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련님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31
나쓰메 소세키 지음, 오유리 옮김 / 문예출판사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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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련님이란 말이 일본어로 어떤 뉘앙스를 갖는지 모르겠지만 한국어 도련님은 세상 물정 모른 채 곱게 자랐다는 의도가 숨어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칭찬일 수도 있고 비꼬는 말일 수도 있다. 도련님만한 나이에, 나도 도련님 같았다. 세상을 얕잡아보고(?) 코웃음치며 다 마음에 안 들었다. 불의에 파르르하고 직설적으로 말하고 성찰적이지 못한 사람들에 회의를 느끼고...이십 대 시절의 일기를 아주 가끔 다시 읽어보면 코웃음에는 깊이가 없고 물정을 몰라 비현실적이어서 귀엽다. 내 일부를 기록해 놓은 글을 보고 낯설게 느끼는 나는 더 이상 도련님의 나이가 아니다. 은희경이었을 거다. 나이를 먹는 건 자신의 좌표를 아는 거라고. 상하좌우 만나는 지점에서 몸을 한껏 웅크리고 있는 거. 세상의 모든 도련님은 상하좌우가 좁다며 이리저리 튀어다닌다.  

나쓰메 소세키의 인물들은 대체로 사색적이고 수동적인 햄릿형 인물에 가까운데 도련님은 많이 다르다. 동키호테형인 도련님은 생각이 짧고 계획을 세우는 데 부족하지만 실행력은 있고 싸움도 잘 한다고 스스로를 여긴다. 도련님의 나이 스물 넷. 그가 서른 넷이 되면 자신은 실행력도 없다는 걸 깨달을 테지만 그러기까지 십 년이란 세월이 남아있다. 경험이란 때로는 지혜를 길러주기도 하지만 때로는 겁도 길러준다. 좌충우돌하는 도련님이 귀여운 이유는 세속적 때가 묻지 않아 겁이 없기 때문이다.  

일요일 날 친구랑 맥주 한 잔을 하면서 나는 너무 사람에 대해 겁이 많다고 했다. 친구 역시 똑같은 겁은 아니지만 다른 사람의 비밀을 아는 걸 무서워한다. 우리가 친구인 이유는 사람에 대해 갖는 겁이 공통점이라고 할 수 있다. 혼자 놀기의 달인들이 한 달에 한 번쯤 만나 혼자 놀았던 중 즐거운 점을 교환한다. 사람과 부딪치기를 피곤해하고 혼자 노는 즐거움이 흔들릴까봐 걱정한다. 물론 우리도 도련님 만한 때가 있었지만 이제는 도련님을 멀리서 지켜 보면서 귀엽다고 한다.   

나쓰메 소세키의 도련님은 우리와 달리 영원히 도련님으로 남아 그 치기와 천방지축을 대대로 전해줄 의무가 있다. 우리는 도련님이었던 한 시절을 돌아보면서 위안을 받는 즐거움을 누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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