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건축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이레 / 2007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가끔 소위 '말빨'로 이성을 공략한다는 남자들을 보면 이해가 가지 않는다. 도대체 어떤 여자가 뒷 꿍꿍이가 뻔히 보이는 저런 공략에 넘어간단 말인가. 그런데 넘어가는 여자는 같은 여자가 보아도 뻔한 여자일 것이다, 난 그렇게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내 주변에도 있었다. 청산유수같은 말로, 잘나지 못한 외모를 단단히 감추고 여자들의 사랑을 먹고 사는 한 선배가(아, 그러고 보니 그 선배는 돈도 많았다.). 그 선배의 화려한 여자 관계를 보며 난 절대 저런 사람에게 넘어가는 속 빈 강정 짓은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다. 하지만 나 역시, 결국은 여자였구나 하는 사건이 발생했으니 나 역시 한 남자의 '말빨'에 홀딱 빠져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꼴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 남자, 알랭 드 보통.

 

     보통씨의 말재간은 정말 보통이 아니다. 보통을 좋아하는 여자들은 많이 봤지만 보통을 좋아하는 남자들을 많이 보지 못한 것은 보통 아저씨의 이런 말재간이 한 몫을 할 것이다. 여자에게는 혹하고 싶은 보통의 매력이 아마 이해되지 않을 수도 있으니. 이런 보통 아저씨의 신간이 출간되었다는 소식은 기쁘기 그지 없었다. (물론 증정도서의 압박도 나를 자극했다.) 가벼운 주머니 사정을 고려치 않고 가뿐히 손에 넣었다. 나의 보통씨이니 그 정도의 출혈은 감안할 수 있었다. 그렇게 보통씨의 신작과 마주했다.

 

     <행복의 건축> 이 얼마나 달달한 제목이란 말이냐. 그동안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우리는 사랑일까> 등의 제목으로 독자들을 현혹했던 보통씨가 이번엔 <행복의 건축>을 말한다. (물론 번역과정에서 또 출판사의 홍보전략 탓에 원제와 달라졌다해도 독자를 현혹한다는 것에는 의의를 둘 수 없다. 하지만 솔직히 <키스하기 전에 우리가 하는 말들>의 제목은 심했다고 생각한다.)

     어떤 장소의 전망이 우리의 전망과 부합되고 또 그것을 정당화해준다면, 우리는 그곳을 '집'이라는 말로 부르곤 한다. 꼭 우리가 영구히 거주하거나 우리 옷을 보관해주어야 집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은 아니다. (p.111)

     보통씨에게 집은 우리의 정체성과 관련있는 것이 아닌, 심리적이며 육체적인 피난처 역할이다. 그리고 보통씨의 이 집에 대한 개념은 건물을 향하는 태도와도 일치한다. 건물은 어떻게 보면 미(美)의 대상으로 보이지 않지만, 사실은 건물이 창조되는 동시대의 사람들의 연약한 점을 보안하고 있는 대상이기도 하며, 그 안에 살게 될 사람들의 심리적인 안정감을 주기도 하는 대상이 된다. 비록 우리가 멋진 집에 산다고 행복한 미래를 보장받을 수는 없지만 말이다.

 

     역시 보통씨는 그런 사람이다. 건축에 대한 전반적인 지식 위에, 자신만의 명료한 사상과 감정을 복합시킬 수 있는. 이 책을 건축에 비유한다면 보통의 사상과 지식이라는 토대 위에 건축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 틀을 잡고 그 위에 보통 특유의 감정과 언어로 빚어놓은 세련된 모던 건물의 느낌이다. 시골 오두막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한 번쯤 동경해보고 꿈꿔봤을만한 건물. 하지만 다른 건물과 동 떨어진 이질적인 느낌이 아닌 그 어떤 것과도 맛있게 버물어질 수 있을 법한 신비한 매력. 이런 점이 보통씨를 사랑받는 작가로 만들고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책을 만나며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책 내내 우리의 건축이 나와있지 않다는 것이다. 내 나라이고 내 문화여서 그런지 몰라도 난 한옥의 기와가 주는 그 유한 곡선미와 대청마루의 자연친화적인 점이 참 마음에 든다. 그런 한옥의 매력을 보통씨가 몰랐다는 것이 서운하기만 했다. 꼭 상대가 모르는 짝사랑을 하는 기분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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