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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내라 브론토사우루스 스티븐 제이 굴드 자연학 에세이 선집 3
스티븐 제이 굴드 지음, 김동광 옮김 / 현암사 / 2014년 4월
평점 :
품절


 지금은 과학과 담을 쌓고 살지만, 나도 한때는 공룡소년이었다. 초등학교 때, <쥬라기공원>을 본 후, 공룡 관련 책들을 읽으며 공룡 이름을 줄줄 외우고 다녔다. 공룡에 대해 읽으면서 고생물 전반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하, 은, 주, 춘추전국시대, 진, 한, 위진남북조..."하고 중국 왕조들 이름을 외우면서, "선캄브리아대, 캄브리아기, 오르도비스기, 실루리아기, 데본기, 석탄기..." 하며 지질시대 이름을 외웠다.(삼국지와 쥬라기공원은 초등학교 때 내게 가장 핫한 컨텐츠였다.) 그 중에서도 캄브리아기의 할루키게니아라는 괴상한 생물에 관심을 가지기도 했는데, 7개의 다리와 7개의 촉수만으로 이루어진 그 특이한 모양새 때문이었던 것 같다.

 이 책의 6장 "공룡 광풍"에서 개탄하듯이 공룡에 관한 관심이 과학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중학교 올라가면서부터 생물 교과서에 공룡이 아니라 완두콩과 초파리가 나오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고등학교 때, 도서관에서 우연히 <생명, 그 경이로움에 대하여>라는 책을 읽게 되었고, 고생물학에 대한 감동으로 전율했다. 평소에는 근처에도 가지 않던 과학 서가에서 우연히 그 책을 발견했던 것은 아마 이 책이 캄브리아기의 버제스동물군을 다루고 있었고, 초등학교 때 꽂혔던 할루키게니아를 떠올렸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캄브리아기, 갑작스럽게 탄생한 다세포생물들은 오늘날의 어떠한 생물들과도 유사하지 않은 전혀 다른 종류의 생물들이었다. 역사의 테이프를 다시 돌린다면, 어쩌면 인류를 비롯한 포유류, 파충류 대신, 할루키게니아나 오파비니아 같은 괴상한 생물들이 오늘날 지구를 지배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책의 주장은 신선하게 다가왔고, 오늘날의 생태계가 현재와 같은 구성이 된 것은 순전히 우연의 결과라는 사실 그 자체가 일종의 "경이로움"을 느끼게 해 주었다. 과학서적임에도 불구하고 문과인 나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쓴 저자의 뛰어난 필력에도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과학글쓰기의 일인자로 불리는 스티븐 제이 굴드가 책의 저자였다.(<생명, 그 경이로움에 대하여>에 나오는 버제스동물군의 발견에 대해서는 <힘내라 브론토사우루스>의 16장 "미끄러운 경사로에서 나타난 문학적 편향"에도 간략하게 나온다.)

 굴드 자신이 가장 뛰어나다고 인정한 35편의 에세이들을 모은 이 책 역시 과학에 대해 잘 모르는 독자들도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게 쓰여져 있다. 왜 여자뿐 아니라 남자에게도 젖꼭지가 달려 있는가? 야구는 잘 알려진 것처럼 뉴욕주 쿠퍼스타운에서 탄생했는가? 히라코테륨이라는 말의 선조 동물의 크기를 묘사할 때, 왜 모든 미국의 과학교과서는 폭스테리어라는 듣도 보도 못한 개의 일종과 비슷한 크기라고 말하는가? 오리너구리나 가시두더지 같은 단공류(알을 낳는 포유류)는 태반을 가진 다른 포유류들에 비해 진화가 덜 되거나 열등한 동물들인가? 러시아의 무정부주의자 크로포트킨이 다윈의 적자생존이론을 비판한 건 단순히 그의 이상주의적 경향이 빚어낸 잘못인가? 1941년의 다마지오의 56경기 연속 안타 기록은 어떻게 가능했는가? '매료되었다(masmerize)'라는 단어의 어원이 된 매스머의 최면요법은 무엇이었는가?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은 이 책에 나와 있다. 언뜻 보기에는 과학과 별 관련이 없어보이는 야구 이야기나 타자기 이야기로부터도 생물학의 심오한 이야기를 자유자재로 풀어내는 저자의 글쓰기 능력은 독자들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하다. 하나하나가 보석 같은 이 에세이들은 두고두고 읽어야 할 것이다.

 굴드는 생물학이 수치의 엄밀함, 예측, 실험을 다루는 견고한 물리과학과 달리, 역사 속의 복잡한 대상을 다루는 역사과학이라고 부른다. 앞에서 나는 중국의 왕조 순서들 외우듯이 지질시대의 순서를 외웠다고 했다. 그런데 굴드 역시 의식적으로 인류의 역사와 지구의 역사를 유비시키고 있다.

 야구의 기원에 대해 논한 3장 "쿠퍼스타운의 창조 신화들"은 인류의 역사와 지구의 역사를 대비시키며 과학의 심오한 문제를 풀어낸 대표적인 에세이다. 1907년, 야구의 기원을 밝히기 위해 만들어진 위원회는 애브너 더블데이가 "1839년에 쿠퍼스타운의 양복점 뒤편에서 구슬치기를 하다가 그림을 그리고 경기 규칙을 설명했으며, 이 운동경기에 "베이스 볼"이라는 오늘날 사용되는 이름을 붙였다"(66,67)는 설을 채택했다. 이는 아무런 근거가 없는 이야기였다. 18세기 영국의 하류층을 중심으로 유행하던 다양한 공놀이가 19세기 전반 미국으로 들어왔고, 19세기 후반 오늘날의 야구로 확립되었다는 것이 굴드가 제시한 설득력 있는 설명이다. "쿠퍼스타운 신화"가 탄생한 이유는 1907년 당시의 위원회가 야구의 기원이 미국에 있고, 그 창시자가 남북전쟁의 영웅인 애브너 더블데이라는 설명을 애국적 관점에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여기서 굴드는 야구의 기원과 마찬가지로 진화의 역사 또한 연속적이며, 어떤 특정한 출발점과 원인을 찾을 수는 없다고 이야기한다. 굴드는 역사에 의미나 목적이 없다고 이야기한다. 예를 들어 17장 "밝게 빛나는 커다란 땅반딧불 애벌레"에는 17년간을 애벌레로 산 끝에 몇 주간 나무에서 울다가 죽는 매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렇다면 17년을 사는 매미는 어떤가? 매미의 애벌레가 영광스러운 며칠을 끈기 있게 기다리며 오랜 기간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지내는 것은 아니다. 애벌레는 지하에서 활동적인 삶을 영위한다. 물론 그중에는 긴 수면기도 있지만, 여러 차례 허물을 벗으며 왕성하게 성장하는 기간도 포함된다. (365,366)

 우리는 흔히 매미를 완성된 형태로 보고, 애벌레는 그 과정에 있는 것으로 보지만, 실제로는 애벌레도 매미 못지 않게 완성된 존재이며, 결코 매미가 되기 '위하여' 애벌레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역사가 우연의 연속이며, 의미나 목적이 없다는 굴드의 역사관은 영국의 보수주의 사상가인 마이클 오크셧의 역사관을 연상시킨다. 물론 이 책에서 오크셧의 이름은 전혀 언급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표현은 다를지라도 역사의 목적이나 의미를 부정하는 둘의 역사관은 비슷한 점이 있는 것 같다. 오크셧은 "우리는 출발점도 없고 목적지도 없는 한도 끝도 없는 바다를 항해하고 있으며, 우리의 유일한 목적은 평평한 배 위에 계속 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단선적 진보를 믿었던 E.H카는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이러한 오크셧의 역사관을 비판했지만, 오늘날의 포스트모던적 관점에서 보면, 오크셧의 관점에 일리가 있다.

 이러한 관점은 어찌 보면 허무주의를 조장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굴드는 아무런 의미나 목적 없이 우연의 결과로 나타난 역사 그 자체에서 역설적인 경이로움을 발견한다. 충분히 다른 형태가 되었을 가능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된 그 자체가 경이롭지 않은가, 라고 말하는 것이다. 굴드는 "한 가지 방식으로 모든 답을 얻기에는 세상은 너무 복잡하고 흥미롭다"(745)라고 말하며, 특정한 하나의 원리에 역사를 환원시키려는 시도를 반대한다. 그리고 현존하는 모든 것들의 다양성을 긍정한다. 굴드가 제시하는 다양한 생명들의 이야기가 매력적이고 아름답게 느껴진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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