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는 7시에 떠나네
신경숙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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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는 7시에 떠나네'는 그리스(?)민요의 노래제목이다. 가끔 FM을 통해 그 노래를 들었던 기억이 난다. 가슴에 파고드는 애절함이 배어있는 노래였다.

소설속의 주인공 하진처럼 사람의 기억이란 게 잊고 싶은 부분은 망각할 수도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일시적인 충격으로 기억상실증이라는 것이 있다는 걸 알긴 했지만 선택적인 사항으로 잊을 수 있다니...

인간이란 얼마나 편리하고 자기본위의 존재인지.
얼핏 얼핏 보여지는 기억의 잔해들로 자기를 찾고자 노력하는 하진의 노력은 눈물 겹다. 만약 나라면 그녀처럼 과감히 찾아 나설 용기가 났을까? 자신할 수 없는 부분들의 익명성과 은밀함을 찾아낼 용기가 있을까? 현재의 자신을 부정해야 할 위기가 생길 지도 모르는데 그렇게 서서히 다가설 수 있을까?

하얀 제주의 백사장이 눈에 아른거렸다. 여러번 여행을 했기에 산방굴사의 풍경도 금방 기억해 낼 수 있었다. 그래서 마침내 찾아낸 기억의 완결을 이뤄냈던 장소는 눈앞에 현실로 펼쳐지듯 선명한 장소였기에 매우 현실감 있게 다가왔다.

햇살에 그을린 과거의 사랑을 보면서 느꼈을 하진의 애잔함과, 그의 온전치 못한 사랑의 분신을 보면서 가슴 한 곳이 무너지는 하진은 내게 인간적인 친구(?)의 모습으로 전해져왔다.

신경숙의 소설에는 가슴 아픈 세상의 군상들이 너무 현실감있게 다가온다. 아빠같은 형님을 매일 마중나가는 소년의 꼬질꼬질한 얼굴과, 가족사진 한장으로 세상에 달랑 혼자 남겨진 이의 허망함들이 생생한 느낌으로 또한 전해져서 눈물이 찡했다.

책을 다 읽고나니 창밖에서 비가 내리는 듯했다. 내용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을 느끼게 하는 부분들이 있었지만, 하진의 곁에서 몸을 쓸어주고 씻겨주고, 더운 음식을 먹게 하고 가만히 안고 잠자주는 사람들의 안개같은 마음이 내 주변을 떠나지 않는다. 그런 따뜻함이 절실한 11월이다.

인스턴트가 아닌 잣죽 맛은 어떤 것일까. 사랑이란 어떤 것일까.

기억이란, 나의 과거와 미래는 어떤 것일까. 나도 어쩌면 어느 한 시절을 '빈집'에 가두고 서글프게 그 주변을 배회하는 것은 아닐까. 가끔은 그 시절을 찾기위해 현실을 버리고 과거를 찾아 떠나고 싶어한 적은 없었나?

신경숙 소설에서 느껴지는 보살핌은 애틋하기 그지없어 종일토록 그 느낌을 매만지게 한다. 그래서 난 누군가 느끼고 싶거나, 그리워질 때 신경숙을 찾는다.

산문을 배반하는 문체, 논리나 합리는 언제나 바깥에 있는 듯한 그녀의 문체, 정서적인 울림이나, 운명적인 흐름, 살면서 쌓이는 이미지들과 얼토당토 않은 연민들을 소중히 보듬어 안는 그녀의 문체에서 인간의 냄새를 맡는다. 가끔 가슴에 한줄기 산산한 바람이 몰아치면 난 그녀의 책을 편다. 아무곳이나... 그리고 읽는다. 내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듯한 그녀의 문체는 언제나 촉촉히 젖어 들어가는 포근함과 동시에 서늘함을 느끼게 한다. 분명한 것은 그녀의 글을 읽고 나면 머리가 비교적 맑아진다는 것이다.

P65 <한 순간, 마포대교의 가로등에 일제히 불이 켜지고 있다. 한 순간이었다. 어스름이 내리고 있던 다리가 꿈결같이 환해졌다.> 그런 경험을 파리 샹제리제 거리를 걸으며 했다. 그 환희의 순간이란... 아직도 뇌리에 생생한 그 감동적인 순간. 파리 야경을 신나게 걷다가 어느 일순간 고개를 들었을 때 동시에 켜지던 그 가로등. 그 때 확인한 시간은 정확히 밤 10시였다. '아! 파리 샹제리제 거리의 가로등은 밤 10시에 켜지는구나'하고 선명한 추억으로 남게한 그 날의 감동을 이 책을 읽으며 다시 한 번 느끼며... 이 글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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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너에게 자유를 주고싶다 - 딸에게 주는 사랑, 자유, 그리고 명상 이야기
홍신자 지음 / 안그라픽스 / 199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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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딸들에게,
그리고 딸을 사랑하는 모든 부모들에게.
홍신자씨는 이 책을 이렇게 시작한다.
'내가 진정한 사랑을 안 것은 나이 마흔이 넘어 딸을 낳고 부터이다. 그날부터 내 가슴에서 분출하는 뜨거운 기운이 사랑임을 알았다. 인류를 향한, 예술을 향한, 자연을 향한 빛나는 기쁨을 체험케 해준 딸은 나의 가장 소중한 존재이다. 그래서 나는 딸에게 늘 고마움을 지니고 산다.
………………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이 아팠던 기억들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세상을 향해 마음껏 나아갈 수 있는 용기를 얻기 바란다'고………

뉴욕 다운타운 스탠튼 거리의 허름한 아파트 꼭대기 층에서 그들의 '행복하고도 지독히 괴로운' 결혼 생활이 어어졌다. 항상 가난했지만 예술과 구도, 사랑에 관한 토론으로 밤을 지새기도 하고 아이를 낳아 기를 때의 기쁨을 나누었다. 베이비시터를 둘 현편도 되지 않아 언제나 희를 분신처럼 달고 다닌 발레 수업, 소리 연습, 미술관 관람을 했다는 그녀. 과연 '행복하고도 지독히 괴로운'결혼 생활은 어떤 것일까?

중용이란 결코 어려운 것이 아니야. 불을 지필 때 낙엽에서 잔가지로, 그리고 장작을 거쳐 불꽃이 되는 것처럼 중용이란 단지 무리함이 없는 상태야.

장작은 오로지 자신을 태우는 데 몰입할 뿐이다. 그것이 아름다운 중용의 열정 아니겠니. 딸아, 엄마 역시 숯 하나 남기지 않는 깨끗한 재가 도기 위해 매순간을 열정적으로 살고 싶구나.

에고는 무서운 힘을 가지고 있지만 애완견처럼 잘 훈련을 시키면 우리가 살아가는 데 많은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에고를 잘 알기만 하면 자신과 깊은 관계를 맺을 수 있다. 에고를 아는 것은 곧 그것을 다스리는 것이다. 에고의 성장은 곧 너의 성장이다. 내가 나를 이겨내고 조절할 수 있다면 진정으로 강인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에고는 무서워 보이지만 실제는 나약한 존재.

삶의 에너지가 무한한 나이에 있는 희야, 넌 오늘 한 그루 사과나무를 심을 수 있어. 그리고 그 옆에 또 다른 사과나무를 심을 수도 있지.
<내 사랑하는 나무의 생김새는 그것 자체가 위대한 조형성을 보여준다. 묵은 줄기는 은회색이고 새 가지는 자색을 띠는 색감은 유연한 느낌을 주지만 형체는 어느 모로 보아도 불균형을 이루면서 전체는 완벽한 힘의 미학을 견지하고 있다. 그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나는 그 사실을 나중에 알고 나서 더욱더 사과나무를 동경하게 되었다.
'세상엔 느티나무 뽑을 장사는 있어도 사과나무 뽑을 장사는 없다.'>

도올 김용옥 씨는 세상을 향해 자유롭게 생각하고 표현하고 사회의 그릇된 점들을 바로 보고 지적한다. 우리는 때로 자신과 어떤 부분에 대해서는 다른 견해와 사상이 있기는 하지만 상대방의 견해와 사상을 존중하는 자세를 배워나가야 하지 않을까? 홍신자씨는 말한다. 김용옥 씨의 빛나는 두눈에는 깊음이 어려 있었다고... 똥 철학을 강의하는 도올은 죽산을 방문해서 말했다. '나는 사람들 머리에다 똥을 넣어주고 이곳은 똥을 빼주는 곳이군요.'라고... 인상적인 표현이라 오래 기억될 것 같다.
너희 세대가 관심을 가져야 할 분야는 문명이 아니야. 더 늦기 전에 어떻게 자연을 다시 살릴 수 있는지 생각해야 해. 나는 너희들의 본능적인 외로움마저 자연과 멀어진 생활이 낳은 결과라고 믿는다.

이 책을 덮으면서 어쩌면 난 진정한 자유를 얻은 것도 같다. 앞으로는 가슴이 시키는 대로 살아가고 싶다. 비록 나중에 부메랑이 되어 내 가슴에 꽂힌다 하더라도 솔직하게 세상을 살아가고 싶다. 앞으로 혼자 있는 시간을 조금씩 더 늘려가면서 내가 원하는 게 뭔지 찾기위해 자신만의 소중한 시간들을 계획하리라. 그냥 혼자 있는 게 아니라, 묵상과 명상의 시간을 늘려가리라. 그렇게 하기 위해선 우선 느림의 미학을 배우는 것이다. 느림은 게으름과는 다르리라. 여유를 갖고 여백을 갖는 것이다. 쫓김의 삶이 아니라 내 시간을 관리하고 싶다. 시간이 나를 관리하는 일이 없게 내가 내 소중한 시간을 지배하며 살아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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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저항
방현석 지음 / 일하는사람들의작은책 / 199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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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앞에서 결단이 필요할 때 지난 날 겪은 시련은 용기가 되고, 가야 할 길이 보이지 않을 때 지나온 길은 나침반이 된다. 자기가 지나온 길을 잊어버리고 자기의 과거로부터 배우려고 하지 않는 자는, 그것이 개인이든 조직이든 역사의 시간 위에서 언젠가는 실종되고야 만다.'

이 글을 읽으면서 모란 공원에서 본 묘비의 글이 떠올랐다. 그 공원엔 전국대학생기자연합 활동하다 1996년 죽은 이형관의 묘와 묘비가 있다. 그 뒷면에 '선배답게 살아간다는 것은 결국 머리나 입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아름다운 낙조를 볼 수 있는 것은 끊임없이 떠오르는 일출이 있기 때문입니다'하는 글귀가 있다. 올 한 해 아름다운 낙조를 볼 수 있게 끊임없이 일출을 띄웠는지... 자문해 보면서, 머리나 입으로 사는게 아니라 몸으로 살아가는 삶이 얼마나 힘든 삶인가 생각한다.

몸으로 노동운동을 실천했지만 과거를 잊어버리고 배우려 하지 않는다면 그거야 말로 몸으로 실천한 게 아니라, 머리나 입으로 노동운동을 했다고 밖엔 말할 수 없다.

이 책을 읽으며 자꾸 가슴이 아파왔고, 울기도 많이 했다. 노동의 아름다운 가치를 깨닫기도 했다. 그러나, 이 책을 접고 시간이 흐르고 그러했던 내 감동이 서서히 희석되어짐을 느꼈다. 그런 망각이 날 더 아프게 했던 것 같다. 그게 우리 인간의 속성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더 서글프기도 했고...

변함없이 한결같은 심성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존경스러운 세상이다.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과, 아직은 순수성을 잃지 않고 있다고 생각되어지는 박노해씨가 그렇다. 그렇게 한결같은 사람이 세상에 많아야 희망적이겠지.

노동의 아름다움에 감동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때때로 땀흘리며 노동하는 시간에서 도망치고 싶을 때가 종종 있다. 편안함에 길들여 졌기 때문이겠지. 그 편안함은 곧바로 나태함을 낳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두려움이 앞선다. 그러기 전에 힘들더라도 자꾸 몸으로 실천하는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 보아야 겠다. 내게 말없이 교훈을 주는 노동자들의 아름다운 삶과 많이 만나기 위해 노력해야겠다.

어느 전교조 교사의 인상적인 글을 옮겨 본다.
'나는 내가 살아온 것보다 더 잘살 수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가르친 아이들이 내 삶에서 배우고, 자랑스럽게 여겨주는데 선생으로서 더 어떤 보람이 있겠는가. 나는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직업 중에서 교사보다 훌륭한 것은 없다는 믿음에 변함이 없다.'
'사람을 사람답게 기르는 참다운 스승이 되기를 열망했던 고사들은 전국에서 교원노조 건설투쟁에 나섰다.'
'99년 7월부터는 교원노조의 활동이 전면 합법화된다. 교원 노조의 깃발을 처음 높이 들어올렸던 그날로부터 40년 만의 일이다. 비록 더디고 때로 후퇴하기도 하지만 역사의 강물은 거꾸로 흐르는 법이 없다.'

비록 더디고 때로 후퇴하기도 하지만 역사의 강물은 거꾸로 흐르는 법이 없다......... 그렇다. 결국, 옳은 일은... 참된 것은... 때가 되면 받아 들여지고 빛이 난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어쩌면 이 세상은 희망적인지도 모른다.

그 희망을 함께 하기 위해선, 불의에 맞서야 할 것이다. 비겁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렇게 살아 간다는 것은 무척 어려울지도 모른다. 작은 것부터 차근 차근 실천해 나간다면 그렇게 힘겨운 것만은 아님을 깨달을 수 있길 바란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겠다는 꿈을 가진 사람이라면 더 많은 대가를 치룰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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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아리
정호승 글, 박항률 그림 / 열림원 / 199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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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사는게 잘 살아가는 것일까?
늘 생각하고 고민했던 화두다.
그러던 중. <항아리>라는 동화를 친구에게 선물 받았다.
그 책을 읽으면서 '어떻게 사는게 잘 살아가는 것일까?'라는 고민의 답을 얻었다.
늘 알고 있으면서, 행동으로 옮기지 못했던...
그 진리는 너무나 가까운 우리 주위에 있음을 간과해버리고,
멍청하고 미련스럽게 멀리서 찾으려고 했던 내 못난 모습을 만나는 슬픔을 만났다.

우리가 서로를 이해하면서 사랑하는 것!
그것만이 제대로 살아가는 방법이 아닐까.
우리는 누군가를 위해 사용되는 가장 소중한 그 무엇이 되고 싶어한다.
그래야만 우리 삶의 의미와 가치를 부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오랜 세월 동안 참고 기다리는 것은 무엇일까?
내가 이 세상을 위해 소중한 그 무엇이 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누구의 삶이든 참고 기다리고 노력하면 그 삶의 꿈이 이루어진다고 시인은 말한다.

항아리의 삶!
독짓는 젊은이에게서 태어나,
쓸모없는 항아리로 버려졌다가,
어느 날, 오줌받는 항아리로 쓰여졌다가,
오랜 기다림 끝에...
산사의 종 밑에 묻어진다.
항아리를 종 밑에 묻고 종을 치자, 종소리가 항아리 안에 가득 들어왔다가
조금씩 조금씩 숨을 토하듯 그의 몸을 한바퀴 휘돌아나감으로써 참으로 맑고 고운 소리를 냈다.
그의 삶은 고요히 산사에 종소리가 울릴 때마다 그의 영혼은 기쁨으로 가득찬다.
범종의 음관 역할을 함으로써
보다 아름다운 종소리를 낸다는 것,
그것이 바로 항아리가 바라던 그의 존재의 의미이자 가치였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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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읽어주는 여자 명진 읽어주는 시리즈 1
한젬마 지음 / 명진출판사 / 199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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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 전.
목련과 술병이 그려진 제 그림을 마주하고 긴 한숨을 토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 한숨엔 많은 의미가 내포되어 있겠지요. 양수리는 야외스케치하러 자주 가던 장소이기도 하지요. 그림 그리는 게 행복했던 적이 있었지요. 그러나, 그것에마저도 순수하게 몰입하지 못했던 못난 자신을 인정해야 했던 시절이었습니다. 어쩌면 그림에 조금의 끼도, 재능도 없었던 자신을 인정해야 하는 것이 더 힘들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일찍이 그런 자신을 인정할 수 있었던 게 어쩜 다행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요즈음은 좋은 그림 많이 보러 다니는게 제 낙입니다. 그런데, 마음에 좋은 이미지로 와 닿는 그림이 별루 없어서 섭섭하지만요. 얼마 전 평창동 가나 아트 센타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조각가 3인의 작품을 감상한 적이 있는데요. 특히 좌우균제미(symmetry)를 통해 우주의 조화를 이야기하려 했던 문신의 브론즈나, 권진규의 영원한 이상향, 얼굴을 소재로 한 테라코타작품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작품들과 대화를 나누었지요. 무언의 대화... 독특한 경험이었어요. 그 넓은 화랑에 관람객은 오로지 저 하나.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릅니다. 그 텅빈 공간이 주는 산산함을 끔찍하게 즐겼습니다. 2층 야외 테라스에서 만난 북한산과 또 얼마나 많은 대화를 나누었는지요?

오늘....
오랜 세월의 때가 묻은 편지들을 정리하다가 절 무척 따랐던 예쁜 친구의 엽서 한 장을 발견했습니다.
'언니, 겨울이 성큼 왔습니다. 차이코프스키를 들으며 차분해진 마음으로 그림을 그렸지요. 커피포트에선 물이 신나게 끓고 있습니다. 낡은 탁자 위의 정물들-- 몇 개의 낯익은 컵들과 사과 두 알, 호롱불, 양파, 색 바랜 초등학생 운동화, 오래된 화병, 몇 송이의 꽃을 보며, 숨쉬고 있다는 기쁨을 느낍니다. 이런 정물들과 함께 그림 그릴 수 있다는 의욕으로 충만하여…….
<PS> 미완으로 남겨 둔 언니의 작품 '바다새'은 언제 끝내실건가요?' '81/12/어느날...

아마 그 '바다새'는 아직껏 미완으로 후암동화실 어느 구석에 쳐박혀 있을지도 모릅니다. 아니 어쩌면 흔적도 없이 사라졌을지도...
오늘밤은, 왠지 자꾸만 그 바다새가 보고 싶네요.

그럴 때 한젬마의 <그림 읽어주는 여자>를 만났다. 그녀의 글 속에서 또다른 그림보기의 경험을 했다. 나도 누구에겐가 그림이 되고 싶어지게 만드는 책!

* 낙서는 내 안의 내가 일상의 내게 보내는 편지가 아닐까. * 바스키야가 내게 준 자유의 이미지는 팝콘이다. 절대로 흔들릴 것 같지 않은 의지와 비교적 정돈된 일상의 모습으로. 이런 내 안에는 여러 알의 팝콘이 숨어 있다. 언제나 카운트 다운을 하고 언제든 일탈의 준비가 된. 나는 자유롭고 싶어하는 열 받은 팝콘이다. * 앙리 마티스<금붕어와 조각> 뭔가 '덜 그린' 그림이다. 그래서 내가 완성하고 싶은 느낌이 들게 하는 그림. 가능성으로 비어 있는 그 자리를 차지하고 싶은 마음이 어느결에 스며들게 하는 그림. * 미술을 보거나 찾아나선다는 것은 일상에 매우 특별한 '시간할애'가 되는 현실. 나는 미술이 조금 더 적극적이고 사회와 호흡할 수 있는 그 무엇이길 원한다. * 현대미술과 연애하자. 우리는 익숙하지 않은 것을 두려워할 뿐이다. 많이 듣고 보아 친근해진 것과 특이하고 어쩌다 접해서 껄끄러운 것의 차이일 뿐. 보느라고 보아도 또 한 발짝 달아나버려 지쳐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미술과 친해지는 방법 중 한 가지는 화가와 친해지는 것이다. * 과학의 가장 큰 수혜자는 인상파 화가들. 사진을 보고 순간이 포착된 그림도 그릴 수 있게 되었다. 결국 과학이 미술의 대중화의 숨은 공로자인 셈이다. *

바쁜 일상에서 평화로운 그림읽기를 집에서 쉽게 접해 볼 수 있는 책이였다.
한젬마의 예쁜 얼굴 표정의 책표지가...
쉽게 한 권 집어 들게 만든것 같다.
그리고 날 실망시키지 않았다.
다 읽고 나서는 산으로... 들로... 해안으로 산책을 다녀온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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