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있기 좋은 날 - 제136회 아쿠타가와 상 수상작
아오야마 나나에 지음, 정유리 옮김 / 이레 / 2007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책에게 마음 속 말을 들켜버린 것 같은 때가 있다. 들키기 싫었던 마음을 어찌 알고 책이 답을 해 주는 순간, 마음을 들킨 것 같아 부끄럽다가도 이내 안정이 된다. 내가 말하지 않아도 내 마음을 알아주는 존재가 있다는 사실에.
    

     저 쪽도 내게 마음이 있는 건지 모르지만, 아무리 허둥대도, 걱정해도, 기대해도, 어차피 다 제 갈 데로 흘러가겠지. (p.188)

 

     사실 가을바람에 마음이 흔들리던 중이었다. 누군가에게 쉽게 내주지 않던 마음이 갑자기 차가워진 바람에 휩쓸린 기분이었다. 제목부터 나를 위한 책 같았던 이 책에게 그렇게 마음을 들켜버렸다. 의외로 혼자있기 좋아하는 내게 '혼자 있기 좋은 날'이 찾아 온다면 아마도 그건 히키코모리가 되어버리는 것이 아닐까 하고 후후 웃어보았다.

     기차길 역 오막살이, 아기아기 잘도 자듯♪ 이란 우리의 노래가 떠오를 것 같은 지하철 역 부근 깅코 할머니 댁에서 살게 된 치즈에게는 모든 것이 낯설었다. 엄마와 단둘이 살면서도 뭔가 불편했던 치즈에게 먼 친척 할머니이자 50살이나 차이 나는 깅코와의 동거는 반가울리 없다. 거기다 그동안 키우던 고양이들에게 모두 키로키라는 이름을 붙여서 방에 붙여놓는 할머니 취향도, 그 나이에도 치즈의 화장품을 노리고 사교댄스를 즐기고 연애도 하는 것 같은 할머니의 행동도 처음엔 다 불가사의였다. 하지만 역시 정이란 무섭다. 사계절을 그 기차길 역 오막살이에서 아기아기 잘도 자듯 보내던 치즈는 그 일년간 어딘가 모르게 성숙해 진다. 사랑도, 이별도, 첫 아르바이트도, 첫 직장도 다 경험해 내며 조금씩 사회의 한 사람으로 자라난다.

 

     혼자만의 착각인지 몰라도 치즈는 참 나와 많이 닮아있었다. 은근히 심술 궂고 되바라졌지만 외로움에 쉽게 마음을 내주고 마는 성격, 기억을 두고두고 꺼내보며 그 기억 속에서 위안을 찾는 습성들. 관계에서 상처를 받을 것을 미리 두려워 하고 속은 여리면서도 강한 척 온갖 무장을 하고 있는 모습은 사람들이 내게 말하던 내 모습들과 참 많이 닮아 있었다. 그런 치즈에게 어깨를 내어주고 싶었다. 괜찮아, 나도 그런 걸 뭐.

     

     하지만 책을 덮으며 위로를 해 주고 싶었던 내 마음과 달리
 왠지 내가 위로를 받은 느낌이었다. 괜찮아, 세상엔 안도 없고 밖도 없어. 그러니 니 힘껏 살아봐도 돼. 하는 따뜻한 마음의 위로. 젊었을 때 무엇이든 다 해보아도 된다는 것은 젊기에 상처를 회복하는 힘도 빠르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 시기에 원하는 것을 다 해 보아야 나이 먹어서 세상에 미련을 갖고 아둥바둥 되지 않게 된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조금은 알게 된 기분이다. 나이가 먹어서도 깅코 할머니같이 귀엽고 사랑스러운 사람으로 남기 위해 지금 아프고 힘들어도 한 발 한 발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며칠 째 마음 속으로 끙끙 앓던 고민들이 조금은 날아간 기분이다. 힘이 들고 슬퍼도 지금의 내 나이라서 다행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