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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길을 걷다
야마모토 후미오 지음, 이선희 옮김 / 창해 / 2008년 1월
평점 :
절판
희생하는 엄마가 있다. 자신의 존재는 있는지도 없는지도 모르게 남편을 위해, 자식을 위해 그렇게 희생하는 엄마가 있다. 그리고 그런 엄마가 없어져 엄마를 찾아나서는 책이 엄청난 히트를 쳤다. 엄마를 부탁해... 읽고 또 읽으려고 했으나 그래서 끝까지 읽었으나 잘 모르겠다. 그 반항심같은 마음으로 참으로 못된 엄마가 등장한다는 이 책을 집었다. 희생은 커녕 자신의 삶을 찾아 남편이건 ,자식이건 다 내팽개치고 떠난 엄마들의 이야기다. 손에서 책을 놓치 못하고 하루만에 휘리릭 읽어버렸다. 내겐 어쩌면 후자의 엄마가 더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책속의 등장하는 첫번째 엄마는 17살에 아이를 낳아 어찌할 바를 몰라 친정엄마에게 아이를 맡긴다. 아이는 7살이 되었고 할머니는 죽고 언니로 살던 엄마가 이제는 자신이 엄마임을 밝히고 아이를 데리고 간다. 재대로 키우지도 못하고 아이는 혼자서 커나간다. 아이가 17살이 되었을 때엄마는 재혼을 한다. 재혼한 아빠에게는 2살난 아들이 있다. 딸이 27살이 되었을 때 딸은 엄마가 된다. 그리고 첫번째 엄마로 등장한 그녀는 집을 나간다. 37살이 된 딸이었다가 엄마가 된, 그러니까 두번째 엄마로 등장하는 그녀가 7살때 옆집 살았던 첫사랑을 따라 9살 딸을 두고 집을 나간다. 재혼한 아빠에게 따라왔던 2살 소년은 22살이 되었고 우연히 누나, 그러니까 두번째 엄마로 등장했던 그녀를 찾아나선다. 시골에서 그런데로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57살의 두번째 엄마로 등장했던 그녀는 치매에 걸린다. 9살이었던 딸이 39살이 되어 치매에 걸린 엄마를 찾는다. 67살의 엄마는 딸을 알아보지 못한다. 82살의 첫번째 엄마로 등장했던 그녀는 여전하다.
1967년부터 2017년까지의 이야기를 다룬 이 이야기는 2대에 걸친 엄마 이야기가 나온다. 그리고 3대에 걸친 여자이야기가 나온다. 울화가 치밀어오르고 참깝깝하다는 생각이 든다. 언제쯤 정상적인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올까 생각하며 읽지만 정상이라고 여길말한 사람은 없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가 내게는 현실에 가깝다. 희생적인 어머니는 잘 그려지지가 않는다.
내 어미는 나보다 다섯살 많은 오빠를 낳고 생후 6개월이 됐을 때부터 집을 나갔다고 했다. 들어오고 나가고를 반복하며 내가 초등학교 5학년때까지 부부의 연으로 사셨다. 난 엄마에 대한 기억이 별로 없다. 가끔 집에 들어와 며칠 있다가 나가는 사람 정도... 왔다가 나갈때마다 쌀이며, 카메라며, 돈이 될만한 것은 모조리 가지고 나갔던 사람정도... 앞집, 뒷집 아줌마가 와서 "네 엄마가 아줌마돈 가지고 도망갔어" 라는 말을 듣게 하는 사람정도... 그렇게 미움인지 애증인지 그리움인지도 모르게 엄마라는 존재를 잊어갈 즈음 나를 찾았던 사람. 알바하며 자취하는 대학생인 내게 돈을 꿔가고 그 다음부터 연락을 끊어버린 사람, 결혼 할때쯤 연락을 해서 지 딸이 결혼하는지도 모르고 축하한다는 말도 못하고 돈을 또 꿔달라고 하던 사람, 60이 다되어가던 나이에 재혼했다면서 매맞는 아내가 되었다면서 치료비를 해달라던 사람...그런 사람정도로 기억한다.
다 잊었다고, 미움같은거 남아있지 않다고 하면서 가족을 뭐든 다 받아주는 집단으로 묘사하는 글이나 엄마라는 존재를 위대한 사람으로 표현하는 글들을 보면 오장육부가 뒤틀린다. 괜시리 짜증이나고 화가 난다. 아직 내 뱃속으로 아이를 낳아보지 않아서 어미의 마음을 알지 못할 수도 있다. 어쩌면 나도 내 어미처럼 될까봐 겁이 나서 아이를 밀어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