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후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87
나쓰메 소세키 지음, 윤상인 옮김 / 민음사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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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밤은 깊어가고 몸과 머리 속은 피로로 덮여있었다. 그런데도 잠은 오지않아 침대에 누워 뒤척이다 불을 켜고 집어들었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무척 재미있게 읽어서 실망할까봐 조심스럽게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잔잔한 이야기 속 주인공인 다이스케에게 빨려드는데 몇 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표면상 서사구조는 히라카오란 친구의 아내 미치요와 주인공인 다이스케의 사랑의 삼각형이 중심이다. 그러나 미치요와 다이스케의 다정다감 내지는 격정적인 사랑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다이스케란 인물의 심리변화를 묘사하는 소설이다. 다이스케를 책 속의 말로 정의하면 이런 인물이다.

"그는 원래 태도가 불분명한 편이었다. 누구의 명령도 그대로 따른 적이 없는 대신에 그 누구의 의견에 대해서도 정면으로 저항해 본 적이 없었다. 해석하기에 따라서는 약삭빠른 사람처럼 보이기도 하고 우유부단한 성격처럼 보이기도 하는 태도였다. 그 자신조차도 그 두 가지 비난 중 어느 쪽을 들어도 그럴지도 모른다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주된 원인은...오히려 그가 융통성 있는 두 개의 눈을 가지고 있어서 두 가지를 동시에 볼 수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는 바로 그 능력 때문에 이제까지 외곬으로 돌진하려는 용기를 상실하곤 했다."

자발적 백수인 다이스케는 머리와 가슴 중 머리가 발달한 매력없는 인간처럼 처음에는 보인다. 남아있는 책장이 줄어들수록 그는 니체나 루소가 주창하는 자연인에 가까운 걸 발견할 수  있다. 그의 아버지는 근대화의 최고 가치인 성실과 근면의 상징이다. 아버지에 대한 저항, 즉 근대화의 가치에 대한 저항을 다이스케는 게으름으로 실행한다.

게으르게 빈둥거리는 것이 근대화의 기준에서는 지탄받을 만한 것이지만 다이스케의 입장에서는 빵만을 위한 노동은 정신을 죽이는 행위로 무경험의 세계에서 사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 배부른 먹물의 헛소리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조금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다. 노동은 까뮈의 말대로 "삶을 송두리째 잃지 않기 위해서는 필요"하고 귀중하다. 

그러나 탐욕을 채우기 위해 주언진 모든 시간을 노동에 바치는 것은 게으름보다도 더 하찮다. 근면이 대접을 받는 것은 산업화기에 자본주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노동의 가치를 계몽하고 교육해왔기 때문이다. 우리들 대부분은 그런 맥락에서 교육을 받고 자라와서 게으름을 금기시하는 경향이 있다. 난 원래 게으르지만 내 게으름을 자랑스러워하기 보다는 부끄러워할 때가 더 많다. 이런 점에서 다이스케는 소설 속 인물이기는 하지만 내가 갖지 못한 걸 가진 배짱 하나만으로도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이런 성격을 지닌 그에게 결단을 요하는 일이 바로 친구의 아내인 미치요와의 사랑이다. 자연의 힘을 따를지 인간의 도리를 따를지 결정해야 하는 순간에 다이스케는 자연의 힘을 따르기로 결심한다. 미치요와의 사랑을 선택하기로 한 마지막 묘사는 에너지로 넘실거린다.

"나중에는 세상이 온통 새빨개졌다. 그리고 다이스케의 머릿속을 중심으로 해서 뱅글뱅글 불길을 내뿜으며 회전했다. 다이스케는 머릿속이 다 타버릴 때까지 계속 전차를 타고 가겠노라고 결심했다."

그의 결심에 응원을 보내면서 그들이 제도권에 대항해서 끝까지 그들의 의지대로 삶을 꾸려가는지 후일담이 궁금하다.  <문>이 내 궁금증에 답해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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