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리술사 미야베 월드 2막
미야베 미유키 지음, 이규원 옮김 / 북스피어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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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서 이야기를 시작하면 좋을까. 이번으로 끝나는 거라면 말하기 좀더 쉬울 텐데. 내가 첫번째 ‘흑백’과 두번째 ‘안주’를 보았지만 잊어버린 것도 있어. 이번이 세번째인데 여기에서도 짧게 주머니 가게 미시마야, 흑백방, 오치카를 말하거든. 오치카는 한해 전에 슬픈 일을 겪고 친척집인 주머니 가게 미시마야에 왔어. 미시마야 주인은 이헤에로 오치카는 조카딸이야. 이헤에는 바둑을 좋아해. 집에는 바둑두는 ‘흑백방’이 있거든. 이헤에가 집에 없는 날 오치카가 손님을 흑백방에서 대접했어. 그 손님은 오치카가 자신과 비슷한 눈을 한 것을 보고 지금까지 마음속에 담아둔 이야기를 했어. 나중에 그 말을 들은 이헤에는 오치카가 다른 사람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기 마음을 달래면 어떨까 생각하고 미시마야 아가씨가 백가지 이야기를 모은다고 알렸어. 그냥 이야기를 듣는 게 아니고 백가지였다니, 이것을 이번에야 제대로 알았어. 괴담 모임에서는 백가지 이야기를 해. 이때 초 백자루를 켜놓은 뒤 이야기가 하나 끝나면 촛불도 하나 꺼. 백가지 이야기가 끝나고 방안이 캄캄해지면 뭔가 괴상한 일이 일어난대. 그러고 보니 이것도 괴담이구나. 언젠가 한번 백가지는 아니고 그런 것처럼 꾸미로 이야기하는 것을 보았는데 이야기가 끝나자 바깥에 무엇인가 나타났어. 백가지 이야기를 다 채우지 않는 게 좋을지도 모르겠어.

 

미시마야에 오치카가 온 지 한해가 지났는데 흑백방에서 이야기를 한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아. 이야기를 하러 사람이 자주 오는 건 아니라고 할 수 있어. 좋은 이야기도 아니고 이상하고 무서운 이야기니 쉬는 시간도 있어야 오치카가 괜찮겠지. 소문을 듣고 미시마야에 바로 오는 사람도 있지만 이야기할 사람을 소개해주는 사람도 있어. 먼저 그 사람이 이야기할 사람을 만나서 거르는 거야. 하지만 한번 사람을 잘못봐서 미시마야에 큰일이 일어날 뻔했어. 그때는 여러 사람이 도와줘서 괜찮았어. 흑백방에서는 말하고 버리고 듣고 버리는 규칙만 있어. 흑백방에서 말한 이야기가 다른 데 새어나갈 일은 없어. 흑백이지만 여기에서는 옳고 그름을 가리지 않아. 흑백방이니 그것을 할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 본래 바둑두는 방이어서 그런 이름(흑백방)이 붙은 것뿐이야. 세상에는 흑백을 가릴 수 없는 일이 많지. 나는 오치카 나이가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을 이번에 알았어. 전에도 몇살인지 나왔을 텐데 그것은 별로 마음쓰지 않았어. 왜 그랬을까. 혼인 이야기가 오고 가서 스물은 넘지 않았을까 생각했나봐. 우리나라도 옛날에는 이른 나이에 혼인을 했는데 그걸 잊어버린 거지. 오치카가 흑백방에서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을 때는 열일곱이었고, 지금은 열여덟이 되었어. 그 나이에 벌써 안 좋은 일을 겪다니 할지도 모르겠지만 어떤 일을 겪는 건 나이와 상관없을 거야. 이런 생각도 할 수 있지, 왜 나한테만 이런 일이 일어나지 하는. 오치카도 그런 마음이었을 것 같아. 흑백방에서 오치카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다가 조금 위로받지 않았을까. 나만 그런 건 아니구나 하고.

 

가만히 생각하니 오치카 혼자 이야기를 듣고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으면 답답할 것 같아. 흑백방에서는 오치카 혼자 손님이 하는 이야기를 들어. 저녁에 오치카는 미시마야 부부한테 자신이 들은 이야기를 해줘. 거기에 한사람 더 늘었어. 오카쓰는 얼굴에 마마자국이 있는 사람으로 미시마야에 오기 전에는 안 좋은 것(마)을 쫓는 일을 했어. 에도시대 때는 마마자국이 있는 사람한테는 안 좋은 것을 쫓는 힘이 있다고 믿었거든. 오카쓰는 미시마야에서 일하면서 오치카가 흑백방에 있을 때는 바로 옆방에 있어. 안 좋은 이야기에는 무엇인가 있을지도 모르잖아. 오치카는 바로 옆방에 오카쓰가 있다고 생각하면 덜 무섭지 않을까. 무섭고 이상한 일이라고 해도 사람이 겪은 일이야. 거기에는 현실에서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일도 있어. 에도시대 사람들은 신을 잘 믿기도 해서 신과 관계있는 일도 있었어. 요괴, 이승과 저승도. 이번에 오치카는 애인 사이를 갈라놓는 연못 이야기를 처음으로 들어. 사이가 좋은 두 사람을 시샘하고 미워하는 신이 있거든. 다마토리 연못은 그곳 땅신이 몸을 씻는 곳으로 사이 좋은 두 사람이 그곳에 모습을 비춰보면 두 사람은 헤어지게 된대. 그것을 사람은 어떻게 이용할까. 혼인할 상대가 자신을 진짜 좋아하는지 어떤지 알아보는 데였어. 아무리 좋아해도 시간이 흐르면 마음이 바뀔 수도 있지. 그걸 꼭 혼인하기 전에 확인해야 할까. 그때는 그때고 지금은 믿어야지. 사람이 집착하는 것을 빼앗아간다는 말도 있어.

 

사람은 자신이 겪은 일, 혹은 들은 이야기를 자기 혼자만 알고 있으면 안 좋은가봐. 그걸 누군가한테 털어놓고 짐을 내려놓고 싶은 마음이 있는 듯해. 짐이라고 해서 무거운 것만은 아닐 테지만, 누군가 나와 함께 그 일을 알고 있다 생각하면 혼자가 아닌 것 같은 마음이 들지도 몰라. 끝까지 말하지 않는 사람도 있겠지만. 어떤 사람은 어릴 때 살던 마을에 엄청난 큰비가 오고 산사태가 일어나서 식구들과 친구들이 모두 죽었어. 그때 그 사람은 선주 가문 별장에서 지냈는데 가끔 꿈을 꾸었어. 친구와 노는 꿈이었는데 그 꿈을 꾸면 꿈에 나온 친구 시체를 찾았다는 말을 들었어. 그 사람은 거기에 있으면 친구가 오지 않을까 했는데 그런 일은 없었어. 얼마전에 아플 때 이제 친구들을 만날 수 있겠구나 했는데 그 사람은 다시 깨어났어. 그때 꿈에서 친구들을 만났대. 친구들이 너는 아직 이쪽에 올 때가 안 되었어 했대. 그 사람이 지금까지 자기 아내한테 하지 못한 말이 있었어. 그것은 자신만 살아남아서 미안하다는 거고, 그런 자신을 친구들이 미워할거다는 거야. 누가 그런 생각을 할까. 어떤 사고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다 그런 생각을 할지도 모르겠어.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어. 자신은 죽고 다른 사람이 살았구나 하고 화내는 사람은 없을거야. 네가 살아서 다행이다 생각할거야. 누군가한테 억울하게 죽임을 당하면 다르겠지만.

 

말도 못하는 아이가 사람이 나쁜 일을 저지르려 하고 저지른 걸 알면 어떨까. 그 아이를 무서워할까. 죄를 지은 사람이라면 무서워하겠지. 죄를 지으면 죗값을 치러야 하는 건 그래서인가봐. 죗값을 치렀다고 그걸로 끝난 건 아니지만. 자신이 지은 죄가 자기 목을 조여오면 또 다른 나쁜 짓을 할지도 몰라. 약한 사람이어서 그런 거겠지만. 검은 사람 마음을 꿰뚫어보는 그 아이는 사람이 아니었을까. 이런 괴담을 하고 듣는 일은 그동안 자신한테 들러붙은 나쁜 것을 떼어내는 것이기도 하대. 오치카 혼자 흑백방에서 이야기를 듣는 것과는 다르게 어떤 사람은 섣달에 괴담 모임을 가졌어. 그런 자리에서 이야기를 들으면 살면서 다른 사람한테 원한을 사면 안 되겠다고 생각할 것 같아. 원한 때문에 괴롭게 죽은 사람 이야기도 있었거든. 사람 겉모습 가지고 흉을 보아서도 안 돼. 괴담 모임에 간 오카쓰 얼굴에 있는 마마자국을 보고 뭐라고 한 사람이 있었어. 사람은 마음을 곱게 가져야 해. 겨울이 되어 미시마야에 오게 된 아이가 있는데 그 아이가 살던 곳에서 모시던 신이 오치카한테 그 아이를 잘 부탁한다는 말을 하러 오기도 했어. 사람이 아닌 다른 게 나타나서 무섭게 여길 수 있지만 오치카는 그것을 따듯하게 생각했어.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일도 슬프지만 어머니가 하던 일을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 아쉬워서 그 이야기를 하러 무사가 흑백방에 왔어. 무사 어머니가 한 일은 사람을 잡아먹는 마구로를 물리치는 일이었어. 그 일 무서워보여. 오치카도 그 이야기를 듣고 이런저런 생각을 했어. 마구로는 원한이 모여서 만들어진 짐승이라는 말이 있거든. 사람이 살려면 그것을 없앨 수밖에 없잖아. 마구로를 없애도 또 다른 원한이 생기는 거지. 끝이 없기도 해. 무서운 것보다 슬픈 일일까. 오치카는 절기마다 얼굴이 바뀌는 사람 이야기도 들어(절기마다 남자 얼굴은 죽은 사람 얼굴이 돼. 남자는 그날 죽은 사람을 아는 사람을 만나러 다녀. 이게 늘 좋지만은 않아. 죽은 사람을 만나고 싶어하는 사람도 있지만 싫어하는 사람도 있거든). 이때 이 세상과 저세상을 이어주는 상인이 또 나왔어. 예전에 나왔다고 하는데 잘 생각 안 나. 그때 오치카는 상인을 나쁘게 생각했는데 이번에 이야기를 듣고는 그 사람이 나쁘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세상에는 그런 사람 있어. 선과 악에 상관없이 다른 사람이 바라는 일을 해주는. 그것을 어떻게 보아야 할지 나도 모르겠어. 그 상인은 언젠가 다시 나올지도 모른다는 말이 있었어. 아니면 또 다른 사람 이야기에 나오게 될지도. 사람과 사람이 관계를 맺는 이야기도 하는 것 같아. 관계를 맺으면 서로 상처를 주고받을 수 있으니 그것을 두려워하지 마라, 같은. 오치카도 그것을 조금씩 알아가겠지.

 

책을 읽는 것도 이야기를 듣는 것과 같지 않을까. 그 이야기를 다시 다른 사람한테 하는 건 어렵지만. 오치카를 다시 만날 때까지 기다려야겠군. 다음에는 어떤 이야기를 들을까.

 

 

 

희선

 

 

 

 

☆―

 

영혼이 부서질 정도로 슬픈 일을 겪은 젊은 처녀에게 어지간한 위로나 격려는 별 소용이 없다. 그보다는 차라리 오치카가 이런 식으로 세상에 일어나는 신기한 이야기, 업보 이야기, 온갖 인생 이야기를 듣고 그런 이야기들에서 실을 자아내 스스로 자신의 영혼을 꿰매어 고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편이 좋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17쪽)

 

 

괴이한 일을 이야기하거나 들으면 일상생활에서는 움직일 일이 없는 마음속 깊은 곳이 소리도 없이 움직인다. 무엇인가 웅성거린다. 그래서 무거운 생각에 짓눌릴 때도 있지만 한편으로 문득 더러운 게 깨끗해진 듯한, 혹은 깨어난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178쪽)

 

 

“괴담 모임을 마련해서 여러 괴담을 듣고 보니 신선의 영험함이나 요괴의 무서움과 신기함에 온몸이 절로 오그라들더군요. 사람의 지혜나 이치가 닿지 않는 일들을 알고 사람 분수를 헤아리게 됩니다. 혼백이 덜덜 떨리면 때가 떨어지고 욕심이 사라지고 마음이 맑아집니다. 그 고마운 효험에 선대 뒤를 이은 저도 괴담 모임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20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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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9-12 12:4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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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9-13 02:2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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