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둘러싼 바다 레이첼 카슨 전집 2
레이첼 카슨 지음, 김홍옥 옮김 / 에코리브르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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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첼 카슨 전집의 둘째 권이자 카슨의 이른바 출세작이다. 이 책이 평단의 찬사와 함께 상업적 성공을 거둠으로써 그의 초기작마저 재출간되어 주목받는 성과도 함께 했다. 그러면 이 책이 그토록 각계의 호의적 반응을 이끌어낸 연유는 무엇일까? 이 책의 독자라면 대번에 알아차렸을 것이다.

 

1950년대에 접어들어 인류는 제2차 세계대전의 피해를 대부분 복구하였다. 그리고 과학기술의 눈부신 발전과 경제적 번영에 힘입어 유례없는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이러한 배경 하에 자신의 역량을 외부로 뻗쳐 지구와 우주를 정복하기 위해 물심양면으로 전력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 지구 최고봉의 최초 등정, 최초의 인공위성 발사와 우주비행사가 등장한 것은 전혀 우연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인간의 관심은 미지의 영역이었던 바다에까지 이르러 심해 탐사가 추진되었다.

 

증폭되는 대중의 관심에도 불구하고 정작 바다와 바다 밑 세상에 대한 지적 욕구를 채워줄 만한 마땅한 저작물이 없는 상황에서 정확한 과학적 지식과 충만한 문학적 감수성을 지닌 카슨의 글쓰기가 세상에 선보였으니 주목을 받지 않을 수 없었으리라. 개인적으로는 초기작의 다큐에세이로서의 짙은 문학성이 다소 퇴조하고 설명조의 스타일이 다소 불만이지만, 보다 과학적 지식의 전달에 주안점을 둔 계몽 목적의 글이라면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이 책은 바다에 관한 거의 모든 영역을 터치하고 있다. 1부는 바다의 탄생에서 비롯하여 바다의 표면과 심해, 바닷속 땅과 바닷물에 충만한 미세생물에 대해서 요모조모 살펴본다. 2부에서는 자전, 바람 그리고 조석에 의해서 움직이는 바다의 역동성에 주목한다. 마지막 3부는 바닷물의 거대한 흐름과 이것이 갖는 지구적 의미, 그리고 바닷속 자원을 다루며 바다가 우리에게 갖는 상징과 실체를 환기시킨다.

 

깊은 바다의 바닥을 생각하노라면 내 상상 속에 떠오르는 가장 압도적인 장면은 바로 켜켜이 쌓인 퇴적물이다. 내 눈에는 언제나 각종 물질이 끊임없이 위에서 아래로 내려와 조각 위에 조각이 쌓이고, 층 위에 층이 쌓이는 모습이 선명하게 보이는 듯하다. 이런 현상은 지금껏 수억 년 동안 이어져왔으며, 앞으로도 바다와 대륙이 존재하는 한 영원히 지속될 것이다. (P.133)

 

바다에 관한 어지간한 지식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이라면 저자가 드러내고 보여주고 들려주는 바다 이야기에 무한한 지적 흥미와 상상력에 흠뻑 빠져들 수밖에 없다. 그만큼 카슨의 글쓰기는 과학적 글쓰기와 문학적 글쓰기의 경계를 절묘하게 넘나든다. 거기에 글쓴이가 품은 바다에 대한 애정은 자칫 딱딱해지기 쉬운 문장에 온기와 생기를 불어넣는다. 뗏목을 타고 태평양 횡단 여행에 나선 동료 학자를 향한 부러움과 심해탐사선을 타보지 못하는 아쉬움을 진하게 표출하기도 한다.

 

그래서일까. 카슨의 글에서 바다는 단지 글쓰기의 대상을 넘어선다. 글의 소재가 되는 모든 존재와 현상은 그에게 특별한 의미를 지니며, 그는 인간적 감정을 그들에게 품는다. 애정과 연민, 그리고 안타까움마저. 엄연한 자연의 질서와 흐름을 거역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스러져가는 존재에 대한 차마 어찌할 수 없는 상념. 더구나 그것이 온전히 자연의 작용이 아니라 인간의 인위적 개입에 의한 파괴와 훼손일 경우 슬픔과 분노는 배가된다. 이것이 훗날 대표작을 쓰게 된 계기가 아니었을까.

 

세계 어느 지역보다 빠르게 고유 동식물 종이 사라져간 하와이제도는 자연의 균형에 간섭하면 어떤 결과가 빚어지는지 똑똑히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동물과 식물, 식물과 토양의 관계는 수 세기에 걸쳐 형성된 것이다. 그런데 인간은 난데없이 끼어들어 제멋대로 그 균형을 깨뜨림으로써 붕괴로 치닫는 연쇄 작용을 촉발했다. (P.160)

 

우리는 글을 통해 바닷물이 단지 짭짜름한 소금물이 아님을 알게 된다. 대낮에 해변에서 또는 선상에서 접하는 바닷물과는 전혀 다른 풍성한 생명체의 향연이 매번 심야에 벌어지고 있음을 알게 되면서 날치도 아닌 오징어 떼의 해면 위 점프 광경을 목도하는 감흥이 어떨지 상상해본다. 그리고 바닷속 생명을 가능케 하는 규조류와 플랑크톤의 존재도.

 

규조류는 마치 눈과 얼음으로 뒤덮인 들판 아래 웅크리고 있다 봄이 오면 싹을 틔우는 밀알처럼 겨울 바다에서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잠자고 있는 규조류의 씨앗’, 거름이 되는 화학 물질, 봄 햇살의 따사로움, 이것이 바다에서 봄의 개화를 재촉하는 요소다. (P.73)

 

자연의 현상은 언제나 감동적이다. 그것이 인간의 예측과 상상을 뛰어넘을 때 우리는 경이로움과 동시에 압도감에 지배된다. 이는 인간이 축조한 일체의 사물과는 견줄 수 없는 차원이다. 2부에서 다루는 바다의 위력은 일찍이 각종 매체와 뉴스를 통해 접한 바로 그것이다. 지진 해일, 폭풍 해일, 너울과 3부에 나오는 해소(海嘯) 즉 조수 해일 등. 앞의 두 가지야 그렇다 하지만 너울과 조수 해일의 위력은 일대 장관이 아닐 수 없다. 부두와 방파제를 쪼개 버리고 수십 미터 높이의 등대조차도 뒤흔들어버리는 파도의 괴력.

 

파도는 한평생 숱한 사건을 겪는다. 파도의 수명이 얼마인지, 어느 정도 먼 곳을 여행할지, 어떤 최후를 맞이할지는 모두 바다를 여행하면서 만나는 상황에 좌우된다. 파도의 중요한 속성을 하나 꼽으라면 움직인다는 것이다. 파도는 움직임을 지연시키거나 가로막는 것들 때문에 해체 또는 죽음을 맞이한다. (P.187)

 

파도의 속성이 움직임에 있다면, 너울과 해일은 분노로 일그러진 바닷물의 얼굴이라고 하겠다. 반면 일상적인 평온한 얼굴 모습은 조석과 해류에서 관찰할 수 있다. 저자는 특히 해류야말로 지구의 온도와 기후를 유지하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음을 상기시킨다. 미국과 유럽에서 중시하는 멕시코 만류와 훔볼트 해류 등 여러 해류가 지구 순환계에 미치는 영향은 막연하게 알고 있는 사실을 되새기게 한다. 엘니뇨현상 역시 바닷물의 흐름에 기인한 게 아니겠는가. 그러하기에 카슨은 해류를 조정하려는 인위적 개입이 가져올 위험성에 주의를 환기시킨다.

 

영속적으로 흐르는 해류는 어쩌면 바다에서 볼 수 있는 가장 장엄한 현상일 것이다. 우리는 해류를 떠올리면 즉각 지구의 자전, 지표면을 거칠게 할퀴는가 하면 부드럽게 감싸는 바람, 태양과 달의 영향력에 관심을 갖는다. (P.210)

 

바다는 결코 고요하지 않다. 바다의 쉼 없는 움직임은 가까이는 바람에 의하여, 아주 멀리는 태양의 작용에 따라, 그리고 중간에서는 달의 인력과, 지구의 자전에 의해 비롯된다. 바닷물의 흐름은 해수면을 따라 횡적으로 움직이지만, 온도에 따라 종적으로 섞이거나 역행하기도 한다. 이런 현상이 단기적으로는 날씨를 좌우하며, 장기적으로는 기후변화를 촉발하기도 한다. 그만큼 지구와 인간에게 있어 바다가 갖는 영향력은 압도적이다.

 

바다를 알고자 하는 인간의 열망과 노력에도 불구하고 바다는 친근감과 동시에 본능적 두려움을 안겨준다. 카슨의 이 책 이후 수많은 바다 관련 저작이 넘치지만 여전히 바다는 신비로움이다. 지표면의 대부분을 점유하는 바다. 바다의 시각에서 보면 우리가 대륙이라 부르는 땅덩어리는 이른바 커다란 섬들에 불과하다. 저자 말마따나 바다는 우리를 둘러싸고 있으니.

 

옛사람들이 생각한 바다의 개념은 좀더 넓은 의미로 보면 여전히 그대로 남아 있다. 정말이지 바다는 우리를 온통 둘러싸고 있다......신비로운 과거에 바다는 모든 흐릿한 생명의 기원을 감싸고 있었으며, 마침내 수많은 변화를 겪으면서 스러져간 뭇 생명의 잔해를 받아들인다. (P.313)

 

앤 즈위거의 비교적 긴 서문과 제프리 레빈턴의 상당히 긴 후기가 덧붙여져 있다. 서문은 저자가 이 책을 발간하게 된 배경과 경과를 알려주는 차원인 것 같고, 후기는 이 책이 발간된 이후 성취한 과학적 결과물을 토대로 책의 내용을 보완하는 성격으로 이해된다. 그런데 도대체 그들은 누구인가? 자그마한 배려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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