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구로사와 아키라 님의 영화는 언제나 퀄리티 보장이다. 인간의 불완전함을 어찌나 통렬히 꿰뚫고 계신지. 사무라이한테 성주가 되는 것을 이전의 성주를 죽였고 다음의 성주한테 살해될 위험에 24시간 노출되어 있다는 걸 의미한다. 피는 피를 부르는 걸 누구보다 잘 아는 인물이다. 겉으로는 용맹한 척하지만 내면은 공포로 가득 차 있다. 한 인간이 품은 심리적 공포가 자신을 죽이는 매커니즘에 대한 고찰이다.

 

2. 내용은 이렇다. 안개가 늘 자욱해서 빠져 나오기 쉽지 않은 거미숲에서 두 사무라이가 혼령을 만나 미래 계시를 듣는다. 한 사람은 장차 성주가 될 거고 한 사람은 그 아들이 성주가 된다는. 혼령의 말은 중요하지 않다. 혼령의 말을 들은 인간의 마음이 중요하지. 우리가 점쟁이나 타로점을 볼 때를 떠올리면 쉽다. 그들은 실제로 구체적인 말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에둘러 일반적인 말만을 하는데 거기에 해석을 붙여 맞네, 안 맞네 하고 판단하는 건 우리의 몫이다. 그러니 혼령이 뭐라 말했든 쿠데타를 일으키는 건 인간의 결정이고 인간의 몫. 아무튼 한 남자는 성주를 죽이고 예언대로 성주가 된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성주가 된 후 헛것을 볼 정도로 정신이 쇠약해진다. 이유인즉 함께 혼령을 만났던 이가 자신을 죽일 것이라는 불안의 늪에 점점 깊이 빠지기 때문.  

 

이 와중에 또 한 번의 혼령과 만난다. 거미숲이 일어나 공격하지 않는 한 모든 싸움에서 이긴다고. 숲이 공격할 수 없으니 기쁨은 잠시. 정말 숲이 움직여서 성으로 진격을 하고 성주는 제정신이 아니다. 우리속담에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보고 놀란다는 말이 있듯이, 이 성주의 판단력은 마비되고 그저 숲이 공격한다고만 믿는다. 실은 적이 나무로 위장하고 진격하고 있는데. 인간의 믿음은 너무나 불완전해서 믿고 싶은 것만 보고 듣는다. 낭패는 이 불완전함을 간과하고 자신의 믿음을 맹신하는데서 온다.

 

3. 이 영화를 보다 일본 피의 역사에 유독 궁금증이 일어났다. 성주의 영광은 잠시 뿐이고 언제나 전쟁이고 피를 볼 수 밖에 없는 사무라이 문화에 평화 개념이란 없나? 평화로운 성주 계승 전통은 부끄러움인가? 교토 성에 갔을 때 궁금했던 게 가구가 하나도 없었고 그냥 넓은 다다미에 공간은 그저 문으로만 분할된 구조였다. 어제 영화에 성의 공간을 좀 유심히 봤다. 역시나 가구가 하나도 없고 성주의 신분을 나타내기 위해서 두툼한 매트를 까는 정도다. 언제 누구의 소유가 될 지 모르는 버라이어티한 공간이라서 그런가. 보물 하나도 없고 그저 목조나 석조 건축물일 뿐인 성을 위해 사람의 목을 쉽게 쳐버리고 그 하찮은 공간을 차지한 성주는 좌불안석이니. 뭐 성주란 명예직이란 걸 모르는 바 아니지만 높은 곳에 앉는 순간 죽을 날을 세는 것과 마찬가지니....문득 쉬크한 젠스타일의 기원 배경이 이런 섬뜩함에서 오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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