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말엔 무슨 영화를 볼까?> 3월 3주
아카데미상의 시상식을 마친 이후, 최근 극장가에는 아카데미 상의 수상이력과 노미네이트 이력들을 들어 영화홍보를 진행하는 경우가 꽤 많습니다.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나탈리포트만의 블랙스완이 그랬고, 이 후 개봉한 크리스찬 베일의 파이터가 그랬죠. 그리고 이번주에는 남우주연상의 영광을 콜린퍼스의 품에 안겨준 킹스스피치가 극장가에 개봉했습니다.
독일의 히틀러가 그 세력을 확장하고, 그의 사상과 독일의 존재가 전 세계의 위협적인 존재가 되어가던 무렵, 영국에서는 국왕 조지5세가 사망을 하게 됩니다. 왕권의 서열순위대로라면 조지5세 이후의 왕좌는 그의 장남인 에드워드8세에게 넘어가게 되지만, 에드워드8세는 이미 이혼경력이 있는 미국의 여인 심슨부인과의 연애에 빠져 있는 상태였죠. 에드워드 8세는 왕좌와 연인을 두고 고민을 거듭하다, 끝내는 왕좌를 포기하고 사랑을 선택하게 됩니다.
에드워드 8세의 왕좌 포기로 인해 영국의 국왕자리는 차남인 조지6세에게 넘어가게 되는데요. 조지6세는 신경성 말더듬 증세로 인해 백성의 대변인이 되어야 하는 왕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중압감에 시달리게 되죠. 그는 이미 왕자시절부터 청중을 상대로 자신의 목소리를 내어야 하는 연설을 말더듬 증세 때문에 잘 해내지 못해왔고, 수 없이 많은 치료에도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해 전전긍긍해오고 있었습니다. 세계2차대전이라는 역사상 최악의 상황에 직면하게 된 조지6세, 왕으로서 그는 국민들을 독려하고 자신의 의지와 강건함을 알릴 왕의 연설을 준비해야하는데..
킹스스피치는 실존인물인 조지6세와, 그의 친구이자 언어치료사로서 그와 함께 한 라이오넬 로그와의 숨겨진 뒷 이야기를 다룬 영화입니다. 실제로 조지6세는 왕좌에 오를 당시 국민들의 신임을 잘 얻지 못하고 영국국민들의 걱정의 대상이 되었을만큼 심한 말더듬 증세를 겪었다고 하죠. 그는 왕으로서 자신의 위치와 자신의 역할을 잘 수행해내기 위해, 국민을 대신해 영국의 목소리를 내어야 하고, 이를 위해 제대로된 왕의 연설을 수행해내기 위해 언어치료사인 로그와 말더듬 증세를 고치기 위한 노력을 끝없이 했어야만 했다고 합니다.
콜린퍼스는 바로 이 영화에서 자신감을 상실하고 왕이 되기 싫었던 왕자 조지6세의 모습을 너무도 현실적으로 잘 그려냅니다. 왕자라고 해서 언제나 근엄하고 완벽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심리적인 압박과 고통에 시달리는 인간 그대로의 모습을 때로는 농담처럼 즐겁게, 때로는 진중하게 그려내죠. 수없이 많은 작품에서 영국인의 다양한 모습을 그려내왔던 콜린퍼스이기에 왕자 혹은 왕이라는 조금은 멀게만 느껴지는 작품속의 배역을 친숙하고도 따스하고 인간적인 모습으로 100% 훌륭하게 느낄 수 있게 해주기도 합니다. 영화는 한 나라의 국왕이기 이전에 무언가를 두려워하고 상처를 품고 있는 인간이기도 했던 영국의 한 남자의 모습 그대로를 콜린퍼스 속에 잘 녹여 보여주고 있습니다. 콜린퍼스=영국신사 라는 그간의 이미지를 잘 활용함과 동시에 콜린퍼스=인간미 넘치는 배우라는 느낌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영화라는 생각이 듭니다.
누구나 돌아볼 만큼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청년 도리언 그레이, 그는 어느날 헨리워튼 경이라는 다소 쾌락주의적인 삶을 살아가는 남자를 만나게 됩니다. 헨리워튼은 삶의 모든 것들을 즐기는 것을 중심으로 그려놓은 그다지 좋은 사람이라 할 수 없는 사람이죠. 하지만 그 순간까지 상대적으로 순수한 삶을 살아왔던 도리언은 헨리워튼경과 함께한 순간들에서 그동안 느끼지 못했던 새로운 즐거움과 쾌락의 맛을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도리언 스스로도 점점 쾌락주의적인 삶에 젖어들게 되죠. 아름다운 도리언을 아끼던 화가 바질은 도리언의 모습을 초상화에 담고, 도리언은 영혼을 팔아 자신이 점점 추하고 늙어가는 모습들은 자신의 몸이 아닌 그 초상화에 덮어쓰게 됩니다. 이제 도리언은 자신대신 늙고 추해가는 초상화 덕에 시간이 흐르고, 어떤 쾌락에 몸을 맡겨도 추해지지 않을 수 있게 된것이죠. 그렇게 시간은 흐르고, 도리언은 어느새 그 스스로도 자신의 초상화를 볼 수 없을만큼 타락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늙지 않고, 추해지지 않는 아름다운 도리언 그레이, 그러나 그의 실체인 그의 초상화는 갈수록 추하고 흉물스러워지고, 이제 그의 초상화는 그 누구에게도 보여줄 수 없는 도리언의 가장 은밀하고도 추악한 모습입니다.
도리언 그레이는 오스카 와일들의 장편소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을 영화화한 작품입니다. 저는 어린시절, 오스카 와일드의 동화 중 한권인 행복한 왕자를 아주 인상깊게 읽었던 기억을 가지고 있는데요. 때문에 오스카 와일들의 유일한 장편 소설인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이 영화화 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작품을 꽤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너무도 아름다운 청년 도리언의 타락해가는 과정. 그리고 자신의 추함과 노쇠함을 감추고 싶어하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바람이자 욕망을 영화가 얼마나 강렬하게 그려낼지 궁금했기 때문이죠.
하지만 이런 기대이외에도 이 작품을 기대하게 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그동안 언제나 젠틀하고 포근했던, 그리고 인간미 넘치는 역할을 주로 해왔던 콜린퍼스가 이 작품에서는 탐미적이고 쾌락주의 적인 삶을 살아가는, 그리고 도리언에게 그런 삶을 알려주는 헨리워튼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습니다. 뭔가 따스하고 부드러운 이미지가 있는 콜린퍼스가 연기하는 쾌락주의자라니.. 그가 어떤 모습으로 헨리워튼을 만들어낼지 너무 궁금했거든요. 그리고 콜린퍼스에 의해 도리언 그레이 속에서의 헨리워튼은, 지나치게 탐욕주의적이고 쾌락주의 적인 악인에 가까운 헨리워튼이 아닌, 그럼에도 뭔가 멈칫거리고 부족함이 많은, 악인이라기보다는 무언가에 쫓기듯 쾌락속에 자신을 숨긴 상처받거나 혹은 나약한 인간의 모습으로 재탄생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동안의 콜린퍼스와는 다른, 그러나 콜린퍼스만이 표현할 수 있는 그런 헨리워튼이 된 것이죠. 젠틀하고 단정한 콜린퍼스가 아닌 또 다른 모습의 콜린퍼스를 만나고 싶다면, 꼭 보아야할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학교수인 조지는 갑작스런 연인 짐의 죽음으로 모든 것들에서 의미를 잃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는 바로 얼마전까지 미래를 꿈꾸며 사랑을 확인했던 연인의 죽음 앞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무기력감에 시달리고 있죠. 동성애자였기에, 그들의 사랑을 찬란히 빛낼 수 없었던 조지. 또, 그런 그를 눈치채고 있던 그의 주변인들로 인해, 그는 외로움과 무기력함에 사람들의 의문에 가득한 멸시의 시선까지 견뎌내야 하는 상황에 놓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것은 분명 고통스러운 일이건만 그가 이성애자가 아닌 동성애자라는 사실 때문에 그는 마음 놓고 슬퍼하는 것 조차 쉽지가 않고, 조지에게 그런 세상은 힘겹기만 합니다.
16년간 삶을 함께해온 연인이 교통사고로 죽고, 그토록 사랑했으나 장례식장에도 참여할 수 없는 조지. 단지 이성이 아닌 동성과의 연인관계를 가져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인정받는 대학교수라는 사회적 지위를 가졌으나 그 어떤 것도 자유롭지 못했던 그는, 사회에서 그저 영원한 이방인이라는 소외감에 밀려나기만 합니다. 미국에서 살아가고 있는 영국인. 그리고 남들이 모두 가진 가족을 가지지 못한채, 연인도 잃어버리고 홀로 버려지듯 살아야 하는 그의 삶은 그래서 결코 행복할 수 없죠. 그가 바라는 것은 오로지 사랑하는 사람과의 교감과 행복이건만 그저 그가 동성애자라는 단 하나의 이유만으로 이제 그는 그 모든 것을 잃어버린채 남겨집니다. 막대한 부도, 거대한 권력도 원하지 않았건만, 그저 남들이 원하는 것처럼 자신을 이해하는 단 한명의 연인을 원하는 것 조차도 비난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조지. 싱글맨은 그렇게 지금보다 훨씬 보수적이었던 그 사회안에서 힘겹게 살아가던 게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그림처럼, 그리고 스틸사진처럼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콜린퍼스는 이 작품에서 연인을 잃어버린채 그 어떤 것에서도 기쁨을 느낄 수 없는 중년의 남자 조지를 연기하죠. 그간 따스하고 편안한 모습으로 정갈한 연기를 해내던 그가 동성애자의 모습으로, 차갑고 냉소적인 분위기에 휩싸여 세상을 향해 분노에 가까운 냉소적 시선을 내던지는 모습은 그래서 이 사람이 콜린퍼스가 맞는지 의심이 들 정도로 생소합니다. 하지만 이 생소함은 그가 이 영화에서 맡은 중년의 동성애자가 세상에서 느끼는 소외감을 더욱 절실하게 느낄 수 있게 하는 역할을 하기도 하는데요. 많은 대사도 없고, 역동적인 화면도 없는 이 영화가 많은 수상을 하며 콜린퍼스에게 여러 상의 영광을 안겨준것은 이 영화를 통해 콜린퍼스가 숨소리와 공기마져 연기의 한 요소로 만드는 능력을 갖춘 배우라는 것을 보여주었기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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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콜린퍼스는 오만과 편견, 브리짓 존스의 일기, 러브 액추얼리 등에서 조금은 어리숙하지만 젠틀하고 따스한 영국남자의 매력을 대표하는 배역을 많이 해왔습니다. 굳이 따지자면 그가 해왔던 역할은 정말 다양하지만 사람들의 뇌리에 가장 강하게 남아있는 모습들이 바로 이런 모습인것이죠. 아마도 관객들은 콜린퍼스의 모습에서 이런 느낌과 감동을 느끼기를 기대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하지만 이런 모습만으로 그동안 스크린을 채워왔다면, 콜린퍼스의 그 많은 수상경력은 아마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오히려 콜린퍼스가 관객이 그에게 기대하는 모습을 살짝 벗어났을 때 평단은 그에게 더욱 열광했죠. 킹스스피치나, 도리언 그레이, 싱글맨은 아마도 그런 류의 영화가 될 것 같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는 콜린퍼스는 아니지만, 그럼에도 콜린퍼스가 아니면 불가능했을 모습들을 그려낸 바로 그런 영화들 말입니다. 이 작품들을 보면, 왜 평단이 콜린퍼스에게 상을 주는 것을 아까워하지 않는지, 왜 수 없이 많은 영화제에서 그를 최고의 배우로 꼽는지를 느낄 수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