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마흔에 나는 모든 것을 다 가진 사람이 되어 있었다. 국립 예술 대학의 교수였고 네 권의 장편소설과 세 권의 단편소설집을 낸 소설가였고 라디오 문화 프로그램의 진행자였고 한 여자의 남편이었다. 서울에 내 이름으로 등기된 아파트가 있었고 권위 있는 문학상들을 받았고 서점의 좋은 자리엔 내 책들이 어깨를 맞댄 채 사이좋게 놓여 있었다.

소설들은 베스트셀러는 아니었지만 꾸준히 팔려 나가는 편이었고 개중에 어떤 것은 영화나 연극으로 제작되었다. 그리고 또 몇 권의 소설은 해외에서도 출판되었다. 밟으면 으르렁거리며 달려 나가는 힘 좋은 승용차도 있었고 묵직한 오디오 시스템도 갖추고 있었다. 그리고 그 무렵, 한 일간신문으로부터 연재소설 제의도 받았다. 좋아요, 합시다, 하죠, 뭐.

한마디로 부족한 게 없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그 시절의 내 삶은 실로 숨 막히는 것이었다. (19쪽)

 

소설가 김영하의 산문집 [네가 잃어버린 기억하라]의 첫 문장은 이렇다.

나이 마흔에 나는 모든 것을 다 가진 사람이 되어 있었다.

소설가로서의 성공, 문단과 인정과 대중의 호평. 그에 따른 경제적 보상. 교수라는 사회적 지위. 행복한 가정. 더 이상 바랄게 없는 듯한 그런 상태. 행복해보이고, 스스로도 행복하다 느끼던 시절. 그런 시절이었다. 그런데, 김영하는 돌연 그 자리를 박차고 시칠리아로 여행을 떠난다.

 

 

예술학교에서의 마지막 학기, 어느 수업 시간에 나는, 그때는 그게 마지막 학기가 될 줄은 전혀 모르고 있었지만, 학생들에게 이런 말을 했었다. 우리 인생의 어떤 순간에는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이 자기 운명에 대한 예언이 된다. 그날 나는 학생들에게 ‘자기 안의 어린 예술가를 구하라’는 주제로 예정에도 없던 강연을 했다. (25쪽)

 

별다른 생각 없이 눈으로 문장을 따라가던 나는, 이 문장에서 멈짓했다. 그리고는 생각했다. 아니 차분히 기억을 더듬었다. 이 책을 읽을 무렵 내가 했던 수많은 말들을 기억하려 했다. 물론 기억나지 않았다. 나는 너무나 많이 말하는 사람이고, 당연하게도 나는 내가 한 말들을 다 기억하지 못한다. 그런데, 어쩌면 좋을까? 우리 인생의 어떤 순간에는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이 자기 운명에 대한 예언이 된다니, 그렇다면 저번 주에, 어제, 그리고 오늘 아침에 내가 했던 모든 말들은 내 운명에 대한 예언이 되어 내게로 돌아올텐데. 내 삶 속에서 이루어질텐데. 나는 도대체 무슨 말을 한 거지? 나는 도대체 어떤 운명을 맞게 되는 거지? 순간적으로 두려움이, 그리고는 걱정이 밀려왔다.

나는, 조심스레 말하는 사람이 아니었던 것이다.

내 운명은 어떻게 운명지어질 것인가? 다시 한 번 생각없이 말하는 나 스스로를 원망하다가, 나는 이런 문장을 지어낸, 김영하를, 김영하의 사진을 뚫어져라 째려보았다. 뭐, 이런...

일단 여기 들어온 이상, 여러분의 임무는 여러분 내면의 어린 예술가가 상처받지 않도록, 그가 겹겹의 방어막으로 단단히 자신을 감싸 끝내는 아무것도 느낄 수 없는 정신적 불구가 되지 않도록 잘 아끼고 보호하여, 학교 밖으로 무사히 데리고 나가는 것이다. 배움은 다음 문제다. 학교에서는 평생을 함께할, 평가와 비난이 아니라 격려와 사랑을 함께 나눌 예술적 동지를 구하라. ...

아마 이런 요지의 말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후 가장 먼저 학교를 떠난 사람은 내 이야기를 들은 학생들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었다. 나는 생각한다. 그리하여 나는 내 안의 어린 예술가와 혹시 내가 살해하고 있었을지도 모를, 학생들 내면의 어린 예술가들을 마침내 구해낸 것일까? (27쪽)

 

예술이 학습될 수 있을까? 모르겠다. 김영하는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내면의 어린 예술가를 잘 데리고 학교를 졸업하라고 충고했다. 학교에서 예술적 기술에 대한 것을 배울 수는 있겠지만, 그런 배움이 오히려 내면의 어린 예술가, 소심하고 연약하고 상처받기 쉬운 어린 예술가를 정신적 불구로 만들 수도 있음을 지적한 것이다.

글을 잘 쓰는 방법을 가르치는 학교가 있다면, 사실 다녀보고는 싶다. 그런데, 글을 잘 쓰는 방법은 배울 수도 있겠지만, 그 글이 매력적일 것이냐는 조금 다른 문제인 것 같다. 한 마디 한 마디 참 옳은 말씀인데도 정말 일관되게 재미없는 글이 있는가 하면, 말도 안 되는 번역투의 글도 있다. 말 그대로 정보화사회라, 정보는 차고 넘친다. 정보를 위해 읽는 글은 딱 그만큼이다. 정보만을 얻을 수 있다. 다른 말로 하면 아무나 쓸 수 있는 글이라는 거다. 하지만, 매력적인 글이라 함은 정보와 함께 재미, 욕심낸다면 교양까지도 전해줄 수 있어야한다. 그 중에 하나를, 오직 하나만 고르라면, 나는 재미. 나는 김영하의 글이 재미있어 김영하를 좋아한다.

또, 예를 굳이 들어본다.

깊이 팬 블라우스 아래로 가슴의 골이 깊었다. 게다가 피어싱을 한 배꼽에 늘 둘둘 말려 올라가는 흰 미니스커트 밑으로 잘 태운 튼실한 허벅지를 드러낸 채, 무뚝뚝하고 심각한 표정의 파키스탄 남자와 함께 창가에 앉아 있었기 때문에 여행하는 내내 창 쪽으로는 아예 시선을 옮길 엄두를 내지 못했다. 눈 둘 데가 없다는 것은 바로 이런 상황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아내와 나는 마주 앉아서 동양의 신비와 침묵으로 무장한 채 ‘그래도 기차가 가는 게 어디냐’는 심정으로 견뎠다. (59쪽)

 

여섯 명이 다리를 맞대고 마주 앉아 있는 좁은 기차 안, 눈 둘 곳을 찾지 못하고 동양의 신비와 침묵으로 무장한 김영하와 그의 아내를 상상해 보자. 웃지 않고 배길 수가 없다.

김영하의 여행은 이어진다. 시칠리아의 생활은 여행지에서의 모습이라기보다는, 한적한 시골 마을에서의 행복한 일면을 보여준다. 여행을 싫어하지만, 다시! 여행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이런 생활도 꿈꾸어 본다. 내 삶은 내가 계획한대로 다 이루어지지 않을 테지만, 가끔 내가 상상도 못할 근사한 일들이 일어날 수도 있을테니까.

재미있어서 김영하를 좋아한다는 말을, 취소해야겠다. 김영하는 이런 훌륭한 소설들을 계속해서 써내고 있는, 아주 훌륭한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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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4-05-29 1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페이퍼 좋으네요, 단발머리님. 저는 김영하를 가만있자, 몇 권 읽어봤지. 여튼 몇 권 읽었는데 재미있게 읽긴 했지만 또 찾아들게 된다거나 막 좋아한다거나 그렇게 되진 않더라고요. 다만, 아련한 추억 같은건 있어요.

김영하의 에세이 [포스트잇] 이요, 그거. 제 나이 서른하나에 엄청나게 좋아했던, 정말이지 숨도 못쉬게 좋아했던 남자가 저 책을 읽어보라고 해서, 아니, 김영하를 좋아한다고 해서였나..무슨 계기였는지 모르겠지만 여튼, 그 남자 때문에 그 책을 읽었어요. 그 책 자체가 좋았는지 기억은 잘 안나는데, 그 책을 그래서 그냥 좋아했더랬어요. 그 남자 때문에. 어우..폭풍 그리움이 몰려오네요...그 큰 키와 못생긴 얼굴..같은거요.


ㅎㅎ 댓글이 산으로 갔어...페이퍼와 관계없는 댓글을 써서 죄송합니다. (--)(__)

단발머리 2014-05-29 14:14   좋아요 0 | URL
앗, 그렇군요. 저도 김영하의 소설을 많이 읽어보지는 못했는데요. 그래서 위의 책들은 읽어봐야겠다는 작은 결심입니다~~

저의 페이퍼가 다락방님의 서른 하나 무렵을 기억나게 했군요. 큰 키는 좋은데, 못생긴 얼굴은^^ 헤헤~~~
다락방님이 제 글을 읽어 주시고, 공감도 날려주시고 해서, 저는 항상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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