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알랭 드 보통 지음, 김한영 옮김 / 은행나무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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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보통의 책.

오늘 오후 더빙판인 줄 모르고 예매한 <코코>를 보고 동네 카페에 들러 커피 한 잔 마시면서 이 책을 펼치고 밑줄긋기한 부분을 열심히 노트에 옮겨적고 있었다. 토요일 저녁이라 그런지 그냥 저녁이라 그런지 모르겠지만 카페에 들어오는 손님들은 모두 연인들. 빙수전문점에서 빙수가 아니라 커피를 시키고 트레이닝복을 입고 연애 후의 일상, 즉 결혼의 일상에 대해 낱낱이 파헤치는 이성적 책을 뒤적이고 있는 늙수그레한 나. 옆 테이블에 있는 연인은 빙수가 나오기 전에 마주 앉았지만 앉아있는 거리를 좁히기 위해 한껏 몸을 서로의 방향으로 향해있고, 빙수가 나오자 몇 숟가락 안 먹고 숟가락을 놓은 애인을 위해 남자는 빙수를 떠서 연인의 입에 계속 넣어준다. 순간 나는 왜 이런 책을 뒤적이고 있나, 하는 자괴감이.

주변에 있는 지인들은 결혼의 미덕보다는 부덕을 외치는 이들로 넘쳐난다. 남편이 있어서 10년 째 우울하다는 친구, 남편의 도움이 정말 필요할 때 정작 남편은 남의 편이 된다고 말하는 지인, 결혼생활은 자신이랑 안 맞는거 같다고 말하는 다른 나라에 살고 있는 후배. 평생 한 사람과 사는 건 옳지 않다는 지인, 주말이어도 남편은 취미활동으로 바쁘고 아이와 남겨진 지인은 인생 외롭다고...이렇게 쏟아져 나오는 남편 혹은 결혼에 대한 부덕을 듣다보면 이들이 한때 서로를 사랑했다는 사실을 간과하게 된다. 말은 결코 총체적이지 못하고 단편적이다. 그래서 복잡한 감정을 전달하기에는 너무나 부족하고 부적절한 수단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이렇게 배우자에 대해 불만을 쏟아내는 말만 늘 듣다보니 나는 배우자란 없는 게 낫구나(?)를 학습하게 된다. 하지만 이게 올바른 학습인가, 하는 의문이 들때가 종종 있다.

보통 역시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를 썼을 때의 젊은이가 더 이상 아니고, 내가 늙어감에 따라 보통도 늙어간다. 책은 커플이 만나서 낭만적 환상으로 결혼을 하고 그 결혼이 어떠한 것인지 보통 특유의 분석적 시선으로 말한다. 내 친구들이 하던 이야기를 조금 더 고급지게 이야기하는 게 다를 뿐 아하, 하는 순간이 없는 건 보통의 문제인가, 내 문제인가. 둘 다의 문제일 수도 있는데 보통도 늙고 나도 늙었는데 세월은 경험치를 올려놓고 그래서 누군가의 경험 에세이를 읽을 때 격한 공감이 있으려면 코드가 일치해야한다. 보통의 에세이는 이제 내 코드에서 살짝 빗겨나있다. 한때 열광했던 작가인데 이제 데면데면하다니 이 책의 원제 "The Course of Love"처럼 연인이 아니라 작가에 대한 애정도 절정을 지나 하향기로 향하는 인생의 슬픈 이치를 이해하고 있어 슬픈 날.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이성적일 필요는 없다. 우리가 익혀두어야할 것은 우리가 한두 가지 면에서 다소 제정신이 아니라는 것을 쾌히 인정할 줄 아는 간헐적인 능력이다."(116)

이런 말마저도 이성적으로 할 수 있는 보통이 이제 매력이 없어보이는 건 내가 변해서일까?

"자신의 부족함을 덜 부끄러워하게 되고 아픈 경험을 공유하면서 더 가까워지게 된다."(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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