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이 영화를 보고 너무 수다스럽다고 생각했다. 십 수 년만에 다시 봐도 수다스럽다. 한데 유의미한 수다로 다가온다. 우디 앨런 옹이 평생 고찰해 온 부부 혹은 연인 관계에 대한 경우의 수를 포진하고 전개하는 영화다. 한나를 중심으로 한 동생들과 가족 관계를 묘사한다. 비혼자 보다는 결혼 생활을 하고 있는 이들한테 공감할 부분이 더 많을 지도 모르겠다. 전체 이야기 구조는 한국 아침드라마 같다. 표현 방법이 좀 우아해서 그렇지.

 

우디 앨런은 현실에서도 영화에서도 한나(미아 패로우)의 전 남편으로 등장해서 신경쇠약증으로 건강염려증에 걸린 인물로 묘사된다. 극의 흐름과 전혀 관계없이 모노드라마를 하다가 후반부에 갑자기 한나의 동생(다이안 위스트)와 러브러브 모드로 결말 짓는다. 한나는 재혼을 하고 그 남편, 엘리엇은 또 다른 동생, 리(바바라 허쉬)와 바람을 핀다. 엘리엇의 고뇌는 한나도 사랑하고 리도 사랑하는데 있다. 어릴 때는 어떻게 그럴 수 있나 했지만, 사람의 마음이란 게 양가적이어서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지금은 생각한다. 다만 우리는 사회화를 통해 도덕적 윤리를 존중하는 법을 배워서 하고 싶은 대로 다 할 수는 없다고 믿는다. 엘리엇을 단순한 바람둥이로 바라볼 수도 있겠지만 주기만 하고 자신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는 완벽주의자 아내에 대한 반항심리를 토로한다. 배가 불렀지ㅋ.

 

그러니까 영화를 보고 있으면 우디 앨런이 고민하는 주제는 사랑은 영원한 게 아니라 움직인다, 라는 것. 우디 앨런은 죽음을 상상하고 극도의 공포를 체험한 후 삶을 바꿔보려고 한다. 멀쩡하게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유대교인이 개종을 해보려고 하기도 한다. 일상을 바꾼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자잘한 의식하지 못한 일상에는 한 개인의 취향과 성격이 묻어있는 탓이다. 그래서 타인의 이해를 넘어서는 괴벽이나 좀 더 부드럽게 말하면 개성을 지닌 독특한 한 개인이 탄생한다. 습관이나 개성은 바꾸기 어려우니까 자꾸 상대를 바꾸려 하나? 처음에 반했던 상대의 개성과 성격이 시간이 지나면 참을 수 없는 단점으로 보이는 때가 사랑이 흔들리는 순간이다.

 

사랑은 흔들려도 이성과 감성 사이에서 이성으로 추의 무게를 옮기는 게 우디 앨런 옹의 결론 같기도 하다. 이 영화를 보면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가 연상된다. 이성과 감정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약한 개인을 정말 잘 다룬 영화다. 선택은 개인의 몫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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