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말엔 무슨 영화를 볼까?> 2월 2주
사랑은 언제나 수 없이 많은 문학과 영화, 음악의 소재가 됩니다. 지금까지 그래왔고, 아마 앞으로도 계속 그러할테죠. 너무 많은 이야기들이 사랑을 말하기 때문에 이제는 사랑이라는 소재가 진부하게 느껴져 버릴 지경이지만, 그럼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사랑을 꿈꾸고, 사랑을 하며, 사랑을 그리워합니다. 인류가 존재하는 한, 사람들에게 있어 사랑이란 영원히 풀리지 않은 숙제이자, 행복의 시작이기도 하겠죠.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말하고 꿈꾸는 사랑, 이제는 조금은 흔해진 사랑이야기이긴 하지만, 가끔 이런 생각도 하게 됩니다. "왜 모든 글과 영화와 음악들은 아름다운 남녀의 사랑만을 말할까?" 현실 속의 사랑이란 그것보다는 더욱 다양하고, 더욱 현실적이며, 때로는 잔일할텐데 말이죠.. 우리가 늘 말하는 사랑,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잊고 살았던 사랑의 잘 보이지 않았던 조각들도 분명 존재하긴 할 것 같습니다.
<그대를 사랑합니다>는 바로 그런 이야기들 중 하나입니다. 젊고 아름다운, 존재만으로도 그 빛을 발하는 싱그러운 청춘들의 꿈처럼 달콤하거나 극적인 사랑이야기가 아닌, 이제 황혼마저 지나 노년기에 접어든 머리가 하얗게 세어버린 한쌍의 노 부부와 또 한쌍의 노 연인들의 이야기. 하지만 그래도 그 어떤 젊음의 아름다움보다 더욱 깊고 진실된 사랑의 이야기 말입니다.
말 한마디 곱게 하는 적이 없는 까칠한 할아버니 만석은 새벽마다 털털거리는 오토바이를 타고 우유를 배달합니다. 그리고 한 동네에 살고 있는 송씨 할머니를 남몰래 좋아하고 있죠. 할머니는 가족없이 홀로 살아가고 있는 외로운 처지이지만 언제나 조심스럽고 만석 할아버지 눈에는 그야말로 이뻐 보이기만 합니다. 또 같은 동네에는 치매에 걸려 매일 그들의 추억을 잊어가고 있는 순이 할머니를 아내로 둔 군봉 할아버지도 살고 있습니다. 삶이 윤택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내보일것도 없는 가난한 삶의 노인들, <그대를 사랑합니다>는 우리가 가끔은 잊고 살고 있는, 그래서 그들에게 사랑이란 어떤 모습일지 가끔 고민해보려는 노력도 하지 않았던 그들만의 사랑 이야기를 이 두커플을 통해서 보여줍니다.
<그대를 사랑합니다>는 강풀작가의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가지고 있는 작품입니다. 웹툰으로도 이미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의 눈을 붉게 물들게 했고, 이어 연극으로도 호평을 받은 작품이기도 하죠. 강풀작가는 이미 많은 작품들이 그 특유의 탄탄한 스토리 덕분에 영화화 되었는데요. 사실, 영화화된 작품들이 그닥 극장에서는 큰 인기를 끌지 못했지만, 개인적으로 <그대를 사랑합니다>만큼은 그럼에도 기대를 하게 하는 작품이었습니다. 그만큼 웹툰의 여운이 강렬했고, 그 감동이 스크린을 통해 가득차리라는 확신이 있었던 작품이기도 했죠. 그래서 저는 이 영화가 정식개봉하기 전, 유료 시사회가 진행된다는 소식을 듣고, 듣자 마자 극장으로 달려갔습니다. 웹툰을 통해 보았던 그 여운과 감동이 스크린에서 어떻게 보여지는지 궁금했고, 그 감동 역시 다시 느껴보고 싶었거든요.
영화를 보고 난 소감을 짧게 말하자면, 정말 감동적이었습니다. 젊고 산뜻한 배우가 많이 나오지 않아도(이 영화에서 눈에 띄는 젊은 배우는 만석의 손녀로 출연하는 송지효 정도입니다.) 아름다울 수 있음을, 젊고 생동감 넘치지 않기에, 그 자리에 진실함과 담백함, 그리고 더욱 수줍고 깊이 있는 사랑을 채워넣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작품이 되었으니까요. 언젠가는 늙어갈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의 인생에서, 노년이 되어서도 아름다운 사랑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음을 보여주는 영화. <그대를 사랑합니다>가 바로 그 점을 보여주고 싶은 작품이었다면, 이 영화는 충분히 감동적인 영화가 되어 줄 듯 합니다.
<그대를 사랑합니다>가 우리가 잊고 지내는 노년기의 사랑에 대한 영화라면, 이 영화 <필립 모리스>는 우리가 알고 있지만 외면하는, 혹은 의식적으로 외면하려 하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바로 게이들의 사랑에 관한 이야기이죠.
가정을 이루고 정상적인 남자로서의 삶을 살아가고 있던 스티븐은 교통사고를 당한 이후 자신이 그 동안 숨기고 살았던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숨기는 것을 그만두려고 합니다. 아빠로, 남편으로 잘 살아온 스티븐이지만, 사실 그는 게이였던 것이죠. 게이로서의 삶을 살기 위해 그는 돈을 필요로 하기 시작합니다. 다행히 머리가 좋았던 스티븐은 점점 기상천외한 방법을 동원해 사기를 치고 그 돈으로 호화로운 게이의 삶을 살아가기 시작하는데요. 그러던 차에 필립 모리스를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돈은 내가 벌테니 너는 사랑하는 나의 연인으로만 남아다오!식으로 필립 모리스에게 애타는 구애를 하고, 결국 그를 연인으로 얻게 된 스티븐, 하지만 꼬리가 길면 밟히게 마련, 스티븐의 사기행각은 덜미를 잡히는데요. 사랑하는 필립 모리스를 떠나 살 수 없었던 스티븐은, 필립을 따라 감옥을 옮기고, 필립이 출소하자 끝없는 탈옥을 시도하기에 이릅니다.
<그대를 사랑합니다>와 비교하자면 <필립 모리스>는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방식이 꽤 다른 작품입니다. <그대를 사랑합니다>가 끝없이 소박하고 진지한, 그리서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노년의 사랑을 아름답게 전한다면, <필립 모리스>는 사랑하는 사람의 곁에 있어야 한다는 일념을 가진 한 남자가 사랑하는 이의 곁에 있기 위해 얼마나 무모해질 수 있는가를 때로는 어이없게, 때로는 즐겁게, 때로는 웃기게 보여주고 있는 영화이니까요. 하지만, 이 영화를 보다 보면, 정신없이 웃고 실소를 터트리면서 이들이 우리가 조금은 껄끄럽게 생각하는 게이커플임을 잊게 됩니다. 사랑이라는 감정 앞에 무방비 상태가 되고, 그 어떤 무모함이라고 기꺼이 보여주는 것. 게이들의 사랑 역시 이런 모습을 하고 있음을, 그들의 사랑도 남녀간의 사랑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조금 다른 방식으로 보여주는 것이죠. 게다가 이 영화, 실화라고 하니, 더욱 설득력이 있음은 물론입니다.
마지막으로 추천할 영화는 바로 <오아시스>입니다. 사실 <오아시스>는 굳이 설명을 하지 않아도 될 영화이죠. 그만큼 우리가 가끔은 잊고 있던 그들의 사랑이야기의 대표격으로 거론될만한 영화이기도 합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종두와 공주라는 이름의 두 남녀입니다. 종두는 이제 막 교도소를 출소한 후 가족들에게 돌아가지만, 가족들은 그를 사랑하는 품이 아닌 냉대로 맞이하죠. 그는 그야말로 가족에게 부담만 되는, 있으나 마나한, 때로는 없는 것이 더 나은 존재입니다. 공주는 중증뇌성마비를 앓고 있는 여성입니다. 그녀는 자신의 의지대로 몸을 움직일 수 없고, 때문에 언제나 홀로 남겨져 있습니다. 자신의 의지로 혼자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버려지다시피 남겨져 있는 것이죠. 어느날 종두는 우연히 공주와 맞딱드리게 됩니다. 각자 다른 이유에서이긴 하지만, 사회에서 버림받거나 혹은 사회에서 소외받는 이들, 종두와 공주는 그렇게 우리가 잊어버린, 혹은 잊고자 하는 사람들을 대표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사랑을 시작하죠. 뭔가 잘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고, 뭔가 정말 잘 어울리지 않는 것 같기도 한 이들, 하지만 분명 그것은 사랑이고, 그들은 사랑을 합니다.
오아시스가 영화 작품성이라는 측면에서 극찬을 받고, 아직까지도 훌륭한 영화로 기억되고 있는 것은, 어떤 이유에서건 사회에서 밀려난 사람들, 그 사람들에게도 여전히 감정이 존재함을, 그리고 그들 역시 매일 숨을 쉬고, 사람을 만나며 살아가는 우리와 같은 사람들임을, 종두와 공주의 모습을 통해 절절히 느끼게 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여기에는 연기력이라면 두말할 나위없는 두 배우의 열연도 한 몫 단단히 한 것이겠죠. 누군가에게 자의든 타의든 사회적 계층으로 구분을 지어내고, 그들을 소외시켜 버리더라도, 그들에게도 또한 사랑은 소중하고도 아름다운 것임을 오아시스는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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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끝없이 궁금해하고 꿈꾸는 바로 그 감정에 사랑이라는 하나의 이름을 붙여놓고는 있지만,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상인만큼, 그 사랑의 모습도, 그 사랑을 하는 사람들도 모두 같은 모습일 수는 없을 것입니다. 가끔은, 그들도 세상에 살고 있음을, 그리고 그들에게도 사랑이 소중함을, 그들도 우리처럼 사랑을 바라고 있음을 이 영화들이 조금씩은 보여주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