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들multitudo


“multitudo”는 지난 1980년대 이후 스피노자 정치학의 핵심 개념으로 등장한 개념이다. “많은”, “다수의” 또는 “큰”이라는 뜻을 지닌 “multus”에서 유래한 이 용어는 17세기 정치철학자들, 특히 홉스와 스피노자의 저작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홉스의 경우 물티투도는 법제도의 틀 안에서 구성된 인민people과 대립하는 것으로서, 고유한 정치적 실재성을 지니지 못한 “군중” 내지는 “무리”(󰡔시민론De Cive󰡕 영역본에서는 이를 “crowd”로 번역하고 있다. Hobbes 1998 참조)라는 의미를 지닌다. 따라서 홉스 정치학의 원칙에 따를 경우 물티투도는 적법한 정치적 지위를 갖지 못하고 심지어 전혀 정치적 행위를 수행할 수도 없다. 이 때문에 물티투도는 정치학의 대상이 될 수 없지만, 불법적인 소요와 폭력으로 정치적 질서를 위협한다는 점에서는 홉스 정치학이 꼭 해결해야 할 중요한 문제 중 하나였다. 홉스는 물티투도를 서로 독립해 있는 “다수의 개인들” 또는 “다수의 의인(疑人)들persons”로 해체함으로써 이 과제를 해결하려고 했다(이 문제에 관한 좀더 자세한 논의는 진태원 2004 참조). 

  반면 스피노자는 물티투도에 대해 좀더 미묘한 태도를 보여준다. 정치학에 관한 스피노자의 첫 번째 주저인 󰡔신학정치론󰡕에서 이 개념은 단 세 차례만 사용되고 있으며, 거의 이론적 논의의 대상이 되지 않고 있다. 하지만 6년 뒤에 씌어진 󰡔정치론󰡕에서는 사용 빈도도 늘어날뿐더러, 스피노자의 논의의 핵심 대상으로 등장한다. 󰡔정치론󰡕에서 이 개념은 한편으로 주권 또는 통치권을 규정하는 위치에 놓인다. “대중들의 역량에 의해 정의되는 법/권리를 보통 통치권imperium이라 부른다. 공동의 동의에 따라 국정의 책임을 맡은 이가 이 통치권을 절대적으로 보유한다.”(󰡔정치론󰡕 2장 17절(강조는 인용자). 또한 3장 2절, 7절, 9절도 참조)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스피노자는 물티투도를 결코 자기통치적인 주체로 간주하지는 않는다. 그는 물티투도의 삶을 지배하는 정념적인 동요에 대해 두려움을 품고 있었고, 이를 조절하고 제어할 수 있는 제도적인 매개를 추구했다. 따라서 󰡔정치론󰡕에서 물티투도는 기본적으로 양가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1980년대 이후 물티투도 개념이 스피노자 정치학의 핵심 개념으로 등장하게 된 것은 이탈리아의 정치철학자인 안토니오 네그리의 󰡔야생의 별종󰡕(1981)이라는 저서와 발리바르의 「스피노자, 반오웰」(1982)이라는 논문 덕분이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은 물티투도 개념이 단지 스피노자 정치학만이 아니라 스피노자 철학 전체에 대해 결정적인 중요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을 긍정한다는 점에서는 일치하지만, 어떤 점에서 이 개념이 중요한가에 관해서는 상당히 다른 입장을 보여주고 있다. 이 문제는 이 책 2부에 수록된 「스피노자, 반오웰」에서 좀 더 자세하게 다루고 있으므로 여기서는 간단하게 몇 가지 점만 지적하겠다.

  첫째, 두 사람은 물티투도 개념이 스피노자의 철학 체계 전체를 새롭게 고찰하는 계기를 제공해준다고 본다는 점에서는 일치한다. 네그리는 물티투도 개념이 실체, 속성 같은 초월적인 형이상학의 범주들 없이 유한양태들의 차원에서 완전한 구성의 존재론을 전개할 수 있게 해준다는 점을 중시하며, 이 때문에 이 개념이 스피노자의 철학 체계를 “재정초”하는 역할을 담당한다고 본다. 반면 발리바르에게 대중들이라는 개념의 중요성은 이 개념이 󰡔윤리학󰡕 1부와 2부에서 전개된 스피노자의 철학, 특히 그의 ‘존재론’을 대체할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 있지 않고, 오히려 ‘존재론’에서 자연학, 그리고 인간학에서 정치학에 이르는 스피노자의 철학 체계를 관개체성의 관점에서 재고찰할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 있다.  

  둘째, 네그리는 물티투도를 일종의 정치적 주체, 더 나아가 해방 운동의 주체로 간주하는 데 비해, 발리바르는 물티투도가 근본적으로 양가적이라고 주장한다는 점에서 두 사람은 큰 차이를 보인다. 좀더 정확히 말하면 네그리는 스피노자의 물티투도가 현대 사회학의 주요 주제 중 하나인 “대중masse”이나 “군중crowd”와 구분되는 존재론적 위상을 지닌다고 본다. 곧 대중이나 군중은 자신의 독특성을 상실한 익명적인 개인들의 집합, 따라서 지배장치에 포섭되어 있는 수동적인 집단을 가리키는 데 반해, 스피노자의 물티투도는 능동적인 역량과 독특성을 지닌 개인들의 결합체를 의미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네그리는 물티투도는 초월적인 통일성으로 환원되지 않는 자율성을 지닌 다수의 독특한 개인들의 결합체라는 점에서 해방 운동의 정치적 주체로 간주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발리바르는 스피노자의 물티투도는 ‘존재론적’으로 토대의 위치에 있기는 하지만 수동적인 집단으로서 “대중”이나 “군중”이라는 차원도 포함하고 있다고 간주한다. 그리고 발리바르에 따르면 물티투도에 고유한 이러한 양가성, 이중성은 결코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왜냐하면 이는 스피노자의 역량의 존재론이 관계론적 존재론이라는 것, 곧 능동과 수동의 끊임없는 변이과정이라는 것을 반영할 뿐만 아니라, 적대와 갈등을 환원 불가능한 정치의 요소로서 사고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따라서 발리바르에게 물티투도의 양가성이라는 관점의 중요성은 정치를 막연한 유토피아적(또는 목적론적) 이상이 아니라 실질적인 개조와 변혁 운동으로 사고할 수 있게 해주는 개념적 토대가 된다는 점에 있다.    

  셋째, 이러한 차이점은 두 사람이 선호하는 용어법의 차이로 이어진다. 네그리는 스피노자가 사용하는 라틴어 multituo를 줄곧 “multitude”라고 번역해서 사용한다. 그리고 국내의 네그리 연구자들은 다시 이를 “다중多衆”이라는 말로 번역하고 있다. 이는 물티투도가 지닌 “다수, 여럿”의 의미(곧 주권의 초월적 “하나”에 대립하는)를 포함하면서 동시에 네그리의 주장과 일치하게 물티투도를 정치적 주체로 간주한다는 점에서 나름대로 일리가 있는 번역어라고 볼 수 있다. 반면 발리바르는 이 책 2부에 수록된 세 번째 논문의 한 각주에서 물티투도에 대한 가장 좋은 번역어는 “masses”, 곧 “대중들”이라고 분명히 지적하고 있으며, 스피노자의 물티투도 개념을 (단수로 쓰인) “multitude”, 곧 “다중”으로 번역하는 데 대해 명시적으로 반대하고 있다. 이는 스피노자의 물티투도 개념이 지닌 이중성 내지는 양가성을 보존하기 위한 태도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라틴어 원어는 하나인 데 반해, 이 용어에 대한 적어도 두 가지 상이한 현대적 번역과 용법이 존재하는 셈이다.

  그런데 이 책의 경우에는 또 다른 번역의 어려움이 존재한다. 왜냐하면 발리바르는 이 책에 수록된 글들에서 물티투도를 몇 가지 상이한 불어 단어(“masse”와 “masses”, 그리고 “multitude”)로 번역하고 있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비록 발리바르가 “masses”, 곧 “대중들”이라는 번역을 물티투도에 대한 최상의 번역어로 제시하고 있기는 하지만, 이 책에서는 이처럼 다양한 번역어들이 혼재되어 있는 점을 감안해서 발리바르가 “masse”라고 번역할 때는 “대중”으로, “masses”로 번역할 때는 “대중들”로, 그리고 “multitude”로 번역할 때는 “다중”으로 각각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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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nwchen 2005-05-10 11: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요즘 발마스님의 용어 해설을 매일 읽으면서 제가 사이버 대학을 다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봤어요^^* 무지하게 공부되네요 감사합니다.....

瑚璉 2005-05-10 1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데 순전히 우리말의 입장에서만 보자면, '대중'이라는 말 자체에 이미 다수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으니 '대중들'이라는 역어는 좀 부적절하지 않을까요? 이를테면 '역전앞'같은 말이 되어버리지 않을까 하는 거지요.

balmas 2005-05-10 2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menwchen님, 잘 읽으셨다니 다행입니다. :-)

호정무진님, 좀 그런 점은 있죠. "대중들"에서 "들"이라는 게 군더더기 비슷한 셈인데 ...

그런데 또 이런 게 있습니다. 프랑스에서 몇년 전에 창간된 [Multitudes]라는 좌파

학술지가 있습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다시피 네그리의 영향을 상당히 받고 있는 학술지인데,

재미있는 건 네그리처럼 그냥 "multitude"라고 하지 않고 "s"를 하나 더

붙였다는 거죠. 그러니까 네그리의 영향을 받고 있긴 하지만, 또 네그리의 관점에

 함축된 "목적론"적 경향과는 얼마간 거리를 두겠다는 뜻이죠.

제 요지는, 불어로 "masses"나 "multitudes"라고 하는 거나

우리말로 "대중들"이라고 하는 거나,

일상적인 어법의 측면에서 보면 군더더기가 들어간 단어들이지만,

개념적인 또는 이론적인 측면에서 보면 꼭 필요한 뜻이 담겨 있다는 것이죠.

그러니까 뭐 이 정도의 일탈이야 해볼 만하지 않느냐 그런 뜻입니다. ^^ 


2005-05-13 10: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balmas 2005-05-14 0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알겠습니다, 숨어계신 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