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말엔 무슨 영화를 볼까?> 3월 1주

이맘때 쯤이 되면 많은 극장의 개봉작들이 하나의 시상식을 거론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바로 전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영화인들의 상 아카데미 시상식이죠. 늘, 그래왔지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가장 주목을 받는 배우는 아마도 여우주연상의 수상자가 아닐까 합니다. 그리고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의 여우주연상은 우리모두가 그 이름을 잘 아는 배우 나탈리 포트먼이었습니다. 영화 '레옹'의 어린 소녀에서 그 얼굴을 알리기 시작해 언제나 연기 잘하는 똑똑한 배우로 많은 사랑을 받았던 나탈리 포트먼을 기어이 아카데미 시상식의 여우주연상에 올려놓은 영화, <블랙스완>은 어떤 영화였을까요?  

 

 아름다운 발레리나 니나는, 발레단 내에서 재능있고 아름다운 춤을 잘 구사해내는 촉망받는 솔로이스트입니다. 그녀가 소속된 발레단에는 이미 잘 알려진 유명 발레리나가 있지만, 그 발레리나는 이제 점점 나이가 들어 정점에서 내려와야 하는 위치에 서 있죠. 이제 그녀의 발레단은, 새로운 얼굴을 필요로 합니다. 더 아름답고 더 매혹적인, 그리고 더욱 재능있고 젊은 바로 그런 발레리나말입니다. 한 해의 공연을 시작하는 첫 공연에서 그녀의 극단은 저 유명한 <백조의 호수>를 공연하기로 합니다. 발레단의 새로운 얼굴이 될 주인공, 백조의 여왕은 바로 이 무대를 통해 탄생하게 되죠. 니나는 오랜 시간 이 시간을 기다려왔고, 이제 오디션을 통해 백조의 여왕이 될 순간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단장은 그녀에게 순백의 백조의 모습은 완벽하지만 매혹적이고 치명적인 흑조의 모습이 없다고 말하죠. 하지만 니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조의 여왕으로 무대에 설 기회를 얻습니다. 순백의 백조의 모습은 있지만 흑조의 치명적 매력이 부족한 니나, 니나는 완벽한 백조의 여왕으로 거듭나기 위해 스스로를 매섭게 혹사시킵니다.
 

 

<블랙스완>은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스스로에게 혹독하고 그 꿈에 집착하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결과를 가져오는가를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하지만, 니나의 모습이 그저 한 인간의 꿈에 대한 집착이라고만은 볼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녀가 왜 그토록 완벽한 백조의 여왕이 되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만 했느냐는 것이겠죠. 그녀에게는 오랜 시간, 자신을 위해 꿈을 포기했다 말하며, 그녀에게 자신의 못다 이룬 꿈을 투영하고자 하는 신경쇠약의 어머니가 있고, 끝없이 자신의 도발적인 면을 끌어내야 한다고 질책하는 단장이 있습니다. 그녀가 속한 발레리나들의 세상은, 언제나 누군가를 끌어내리고 그 자리에 올라서려 하는 또 다른 발레리나들이 넘쳐흐르고 있고, 그녀들은 제각각의 아름다운, 그래서 위협적인 모습을 가지고 있죠. 하지만 모순적이게도 니나는 이 모든 압박들을 이겨내기에는 너무도 유약하고 순수하게만 키워져왔습니다. 바로 그녀의 어머니에 의해서요. 이 모든 공포스런 압박을 견뎌내기 위해 그녀는 꿈을 향해 더욱 커다란 이상을 품고, 현실이 아닌 환상으로 도피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죠. 결국, 그녀가 꿈꾸는 백조의 여왕은, 그 모든 것들을 벗어던지고, 진정 자유로울 수 있는 단 하나의 도피처가 되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했습니다.

<블랙스완>은 나탈리 포트먼에게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이라는 명예를 안겨준 영화답게 그녀의 연기력이 빛을 발하는 작품입니다. 이 영화를 위해 그녀가 얼마나 발레리나로 거듭나기 위한 노력을 했는지는 영화의 도입부만 보아도 느껴질 정도이고, 영화가 진행되면서 혼돈과 고통속에 자신을 잃어가는 니나의 모습을 연기하는 그녀의 모습은 두말할 나위가 없을 정도이니까요. 마치 나탈리 포트먼이 아니면 안될 것 같은 영화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여기에 또 다른 영화적 재미도 함께 하는데요. 바로 이 영화의 도입부에 그녀의 두려움을 극대화시키는 역할을 하는 전직 프리마돈나 베티를 연기하는 위노나 라이더입니다. 위노나 라이더는 이 영화에서 눈에 잘 띄지 않는 역할이지만, 이 영화의 베티 역할은 그녀에게 마치 그녀의 현실처럼 잔인하게 잘 맞아 떨어지는 역할이기도 한데요. 한때는 전 세계의 미의 여신이었던 그녀가 이제는 새로운 주인공 나탈리 포트먼과 함께 연기하는 모습은 이 영화의 현실감을 더욱 더해주는 요소이기도 했습니다.
 

 

 

범죄자들 중 정신적인 질병을 앓고 있는 자들을 선별하여 수용, 치료하는 셔터 아일랜드라는 섬이 있습니다. 어느날 이 셔터 아일랜드에서 한 명의 환자가 사라지는 사건이 발생하죠. 테디는 셔터 아일랜드에 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파견된 보안관으로, 이제 처음 파트너가 된 척과 함께 셔터 아일랜드를 방문합니다. 사면에 모두 바다로 둘러싸인것도 모자라 가파른 절벽으로 이루어진 곳 셔터 아일랜드, 좁고 좁은 감방같은 수용시설에서 감쪽같이 사라진 여자 환자. 테디는 이 사건을 수사하며 셔터 아일랜드라는 섬에 대한 의문을 조금씩 가지게 됩니다. 수용시설의 모든 사람들과, 환경이 의심스럽기만한 테디. 이제 테디의 관심은 그저 사라진 여자 환자를 찾아내는 것을 넘어 그 앞에 거대한 미스테리로 다가오는 셔터 아일랜드에 대한 비밀입니다.

<셔터 아일랜드>는 사라진 환자로 시작하는 닫혀진 섬에 대한 진실을 파헤지는 줄거리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영화입니다. 그리고, 영화 속에는 알 수 없는 장치들이 갑자기 나타났다 사라졌다를 반복하죠. 뭔가 의문스럽기만한 섬 안에서 주인공인 테디는 자신이 맡은 사건보다는 점점 셔터 아일랜드라는 섬 자체를 의심하게 되고, 이 섬 안에 뭔가 커다란 음모와 비밀이 숨겨져 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영화가 종반에 다다르면, 이 모든 사실들을 뒤흔들다 못해 송두리째 바꾸어 버리는 엄청난 반전을 만나게 되죠. 영화의 80%는 셔터 아일랜드의 비밀을 파헤치는 테디의 미스테리 스릴러물로 흘러가지만, 이 마지막 반전으로 인해 이 영화의 성격은 완전히 바뀌어 버립니다. 개인적으로는 반전영화의 대명사로 불리우는 유쥬얼 서스펙트에 맞먹는 작품이라고 생각할만큼 충격적이고, 대단한 반전이기도 한 이 영화의 반전. 하지만 이 영화이 매력은 단순히 이 충격적인 반전 뿐만은 아닙니다. 이 반전마저도 뒤집는 또 하나의 반전이 영화 막바지에 희미하게, 그리고 애잔하게 남기 때문이죠.

반전과 반전을 거듭하는 영화들은 간혹 반전을 위한 반전이라든지, 혹은 너무 뻔한 반전들을 무차별적으로 배치해 영화의 재미를 깎아내리는 부작용을 가지기도 하지만 셔터 아일랜드의 반전들은 이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와 의미들을 다시 생각하게 할만큼 충격적이기도, 혹은 깊은 연민을 느끼게도 합니다. 누군가가 감당해내지 못한 상처와 아픔이 얼마나 인간을 고통속에 살게 하는지, 그리고 그 고통이 한 사람의 영혼을 어떻게 만들어버리는지를 보여주는 장치가 되어주니까요. 또, 때로는 모든 사람들이 말하는 정상이나, 보통, 평범의 기준이 아닌, 누군가에게 반드시 필요한 비정상이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합니다. <블랙스완>의 니나가 현실을 이겨내고 환상을 실현하기 위해 스스로를 망쳐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면, <셔터 아일랜드>는 현실이 고통과 두려움을 잊기 위해 자신만의 세상을 필요로 하는 누군가의 절실함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영화인 듯도 합니다.
 

 

 사람의 인적이 드문 어느 시골, 아름답고도 평화로운 풍경에 잘 어울리는 집이 있습니다. 언니 수미와 동생 수연은 이 곳에서 새 엄마와 함께 새로운 생활을 시작해야 하지만, 그녀들은 어쩐지 그녀들을 반기는 아름다운 새엄마 은주를 달가워 하지 않죠. 아버지는 그런 자매와 새엄마를 위해 적극적인 노력을 하지 않은 채 이 가족의 생활이 시작됩니다. 언제나 말이 없고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한 동생 수연, 그리고, 그런 동생을 이제는 엄마처럼 보살펴야 한다는 생각에 언제나 동생에게서 눈을 떼지 않는 수미, 두 자매는 그녀들만의 유대감으로 뭉쳐있는 사이 좋은 자매이지만, 그럴 수록 새 엄마 은주는 그녀들과 자꾸 어긋나기만 합니다. 신경이 예민할대로 예민해져버린 새 엄마 은주와 동생을 지켜내고자 하는 수미, 그리고 언제나 겁에 질린 동생 수연. 그들의 생활이 삐걱대고 불화가 생길수록 평화로워만 보이는 이 집에는, 그 아름다운 풍경과는 다른 괴이한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합니다. 

호러라는 장르답게, 시종일관 미스테리하고 은밀한 분위기를 풍기는 이 영화는, 앞서 언급했던 <블랙스완>이나 <셔터 아일랜드>와도 상당히 닮아있는 영화이기도 한데요. <블랙스완>의 니나처럼 현실과 환상을 구별하지 못하고 끝내는 그 혼돈 속에서 스스로를 고통속에 빠르린 소녀의 모습을 찾을 수 있다는 점에서 <블랙스완>과의 유사점을, 그리고 현실이 너무도 고통스러웠기에 그 사실을 부정하고 자신만의 세상을 창조하고 믿어야 했던 인간의 나약함을 그린다는 점에서 <셔터 아일랜드>와의 유사점을 찾을 수 있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했던 사람들을 잃은 소녀가, 그들의 자리를 위협하는 새로운 대상을 만나 경계하고 공포스러워 하는 모습, 그리고 그 공포와 상처들이 그녀를 무너지게 하는 모습은 영화가 끝난 후 꽤 강렬한 여운으로 남기도 하죠.

<장화홍련> 꽤 오래 전의 영화이지만 아직도 우리나라의 호러영화중에서는 꽤 좋은 작품성으로 회자되곤 하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으로 유명한 김지운 감독을 조금 더 관객과 가깝게 만들어준 작품이기도 하구요. 또 지금 보면, 임수정, 문근영이라는 현재 국내 최고의 여배우들의 어린 모습들을 볼 수 있는 추억이 있는 영화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언제고 생각나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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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스완>과 <셔터 아일랜드>, 그리고 <장화, 홍련>은 모두 미스테리 스릴러물의 형태를 띈 작품입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스스로의 집착과 욕망, 그리고 고통스러운 상처에서 결코 자유스러울 수 없는, 그래서 스스로를 던져버린 이들에 대한 연민과 동정이 깔려 있기도 합니다. 이 영화들은 영화가 상영되는 대부분의 시간동안, 위협적이고,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하지만, 영화가 끝나고 나면, 그렇게 스스로를 버림으로써 현실에서 도망가고자 했던 이들에 대한 아련함을 느끼게 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스스로를 옭아매고 압박하는 현실이나 상처, 고통들은, 이 영화들의 주된 분위기처럼 공포스럽고 위협적인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말입니다. 그리고 그 공포를 이겨내지 못한 인간의 나약함을 보여주었기에, 영화가 끝난 후 "이 영화 무섭다"가 아닌 "주인공에 대한 연민을 우선 느끼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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