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모리미 토미히코 지음, 서혜영 옮김 / 작가정신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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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일본적인 로맨스 판타지 소설.
생기 발랄하고 마음씨 착한 검은 머리 여대생을 향한 쫄보 남학생의 짝사랑 사수 이야기이다. 기상천외, 종횡무진, 정신없는 전개로 정신을 쏙 빼놓는다. 제목과 표지만 보고 상큼하고 풋풋한 짝사랑 연애소설인 줄 알았는데 아니다.
서클 여자 후배를 짝사랑하는 쫄보 선배는, 그녀 주위를 서성이며 그녀가 가는 모든 곳을 쫓아, 일본 교토 밤거리를 밤새도록 종횡무진 돌아다닌다.

"우리 주위를 보면 국면 타개를 위해 조바심치며 먹구름에 싸인 성으로 돌격하다가, 결국은 옥쇄하고 마는 바보들이 일일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들은 만용은 있어도 용기는 없는 남자들이다. '용기'란 이성과 신념을 지니고 자신을 바로잡아 착실히 성 둘레의 해지를 메워가는 지리한 작업을 참아내는 기백이다. 본체 공략은 그 뒤다."
그는 그녀가 자신의 존재에 익숙해지도록 계속해서 그녀의 시야 안에서 알짱대면서 끊임없이 우연한 만남을 만드는 자신의 전략을 자랑스러워한다. 그의 행동을 보면 너무도 얼간이 같다.

수많은 레스토랑과 일본식 여관이 줄지어 있는 가모가와 강가, 주점, 요리 점과 고급 요정들이 많은 본토초 지역, 시모가모 신사, 다다스 숲에서 일어나는 봄부터 겨울까지의 기상천외한 이야기들이 쏟아진다. 기상천외한 이야기는 봄의 밤거리 본토초 주변 술집에서 만난 도도 씨로부터 시작해, 술고래 히구치와, 기인 하누키 씨와 연결되고, 서클 궤변론부와 환갑잔치 사람들이 합세하여 이야기의 부피는 종잡을 수 없을 만큼 부풀어간다. 그리고 갓 스물의 아가씨가 이백 씨와 가짜 '전기부랑' 술 마시기 대결에서 이기는 것으로, 그 밤의 기상천외한 이야기는 끝이 난다. 하룻밤에 많이 일들이 벌어진다. 이야기가 다 끝나 더 이상 할 것이 없을 듯한데. 이 기인들과의 만남은 또 다른 날줄이 되어 기상천외한 이야기가 다시 시작된다. 여름의 헌책 시장, 가을의 대학 축제, 겨울의 이백 감기까지 정말이지 재미나게 이어진다.
쫄보 선배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짝사랑이, 다시 따뜻한 봄이 왔을 때, 과연 이루어졌을까?
머리가 복잡하고, 따분하고, 심심할 때 가볍게 읽기에 재미있다. 맹하리 만치 순수하고, 착한, 검은 머리 아가씨를 만나보기 바랍니다. 지금 밤거리를 걸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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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켈러의 예수, 예수 - 이 시대가 잃어버린 이름
팀 켈러 지음, 윤종석 옮김 / 두란노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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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신성과 인성을 모두 가지고 계신다.
김규항의 '예수전'이 온전히 예수의 인성에 대해서 썼다면, 팀 켈러의 '예수, 예수'는 온전히 예수의 신성에 대해서 썼다.
마태복음은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을 다루고 있다. 마태복음을 읽고, 두 책 '예수전'과 '예수, 예수'를 비교해 읽으면 좋을 것 같다.

'예수, 예수'는 세상에 하나님의 빛으로 오신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이다. 예수가 태어난 '성탄절', 크리스마스에 대해 바로 안다면 기독교의 근간인 복음을 알 수 있다. 이 책은 크리스마스와 예수 탄생의 참뜻을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1~ 4장까지는 마태복음을 중심으로 하나님이 크리스마스에 우리에게 주신 선물들을 알아보고,
5장부터 누가복음 중심으로 우리가 그 선물들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 방법을 알려 준다.
" 크리스마스란 하나님의 은혜와 성육신을 통해 그분과 화평해질 수 있고, 일단 그분과 화평해지면 밖에 나가 다른 누구와도 화평해질 수 있다는 뜻이다. 복음을 받아들여 평화를 누리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세상은 더 살기 좋은 곳이 된다. 그리하여 크리스마스를 통해 온 세상에 평화가 증대된다. 하나님과 화목하고 사람들끼리도 서로 화목해진다."
화평하게 하는 자는, 먼저 하나님과 화목해짐으로써 마침내 지신의 흠과 약점을 인정하는 법, 자존심을 버리는 법, 굳이 모든 상황을 통제하지 않고도 사랑하는 법을 배운 사람이다."
하나님과의 화평을 누릴 수 있는 방법.
1. 불화 자체를 인정한다.
2.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음을 고백한다.
3. 그리스도께서 해 주신 일만 믿고 기존 생활 방식에서 돌아선다. 주님의 주권에 대한 자신의 저항을 마침내 전적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음을 고백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해 주신 일만 믿고 기존 생활 방식에서 돌아서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과 화해하는 길이다.

5장 ~ 하나님이 주신 선물을 어떻게 받을 수 있는가?
누가복음 1장 예수님의 어머니의 마리아를 믿음으로 반응하는 수도인의 본보기 삼는다.
1) 잘 들어야 한다.
영적으로 잘 듣는 법
(1) 음성을 전달하는 메신저의 실력에 너무 한눈을 팔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매체가 곧 메시지는 아니다. (발람의 나귀 ) 메신저의 결점 때문에 보화를 놓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2) 생각하라.
이는 숙고한다는 뜻이다.
단순해 보이는 말도 깊이 묵상하면 다차원의 의미와 끝없는 개인적 적용을 캐낼 수 있다.
(3). 마음에 새겨라.
생생히 간직하거나 음미한다는 뜻이다. 마리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머리로만 이해하려 한 게 아니라 내면 깊이 받아들여 즐기고 누렸다. 마음에 새기는 일은 기술이라기보다 태도다.

2) 하나님과의 화목
평화란 하나님과의 화목이다. 이 땅에 평화가 없음은 우리가 하나님과 화평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크리스마스는 "하나님과 죄인들이 화목하게 된다"라고 선포한다.

3) 두려워해서는 안된다.
성경에서 사람들은 하나님과 가까워질 때마다 병적인 불안과 두려움을 경험했다. 주님과 온전한 관계를 누리고 있다면 아무것도 두려워할 게 없다. 그분과의 관계가 끊어지면 우리는 두려움에 가득 차고 공포에 지배당하게 되었다.

4) 복음을 바라보라.
시간을 들여 복음의 메시지에 담긴 내용을 파악하면 그동안 당신 삶을 어둡게 지배하던 두려움이 사라질 것이다.
복음은 구주가 나셨다는 사실이다. 그분을 당신의 구주로 의지해야 한다. 우리의 삶을 그분께 맡길 수 있는 답은, 어린 아기가 능하신 그리스도 주라는 사실에 있다. 하나님의 전능하신 아들이 당신을 위해 철저히 통제권을 잃으셨으니 당신도 그분을 신뢰할 수 있다. 그 결과 두려움이 점차 무력해질 수밖에 없다. 크리스마스를 보라. 그분이 하신 일을 보라. 당신이 그것을 보고 깨닫고 마음에 새기어 생각하는 정도만큼 두려움이 물러가기 시작할 것이다.

결론
크리스마스의 의미는 우리는 하나님에게서 영적 빛과 깨우침이 왔다는 것, 우리가 은혜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어 화평을 누린다는 것이다. 일단 그분과 화평해지면 밖에 나가 다른 누구와도 화평해질 수 있다. 크리스마스를 통해 온 세상에 평화가 증대된다. 그리고 하나님이 인간의 속성을 입으셨다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이 크리스마스에 우리에게 주신 위해 한 선물이다.
"때때로 크리스마스의 기쁨을 누리지 못하는 이유는 그것이 너무 평범한 통로로 오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작아져 한 뼘 인간이 되신 신비"를 세상은 이해할 수 없다. 세상은 거창한 볼거리를 원한다.
크리스마스의 메시지도 평범하고 흔한 통로로 왔으나 세상은 이를 몹시 비위에 거슬려 한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고상한 행위와 성취로 시작되는 게 아니라 지극히 단순하고 평범한 행위로 시작된다. 바로 겸손히 구하는 일이다. 그러면 시간이 가면서 우리 안에 생명과 기쁨이 자라는데 역시 평범하다 못해 거의 따분한 실천들을 통해 자란다. 매일 순종하는 것, 성경을 읽고 기도를 하는 것, 예배에 참석하는 것, 그리스도 안의 형제자매와 이웃을 섬기는 것, 환난 중에 예수님을 의지하는 것 등이다. 기쁨의 통로가 평범하다 해서 거기에 구애받지 말라. 그 평범한 속에 복음의 비범한 풍요로움이 숨어 있다. 사실을 기억하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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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의 즐거움 (양장)
히로나카 헤이스케 지음, 방승양 옮김 / 김영사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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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에 힘쓰고 있는 모든 학도들에게 들려주는 용기와 가치 이야기이다. 겉으로 드러난 수치로 모든 것을 평가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무시할 수도 없다. 일본은 지금까지 28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그것도 과학 부문에 25명이 수상했다. 부러운 것은 당연하고 이웃 나라인데 그 비결이 궁금하다. 우리나라와 일본의 여러 상황적 차이점이 있겠지만 내가 생각한 것은 기초 학문 '인문학'이라고 본다. 학문의 기초는 인문학이다. 밥 벌어먹기 힘들다. 돈벌이 안 되는 학문이라고 등한시 한 때문이다. 저자 또한 자신이 수학자가 될 수 있었던 밑거름이 철학에 있었다고 한다.

"지금에 와서야 나는 비로소 수학에는 철학적인 측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수학 또한 그 출발점에서는, 사람이 생각하는 학문이 모두 그렇듯이 그 배경에 항상 애매모호한 철학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철학이 없으면 좋은 수학은 탄생하지 않는다."

"수학이라는 것은 최종적인 이론으로 만들어야 되기 때문에 문제를 자꾸 제한해 가고 정식화해야만 증명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수학에서도 그 출발점은 인간의 생각이므로 그 배경에는 항상 모호한 것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철학이라 할 수 있습니다. "

우리나라 소프트웨어 개발자 유석 문의 책 "프로그래머 철학을 만나다"에서도 이와 동일하게 '철학'의 중요성을 얘기하고 있다. 그는 신기술이야 책과 온라인 자료 덕에 기술적 해결책을 찾을 수 있지만, 기술과 달리 사람들 간의 상호작용에 있어서는 매번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그는 그 방법을 찾고자, 처세술과 심리학 분야 책을 열심히 탐독하였지만, 근본적인 원인을 이해하는 데 한계를 느꼈다고 한다. 그렇게 열심히 인문서를 탐독하다 눈에 꺼풀이 벗겨지듯이 해결의 실마리를 '철학'에서 발견했다고 한다. 필자는 협업에서 오는 개인과 조직 간의 상호작용의 어려움과, 개발자로서의 자세와 기본 소양, 실패로 인한 극복 방법으로 철학을 제시한다.

"심리학 분야에서 자주 언급되는 스토아철학 도서를 힘겹게 읽고 난 후 처음 깨달은 사실은 '사람 이구나'였다. 그동안 잘못되었다고,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모든 일이 사람이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고 필자 또한 그 안에 속해 있음을 처음으로 인정할 수 있었다."

" 소프트웨어 개발에서 개발자의 제안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고 개발자의 가치가 낮아지는 경우는 없다. 고객이 무리한 요구를 한다고 해서 개발자의 본질이 손상되지도 않는다. 개발자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 외부의 평가를 무조건 수용하거나 거부하는 대신 확고한 기준으로 평가하고 수용해야 한다. 확고한 내면의 지적 양심이어야 한다." 필자는 개발자로서 자기존중, '자존감'의 중요성을 첫째로 강조했다.

히로나카 헤이스케 또한 논문을 쓰면서 벽에 부딪칠 때마다 취했던 자세는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이라고 했다.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생각하는 힘이 그의 원동력이었다고 한다. 그는 어머니로부터 생각하는 기쁨과 생각 그 자체에 가치가 있다는 것을 배웠고, 친구들과의 철학적 대화를 통해서 깊이 생각하는 힘을 키웠다. 그는 자신 보다 월등한 인재들을 보면서도 자존심 상해하거나, 비교로 인한 열패감 따위에 자신의 감정을 소모하지 않는다. 비교 자체를 하지 않는다. 그와 자신의 차이를 인정하고 그보다 배 이상의 노력을 하면 된다고 쿨하게 말한다. 여기에서 우리와 일본의 차이가 있다. 공부와 학문 (연구)의 차이이다. 공부는 주어진 답을 이해하거나 정답에 빨리 도달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지만, 학문(연구)은 아직 정답이 주어져 있지 않은 문제에 도전하는 것이다. 아직 모범 답안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그 답이 타당한 것인지 확인, 증명하는 것이다. 빠른 성과를 낼 수 있는 공부를 강요하는 우리나라와 더디 가는 사고의 학문을 지향하는 일본의 차이. 일본의 과학이 하루아침에 뚝딱 발전한 것은 아니다. 오래전부터 서구 과학 배우기에 열을 올렸고 비교적 빨리 자신들의 표준으로 받아들였다.

이 책에서 저자 히로나카 헤이스케는 시종일관 자신은 " 뛰어난 노력가일 뿐입니다."라고 강조한다. 전혀 천재도, 똑똑하지도 않다고 말하지만 상당히 똑똑하다. 학문에 대한 열의와 배움에 대한 즐거움이 넘쳐나는 인물이다. 자서전인데 무겁거나 딱딱하지 않다. 술술 읽힌다, 영웅 찬양이 없다. 자신의 배움에 대한 기술을 후배들에게 전수해 주는 안내서 같다. 학문을 하는 사람들뿐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프로그래머 철학을 만나다" 와 같이 읽으면 좋을듯하다. 각자 다른 분야에서 인정받은 두 저자가 어떻게 후배 들게 조언을 해주는지 들어볼 만하다.

"느긋하게 기다리고, 기회를 잡을 행운이 오면, 나머지는 끈기이다. 나는 남보다 두 배의 시간을 들이는 것을 신조로 하고 있다. 그리고 끝까지 해내는 끈기를 의식적으로 키워 왔다. 끝까지 해내지 않으면 그 과정이 아무리 우수하더라도 결과가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두뇌가 우수하더라도 업적을 쌓지 않으면 수학자라고 말할 자격이 없다." - 학문의 즐거움 중 -

"교실에서 유능한 경우라도 실제 상황에서는 비참하게 파멸할 수 있다. 금욕이 중요하단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 절제할 수 있는 힘이 생기지 않는다. 괘락에 저항하여 절제를 실천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금욕을 깨우칠 수 있겠는가? 이기심과 탐욕에 저항하지 않으면서 공정하다 말할 수 있는가? 실제 용기를 내어본 적이 없는 경우 용기를 배웠다고 할 수 있는가? 습득한 지식은 훈련을 통해 내재화될 때에만 가치를 지니며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무손리우스 루프스/ 프로그래머 철학을 만나다 -

http://naver.me/FGpvEnW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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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사람은 고생해서 배우고, 지식을 얻으려고 하는가?
습득한 것의 극히 일부밖에 기억해 내지 못하게 되어 있다. 그런데나는 ‘지혜‘를 얻기 위해서라고 말하고 싶다. 배워 나가는 과정에서 지혜라고 하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살아가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것이 만들어진다고 생각한다.
이 지혜가 만들어지는 한, 배운 것을 잊어버린다는 것이 결코 손해만은 아니다. 예를 들면 일단 잊어버린 것을 필요에 의해 다시 한 번꺼내려고 할 때, 전혀 배워 본 적도 없고 들어 본 경험도 없는 사람과는 달리, 최소한 마음의 준비는 되어 있고, 어느 정도 시간을 들이면별 고생 없이 그것을 이해하게 되기 때문이다. 지혜에는 그런 측면이있다. 나는 그것을 ‘지혜의 넓이‘ 라고 한다.
더 나아가 지혜에는 대상을 깊이 살펴보는 ‘깊이‘ 라는 측면이 있다.
그리고 결단력을 유도하는 ‘힘‘ 이라는 측면도 있다.
그러므로 나는 ‘왜 배워야 하는가?‘ 라는 질문에 대하여, 이러한
‘지혜‘ 를 얻기 위해서라고 대답하고 싶다.
나는 이 책에서 학문하는 즐거움과 기쁨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한다. - P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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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김경일 지음 / 바다출판사 / 199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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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처음 읽은 때는 20대 한창 나이였다.
무릎을 치며 공감을 하였다. 모든 것이 유교 사상 때문이라 했다. 권위주의, 남녀차별, 서열 등에 상당한 반감을 가지게 되었다. 공자의 도덕은 '사람'을 위한 도덕이 아닌 '정치'를 위한 도덕, '남성'을 위한 도덕, '어른'을 위한 도덕, '기득권자'를 위한 도덕, 심지어 '주검'을 위한 도덕이라는 것이다. '힘 있는 자'와 돈 가진 자'를 위해 봉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왜곡된 권위와 도덕적 가치, 허풍으로 가득 찬 '대한민국'이 유교적 허세문화와 정치적 허세로 가득 차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 책이다. 그 때의 나는 이 책을 상당히 매우 좋은 책으로 평점 만점을 주었었다.

나는 자라면서 딸부자에 아들 하나있는 우리 집에서 차별을 느낀 적이 없었다. 오히려 남동생이 누나들 등살에 괴롭다고 했다. 학교를 다니고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남녀 차별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그것은 나의 착각 이었다. 예의범절로 포장된 횡포를 나는 알지 못했던 것이다. 무지였다. 초등학교 때 반장은 당연히 남자, 부반장은 여자였다. 출석부 이름도 남자가 늘 앞 번호였다. 당연한 거라 생각했다. 아니 당연하다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중학교 때는 복장 자유화였는데도 당연히 치마를 입어야 했다. 직장생활을 했을때 여자는 늘 먼저 출근해 책상을 닦았고, 커피를 탔다. 아무리 몸이 불덩어리여도 어른이 앞에 서계시면 얼른 자리를 양보해 드려야 했다. 선생님과, 선배, 상사의 말에 절대로 토를 달어서는 안 되었다. 이의 제기란 있을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고 보니 엄마가 딸 끝에 아들을 낳은 것도 유교 때문이었다. 할머니의 장손 타령에 굴복하신 것이다. 세월이 훌쩍 지나, 조정래의 대하소설을 몇 번 탐독하고, 김진명의 고구려를 읽으면서 문득 이 책이 생각이 났다. 구부(소수림왕)가 그토록 뛰어넘고 싶어 했던, 세상에서 사라지게 만들고 싶어 했던 공자. 그런데 다시 읽으니 그 때의 그 느낌과 똑같지는 않았다. 머리말을 제외하고 첫 장 부터 어?... 이런 내용이었나? 하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나의 기억의 오류.. 좋았던 부분만 고이 간직하고 있었던 건가? 그 당시 내가 어떤 부분에 끌리고 매료 되었었는지 궁금해 끝까지 붙잡고 찬찬히 읽었다. 내가 꼰대가 된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1부 한국인으로 사는 열 가지 괴로움이 나를 괴롭게 만들었다. 인생의 최고의 책이라 생각했던 내게 뒤통수를 쳤다.

" 정치인, 기자, 학자들처럼 민족과 민주주의를 열심히 외치는 집단도 찾아보기 힘들다. 그래서 찾아낸 우리들의 대안이 찬호와 세리, 그리고 릭 윤이지만 이것이 해답이 될까? 찬호의 스트라이크와 세리의 버디 퍼팅, 릭 윤의 미소에 일희일비하면서 손에 땀을 쥐어야 비로소 한국인인가? 그것이 나의 삶과 무슨 연관이 있는가? 그들의 개인적 선택에 대해 왜 우리가 '애국적' 박수를 쳐주어야 하는 것인가? 그렇게라도 해서 그들이 사실은 돈 때문에 나간 것이 아니고 국위선양을 위해서라고 자위를 해야 마음이 편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열등한 대리만족 때문일까?"

살짝 반감이 생긴다. 의도하지 않은 국위선양 맞다. 개인의 이익에서 온 어부지리 국위선양 맞다. 그러나 선한 나비효과를 일으킨 것 또한 사실이다. 과대한 찬양만 아니라면, 조금의 애국적 박수 정도야 쳐 줄 수 있는 일 아닌가. 대한민국이라는 인지도를 높였다. 그 덕분에 다른 선수들이 해외로 진출 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지금 박세리 키즈들이 LPGA를 휩쓸고 있으며, k-pop열풍으로 문화 수출에 의한 이익 또한 어마어마하다. 작가는 지금 이런 열풍을 보면서 아직도 박세리와, 박찬호에게 '애국적' 박수 보내기를 떨떠름하게 생각하실지 궁금하다. 그리고 또 하나는 백두산 천지를 보며 수많은 미사여구로 민족의 위대함을 노래하는 이들에게도 고깝게 말한는 것이다.

"산을 가다 보면 산이 있고, 산이 있다보니 폭포도 있고, 호수도 있음이 무에 그리 넋을 놓고 노래하며 민족 장래 모두를 부탁할 만큼 대단한 것이던가? 그것은 백두산 아랫마을 이도백하의 시작 언저리에서 더덕 몇 뿌리를 천년 묵은 약초라고 팔고 있는 허술한 장사꾼의 보따리만큼이나 우스꽝스러운 몸짓들이다. 신자유주의로 일컬어지는 새로운 흐름 속에 어느 한 지역 문화의 성스러움 이나 순수 가 그들만의 원시적 가치로 남아 있도록 놔두지 않는 그 흐름 앞에서 우리가 언제까지 우리 것은 좋은 것이여!를 외치게 될지는 참으로 의문이다."

이 책을 다시 읽으면서 감정과 생각이 왔다 갔다, 이랬다저랬다 혼란스러웠다. 1부를 읽을 때와 2, 3부를 읽을 때, 마지막 부분을 읽을 때의 마음과 생각이 달랐다. 왜 그런 것일까? 답은 맨 뒷장을 덮은 다음에야 알 수 있었다. 2부는 유교의 해악, 출발과 기원, 왜곡의 역사, 조상 숭배 의식의 기원에 대한 이야기이며, 3부는 한중일 삼국의 식칼과, 음식을 통해 문화 비교를하며 일본 찬양을 해댄다. 그래서 1부와 같이 3부도 반감이 생겼다. 중국은 좋게 말해서 다국적이고 나쁘게 말해서 다소 오만하다고 평한다. 그들의 주된 음식인 돼지볶음 '차오'를 빗대어 둔탁하고 불투명하며, 실체를 잡을 수 없다고 중국 문화의 정서를 비꼰다. 반면 일본에 대해서는 극찬을 한다. 뒤가 없는 일본인들의 진솔한 면을 '쓰시'에 빗대어 투명하고 정갈한 국민성이라 칭찬하며, 개인의 취향과 개성을 존중해 주고 발휘할 수 있는 문화성이라 극찬 한다. 그에 비해 한국의 '찌개'는 이름부터 몰개성, 억지가 가득한 음식이라고 한다. (잡탕찌개, 부대찌개, 섞어찌개) 김치와 된장 고추장에 대한 평도 영~.
마음에 안 든다. 맛에 변화를 전혀 줄 수 없는, 유연성이라곤 찾아보기 힘든 음식, 외부 변화에 대해 유달리 둔감하고 고집이 센 한국인 성격을 잘 나타내고 있다고 평한다. 같은 것을 두고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다른것 아닌가? 한국의 찌개를 두고 좋게 평한 글도 많이 읽었다. 작가는 그것도 민족주의를 앞세운 문화적 해석 이라고 말할 것이다. 가장 반감이 가는 것은 "일본을 용서 한다"는 단락이다. 뺨을 때린 놈은 때린 적이 없다고 우기는데 맞은 사람이 나서서 난 널 용서해 사랑해~~ 네가 가진것이 많기 때문이야 너에게 배우고 싶어 어떻게 하면 미개하지 않게 살 수 있어?라고 말하는 듯하다. 또한 일본이 6가야에 자신들이 지역 통치를 위해 '임나일본부'를 두었다는 주장을 완전 부정하기에 무리가 있다고 한다. 그 지역에 정말 '임나일본부'가 전혀 없었다는 기록도 없고, 완전히 백제나 신라의 통제를 받았다는 기록도 없기 때문이란다. 없다는 기록이 없기에 인정을 할 수 없다니, 기록이란 있는 것을 기록하는 게 아닌가? 작가는 애국적 역사풀이를 그만 두자고 한다. 그러면서 식민사관에 대해서는 함구하고 있다.

'주고받으며 때로 싸우고 화해하는것, 이것이 바로 문화다. 만일 우리가 일본에 건네준 문화의 일단면만을 가지고 일본을 문화적 속국으로 치부하려고 하는 한, 그건 우리가 일본의 강제 통치를 경험했기 때문에 부려보는 억지고, 또 다른 컴플렉스일지 모른다는 혐으로부터 자유스럽지 못하게 된다."

4부는 대한민국의 커다란 숙제 교육, 입시에 대해 다루고 있다.
학벌주의, 일류 지상주의를 유교의 뿌리에서 찾는다. 이 부분은 상당히 공감되는 부분이다.
5부는 결론 부분으로 유교의 오만을 벗어버리고 국가를 넘어 하나의 인류, 문화를 만들자고 말한다.
"한국인을 넘어서. 한국인의 문화가 아닌 사람들의 문화를 만들어보자, '유토피아를 꿈군다.' " 작가의 외침 이다.

외면적으론 유교를 비판하지만 내면은 민족주의를 반대하고 있다. 난 민족주의자 이다. "우리 민족은 하나"(혈통적으로 하나를 말 하는 것 아님)라는 민족주의와 전체의 미래를 최우선으로 여긴다. 그러나 국수적 민족주의, 한국적 쇼비니즘은 아니다. 내 민족이 자랑스럽고, 민족을 강조하는 우리의 근성이 좋다. 이 민족의 근성이 없었다면, 그 수많은 중국과, 일본의 침략을 이겨낼 수 없었을 것이며, 일제강점기를, 6.25를, IMF를 금융위기를, 코로나를 이겨내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 민족만의 특유 근성이 나는 좋다.

"민족주의, 우리 사회 저층에 깔려 있는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민족주의적 정서가 오늘 이 사회에 공헌한 것은 무엇인가? 척화비의 주인공 대원군이 승리했는가? 사대부들이 일제의 침략을 효과적으로 막았는가? 해방을 우리 손으로 만들었는가? 남북을 이어노았는가? 전쟁을 막았는가? 민주주의를 발전시켰는가? 투명하고 건강한 경제구조를 만들어놓았는가? 무엇 하나 바꾸어본 일도 없고 올바른 예측 한번 변변히 해보지 못한 우리들이 여전히 우리 민족 만세를 외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이가? 귀 막고, 입 막고, 눈을 가린 채 '우리끼리 만세'를 부르면서 미래 사회를 운운해도 되는 일까? 정말 우리들은 도도하게 변하며 흐르는 세계적 흐름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 이 땅의 오피니언 리더라고 할 수 있는 정치인, 언론인, 학자들은 한통속이 되어, 민족주의 속에 마련된 기득권과 권위의 달콤한 꿀을 나누어먹고 있다." -p57-

저자는 본문에서 자신의 주장에 대해 "다양한 사회 현상을 유교라는 하나의 잣대로 매도하는 우를 저지르는 멍청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고 말 한다. 멍청이는 아닐지라도 한쪽으로 너무 쏠린 듯한 느낌은 어쩔 수 없다. 사실 우리 사회의 저변에 유교 문화의 특성이 두텁게 깔려 있음은 부인하지 않지만, 유교를 타파하기 위해 민족주의까지 부정하기에는 너무 멀리 간 듯하다. 작가의 주장처럼 "우리 사회에 더러운 부유물처럼 떠있는 목소리와 주장과 구호와 이념들 밑에 도사리고 있는 유교적 권위, 그리고 그것 앞에 엎드리는 타협, 그래서 만들어지는 불평과 불투명함들. 그 본질들을 해체하고 찢어내고 씻어내야 마땅하다.

"유교 문화의 내부에는 스스로를 붕괴시키는 모순이 내재되어 있다. 유교 문화가 내거는 가치 척도는 '도덕 사회'를 이상으로 내세우고 있다. 이상적 도덕 사회. '인'의 세계로 표현되는 이 사회는 절대적 인격체 '성인'에 기반하고 있다. 억지와 희망이 만든 착각의 세계였다."

"주로 정치적 사고에 익숙한 한국사회의 구성원들은 자신들의 삶을 다른 각도에서도 살펴보고 또 다른 삶의 지평으로 넓혀갈 수 있다는 면에 대해 대단히 무지하다. 이들은 그들의 삶 속에서 정신적, 문화적 독재를 획책하고 있는 지배자들(정치,경제,교육, 문화, 예술 등 모든 분야에 걸친)의 교묘한 통치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유교 문화 속에서의 '힘'은 단순한 이분법적인 관념을 기초로 하고 있다. 하늘과 땅, 남과 여, 왕과 백성, 부모와 자식들은 이 '힘'을 주고받는 이분법 체계 속의 대표적 존재들이다. 그리고 이 존재들 속에서 '힘'은 상하 수직의 루트를 따라 일방적으로 전달된다."

"문제는 '힘'의 사용이 상식과 법, 그리고 수성원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객관적 시스템 속에서 투명하게 이루어지지 않는 프로그램, 즉 유교 문화가 만든 권력 구조 속에서 발생했음에도, 다시 한 번 도덕으로 돌아가는 다시 유교 문화 속으로 스스로 기어드는 어리석음을 반복하는 데 있다"

20대 때와 지금 다시 읽었을 때 그 느낌이 다른 이유는, 아직 유교 문화의 흔적이 남아 있지만, 그래도 1990년대 보다는 훨씬 많이 유교를 지워냈다는 것이다. 책에서 작가가 주장해왔던 것들이 많이 이루어졌고, 그때는 상상하지 못했던 변화들이 있었다. 아, 그러고 보면 그 때 이 책이 쓰여진 덕분인가? (정말이지 끝까지 생각이 왔다 갔다하게 만드는 책이다.). 그 예로 언어의 변화와 효의 근본적인 의미가 바뀌었으며, 노인복지가 시스템화 되었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한번 굳어진 어휘에 대해서는 검증할 생각을 전혀 하지 않는다. 언어란 변하고 죽고 다시 태어나는 것. 따라서 시대에 맞는 언어를 늘 새로운 마음으로 골라 사용해야 하는 법. 언어란 사회 공동의 가치를 담는 그릇, 따라서 언어를 새롭게 해석하고 선택한다는 뜻은 바로 사회 고동의 가치를 담을 그릇을 다시 씻고 다시 만들어간다는 유연한 태도를 의미한다."

지금 21세기 아이들과 미디어에 의해서 얼마나 많은 언어가 새롭게 정의되고 만들어 졌는지 작가도 아실 것이다. 유교의 악습 또한 완전히 지워내지는 못했지만 계속적으로 지워 나가고 있다. 아니 지워져가고 있다고 해야 할 것 같다. 지금 세대는 유학을, 유교를 모른다. 그리고 일반 시민의 의견이나 여론을 대변하는 방법이 다양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이 책은 90년대 시점에서 읽으면 좋을 듯하다. 다소 진부하고, 올드하다는 얘기다.
개정판이 나왔으면 하고 바라는 책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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