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입술 위에 - Read My Lips
영화
평점 :
상영종료


계속 자끄 오디아르 영화다. 사건이 일어날듯..하면서 긴장감을 늦추지 않는 연출법에 매번 매혹당한다. 형식적으로는 세 편 모두 범죄 스릴러지만 실은 심리 묘사가 탁월하다.  

1. 이 영화 역시 형식적으로는 범죄 스릴러다. 감옥에서 갓 나온 폴은 전에 진 빚 때문에 다시 한탕할 거 같은 분위기가 조성된다. 사무직 알바생으로 취직했지만 곧 밤에는 나이트 클럽 바텐더로 일한다. 한탕을 언제할지는 이 영화의 관전 포인트가 아니다. 그가 한탕하기 위해 거치는 과정들이 보는 사람의 마음을 잡아끈다. 바에서 칵테일을 만들려고 뒤 돌면 카메라는 폴의 등을 흔들리게 잡는다. 그냥 비추는 게 아니라 카메라 밖에서 매복 중인 암살자의 시선이 그가 뒤돌기만 기다리는 느낌을 전달한다. 매복 중인 암살자 따위는 없는데도 매번 폴이 등을 돌릴 때마다 긴장감이 돈다. 폴이 다시 정면으로 돌아 어지러운 클럽 안을 바라볼 때, 신체 비례와 전혀 맞지 않게 큰 눈동자가 흔들리며 클럽 안을 쭉 훓는다. 그러면 클럽 안에 누군가 있는 게 아닌가,하고 나도 같이 폴의 시선을 쫓아가는 식이다.  

2. 청각장애인인 칼라는, 말하자면 폴의 직속 상사쯤 된다. 칼라는 사람이 말하는 입술을 보고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있는 독순술을 익혔다. 칼라한테는 생존과 소통을 위한 언어 수단이지만  폴한테는 범죄에 유용한 기술이 될 수도 있다. 독순술은 성격도 다르고 목표도 다른 두 사람을 한 곳으로 모아주는 소실점이다. 칼라는 순응적 성격으로 자신만의 규율과 틀에 고착된 삶을 살아가는데 익숙하지만 이면에는 억압된 심리를 들여다 볼 줄 안다. (변태성욕자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사무실에 나갈 때 입는 옷과는 전혀 다른, 어쩌면 한 번도 입어보지 않았고 입지 않을 드레스나 분홍 샌들을 신고 거울을 본다. 이따금씩 자신의 나체를 보기도하며 폴의 옷에서 나는 체취를 은밀히 즐기기도 한다. 폴은 모른다.  

3. 막 살아 온 폴과 틀 안에서 살아 온 칼라가 만나서 하는 일은, 추운 밤에 건물 옥상에 올라가 클럽 사장이 돈을 어디다 숨겼나 염탐하는 거다. 집 안을 들여다보면서 칼라는 그녀의 무기, 독순술을 성실히 수행하다가도 짜증이 난다. 어째서 범죄자같은 혹은 범죄자를 돕고 있는지. 이유를 알고 있지만 칼라는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다. 자신과 너무 다른 폴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있다. 그녀가 자신의 숨겨진 욕망, 사회적으로 표출하면 안 된다고 교육받은 그런 욕망과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둘 사이에 놓여있는  장애가 사랑의 장애물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사랑보다는 인간의 이중적 본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관성의 법칙에 따라 자신의 영역으로 돌아가려는 자아가 있고 관성을 벗어나 위로 솟구치려는 잠재적 자아가 있다. 두 자아가 충돌할 때 어떤 물리적 현상이 일어나는지 고찰하고 있는데 이런 일이 대체로 답이 없다.  

4. 한 가지 못마땅한 점은, 칼라를 보는 시선이 철저한 남성의 시선이라는 것. 어떤 의문이나 감정 때문이 아니라 그냥 한 여자를 관찰하는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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