열을 주시하는 가운데 진보세력의 정치적 과제에 대해서도 의견을 나누었으며, 변화하는 사회의 패러다임을 받아들이고, 역사의 진전을 위한 새로운 발언을 해나가야 한다는 데 생각을 같이 했다.

미디어참세상이 마련한 김규항, 진중권 두 논객과의 정세 좌담은 30일 오후 1시30분부터 약 2시간동안 야간비행 사무실에서 진행되었다.


파병 세력의 비열한 논리 깨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

유영주(사회/미디어참세상편집장) : 유력한 글쓰기활동가 두 분을 한 자리에서 만나게 돼 뜻깊습니다. 최근 '전쟁세력'을 비판하는 두 분의 글도 여느 때처럼 많은 반향을 불러일으키는데요, 김규항 씨는 작년 9월 <국익>을 통해 전쟁세력의 논리를 정확히 짚은 바 있고, 최근에는 <우리의 전쟁>, <유시민, 아비투스, 김태촌>, <한국에서 가장 보수적인 정치인>" 등의 글을 통해 일침을 가했고요, 진중권 씨는 <노혜경, 그런다고 땅에 스민 피가 지워지나?>, <김정란의 구주, 적그리스도>,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 등의 글로 전쟁세력들의 이러저러한 논리를 향해 직격탄을 날리셨는데요, 전쟁과 전쟁세력을 보는 데 있어 두 분의 입장 차이는 없어 보이나 말하자면 구질은 상당히 다른 듯 합니다. 미국의 이라크 전쟁에 맞서 젖 먹던 힘을 모아 싸우는 이라크 민중들, 그리고 고 김선일 씨의 죽음으로 실의에 빠진 이 땅의 민중에게 힘과 용기를 주는 이야기를 나눠주시죠.

진중권 : 최근 인터넷 글쓰기를 잘 안 하려고 했는데, 원고를 끝내고 인터넷을 검색하다 김선일 씨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새벽에 속보를 보며, 크게 분노하고 황당했죠. 그래서 인터넷과 경향신문과 씨네21 등에 글 몇 개를 썼는데요, 지금 매우 중요한 시기입니다. 한 번 파병을 하게 되면 사람들은 일상에서 당연한 것처럼 여기는 분위기가 돼요. 파병세력의 논리를 파헤쳐 깨는 것이 우선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차라리 대통령이 이회창이었으면 별 문제 없었을 거예요. 노무현이니까 파병에 반대해야 할 사람들이 다 빠져나오지 못하고 잠잠해하고 있는 거죠. 만약 이회창이었다면 파병 결정조차 지금처럼 쉽게 못 했을 겁니다. 사람들의 정치의식, 즉 개혁이면 개혁, 진보면 진보, 이런 가치에 의해 현실 정치가 강제되고 활용돼야 하는데, 오히려 정치인들에 의해서 활용 당하고만 있단 말이죠. 정치인들에 의해 포섭되어서 개혁이나 진보의 가치를 자기들 멋대로 입맛에 따라 활용되고 있는 거예요. 이 부분이 가장 가슴 아픈 대목입니다.

26일 촛불집회에 갔었는데, 민언련의 최민희 씨, 정말 짜증나더군요. 노무현이란 가치는 절대 불변의 가치예요. 노무현을 지지하는 데도 여기 와주셔서 감사하다는 이 따위 이야기를 한단 말이죠. 파병 철회가 노무현을 살린다 이러고 있는 거예요. 아주 짜증나거든요. 사람이 죽었는데 거기 앞에서도 아직 노무현 이런 얘기가 나오느냐 말이죠. 그런 식으로 얘기가 나오는 것들이 뭐랄까 굉장히 비정상적이에요.



김규항 : 고 김선일 씨 사건이 참 슬프고 안타까운 일인데, 그 일이 개혁의 기만적인 현실을 드러내는 데 어떤 논리적 주장보다 큰 힘을 발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흔히들 개혁의 후퇴다, 변질이다 그런 말을 합니다. 하지만 실은 개혁이 그런 것입니다. 개혁이라는 건 본질적으로 대중의 의식이 높아져서 권위주의 통치가 더 이상 불가능한 상황에서 지배세력이 선택하는 자구책이거든요.

절차적 민주주의 같은 형식적인 문제들을 최대한 수용하면서 진보세력을 대부분 체제내화하고 계급 문제나 분배 같은 실제적인 사회변화를 차단하는 겁니다. 말하자면 독재를 사용하던 지배세력이 민주의 옷으로 갈아입고 지배하는 셈입니다.

그런데 한국에서 개혁이라는 게 잘 통할 수 있었던 이유가 우리나라 사람들이 워낙 오랫동안 야만적인 독재에 당해왔기 때문에 독재만 아니면 좋겠다는 그런 의식이 있습니다. 수구 우파나 조중동만 공격하면 나머지는 그냥 넘어갈 수 있는 그런 게 있는 거죠. 탄핵 사태로 노무현정권이 민주주의의 순교자가 되었다가 부활하는 어이없는 상황도 바로 그런 거지요.

길게 잡아 87년부터 그런 상황이 지속되어 왔는데 이번 김선일 씨의 죽음을 통해 대중들은 개혁의 정체를 의심하게 되고 개혁은 진보가 아니라는 걸 자연스럽게 깨닫고 있습니다. 20년 가량 승승장구해 온 개혁에 근본적인 균열이 생기는 겁니다.

퇴진 구호, 파병 철회를 위해 외치는 것 당연

유영주 : 독재만 아니면 좋겠다는 의식이 개혁에 대한 과도한 기대로 연결되었다는 점을 말씀하셨고, 개혁의 비정상성과 근본적인 균열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좀더 섬세하게 이야기를 전개하기 위해서 이번 일련의 사태의 중심인 김선일 씨 사망 사건의 원인부터 따져보는 것이 순서일 듯 합니다. 한국 정부의 파병 방침이 결국 김선일 씨의 죽음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러면서 이러한 사태를 부르게 된 원인 진단을 어떻게 하느냐, 이게 쟁점이 되고 있는데요.

진중권 : 오마이뉴스에 기고한 조희연 씨의 주장을 보면 미국에 초점을 맞추어야 되고, 미국의 부시를 낙선시켜야 한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데, 미국의 부시를 낙선시키느냐 당선시키느냐가 우리의 임무는 아니에요. 그건 미국 유권자들의 문제라는 거죠. 우리한테 가장 중요한 문제가 뭐냐면 파병이에요. 파병 결정을 누가 내렸느냐의 문제에요. 노무현정권이 내렸잖아요? 또 정부와 의회의 역할이 있을 수 있어요. 터키 같은 경우는 정부에서 파병안을 제출했지만 의회에서 부결시켜버렸잖아요. 그러니까 청와대는 그렇다 치더라도 의회에서 부결시킬 수 있는데 그렇게 안 하는 거예요.

열린우리당 지금 다수거든요. 민주당 의원들 파병 철회 공약으로 내세웠잖아요? 민주노동당 의원들 원칙적 파병 반대론자들이고요. 합하면 거의 7:3이죠. 절대적 다수가 되는데 그런데 왜 안 하느냐 이말입니다. 파병 철회가 안 되었다는 것은 수구세력의 문제도 아니고, 조중동의 문제도 아니고, 미국 문제도 아니고, 순전히 열린우리당 문제에요. 그들이 원하면 파병 철회가 되는 거예요. 문제는 그들이 원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탄핵 때 뭐라 그랬나요? 민주개혁을 위해서 다수를 만들어내자 그랬거든요.

유영주 : 바로 그런 점 때문에 노무현정권에 대한 태도 문제가 제기됩니다. 파병반대국민행동 안에서도 그렇고... 노무현 퇴진을 주장할 거냐 말 거냐 같은 논란도 그 연장에 있어요.

진중권 : 그런 논쟁 짜증나요. 왜냐하면 노무현 퇴진 구호 쓸 수 있어요. 문제는 뭐냐면 그건 슬로건에 불과한 거예요.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정말 퇴진시킬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있고, 퇴진시킨 다음 무슨 대안을 갖고 있느냐 이런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슬로건으로 퇴진 이야기는 얼마든지 할 수 있거든요. 왜냐하면 그 정도로 파병이 중요한 문제기 때문이에요. 나는 그게 왜 논란이 되는지 모르겠어요. 예컨대 민주노동당 내에서는 문제가 될 수 있어요. 의회주의 정당이거든요. 의회주의 정당 내에서 그런다면 그건 무책임한 말이 되니까요. 그들은 합리적인 시스템 내에서 게임의 규칙을 따라야 되거든요. 의회주의 규칙에. 그런데 시민단체라든지 밖에서는 내세우려면 얼마든지 내세울 수 있잖아요. 그걸 갖고 논란이 된다는 것 자체가 어이가 없네요.

전쟁은 철저한 이해관계의 반영일 뿐. '북괴가 내려온다' 공포 심리 조장

유영주 : 어제 민주노동당은 파병 일정 중단을 요구하는 입장을 표현했는데, 그런 맥락인 것 같고요. 국민행동이 향후 사업 기조를 제출한 걸 보면 파병 철회는 당연한 거고요, 그런데 그것 외에는 미국에 초점을 맞추거나, 외교부 진상 규명, 책임자 처벌 등에 무게를 두는 의견이 주된 기조거든요. 집회를 하는 모습도 추모 분위기로 하자, 시민과 함께 하는 기조로 하자, 이런 게 많이 강조되는데, 일면 당연해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공세적인 대응을 자제하자는 것으로 연결되기도 해요. 집회 진행할 때 깃발 내리자는 이야기도 수월찮게 나오거든요. 이런 현상도 따져보면 노무현에 대한 태도와 연관되어 있지 않나 싶은데요.

김규항 : 아까 조희연 씨 이야기와도 연결되는데. 미국에 초점을 맞추자는 말의 정확한 뜻은 노무현정권을 옹호하자는 거예요. 국민행동의 주장도 그렇게 가는 것이죠.

진중권 : 시민 핑계 대지 말라고 그래요. 자기들의 의식의 한계를 시민들의 의식의 한계로 말하지 말란 말이에요. 왜? 국민들의 60%가 반대하고 있어요. 6:4로 파병에 반대하고 있는데 자기들의 정치적 견해로 시민 전체의 의사를 보지 말라는 거죠.

김규항 : 그런 맥락이 자발적으로 모인 대중들의 의사를 보편적으로 수용한 것이라면 모르겠는데, 현장 분위기는 그렇지 않아요. 탄핵 반대 때는 분위기가 일원화되는 게 있었어요. 그 때는 전쟁반대 깃발이나 피켓이 끌어내려진다거나 해도 손을 쓸 수가 없었어요. 순수한 민주수호의 의지를 악용하지 말라 그런 거였어요. 그런데 지금은 달라요. 옆에서 따로 집회도 하고 너희가 왜 우리 의사를 왜곡하느냐 이런 식의 국민행동에 대한 비판도 많이 올라와요.


진중권 : 두 가지가 있는데, 이 사람들이 흔드는 게 초점을 미국으로 돌려놓는 겁니다. 우리한테 중요한 건 이라크 전쟁 테마가 아니라 파병 테마예요. 그게 핵심인데 논점을 비껴가는 거고, 두 번째는 외무부 라인에서 책임을 추궁하는 게 중요한 일이긴 하지만 본질은 아니거든요. 왜냐하면 파병을 계속 하는 한 김선일 씨를 살리는 방법은 없는 겁니다.

그러니까 저들은 뭐라고 하냐면 파병을 하고도 외교력과 정보력이 있었으면 김선일 씨를 살릴 수 있었는데, 외교력과 정보력에 문제가 있어서 김선일 씨를 살리지 못했다는 말이에요. 반기문이 물러가야 한다 이런 이야기거든요. 도마뱀 꼬리 자르기라는 거죠. 파병 결정은 머리와 몸통이 있는데 꼬리만 자르고 꼬리가 아프다고 바둥바둥 거릴 때 사람들의 그 관심을 끌어내겠다는 겁니다.

그런데 핵심적인 건 파병을 철회하지 않는 이상 김선일 씨가 살아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미국을 보세요. 미국이 외교력이 부족합니까, 정보력이 부족합니까? 닉 버그 씨도, 다른 사람도 참수되었잖아요. 외교력과 정보력의 문제가 아니에요. 뭐냐면 파병을 했기 때문에 당하는 문제거든요. 이제 곧 국정조사로 갈텐데 자기들은 그냥 외무부만 날리면 되거든요. 그리고 한나라당 놈들은 자기네가 파병을 주장해서 김선일 씨를 죽인 공범인데, 쉽게 말하면 주범과 공범에 의한 국정조사라니 결과는 안 봐도 뻔한 거예요.

김규항 : 설사 외교나 정책상의 기술적인 문제를 이야기하더라도 24시간이라는 시한이 주어졌을 때 굳이 그런 공격적인 파병 의사를 밝힌 것이 가장 큰 문제이지, 무슨 전화를 받았니 안 받았니, 누가 있었다느니 없었다느니 그런 건 우스운 이야기지요.

진중권 : 그렇죠. 외무부에서 미리 알았으면 어쩔 거냐는 거죠. 그러면 파병 안 할 거냐 라는 겁니다.

김규항 : 심지어 외무부 직원들의 서비스 태도를 이야기하는데 한국에서 고시 출신 공무원들의 태도야 구제불능이지만 그게 다 본질을 숨기려는 개수작입니다. 그런 이야기로 외무공무원들의 대민 서비스가 좀 달라지긴 할 거예요. 그거 외에 달라질 건 없죠.

진중권 : 그 다음에 문제가 되는 게 이런 거예요. 파병론자들이 얘기하는 필연성이라는 게 여태까지 아무런 논리가 없어요. 예컨대 말은 안 하지만 파병을 안 하면 부시가 열 받는다는 거예요. 부시가 열받아 북한에 폭격을 한다는 이야기거든요. 그러면 김정일이 열 받아서 남한에 핵을 떨어뜨리게 된다는 거예요. 만화같은 시나리오거든요. 그런 식의 시나리오를 은근히 흘리는 거죠, 사실 주장은 못 해요. 워낙 황당하니까. 이라크에서 미국이 수렁에 빠져있는데 북한하고 무슨 전쟁을 할 수 있겠어요. 또 다른 전쟁은 말도 안 되요. 생각을 해 보세요. 미국의 동북아 안보전략이 대한민국에서 3천명 보내느냐 안 보내느냐에 따라 확 달라진다는 게 말이 되요?

온갖 왜곡 논리 난무, 파병 철회만이 김선일 씨 살릴 수 있었던 것

김규항 : 아주 봉건적인 생각이죠. 옛날 삼국지에서처럼 어떤 나라가 지도자의 인격이나 성격에 의해 좌우되고, 의리나 배신이 난무하는, 그래서 막 전쟁을 하기도 하고... 옛날 이야기 보면 그런 게 많잖아요. 그런데 현대에서 전쟁이라는 것은 철저한 이해관계에 의한 대대적인 상행위 같은 것이거든요. 요즘은 조폭도 그런 이유로 전쟁을 하진 않아요.

진중권 : 그러니까 무슨 뭐 열 받아서 3천명 안 보낸다고 쯧쯧...

유영주 : 그런 논리가 실재 대중들에게는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게 문제일 텐데요.

진중권 : 공포심리죠. 반공 논리 있잖아요. 이게 북괴가 내려온다의 새로운 버전이에요. 국민들에게 막연한 공포감 조성해놓고, 그런데 막상 까 보라고 하면 못 하잖아요? 우리가 파병 안 하면 미국이 정말 뭘 어쩔 건데, 한 번 생각해보자고요.

김규항 : 미군 철수 문제도 우리가 약간씩은 이견이 있지만 대중적인 이해 자체가 상당히 낮은 편이에요. 실재 정보 전달이 정확하게 된다거나 리영희 선생 같은 분의 이야기가 좀 더 편하게 전달되고 한다면, 대중들의 미군 철수 지지율이 높아질 수 있을 텐데, 지지율이 낮은 것은 합리적인 이유보다는 그런 공포에 기반하는 거죠. 그런 게 여전히 야비하게 작동되고 있죠.


진중권 : 한국이 파병을 안 하게 되면 미국과의 경제도 단절한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미국의 국가 시스템이 옛날 그런 시스템도 아니거든요. 지금은 경제와 정치가 따로 놀아요. 터키가 파병 거부했는데 거기랑 단절합디까? 중남미 국가들 파병 거부했다고 고립되었습니까? 그 나라들 미국에 대한 경제 의존도 굉장히 높잖아요. 유럽은 미국보다 강대국이라서 파병을 거부했어요? 중남미 국가들은 우리보다 강대국이라서 파병을 거부했냐 말이에요. 말이 안 돼요. 파병은 한국과 미국의 외교 문제가 아니에요. 기본적으로 한국 내부의 문제죠. 친미파라는 놈들, 그런 놈들에게 쉽게 투항한, 또는 그런 놈들을 은근히 이용해먹는 노무현정권이 문제라는 겁니다.

386 개혁세력 원래가 그런 애들, 반독재가 진보인줄 알아

유영주 : 일반 시민들은 소위 386, 운동권 세력들이 돌아서게 된 배경을 궁금해합니다. 전대협을 했던 사람들이고, 늘 반미를 이야기하던 사람들인데... 친미파는 워낙에 그렇다고 치고요, 이른바 386 개혁세력들이 그렇게 급속하게 바뀌게 되는 이유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진중권 : 다 바뀐 거죠. 예컨대 옛날에 임종석 씨 만났을 때 진보세력들이 정치적 진출을 준비하고 있다는 거예요. 베를린에 있을 때 많은 이야기 나눴는데요, 정말 좋은 생각을 하고 있다고 해서. 그런데 나중에 알고 봤더니 민주당으로 들어가는 거예요. 황당해서.... 그 사람들 생각 자체가 그렇더라고요.

김규항 : 임종석 같은 경우는 반독재면 진보라고 생각하는 무지가 있는 거죠. 하여튼 학생운동을 하다가 국회의원이 된 놈들은 그 자체로 끝난 겁니다. 지나치게 그 사람들의 신념을 고려해서 분석할 필요는 없어요. 다들 당리당략과 자기 정치적 입지에 의해서 그렇게 가고 있는 거죠.

진중권 : 총선 전에는 소수여당이었죠. 총선 전에는 개혁성을 드러내기 위해서 한나라당 보다 낫다는 것을 보여줘야 했잖아요? 그리고 그들이 소수정당일 때는 열린우리당이 파병에 전부 반대해도 파병은 된단 말이죠. 총선 끝나고 이젠 다수당이에요. 문제는 자기들이 결의하면 파병이 되요. 상황이 바뀌니까 태도가 바뀐 것이죠.

유영주 : 최근 임종석 대변인의 발언이나 신기남 의원이 발표한 글도 그런 맥락일 텐데, 특히 신기남 의원이 발표한 글을 보면 개혁세력을 지지하던 사람들도 대부분 황당하게 받아들이거든요.

진중권 : 황당하죠. 특히 '테러리스트에게 굴복하면 안 된다.' 이건 말이 안 되는 게 테러리스트가 내건 요구 자체가 문제냐는 거예요. 요구 자체는 정당하거든요. 외국군 철수잖아요. 그걸 요구하는 방식이 문제이긴 해요. 그런데 보세요. 예컨대 터키에서는 풀려났거든요. 왜냐하면 그들의 요구를 들어줬어요. 사람을 살렸단 말이죠. 미국에 군납 안 하겠다고 한 거잖아요.


김규항 : 처음 참수 당한 미국사람부터 시작해서 그렇게 당한 사람들은 일관성이 있어요. 미국의 군수업체에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사람들입니다. 아주 유감스럽지만 김선일 씨가 일하던 회사도 그 쪽의 일을 하기 때문에 저항세력의 입장에서 이 사람을 순수한 한국의 민간인으로 볼 수 없는 거죠.

진중권 : 한국이 추가 파병만 안 한다고 했어도 그 선에서 해결되었을 겁니다. 일본도, 터키도, 이태리도 그렇고, 돈을 주고 빼냈거든요. 터키는 아예 군납 업체를 포기한다고 했거든요, 아마 김천호 사장 문제일 수도 있어요. 사업을 포기하고 떠나라 했는데 못 한다 그러고 협상하는 중에 추가 파병 결정이 나버리니까 완전히 상황이 달라진 거잖아요. 그러니까 저항세력들의 요구 수준도 바뀐 거죠. 이제 한국군 오지 말라는 겁니다. 신기남 같은 경우 옛날에 뭐라고 했냐하면 한국의 외교라인과 안보라인은 친미세력의 문제다, 솎아내야 한다고 했거든요? 문제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는 거죠. 지금은 슬쩍 입장을 바꾼 거죠. 한국과 미국간의 문제가 아니라 내부의 문제라는 겁니다.

김규항 : 유시민 씨가 전에 그랬어요. 노무현이 처음에 파병하겠다니까 원래 대통령은 그렇게 하는 거고, 국민들은 반대하는 거다. 그렇게 해서 대통령이 반대할 수 있도록 힘을 몰아주어야 한다. 그런데 그 후 유시민 씨의 전쟁에 대한 입장 변화를 보면 참 질이 안 좋은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자유주의자라는 사람이 진보정당 찍으면 사표라는 소리나 하질 않나...

진중권 : 자기들도 먹고살아야겠죠. 이미 정치가가 되었다면 끝난 겁니다. 유시민도 옛날에는 좌파였다가, 방법적 자유주의라고 하다가, 지금은 자유주의도 아닌 허접이 되어버린 거죠. 왜냐하면 당 안에 들어가게 되면 자기가 먹고사는 문제가 생기는 거고 그 안에 들어가는 자체가 잘못이에요.

김규항 : 민주화 운동 출신이라고 우리가 말하잖아요? 민주화 운동이란 게 우리나라에선 시민이라는 말과 함께 굉장히 두루뭉실하게 쓰이는데, 민주화 운동에는 두 가지 스펙트럼이 있었죠. 70년대엔 김대중, 윤보선, 김영삼 이런 사람들이 하는 절차적 민주화 운동이 있었고, 80년대 초중반 이후에는 근본적인 민주화 운동이 있었죠. 80년대 후반에 들어서 실제로 민주화운동 성원들 대부분은 급진주의자들이었어요. 그런데 현실 사회주의가 무너지고 군사파시즘이 물러나고 절차적 민주주의가 이루어지면서 그런 사람들의 상당한 부분이 현실적 선택을 하게 되죠. 그것이 제도 사회 주류 사회로 들어가는 것이고, 지금 정치 쪽만 부각되고 있는데 사실은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입니다. 벤처, 영화, 연예 사업 등을 보면 운동권 출신들이 굉장히 많아요. 그 사람들의 변신, 그 행로는 아주 비슷하고 일관되죠. 그들은 변화된 세상의 개혁 진보세력을 자처합니다. 예술계도 마찬가지고, 기업계도, 정치계도 마찬가진데 이전의 정치인들과 차별성을 가질 수 있는 부분은 이념적이고 정치적인 차이라기보다 아주 모호한 윤리나 도덕의 차이, 비리에 연루되지 않았다거나 구 정치의 파벌에 휩싸이지 않았다거나 그런 것인데, 그런 차이들도 급격하게 없어지고 있습니다.

개혁세력 정체 드러나. 한나라와 열우당 합당해도 문제없어

유영주 : 개혁세력과 정치적으로 단절하고, 그 이데올로기나 영향으로부터 대중들을 끌어내는 것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로 확대해서 봐도 될까요?

진중권 : 열린우리당이 잘해주고 있잖아요.

김규항 : 이젠 개혁세력이 숨길래야 숨길 수도 없어요. 정체가 드러나는 거죠. 탄핵 때만 해도 수구우파와 개혁우파의 차이가 뭐냐는 말이 잘 안 먹힌 게 민주세력과 독재 세력이니 정서적으로는 굉장한 차이가 있는 거죠. 그런데 그건 다 과거의 일일 뿐이죠. 엄밀히 따져보면 민주화 운동 출신이냐, 독재 출신이냐 이외에 경제, 정치, 외교, 노동정책 모든 부분을 다 봐도 수구 우파와 개혁 우파의 실제적인 차이를 발견하기는 어렵습니다.

진중권 : 둘이 합당해도 돼요. 아무런 문제가 없어요.

김규항 : 탄핵 때는 그런 이야기를 하면 관념적이고 비현실적인 좌파의 억지라는 비난을 들어야 했는데 지금은 전혀 달라요. 대중들이 광장에서 피부로 느끼고 있거든요. 무슨 진보 교양을 하고 의식적인 학습을 해서 그 사람들이 달라지는 게 아니라, '어 이거 가짜구나, 이거 우리 편이 아니구나', 이렇게 스스로 생각을 해서 달라지니까 이건 도저히 막을 수 없는 거죠.

진중권 : 유시민이 그랬잖아요. 몇 달 전만 해도 파병 반대를 외쳐서 노무현에게 힘을 몰아주자 했는데 이제는 파병 찬성해서 노무현에게 힘을 몰아주자 그래요. 힘을 몰아주자는 방식이 바뀐 건데, 자기모순에 빠지는 거죠. 아무리 사람들이 광기나 열정적으로 정당을 지지한다 해도 논리적 모순을 담고 살기는 힘들거든요. 아파트 분양 원가 공개한다고 했다가 안 한다고 그러고, 왜 안 하냐고 따지니 전문가들이 튀어나와 안 되는 근거를 대더라고요. 그럴 거면 아예 총선 전에 약속이나 말던지... 이런 게 대중들에게 폭로가 되고 있는 거죠. 보통 사람들이 논리적 모순을 따지면서 그런 건 아니거든요. 그런데 워낙 중요한 사안에서 모순이 딱 드러나니까, 자기 정신분열증에 걸리지 않고서는 유지가 안 되는 거예요. 민주당이나 열린우리당에서 내걸 수 있는 개혁적 정치인의 최고 상태가 노무현이었거든요. 이제는 더 이상 대중들에게 더 안 먹힌다는 겁니다.

김규항 : 개혁세력의 승승장구가 최근 2-3년간 지나치게 원활했어요. 그러면 자기 정비에 소흘하게 되죠. 유시민 같은 사람의 논리적 파탄은 200자 원고지 한두 장으로도 정리가 돼요. 누구나 조금만 생각해보면 이 사람 참 나쁜 사람이구나 알 수 있는데 그런 상태로 개혁 정치인으로 각광을 받았으니 세상에 겁나는 게 없어진 거죠. 그런데 그것이 균열되고 폭로되기 시작하는 시점이죠. 얼마 안 가 유시민이 경찰 호위를 받는 날이 곧 올 겁니다. 유시민은 대중 연예인의 쇼맨쉽으로 성장을 했어요. 국회에 백바지 입고 나가고, 울면서 끌려나가고 하는 쇼로 이미지를 유지했는데, 지구당 사무실을 경찰이 지키고 이러면 완전히 구겨지는 거죠. 순간이에요.

진중권 :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이건 정신분열증 같아요. 최민희 씨 이야기 보세요. "노사모 여러분 노대통령을 좋아하시는 분들이 이 자리에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라잖아요. 내가 그 말을 듣고 최민희 씨가 그 사람들한테 감사해야 할 이유가 무언지 궁금했어요. 우리가 파병 반대 시위에 나왔는데 그게 왜 남들한테 감사를 받아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나는 내 목숨 때문에 나온 거예요. 내가 그렇게 될 수 있기 때문이에요. 저는 "노무현 대통령을 지지함에도 불구하고"라는 소리를 듣고 이 사람들 정말 끔찍하다 라는 생각을 했어요. 이건 변태라는 생각까지 들었어요.

김규항 : 그거야 무조건 노무현을 지지하지 않고 여기에 나와 주었으니 당신들 참 훌륭하다 그런 말 아니겠어요.

진중권 : 나는 굉장히 거슬렸던 게 노무현을 지지함에도 불구하고 나와서 감사하다가 아니라, 노무현 대통령을 지지하니까 나와야 한다 이렇게 이야기해야 한다는 거예요. 이건 당과 당 차원에서 도와주러 온 그런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는 거예요. 시민의 문제이고 시민 모두의 생명이 걸린 문제거든요. 그런 문제에 대해서 마치 노무현을 지지하는 게 대단한 고려 변수가 되는 양 한다는 게 말도 안 된다는 겁니다.

김규항 : 그것이 현재 광장의 형편이에요.

개혁에 근본적인 균열 발생. 좌파, 이제 목소리를 내야

유영주 : 제가 보기에 그날 집회에서 최민희 씨 발언에 대중들의 반향이 가장 컸던 게 사실입니다. 내용적으로도 그렇고, 선동의 차원에서도 그렇고. 이 점을 잘 봐야 하는데, 아까 균열이라 표현하기도 했고, 정신분열이라고도 했는데, 바로 지금 대중들의 상태가 이 정점에 와 있다는 거거든요. 노사모 참가자에게 감사하다는 발언이나 사회자가 "노무현 대통령님 파병하지 말아주세요"라고 외치는 것, 그리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대중들의 동요와 혼란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김선일 씨 죽음을 받아들이는 대중들의 상태가 이 지점을 경과하고 있지 않나 싶거든요.

김규항 : 아주 중요한 지점이죠.

진중권 : 이제 목소리를 내야 돼요. 그 사람들이 어떤 견해를 갖는 게 옳다 그르다의 문제가 아니라 아무리 옳은 소리라도 낯선 것은 거부감이 있기 마련이거든요. 사람들이 안 받아들이거든요. 이제 우리 목소리를 내야 되고, 그 다음에 왜 문제인지 계속 이야기해줘야 한다는 거죠. 지금 이런 상황에서 또 그렇게 나가면 저 사람들 선거 때 또 그렇게 된다는 이야깁니다.

김규항 : 개혁 비판의 목소리가 반향이 적은 시점이 있고, 큰 시점이 있는데, 균열이라고 표현하는 건 때가 무르익었다는 겁니다.

진중권 : 그 때가 언젠가는 와요. 본질 자체가 그렇기 때문에 언젠가는 터질 수밖에 없어요.

김규항 : 이 지점에서 좌파가 대중적인 차원에서의 정치적인 소통을 본격화해야 하는데, 좌파가 20여 년 이상 대중들에게서 오랫동안 고립, 배제되어 있었거든요. 그러다보니 대중과의 소통 감각도 없어져서 성명서를 한 장 써도 안 읽히게 쓰고 그러죠. 그래서 좌파의 본령에 속해있지 않은 좌파들의 개인적인 활동이 부각되는 측면이 있었어요. 이젠 그것만으로는 안 되고 다들 대대적인 노력을 해야 합니다.

유영주 : 이 균열의 흐름에서 제대로 된 목소리를 더 잘 낼 수 있는 방법적인 부분을 좀 이야기 해보죠.


진중권 : 일단 매체에서 밀리니깐... 정치적이라는 것이 옛날처럼 총칼에서 나오는 게 아니고, 설득력을 통한 지배인데 일단 우리는 매체가 없잖아요? 좌파 매체가 하나 있어야 돼요. 옛날처럼 오거니제이션 하던 시대는 지났거든요. 네크워크인데, 이것이 어떻게 작동하는가는 노사모가 먼저 보여줬죠. 지금 언론이 굴러가는 걸 보면 조중동이 있고, 그 반대편에 오마이뉴스와 한겨레가 있어요. 거기에 방송이 끼어 있어요. 이렇게 되면 아젠다는 항상 이들 사이에서 나오게 된다는 거죠. 치고 들어가지 못하게 되요. 그렇다고 했을 때 사회적 아젠다를 제기할 좌파 매체가 꼭 필요합니다. 문제는 이 싸움들이란 게 사람들이 식상해하고 있어요. 다르지 않다는 걸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노무현이 한 걸 보면서 한나라당이 했을 법한 일은 다 했거든요. 그 다음에 다시 노무현이 중요한 결정을 하면 다 조중동이 키워줘요. 그래서 조갑제가 대통령에게 "밥 먹으러 오세요, 밥 사겠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거죠. 어차피 노무현이 이야기한 중요한 결정은 조중동이 다 편들어줬다는 거예요. 이제 남은 것은 의석 수 싸움밖에 없어요.

김규항 : 제가 노빠에 대해 경멸적인 표현을 한 적도 있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개혁적, 도덕적으로 보이는 정치인에 대해 감성적으로 몰입하는 현상이 있습니다. 워낙 반세기 동안 야만적이고 더러운 정치에 당해 놔서 그렇지요. 그러다보니 정치의식이라는 게 자신의 계급적인 이해관계를 기반으로 이념적으로 나뉘어져야 하는데 도덕이나 윤리 같은 모호한 기준으로 나뉘어집니다. 그 틈을 개혁이 파고들어 승승장구해왔는데 그게 균열이 나고 있는 것이죠. 김선일 씨 사건이 대중적인 계기가 되고 있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더 이상 가긴 어려운 상황입니다. 수구세력과 개혁세력의 갈등이라는 레퍼토리가 식상해진 데다, 신자유주의적인 정책에 의한 서민 대중들의 삶의 변화는 도저히 속일래야 속일 수 없는 것입니다.

진중권 : 사람들이 환상을 가지고 있는 게, 대통령은 선출할 수 있지만 권력은 절대 선출할 수 없어요. 대통령 노무현 혼자 움직이는 게 아니라 시스템이고, 외교 안보라인들이 그런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한 노무현이 됐든 이회창이 됐든 변할 수가 없는 거거든요. 대통령 열심히 뽑고 자기들은 뭔가 개혁했다고 믿을지 몰라도 요번에도 돈을 주는 구조가 똑같잖아요. 그놈들이 돈을 주거든요. 한나라당에도 주고, 열린우리당에도 주고. 돈 나오는 구조가 똑같고, 정책도 똑같아요. 어차피 가진 자들을 위한 정책이란 말입니다. 예컨대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하면 평당 3백만 원이 다운돼요. 30평이면 1억이에요. 20평이면 6천만 원인데 그걸 서민이 내느냐, 저들이 내느냐, 여기서 누구 편을 들 것이냐는 문제죠. 가진 자들의 편을 들어줬거든요. 가진 자들이 로비를 하고 인력을 충원하고, 이들을 위해 굴러가는 체제가 계속되는 거예요.

유영주 : 이런 구조적인 문제에 대한 대안적 접근이랄까, 그런 수준의 고민도 있어야 할텐데요.

진중권 : 맞아요. 우리가 지금 좌파든 진보든 간에 국방과 외교가 없어요. 외교와 안보 쪽에 전문적인 식견과 안목을 가진 사람들 키워내야 되요. 이걸 어떻게 할 노하우가 없으니까 저들이 거저 먹는 거죠. 노무현정권의 한계가 그거예요. 엔엘 애들 썼거든요. 그런데 맨날 반미만 이야기했지 아무 것도 아는 게 없는 거예요. 이러니까 미국놈들이 거저먹고 그랬죠. 민주노동당은 장학금을 주고 유학을 시켜서라도 인력을 키워야 돼요. 인력이 있어야 배치도 하고 감시도 하고 그럴 수 있다는 겁니다. 경제도 실물경제를 읽어야 해요. 사람이 평등하게 사는 게 좋다는 이야기 백날 하면 뭐해요. 무지는 아무 도움이 안 되거든요.

웬만한 논객들 역사적으로 할 말 다해, 역사 진전시킬 새로운 발언 필요


김규항 : 중권 씨 이야기에 동의하지만, 돌아보면 진보 세력에게 지난 10년 간의 형편이란 게 개혁 세력에 몰려서 굉장히 수세적이었어요. 그런 상황에서 부족한 준비가 나오는 건 당연한 것이죠. 문제는 이제부터인데 개혁세력이 말하는 개혁들의 실제적인 결여부분들을 파고드는 노력도 중요하다고 봅니다. 가령 정치개혁 언론개혁이 갖는 대중적인 파장력은 커요. 그런데 그 기준이 뭐냐면 정치개혁의 경우 주로 도덕이나 개인 윤리 문제로 국한하고. 낙천낙선운동은 해도 국보법에 대한 입장 이런 게 아니라, 입건된 적 있느냐, 돈 받은 적 있느냐 이런 거거든요. 무슨 학교 도덕선생 뽑는 것도 아니고 계속 그런 식으로 몰고 가요. 언론개혁도 조중동에 국한함으로써 그 외에 오마이뉴스나 한겨레가 갖는 반동성 같은 것은 아주 도외시되는 이런 부분도 이제는 면밀하게 부각시켜가야 합니다.

진중권 : 패러다임의 변화가 일어나는 건 사실이에요. 논객들 보세요. 저쪽 논객들 강준만 유시민 저 꼴 됐지, 노혜경, 김정란 저 꼴 됐지, 조희연이라는 사람도 얼굴 들고 다니겠습니까. 웬만한 논객들 역사적으로 할 말 다했다는 겁니다. 이제는 새로운 발언이 역사를 더 진전시켜야 해요.

김규항 : 근래 시민운동 쪽에서 급진화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데 물론 그 중엔 사회변화에 조응하려는 것도 있지만 그 보다는 시민운동이 대중들의 의식 수준을 더 이상 선도하지 못하는 정체성의 한계가 있는 거죠. 시민운동의 기여를 무작정 폄하하는 건 아닙니다. 중권 씨나 나나 강준만 5중대라는 말까지 들을 정도로 그 긍정적인 부분에 진지하게 대응했었죠. 그러나 한국에서 90년대 이후 시민운동의 주요한 사회적 역할이 진보운동을 체제내화하고 진보세력을 고립 배제하는 것이었다는 건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 정체성의 한계가 왔다는 건 이젠 좌파적인 차원이 아니면 해결할 수 있는 게 없게 된 상황이라는 거죠. 문제는 좌파의 준비가 부족하다는 건데 다들 힘을 모아 노력해야겠습니다.

유영주 : 패러다임의 변화를 수용하기 위한 좌파 운동의 고민도 많이 가고 있어요. 운동의 흐름이나 대중적인 조건, 상황을 봤을 때, 지금 대중과 함께 어떤 이야기를 하느냐, 균열의 흐름 속에서 변화하는 패러다임을 어떻게 수용하느냐가 중요하게 제기되는 시기인 건 분명한 것 같아요. 자기 발언의 역사를 갖는 사람들 중에 살아있는 사람들, 특히 앞으로 두 분의 발언의 무게도 더 커지는 거 아닌가 싶고요, 분투를 당부드리면서, 오늘은 이 정도로 일단락 하겠습니다.
2004년07월02일 03: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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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lmas 2004-07-03 0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출처를 깜빡 했군요.^^
미디어 참세상에서 퍼왔습니다.
 
 전출처 : nrim > [펌] 영국, 국민여론에 굴복해 이라크 추가파병 백지화

영국, 국민여론에 굴복해 이라크 추가파병 백지화 
부시의 '3천명 파병' 요구 철회, 한국만 '추가파병국' 

 
영국 정부가 국내 여론에 굴복, 이라크에 추가 파병을 하는 대신 아프가니스탄에서의 NATO(북대서양조약기구) 활동을 강화하기로 했다. 미국의 더없는 파트너였던 토니 블레어 총리조차도 국민 반대여론에 무릎을 꿇는 양상이다.
 
잭 스트로 영국 외무장관은 30일(현지시간) BBC방송 `뉴스나이트'와 인터뷰에서 현재 이라크에 주둔중인 9천명의 영국군에 병력을 추가하는 즉각적인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스트로 장관은 `더이상 파병은 없는 것이냐'는 질문에 "그에 관해 확실히 말할수가 없다. 이런 문제의 경우 매일 매일, 그리고 매주 매주 검토되고 있는 게 사실"이라면서도 "전반적으로 봤을 때 당분간은, 그것이 며칠이 될지, 몇주가 될지, 또 몇달이 될지는 모르지만, 현재의 병력수준이 적당하다는 결정은 내려진 상태"라고 말해 추가파병 계획을 철회했음을 분명히 했다.
 
영국은 그동안 조지 W. 부시 미대통령의 집요한 요구에 따라 이라크에서 철수한 스페인, 폴란드군을 대체할 3천명의 병력을 추가 파병하고 현재 이라크 남부 바스라에 머물고 있는 활동영역도 확대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해 왔다. 그러나 영국국민 사이에 추가파병 반대여론이 다수를 이루면서, 토니 블레어 정권의 지지율이 급락하자 여론에 굴복해 이같이 추가파병 방침을 백지화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스트로 장관은 이어 영국군이 현재의 바스라에서 치안이 극도로 불안한 바그다드 남쪽 나자프로 전진 배치될 것이라는 설에 대해서도 부인했다.
 
이같은 스토로 장관의 발언을 기초로 BBC는 의미있는 수준의 영국군 병력이 이라크보다는 `좀 더 정치적 입맛에 맞는' 아프가니스탄내서의 NATO 활동 임무를 위해 파견될 것으로 내다봤다.  
    
  
김한규/기자 - 프레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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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lmas 2004-07-01 1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반가운 소식이군요.
이런 마당에 우리만 홀로 추가파병한다면, 그야말로 노무현 씨는 부시의 푸들, 아니 부시의 삽살개가 되겠죠. 반대로 우리가 파병을 철회시킨다면, 부시는 진퇴양난에 빠질 수밖에 없을 겁니다.
영국 국민의 노력에 이제 우리가 화답할 때가 아닌가 합니다. 여러분 모두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