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노든의 코와 귀는 자라지 않았다. 대신뿔이 있을 뿐이었다. 노든은 어렴풋이 자신이 코끼리가 아니라는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코끼리들은 노든의 코나 귀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무리가 따르던 할머니 코끼리는 이렇게 말했다. "눈이 멀어 이곳에 오는 애도 있고, 절뚝거리며 이곳에 오는 애도 있고, 귀 한쪽이 잘린 채 이곳으로 오는 애도 있어. 눈이 보이지 않으면 눈이 보이는 코끼리와 살을 맞대고 걸으면 되고, 다리가 불편하면 다리가 튼튼한 코끼리에게 기대서 걸으면 돼. 같이있으면 그런 건 큰 문제가 아니야. 코가 자라지 않는 것도 별문제는 아니지. 코가 긴 코끼리는 많으니까. 우리 옆에 있으면 돼. 그게 순리야." - P12
테스트가 하루 앞으로 다가왔지만 노든은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코끼리 고아원에 남고 싶은 마음과 바깥세상을 보고 싶은 마음 사이에서 갈팡질팡했다. 코끼리답게 생각하려고 노력할 때마다 그가 코끼리가 아니라는 사실이 더 분명하게 와닿았다. 코끼리로 태어났으면 모든 게 쉬웠을 것이다. 좀처럼 잠이오지 않았다. 그때 코끼리들이 긴 코를 천천히 흔들며 노든에게 다가와 말했다. "여기, 우리 앞에 훌륭한 한 마리의 코끼리가 있네. 하지만 그는 코뿔소이기도 하지. 훌륭한 코끼리가 되었으니, 이제 훌륭한코뿔소가 되는 일만 남았군그래." - P16
"원래 여기 있어야 하는 건 내가 아니라 윔보야. 엊저녁은 내가알을 품을 차례였어. 윔보는 내 왼편에서 자고 있었고, 그런데 윔보가 자리를 바꾸자고 했어. 윔보는 언제나 내 오른쪽에 있어야마음을 놓았거든. 내가 오른쪽 눈을 다쳐서 말이야. 그래서 윔보가 나랑 자리를 바꿔서 나 대신 알을 품었어. 평소랑 달랐던건 그것뿐이었단 말이야. 그런데 갑자기 큰 소리가 들렸어. 정말눈 깜짝할 사이였어. 오른쪽을 돌아보니까, 윔보가, 윔보가..………피투성이였어. 윔보는...... 커다란 철봉에 깔려 있었어. 알은 윔보가 몸으로 감싸고 있었던 덕에 무사했어. 나는 윔보의 품속에서 알을 꺼내서, 거기서 도망쳐 나왔어. 윔보는 아직 죽지 않았는데. 우리는 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했어. 윔보랑 눈을 마주쳤는데, 그게 다였어." 그날 밤, 노든과 치쿠는 잠들지 못했다. 노든은 악몽을 꿀까 봐 무서워서 잠들지 못하는 날은 밤이더 길어진다고 말하곤 했다. 이후로도 그들에게는 긴긴밤이 계속되었다. - P57
"날 믿어 이름을 가져서 좋을 거 하나도 없어. 나도 이름이 없었을 때가 훨씬 행복했어. 게다가 코뿔소가 키운 펭귄인데, 내가너를 찾아내지 못할 리가 없지. 이름이 없어도 네 냄새. 말투, 걸음걸이만으로도 너를 충분히 알 수 있으니까 걱정 마." "정말 내 냄새, 말투, 걸음걸이만으로도 나를 알아볼 수 있어요?" "그렇다니까" "다른 펭귄들도 노든처럼 나를 알아봐 줄까요?" "누구든 너를 좋아하게 되면, 네가 누구인지 알아볼 수 있어. 아마 처음에는 호기심으로 너를 관찰하겠지. 하지만 점점 너를좋아하게 되어서 너를 눈여겨보게 되고, 네가 가까이 있을 때는어떤 냄새가 나는지 알게 될 거고, 네가 걸을 때는 어떤 소리가나는지에도 귀 기울이게 될 거야. 그게 바로 너야."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나는 불운한 알에서 태어났지만 무척 사랑받는, 행복한 펭귄이었다 - P99
축축한 모래를 밟으며 나는 바다를 향해 걸어갔다. 내 앞의 바다는 수도 없이 부서지고 다시 일어서기를 반복했다. 두려웠다. 하지만 나는 내가 저 바닷물 속으로 잘 들어갈 것을, 모험을 떠나게 될 것을, 홀로 수많은 긴긴밤을 견뎌 내리라는것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긴긴밤 하늘에 반짝이는 별처럼 빛나는 무언가를 찾을 것이다. 어쩌면 언젠가, 다시 노든을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내 냄새, 말투, 걸음걸이만으로 노든은 나를 알아보고 내게 다가와 줄 것이다. 코뿔소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다른 펭귄들은 무서워서 도망가겠지만, 나는 노든을 알아볼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코와 부리를 맞대고 다시 인사할 것이다. - P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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