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있었으면 하는 거. 미워하는 건 없었으면 하는 거고, 사랑하는 건 있었으면 하는 거야. 나는 남자친구가 있었으면 좋겠어. 그러니 내가 남자친구를 사귄다면 그 남자친구를 사랑하는 걸 거야. 있었으면 하는 남자친구가 생긴 거니까."
"그럼 누나는 김 박사님이 미웠어? 없었으면 하고 바란 거야?"
누나는 우물쭈물 말을 하지 못했다. 나는 중요한 물음을 던졌다.
"누나, 나는 있었으면 좋겠어?"
"응."
"그러면 누나는 나를 사랑하는 거네?"
누나가 나를 사랑한다고 생각하자 마음 한편에서 안심이 되었다.
누나가 나를 사랑하는 한 죽일 염려는 없을 테니까 말이다. 그러나 내 입꼬리가 올라가기도 전에 누나는 이런 말로 나를 실망시켰다.
"하지만 그건 너 하기에 달렸어. 있었으면 좋겠거나 없었으면 좋겠는 마음은 순간순간 휙휙 바뀌거든. 나는 동네 떠돌이 개 순돌이가 귀엽다가도 한 번씩 짖으면 죽여버리고 싶거든. 모든 건 너 하기에 달려 있어."
그러니까 누나 말은 내가 동네 개 같은 존재라는 것이었다. 나는불쾌하지 않다. 조금도 불쾌하지 않다.
애써 나 자신에게 주문을 걸었다. - P31

‘죽일 사람 급구‘
누나한테서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당연했다. 대놓고 누구를 죽일지 점찍어 달라니. 그러나 나는 선택하지 않으면 안 될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누나가 이렇게 말했기 때문이다.
"한 사람을 골라 안 정하면 네가 죽어."
영혼이 사마귀 같은 누나가 잡아먹을 문제적 인간을 골라내지 않으면 내가 희생양이 되어야 한다니.…… 이보다 불공평한 불평등 조약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그러나 세상 모든 문제의 기원은 인간관계에 갑을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누나와 나 사이는 누나가 갑(甲),
내가 을(乙)이다. 이 말인즉슨, 나는 무조건 누나의 말을 따라야 할 처지에 놓여 있다는 걸 뜻했다.
- P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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