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기 문학A조 마지막 도서 <퀴르발남작의 성>
퀴르발 남작의 성
최제훈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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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책장을 한참 열중하여 넘기다가 다시 책 표지를 살펴보아야 했다.
<퀴르발남작의 성>, 최제훈 소설집.....???? 아...소설집.... 단편집이었구나...
어쩐지 살짝 아쉬운 기분이 드는 부분이었다. 무언가 더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을 줄 알았는데.. 퀴르발 남작의 성이라는 제목의 이야기가 이제 막 펼쳐지는가 싶었는데 그렇게 이야기가 마무리 되어 버렸으니 말이다.

보통은 책 표지부터 뒷쪽의 추천글까지 한 글자 한 글자 모두 읽고서야 첫 장을 펼쳐드는 것이 일반적인데, 왜 <퀴르발남작의 성>만은 무심코 소설집이라는 글자의 의미를 생각하지 못했던 것일까? 아마 소설집이라는 단어보다는 단편집이라는 단어에 더욱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어쨋든 <퀴르발남작의 성>은 그렇게 짧은 이야기들을 모아놓은 단편집이었고, 나는 그 사실을 책의 제목과 동일한 <퀴르발남작의 성>이라는 이야기를 모두 읽고 난 다음에야 깨달았다. 그리고 그만큼 이 이야기는 참 흥미로웠다. 이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더 펼쳐지리리라 생각했기 때문에,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러기를 기대했기 때문에 말이다. 이렇게 짧지만 재미있는 이야기를 쓴 작가의 단편집에는 무슨 이야기가 더 실려 있을까? 충분히 이야기를 끌어내려 했다면 더 많은 이야기를 쓸 수도 있었을 것 같은 소재를 이렇게 단박에 잘라내고 단편으로 정리해버린 강단있는 작가의 이야기들은 무엇일까? <퀴르발남작의 성>은 그렇게 <퀴르발남작의 성>이라는 제목과 동일한 하나의 이야기만으로도 충분히 기대를 하게 하는 시작을 열고 있었다.

<퀴르발남작의 성>에는 총 8편의 짧은 이야기가 담겨져 있다. 소재도 모두 다르고, 주인공들의 국적도 다른 이야기들, 때로는 아주 오래 전에 내가 한번쯤 들어보았던 것 같은 주인공이 출연하기도 하고, 때로는 바로 나의 이야기처럼 어딘지 모르게 데자뷰현상이라도 일어날 것만 같은 묘한 느낌을 주는 이야기이기도 한 이 8편의 이야기들은 모두 제각각인듯 보았지만 모두 하나의 시선을 유지하고 있기도 한, 그래서 끝을 알 수 없고 끝이라는 것이 원래 존재하지도 않는 것 같은 우리가 사는 세상처럼 알 수 없이 얽히고 섥힌 이야기 같다는 생각을 하게 하기도 했다.

이 8편의 이야기 중 특히나 맘에 들었던 이야기는 바로 첫 장을 장식한 <퀴르발 남작의 성>과 그리고 영화 아이덴티티의 주인공을 앉혀놓고 쓴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그림자 박제>이다.

<퀴르발 남작의 성>은 퀴르발 남작의 성이라는 제목의 영화를 놓고, 영화사적인 측면을 주로 다루는 강단의 대학교수와, 영화를 만들었던 제작자와 배우, 또 이 영화를 리메이크 했던 또 다른 작품을 놓고 서로 비교하는 블로거와 실제 이 이야기들의 배경이 되었던 실존인물이라는 각자 다른 인물들을 놓고 그들이 말하는 퀴르발 남작의 성이라는 이야기의 실제와 그들이 각자 내리는 평가에 대한 차이를 보여준다. 퀴르발 남작의 성이라는 하나의 매게를 놓고 모여있는 이들이지만 각자 다른 세상에서 각자 다른 위치를 가지고 하나의 대상을 분석하고 평가하는 이들의 말들은, 읽으면 읽을 수록 이게 과연 하나의 이야기를 놓고 하는 평가와 회상이 맞는지 의심을 할만큼 서로 상이하다. 결국 <퀴르발 남작의 성>은 때로는 모두 같은 대상을 높고 관찰한다 하더라도 사람들은 자신의 입장과 위치에 비추어 모든 것들을 평가하고 각자의 의미를 부여한다는, 또 그래서 결국엔 그 대상의 진실과는 전혀 상관없는 또 다른 진실을 만들어내기도 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림자 박제>는 살짝 언급했던대로 다중인격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 자신의 다중인격에 대해 설명하며 자신이 실제로는 다중인격이 아니라고 항변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작품.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멍키스패너로 사람을 죽이고 잡혀온 후 상담실에서 자신이 다중인격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다중인격이 아니라며 자신이 여러 사람들의 인격을 가지게 된 과정들을 설명한다. 각자 다른 인격들이 공존하지만 완전히 분리되어 서로의 기억을 공유하지 못하는 해리성장애가 아니라 모든 것들을 기억하고 실제로 제어할 수도 있다고 말하는 주인공. 하지만 그는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이 만들어낸 인격들에 의해 지배되기 시작하고, 자신이 그토록 믿고 있던 다른 인격에 대한 제어능력 또한 상실되어 해리성장애를 자신 사람들처럼 자신조차 알지 못하는 또 다른 인격의 존재까지도 만들어내는 환자가 되어간다. 또 이 모든 이야기조차 뒤집을 수 있는 하나의 반전까지도 품은 채 말이다. <그림자박제>는 그래서 돌고 도는, 이야기의 순환, 진짜 이야기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자꾸만 혼돈하게 하는 재미를 보여주고, 이런 이야기의 흐름은 영화 아이덴티티를 연상하게 한다.

그 외에도 <그녀의 매듭>이라든지 <마녀의 스테레오 타입에 대한 고찰>등, <퀴르발 남작의 성>에 실려있는 8편의 이야기는 각자 다른 소재를 가지고 독특한 즐거움을 만들어내는 매력을 갖추고 있다. 여기에 <쉿! 당신이 책장을 덮은 후...>라는 마지막 이야기에서는 작가의 유머를 엿볼 수 있는 기지와 위트까지 곁들여 말이다.

모두 다른 주인공과 조금씩 다른 소재를 다루고 있기는 하지만 <퀴르발 남작의 성>에 실린 이야기들이 담고 있는 이야기들에는 한가지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점들도 있긴 하다. 바로 시선의 변환이다. 남들이 이미 만들어놓은 고정적인 시선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들의 시선에서 투영된 결론을 그저 읽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 다른 사람들이 각자 만들어낼 수 있는 시선. 그 시선이 이야기를 조금 더 다채롭고 흥미롭게 만든다는 바로 그 점 말이다. 그래서 때로는 유쾌하게, 때로는 바로 당신 곁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처럼 들리는 현실성을 곁들여 만들어낸 이 이야기들을 통해 단순한 읽는 즐거움 이외에도 모두가 가지고 있는 각자의 시선이라는 하나의 단어를 얻을 수 있다는 것 또한 <퀴르발 남작의 성>이 주는 또 하나의 즐거움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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