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쓰메 소세키 지음, 유은경 옮김 / 향연 / 2004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그 후>의 후일담이란 말에 읽게 되었다. <그 후>에서는 다이스케, <문>에서는 소스케. 두 이물은 결국 한 인물로 봐도 무방하다. 소스케를 보면서 내내 불만스러웠다. 다이스케보다 더 머리로 움직이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친구의 아내, 요오이와 사랑에 빠져 하늘의 듯을 따랐지만 인간의 도리는 어긴 삶의 단면을 그린 소설이다.

이들 부부의 삶을 읽으면서 고통스러웠다. 그들의 삶은 평온하면서도 매우 수동적이고 물이 흐르듯 고요했다. 소스케는 너무 관념적이고 지나치게 몸을 사린다. 나처럼. 나는 소스케처럼 내 단점을 알고 있으면서 고칠 수 없다. 그 어떤 비극 보다도 더 비.극.적.이다. 그리고 비겁하다. 소스케는 아니 나는. 한편으로는 특별히 그들의 일상만 그런 것이 아니란 생각에 더욱 쓸쓸했다.

오늘 한 친구와 삶의 지리함에 관해 잠시 이야기 했다. 요즘 내 생활이란, 일하고 공부고. 일하면서 공부하면서 말을 적지 않게 한다. 그러나 소통의 언어는 분명히 아니다. 지식을 전달하고 인간의 도리를 저버리지 않기 위해 접대용 말들로 가득 차 있다. 당연히 마음 깊은 곳에서 소통에 갈증난 내가 보인다.

오늘 일 마친 후 맥주 한 잔 하자고 친구에게 전화할까 말까 아침부터 망설였다. 집에 돌아오기 두 시간 전까지 망설였다. 맥주 한 잔 하는데 쓰잘데기 없는 망설임의 근원은? 바로 소통에 대한 목마름 때문이다. 내가 친구와 맥주잔을 기울이고 싶은 건 다름이 아니라 마음 속에 차곡차곡 쌓아놓은 말들을 꺼내놓고 싶어서다. 일터 가까이 사는, 가까운 친구는, 참 좋은 친구지만 이렇게 소통에 갈증나 있을 때는 그 장점이 별로 느껴지지 않는 친구이기도 하다. 물론 그 원인은 내게 있지만 말이다.

몸도 마음도 추스리기 힘든 요즘 이 친구의 입담을 치고 받기에는, 거창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내가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 그리하여 다른 친구와 운전하는 중에 내내 전화로 수다떨면서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수퍼에 들렀다. 맥주를 사고 과자를 사면서 계속 전화로 쫑알거렸다. 집에 거의 다 와서 전화를 끊고 사온 맥주를 마시며 리뷰를 쓰고 있으면서 소스케와 오요이의 고즈넉한 생활에 불현듯 화가 치민다. 내 삶을 보고 있는 듯해서.

 

덧. 나쓰메 소세키는 참으로 예민한 감각의 소유자이고 이 점이 마음에 든다. 특히 기분을 묘사할 때, 햇볕의 색채 묘사를 많이 사용한다. 이런 점에서 헤밍웨이의 글이 떠오른다. 기분을 자연을 이용해 전달할 수 있는 기법, 사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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