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의 기쁨과 슬픔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이레 / 2009년 8월
평점 :
절판


몸은 바쁘지만 정신은 온전히 노동에만 집중하는 걸 거부한 채 권태롭기만하다. 미셀 투르니에의 <외면 일기>에 보면 권태로 몸부림치던 여인이 다음 날 변사체로 발견되었다는, 아주 섬뜩한 구절을 읽은 후, 나는 권태, 지루라는 말을 사용하는 걸 의식적으로 자제한다. 그래도 문득문득 삶의 의미를 떠올리는 순간 팔다리 힘이 쫙 빠진다. 그리하여 이 주 전, 점을 보러 갔다. 친구가 소름끼칠 정도로 잘 맞춘다기에 눈을 반짝거렸다.  

결과는 내 어리석음만 확인했다. 생년월일과 시를 불러주고는 내가 이 낯선 사람한테 대체 뭘 기대하는 걸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멍청한 질문도 했다. 제가 집중력이 없지 않나요, 하고. 잠시 권태를 잊어볼까 했지만 부질 없는 짓이었다. 내가 바뀌지 않는 한 나는 계속 이렇게 살 것이라는 걸 그 누구보다도 내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차라리 알랭 드 보통이 더 유익하다. 일의 기쁨과 슬픔에 대해서는 나도 꽤나 할 말이 많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사람들 대부분이 그럴 것이다. 대체로 지겹고 힘들고, 가끔 즐겁고. 알랭 드 보통은 이렇게 말해준다. "일에서 충족감을 얻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 예외가 규칙으로 잘못 표현될때, 우리의 개인적 불행은 특별한 저주처럼 우리를 짓누르게 된다. 야망을 실현하지 못한 것에 대해 집단적인 위로를 받을 가능성을 부인해버린다. 그 결과 우리는 어떻게 해도 진정한 나 자신이 되지 못하는 상황에서 나 혼자만 박해와 수모를 당한다는 느낌에 사로잡힐 수 밖에 없다."  

책을 읽고 영화를 보는 행위의 목적은 현실에서 찾기 힘든 연대감을 찾아 위로받고 싶어서일 것이다. 이 주 전에는, 내 미래를 알 수도 있다는 가정을 한 낯선 사람이었고. 알랭 드 보통은 친절하고 나긋나긋한 방법은 아니지만 논리적으로 위로를 해 준다. 이 에세이에서 다루는 열 가지 직업군과 그 직업군에 속하는 무수한 세부직을 보통의 안내대로 탐사하면 기쁨은 그러니까 가끔 있고 대체로 슬픔이 있는 게 지극히 정상적이다. "수단의 진지함과 목적의 하찮음"이란 말에서 연대와 위로를 얻기에 충분하다. 다만 알랭 드 보통처럼 우리는 논리적이지 못하고 감정적이어서 두서없는 푸념을 늘어놓곤 하는데 그 푸념도 일리가 있다는, 끄덕거림만으로도 잠시 슬픔을 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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