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들으려면 내 목소리를 낮춰야 한다. 판단을 뒤로하고 자세히 살펴보는 것은 의외로 어려운일이며, 그렇기에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치 있는 일 중 하나다. 무언가를 보고 더 많이 느끼는 사람은 더 많이 생각한사람이고, 더 많이 생각한 사람은 더 많이 보는 사람일 것이다. 더 많이 보는 사람은 여러 입장을 모두 보는 것이나다름없으므로, 자신이 살아보지 않았던 삶까지 살아볼 수있다. 그렇게 하면 우리도 유일한 사람이 될 수 있겠지. - P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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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부모에게 기쁨을 주는 만큼 실망도 안기며 자란다. 부모의 기대는 언제나 과도하고 자녀의 생각과는 어딘가 조금씩 빗나가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한 인간이 주체적인 존재로 성장하는 데는 이 같은 부모와의 투쟁이 꼭 필요하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과도한 억압을 받아 내면의 목소리를듣는 데 실패하면, 그는 어른이 되어서도 상대의 말을 잘들어 착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는 것에 집착하게 된다.
사람은 인생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선택지 앞에서 어떤식으로든 대응해가며 성장한다. 자신이 선택한 것에 대한 책임을 배우며 성인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소위 ‘착한 사람들은 남들의 눈치를 보느라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를잊어버린다. 착하기만 한 사람들은 인생의 선택권을 자신에게 주는 것이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자신과 관련된 문제에서조차 방관자의 자세를 취한다. 진로, 취업, 결혼 같은중요한 결정조차 마찬가지다. 내가 온전히 선택한 것이 아니기에 잘못되면 포기하는 것도 빠르고 남 탓을 하는 데도익숙하다. 주인공이 아닌 관찰자로서 살아가는 것이다.
착하다는 평가에 집착하는 사람이라면 자신이 진짜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는 습관을 가지길 권한다. 주변에 그런 사람이 있다면 "항상 양보하지 않아도, 네 주장을 펼치더라도 미움받지 않는다"라고 조언해주기를 바란다. 그런 훈련을 하려면 좀 미움받으면 어때? 모두에게 사랑받을 수는 없는 거니까‘ 하고 애써 담대해질 필요가 있다. 착해지려고 애쓰지 마라. - P46

우울의 증세는 여러 모습으로 나타났다. 의욕이 사라져 세상에서 사라지고 싶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음식을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꾸역꾸역 먹기도 했다. 또 우울감은 다른사람에 대한 적대감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자신에 대한 불만족이 타인과 세상에 대한 화로 번진 것이다. 다른 사람의동기를 비꼬아 생각하는 경향이 강해졌고, 특정인에 대한분노가 커지기도 했다. 피해의식이 발동해 다른 사람들의행동과 말을 부정적으로 해석하는 바람에 인간관계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그런 상태가 지속되면서 다른 사람의슬픔에 공감하지 못하는 경우까지 생겼다. 누군가 힘들다고 하면 ‘너만 괴롭냐? 나도 괴로워‘, ‘겨우 그런 걸로 힘들다고 해?‘ 하는 마음이 욱하고 드는 것이다. 자신의 힘겨움에 압도되어 남의 상태를 제대로 알아줄 심적 여유가 없다는 증거다.
이런 마음의 감기들을 평소에 잘 살펴야 한다. 그리고 문제가 생겼다는 낌새가 보이거든 잠시 쉬어 가야 한다. 요새 나는 체중을 재듯 주기적으로 내 마음의 상태를 지켜본다. 상태가 나쁠 때 단적으로 나타나는 증상은 자꾸 화가나고, 별것 아닌 일에 과하게 의미를 부여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증상이 보이면 일을 좀 줄이면서 사람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을 최소화한다. - P80

이제는 패기 있게 "아무것도 안 하면 어때?", "쓸모없으면 어때?"라고 대답할 준비를 했더니 사람들이 더는 묻지 않는다.
우리 엄마가 4대 독자인 내 남동생을 낳고 "건강히만 자라라"라고 했던 것처럼, 사는 데 거창한 이유가 필요한 건아니다. 사회는 무책임하게도 개인에게 존재의 가치를 스스로 증명하라고 떠넘기고 개인은 새파래진 얼굴로 우물쭈물 답을 찾고 있는데, 그러지 않아도 충분하다고 말해주고 싶다. 반대로 생각하면, 별 쓸모가 없는데도 살아 있으니 더 대단한 일 아닌가. 그러니 다른 사람 눈치 보지 말고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 살았으면 좋겠다. - P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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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너무 관심 받고 싶었어."
평생을 의심병에 갇힌 고독한 킬러 박두경은 누나를 외롭게 했다. 그래서 누나는 기이하게도 사이코패스이면서도, 살인보다 관심받는 게 좋은 기행종으로 자란 것이다. 그리하여 누구든 자신에게 관심을 갖게 하기 위해 무슨 짓이든 서슴지 않았다.
"죽이면 나한테 관심 가져줄 사람이 없는 거잖아."
누나는 사탄이었다. 주기도기문에도 ‘저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누나는 쉬지 않고 다른 사람을 시험에 들게 했다. 그래서 이전에 입양된 애들은 지쳐 나가 떨어져 제발 파양시켜 달라고 한 것이다.
"저 괴물이랑 같이 살 수 없어."
입양된 애들은 이렇게 말하고 이 집을 떠났다.
살인할 사람을 한 명 골라달라는 것도 나로 하여금 파양 생각을하지 못하게 하려고 정신 사납게 하려고 끊임없이 관심 끈 것이었다. 그런데 정말로 김 씨 아저씨는 죽어버렸고 겁이 없고 낙천적인누나는 진실이 밝혀질 거라 믿으며 구치소에서 꿀잠을 잤다.
"맙소사."
나는 그 자리에서 주저앉아버렸다. 나는 이 사탄 같은 누나에게서 정이 뚝 떨어져버렸다. 누나는 나의 처분을 기다리는 사람처럼 안절부절못했지만 나는 누나를 봐주고 싶지 않았다.
"누나는 내 마음에서 사형이야!"
그게 누나의 진실에 대한 내 대답이었다. - P219

한시가 급했다. 박두경은 출소했고 누나는 ‘내면리 사이코패스소녀‘로 어디에 사는지 언론에 알려졌으니까. 킬러 박두경이 누나를 찾아내는 건 일도 아닐 것이다.
그 전에 가야 했다. 그 전에 가서 누나를 지켜야 했다. 누나는 사고뭉치 사이코패스니까. - P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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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있었으면 하는 거. 미워하는 건 없었으면 하는 거고, 사랑하는 건 있었으면 하는 거야. 나는 남자친구가 있었으면 좋겠어. 그러니 내가 남자친구를 사귄다면 그 남자친구를 사랑하는 걸 거야. 있었으면 하는 남자친구가 생긴 거니까."
"그럼 누나는 김 박사님이 미웠어? 없었으면 하고 바란 거야?"
누나는 우물쭈물 말을 하지 못했다. 나는 중요한 물음을 던졌다.
"누나, 나는 있었으면 좋겠어?"
"응."
"그러면 누나는 나를 사랑하는 거네?"
누나가 나를 사랑한다고 생각하자 마음 한편에서 안심이 되었다.
누나가 나를 사랑하는 한 죽일 염려는 없을 테니까 말이다. 그러나 내 입꼬리가 올라가기도 전에 누나는 이런 말로 나를 실망시켰다.
"하지만 그건 너 하기에 달렸어. 있었으면 좋겠거나 없었으면 좋겠는 마음은 순간순간 휙휙 바뀌거든. 나는 동네 떠돌이 개 순돌이가 귀엽다가도 한 번씩 짖으면 죽여버리고 싶거든. 모든 건 너 하기에 달려 있어."
그러니까 누나 말은 내가 동네 개 같은 존재라는 것이었다. 나는불쾌하지 않다. 조금도 불쾌하지 않다.
애써 나 자신에게 주문을 걸었다. - P31

‘죽일 사람 급구‘
누나한테서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당연했다. 대놓고 누구를 죽일지 점찍어 달라니. 그러나 나는 선택하지 않으면 안 될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누나가 이렇게 말했기 때문이다.
"한 사람을 골라 안 정하면 네가 죽어."
영혼이 사마귀 같은 누나가 잡아먹을 문제적 인간을 골라내지 않으면 내가 희생양이 되어야 한다니.…… 이보다 불공평한 불평등 조약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그러나 세상 모든 문제의 기원은 인간관계에 갑을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누나와 나 사이는 누나가 갑(甲),
내가 을(乙)이다. 이 말인즉슨, 나는 무조건 누나의 말을 따라야 할 처지에 놓여 있다는 걸 뜻했다.
- P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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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결과, 이처럼 고아원에서 가장 매력 없는 나이인 중학생에 이른 것이다. 입양을 하러 오는 사람들은 어린아이일수록 좋아한다.
어릴수록 새 가정에 잘 적응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머리가 큰 아이들은 도무지 입양하려 들지 않는다. 그러니까, 나는 유통기한이 지나서야 팔리려고 작정하는 우유 한 팩이 된 것이다.
"날짜 지난 우유는 아무도 안 사려고 하겠지?"
내가 슈퍼 냉장고에서 날짜 지난 우유 팩을 들고서 준우에게 물었다. 준우는 내가 고아라는 것에 편견을 가지지 않은 유일한 학교친구였다. 나는 준우의 소아비만을 눈감아주었고 준우는 내가 고아라는 사실을 눈감아주었다.
"그건 우유에 따라 다르지."
나의 물음에 준우는 특유의 커다란 안경을 손가락으로 올리면서말했다.
"평범한 우유라면 그렇지. 하지만 DHA가 풍부하고 비타민 A와엽산이 많이 든 특수 우유라면 날짜가 하루 이틀쯤 지났어도 사갈거야. 그만큼 특별하니까."
그 말을 듣고서 나는 결심했다. 특별한 우유가 되겠다고. - P9

"왜 하필 저인가요?"
나는 비련의 주인공 같은 얼굴을 하고서 물었다. 그러자 그들은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거의 동시에 이렇게 말했다.
"네가 제일 순해 보였어. 착해 보였고."
엄마 뱃속에서 있었던 열 달을 포함, 내가 15년 인생을 살면서 느낀 것은 ‘착하다‘랄지, ‘순하다‘라는 말은 칭찬이 아니라 모욕이라는것이다. ‘착하다‘나 ‘순하다‘는 말은, 내가 원하는 걸 해줄 것 같거나 해주는 사람에게 느끼는 감정이다.그러니까 그들은 나를 그들의 얄궂은 부탁을 들어주고 임무를 책임지고 완수할 사람으로 본 것이다. - P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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