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한문장] 하나도 괜찮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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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당한 것을 ‘참지 않을 때’ 수치심을 느껴야 하는 경우가 한국에서 어디 군대뿐인가. 일터에서는 우리가 어릴 때 배웠던 도덕적 기준과는 다른 룰이 적용된다 개인의 희생은 기본이고 때론 ‘위에서 오더 떨어질 때까지’ 무작정 멈춰 있어야 하고 때론 ‘멈추라는 지시가 있을 때까지’ 한없이 저돌적이어야 한다. 사회 ‘안’ 조직인 회사가 사회가 권장할 수 없는 가치를 지향함을 문제 삼으면 ‘전쟁터에서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 하고 있네’라는 표정으로 쳐다본다. 군대의 문제가 고질적인 것은 자신들이 전쟁을 준비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에서 상식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기 때문이다. 일터도 전쟁터니 기업에서 그렇게 ‘유연한 사고방식을 가진 자’를 인재라 했나 보다. 여기서 ‘유연’은 세상의 이치가 무엇인들 직장의 법칙에 유연하게 따라가는 것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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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름답고 추한 몸에게 - '아무 몸'으로 살아갈 권리
김소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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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내가 인생을 산 게 아니라 시간이 나를 스쳐 지나가버린 것같이 느껴질 때가 있다. 주도권을 타인의 시선에 내줬기 때문인 것 같다. 타인의 시선이라기보다는내가 생각하는 타인의 시선이라는 게 맞겠다. 다른 사람들은 사실 내가 챙 모자를 쓰고 춤을 추건 말건 관심 없을테니까 - P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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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난 대한민국에 스타트업 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소규모 블랙 기업 대표들이 ‘구글’, ‘애플’, ‘넷플릭스’를 언급할 때마다 고 허무맹랑한 주둥이에 벌금을 먹이는 법 말이다. 용도가 결백하지 않을 땐 ‘크리에이티브’, ‘린’, ‘그릿’ 등의 단어도 금지해야만 옳았다. 그것들은 원래의 건강한 의미를 잃고, 스타트업 대표가 노예에게 산업혁명을 떠넘길 때나 쓰이게 된 지 오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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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나를 낱낱이 드러낼수록 사랑받을 수 있는 가능성은 낮아진다는 걸 아니까, 정말 사랑받고 싶다면 그렇게 해선 안 된다는, 배운 적도 없는 사실을 왠지 그때도 알고 있었으니까. 답답했던 건 아마 그래서였을 거예요.
다 알지만 여전히 생각해요. 머리부터발끝까지, 내 이런쓸데없는 생각들까지 하나하나 빠짐없이 사랑받고 싶다고.
이런 나라도 사랑해 줄 수 있어요? - P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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