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eath of the Moth and Other Essays (Paperback)
Woolf, Virginia / Mariner Books / 197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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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랭 드 보통 지식인 서재 추천 책이다. 그의 선택은 완전 만족도 보증이다. 버지니아 울프의 책을 별로 안 읽었는데 <댈러웨이 부인>에 대한 고통(?)이 있어서 좀 망설였다. 교보에 가서 <댈러웨이 부인>원서를 좀 들춰봤더니 마르셀 푸르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비하면 난이도 '하'쯤 된다. 버지니아 울프의 글을 비하하는 게 아니라, 내 편견으로는 이렇다.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작가의 글은 훨씬 쉬울 때가 많다. 얼마 전 조셉 콘래드의 <로드 짐>을 원서로 읽다가 어려워서 몇 챕터 읽다가 그만두었다. 문장 구조만 긴 게 아니라 어휘도 한 페이지에 모르는 단어가 족히 열 단어는 된다. 그러니 가독성은 현저히 떨어지고 독서에 대한 불꽃은 점점 스러졌다. 그래서 두 권으로 번역 된 민음사 책을 읽었는데 역시나 원어가 주는 그 강한 감정적 호소를 느낄 수 없어 역시나 읽다 말았다. -.-

 

버지니아 울프의 글은 난해함으로 악명 높은데 이 글은 그 악명이 한글 번역본에서만 해당하는 게 아닐까, 하는 의혹도 있다. 달랑 이 한 권으로 판단하는 건 무리가 있겠지만 아무튼 이 책은 각기 다른 주제로 쓴 에세이 모음집이라서 챕터별로 랜덤하게 읽어도 무방하다. 게다가 정말 산문이 아름답다. 시적 산문이라는 찬사를 받는데 독자의 주머니를 열기 위한 거짓이 아니다. 울프가 이끄는대로 최면에 걸려 둥둥 떠다니는 느낌이다.

 

제목에 등장한 <나방의 죽음>과 <거리 떠돌기Street haunting>를 보면, 글쓰는 이가 글감이 없다고 말하는 건, 자신이 글을 쓸 관찰력이 없다는 걸 고백하는 거다. 책을 읽다 고개 들어 나방이 불에 달려 드는 걸 지켜 보는 찰라, 연필을 사러 문구점까지 이르는 길에 보게 되는 사람들을 지켜보느라 자신이 왜 문구점에 와 있는지 잊어버리는 엉뚱함에 읽는 이를 초대하는 힘. 그 탓에 마지막에 울프가 "아, 맞다. 연필을 사러 왔었지."라고 말하는 순간에 마치 마법을 푸는 주문으로 현실에 돌아오는 것 같은 체험을 할 수 있다.

 

흥미로웠던 에세이는 예술에 관한 에세이들.<Craftsmanship>, <The Humane Art>, <The art of Biography> 이다. <장인정신>은 인간이 언어를 다루는 일에 관한 소고인데 작가만이 아니라 모든 상징 언어에 대한 존중을 보여준다. 소쉬르가 시니피앙 시니피에를 질서정연하게 구별해서 줄 세우려고 했던 것을, 울프는 해방시킨다. 시니피앙과 시니피에의 결합을 강조하는 탈구조주의자고 말할 수 있겠다.

 

"There is one great living master of this language(a sign language) to whom we are all indebted, that anonymous writer-whether man, woman or disembodied spirit nobody knows-who describes hotels in the Michelin Guide. He wants to tell us that one hotel is moderate, another is good, and a third the best in the place. How does he do it? Not with words; words would at onece bring into being shrubberies and billiards tables, men and women, the moon rising and the long splash of the summer sea-all good things, but all here beside the point. He sticks to signs. That is all he says and all he needs to say. Baedeker carries the sign language still further into the sublime realms of art. (p.200)......But the words in that sentence are of course very rudimentary words. They show no trace of the strange, of the diabolical power which words possess when they are not tapped out by a typewriter but come fresh from a human brain....Why words do this?......They do it without the writer's will..(p.202)"

 

옮겨 적고 싶은 명문이 많지만 그건 노트에 손글씨로 하기로 하고. 한 문장만

The alliance of the intense belief of genius with the easy-going non-belief or compromise of ordinary humanity must, it seems, lead to disaster and to disaster of a lingering and petty kind in which the worst side of  both nature is revealed. (p.123)

 

그 밖에 더 많은 에세이는 짧은 작가론이다. E.M.포스터, 헨리 제임스, 역사가 에드워드 기번 등등 알 수 있는 사람은 요정도인데 그들의 작품을 안 읽어서, 울프의 글을 읽기 쉽지 않다. 에드워드 기번에 대한 언급이 꽤 자주 등장해서 찾아 봤다. 그의 이력과 가족사도 종종 언급된다. 아버지의 유산을 받아 책 읽기에만 몰입할 수 있는 재력이 없었다면 기번이 <로마쇠망사>를 쓸 수 없었을 것이라고, 울프는 말한다. 한 사람이 당대를 위해서가 아니라 후대를 위해서 작업을 할 수는 없다. 다만 후대를 위한 것이라고 말하는 건 후대의 몫이다. 당대를 위해 생계에 신경 쓰지 않고 창작을 하기 위해서는, 울프는 안정된 경제적 기반을 중요시한다. 어찌 이리 현명하신지...

 

덧. 울프의 에세이 언급된 작가들의 책을 앞으로 읽을 목록에 추가 해 두었지만 실행할 자신은 없다. 아무튼 더 많은 읽을 거리를 제공해 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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