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천국, 쿠바를 가다 - 세계적 의료모범국 쿠바 현지 리포트
요시다 타로 지음, 위정훈 옮김 / 파피에(딱정벌레)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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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관광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의료와 관광을 접목한 일종의 신개념 서비스인데 환자는 자신에게 맞는 의학기술을 찾아 다른 도시 혹은 다른 나라로 방문하고 치료를 받는 동안 새로운 곳의 관광, 휴양을 더하는 그야말로 ‘돈 있는 사람들을 위한 프리미엄 관광서비스’가 아닌가 싶다.

이 말을 처음 들었던 건 꽤 오랜 전 한국관광공사에서 잠깐 일을 할 때였다. 그 때 해외마케팅 부서에서 마케팅 관련 번역 자료를 찾고 번역하는 일을 했는데 내 기억으로는 태국과 싱가포르등이 의료관광에 선두를 달리고 있었다. 그런 그들의 관광사례나 마케팅 기법을 번역하면서 우리나라도 이런 의료관광이 발전했으면 좋겠다고 느꼈었던 기억이 지금 이 책을 읽으면서 어렴풋이 되살아났다.

지금은 우리나라도 이 분야에서 많은 발전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니 가깝기만 하면 쿠바로 의료관광을 가도 좋겠다싶다.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야 남미의 못 사는 나라 중 한 나라, 혹은 아직도 공산국가인 무서운 나라이겠지만 의료기술이 이만큼이나 발달한 곳이라는 걸 아는 이는 별로 되지 않을 것이다. 나 역시 그 중의 하나이고.

 

하지만 쿠바는 세계 어디에도 없는 독특한 백신과 의약품을 개발하고 수출을 통해 거대한 외화획득이 가능한 나라이고 이들의 의료서비스를 받고자 세계 각지에서 수많은 환자들이 방문하는 곳이다. 특히 수막염 B형 백신은 세계 유일의 백신으로 평가받았을 정도이다. 선진국보다 훨씬 싼 값에 전문치료를 받을 수 있다니 돈 없이 아픈 사람들에게는 이곳이 천국이 아닐까? 책 속에 나온 다른 예를 한 번 들어보자면,

1990년 어느 스페인 여성이 자동차 사고로 식물인간이 되었고 모든 의사들이 치료를 포기했지만 쿠바의 국제 신경회복 센터에서 수술과 재활치료를 받고 불과 2개월만에 걷고 말을 하였다하여 엄청난 화제를 모았다. 어디 이뿐인가?

쿠바에서는 현재 ‘기적의 계획’이라 불리는 안과치료 프로젝트가 시행중이다. 볼리비아, 브라질, 자메이카인 등 15개국 이상의 라틴 아메리카의 가난한 환자들이 특별기를 타고 아바나로 날아와 수술 후 눈이 보이게 되어 돌아간다. 심지어 별 다섯 개짜리 관광호텔까지 사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숙박비,식사비는 물론 입국 경비도 무료이다. 이 시기에는 돈이 있어도 이 호텔들을 이용할 수 없고 심지어는 있던 사람들도 퇴거명령을 받는다. 왜냐구? 이 가난한 환자들에게 먼저 제공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2005년까지 17만명 이상의 사람들이 이 프로젝트의 수혜자가 되었다.

정말 대단하다는 말 밖에는 나오지 않는다.

 

이들의 의료체계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의 것이고 그 기초도 무척이나 탄탄하다. 마을에서 환자와 함께 사는 패밀리 닥터 제도는 물론 외지, 빈곤하고 더러운 시골 촌 구석에서부터 실행되어지는 의료봉사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닌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그 위대한 탄생에 빛을 발한다. 소련이 붕괴하고 미국의 경제봉쇄로 엄청난 위기에 닥쳐왔을 때 조차도 그들은 의료와 복지부분에 대한 과감한 투자를 아까지 않았다. 군사비를 삭감했을지언정. 이러한 노력이 바로 지금의 세계적인 쿠바 헬스 케어 시스템을 완성한 데 힘을 보탰고 이 제도를 이해하고 잘 따라준 많은 의사들의 희생정신도 결코 작지 않다. 혼자서만 잘 사는 엘리트적 욕망을 누르고 다 함께 잘사는 인간적인 사회를 지향했던 그들의 소망이 너무 비현실적으로 들리기도 한다. 그들은 미국의 방훼로 아직 세계에 알려지지 않은 많은 의약품과 기술을 보유하는데 그것마저도 돈벌이에 급급한 수단으로 전락시키지 않았다. 새로운 백신을 만들어 전 세계에 판매하고 로열티를 받아 더 많은 최첨단 기술과 연구에 사용하지만 개발도상국에 대해서는 판매 로열티를 받지 않고 있다. 이유는 제 3세계 아이들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다.

 

“그렇게 정한 것은 제 3세계 아이들을 지키기 위한 우리의 싸움의 일부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아이들을 배려하지 않는다면 그건 미래를 염려하지 않는다는 말이지요.” p.102

 

해마다 300만 명의 아이들이 폐렴구군으로 목숨을 잃지만 미국산 백신은 4번의 투여량에 250달러나 한다. 이런 이유 때문에라도 쿠바는 값싸고 효과 좋은 백신개발에 몰두하는 것이다.

자, 어떤가? 이런 곳이 바로 쿠바라는 나라란다. 놀랍지 않은가 말이다.

 

물론, 이 나라가 이렇게 누군가의 프로젝트대로 수행되어 질 수 있었던 건 아직 공산국가이고 통제받는 국민이라는 점을 결코 무시할 수 없다. 우리가 나고 자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의료시스템이라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다. 게다가 앞으로 이 쿠바의 헬스케어가 언제까지 이어질 수 있는가에 대한 우려도 적지 않은데 그 이유는 옛날에는 혁명의 이름으로, 독재의 그늘에서 사회가 발전될 수 있었다면 지금 쿠바의 젊은이들은 너무 많이 글로벌화 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까놓고 얘기해서 해외관광객을 하룻밤 상대해 받는 접대비가 그들 한달치 월급을 넘기고 돈이 이 시대에 얼마나 중요한 지 모를리 없는데 그들이 언제까지고 국가의 통제를 받으며 자신들의 욕망을 잠재울 수 있겠냐는 말이다. 하물며 고급기술을 가진 의사들이 선진국들의 장밋빛 러브콜을 거부하기란 실로 어렵지 않겠나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쿠바가 자국은 물론 해외에서 봉사하며 수행해온 놀라운 업적들은 책을 읽는 내내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제 3국에 행하는 아낌없는 의료 원조는 물론 의사란 비즈니스가 아니라 생명을 살리는 직업이라는 생각을 기본으로 하는 의사들. 돈이 없는 학생들을 위해 무상으로 교육시키는 ‘라틴 아메리카 의과대학’의 정신은 인간의 생명을 다루는 의사라는 직업과 의료서비스에 대한 경외감마저 들게 한다. 삐까뻔쩍한 첨단시설을 배경으로 담당의사랑 1분도 채 대면하기 어려운 대형병원이 아닌, 다 녹이 슬어 삐걱대는 의자에 앉아 진료를 받더라도 내 손을 잡고 내 아픔을 진지하게 듣고 처방해주는 그런 인간적인 의사에게 치료받을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란 생각이 오늘따라 더 간절해진다.

 

La mejor medicina es la que previene. (최고의 의료는 예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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