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멩코로 타오르다 - 낡은 슈즈를 들고 찾아간 스페인에서의 1000일, 그리고 플라멩코와의 2000일
오미경 지음 / 조선앤북 / 2013년 12월
평점 :
절판


플라멩코라는 춤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다. 이름을 들어보기는 했지만 어떤 춤인지 잘은 모르겠고, 구체적으로 어떤 춤인지도 쉽게 감이 잡히지 않는다. 탱고, 왈츠 등 여타 다른 춤들의 이름을 들으면 그 춤이 연상되는 반면 플라멩코는 그렇지 않으니, 한국에서는 플라멩코가 작가의 말대로 낯선 장르이다. 모르는 장르여서일까. 이 책의 첫 느낌은 '모르겠다'였다. 그렇지만 제일 먼저 책의 색깔이 눈에 들어왔다. 정열적인 빨간색. 띠지를 벗겨내면 온통 빨간색인 책이 나를 반긴다. 책 색깔이 빨간색인 것과 플라멩코가 무슨 상관관계가 있는 줄은 몰랐지만, 이 책을 다 읽은 지금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빨간색은 플라멩코를 함축적으로 나타낼 수 있는 색인 것이다.

책의 첫번째 파트는 플라멩코에 대한 전반적인 이야기가 담겨 있다. 플라멩코의 A to Z부터 스페인의 어느 곳에서 어떤 플라멩코를 배울 수 있는지, 자신이 생각하는 플라멩코의 이야기, 그리고 자신이 플라멩코를 추면서 느꼈던 만났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까지. 두번째 파트는 스페인에 관한 이야기다. 물론 그 중 대다수는 플라멩코와 연관된 것이지만, 여행 에세이를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한번 읽어봄직한 '플라멩코 추는 여자의 스페인'이라는 시선이 꽤 신선하다. 그리고 마지막 세번째 파트는 우리나라에서 올린 공연에 관한 이야기.

 


작가는 플라멩코와 하나가 된 듯 보였다. 그녀가 쓴 글 모두에는 플라멩코에 대한 애정이 담뿍 담겨 있었고, 나처럼 플라멩코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을 위해 플라멩코에 대한 설명을 최대한 알기 쉽게, 이 춤이 어렵지 않다는 것을 알리려는 듯 글을 써 놓았다. 플라멩코의 매력을 도도함으로 표현하지 않고, 플라멩코를 만들고 향유한 집시의 이야기들을 담아 정서적으로 접근하려 했다. 그녀의 정서적인 접근은 플라멩코가 어렵게 다가오지 않는 큰 바람막이 역할을 했다. 집시의 자유로우면서도 한없이 쓸쓸한 느낌이 많이 전해져왔으니까. 직접 보지는 않고 책을 보면서 상상한 것 뿐이지만, 정열적인 춤인 것만은 분명하다.

 

플라멩코와 하나가 된 작가라면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작가의 모든 사고는 플라멩코로 귀결된다. 그 어떤 이야기를 보고 듣고 느끼더라도 결국에는 플라멩코로 연결되는, 요즘말로 '기-승-전-플라멩코 돋는다'라고나 할까. 이는 작가가 그만큼 자신이 하고 있는 플라멩코라는 춤에 대해 자부심을 갖고 있다는 얘기이기도 하고, 자신이 하고 있는 이 일을 즐기고 있다는 이야기도 될 수 있다. 여전히 스페인의 작은 지방에 있는 스튜디오에 찾아가서 춤을 사사받는 열정을 갖고 있으며, 한국에도 자신이 좋아하는 이 플라멩코를 좀 더 널리 알리고 싶어하는 마음도 있는, 말은 안되지만 '순수 플라멩코쟁이'.

헤매고 있는 사람은 무언가를 찾는 사람, 아무것도 찾지 않는 사람은 헤매지도 않는다.
'그래, 그리워만 하느니 한걸음 내디뎌보자.' (43)


플라멩코를 따라 예술혼에 불을 지피기 위해

작은 보따리를 메고 세비야로 모여든 학생들의 하루하루는

땀과 고독을 발효시켜 집시의 예술이라는 술을 빚는 과정의 연속이다.

언젠가는 우리의 향기로 이 골목도 취해가겠지. (97)

 


'땀과 고독을 발효시킨다'라는 표현과 마지막의 '언젠가는 우리의 향기로 이 골목도 취해가겠지'라는 말이 와 닿아서 줄을 그어 놓았었다.

자신의 노력과 열정을 술을 빚는 과정에 빗대어 표현한 이 단락은, 꽤 깊은 울림이 있었다.

 


모두가 일사불란한 정박자의 삶을 살 필요는 없지 않을까.

엇박자라는 파격과 반항. 그리고 긴장된 세계를 사랑한다. (114)

 

otra vez 오트라베스, 다시.

넘어질때마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툭툭 털고 일어나면서 '오트라 베스'. 어감도 왠지 마법의 주문 같지 않나요? (177)

 


'오트라 베스'라는 주문같은 단어를 알게 됐다.

작가가 적어놓은 것처럼, 아무일도 없다는 듯 툭툭 털고 일어나게 만들어 줄 것 같은 그런 주문.

감성적인 느낌의 단어라서 그런지, 아니면 내게 이 단어가 필요했던 것인지는 모르지만 꽤나 마음에 드는 단어임에 틀림없다.

집시들이 어떤 고통을 받았고 어떤 한이 있는지 그들에 대해 잘 모르는 내가 왈가왈부 할 수 없다. 하지만 작가가 자주 씻김굿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우리네 '한'의 정서와 닮아있지 않을까 상상했다. 무언가를 털어내고 떨쳐내고 앞으로 나아간다는 의미에서 씻김굿을 이야기하는 거라면, 플라멩코를 춤으로써 그들은 자신들의 아픔을 치유해 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플라멩코를 추면서 무아의 경지에 이르고, 그를 통해서 아픔을 잊는 일련의 과정들로 말이다. 책을 읽으면서 플라멩코와 어울리는 색깔은 붉은색이라고 생각했다. 정열속에 숨어있는 아픔의 정서도 갖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생각은 틀린 게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을 이 책을 덮으면서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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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목적어]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인생의 목적어 - 세상 사람들이 뽑은 가장 소중한 단어 50
정철 지음 / 리더스북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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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작가의 이름만으로 책에 대한 퀄리티를 의심않고 거침없이 집어들 수 있는, 나의 신용도 100퍼센트의 작가 정철. 내가 내 믿음 모두를 내어주는 몇 안되는 작가 중 하나다. 나는 그의 '생각의 재기발랄함'이 좋고, '꼬아서 말하기'도 좋고, '어이없는 피식 개그'도 좋다. 카피라이터,라는 그의 직업답게 그의 생각은 어느 하나 평범한 것이 없고, 그 평범하지 않음에서 뿜어져 나오는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들에 늘 격하게 공감하고는 한다. 그래서 서평단으로서 책을 선정하라 했을때 제일 먼저 이 책을 꼽아두었다. 마이 페이보릿 (my favorite)이라 자부할 수 있었으니까.

 

내가 작가 정철을 만난 것은 대학생때의 일이다. 그 때의 나는 도서관을 아주 자주 들락거렸다. 도서관에서 일하는 친구가 있어서도 자주 갔지만, 보고 싶은 책들을 모두 사서 볼 수 없는 주머니 사정때문에 늘 새로운 신간들은 학교에 신청했다가 입고 되면 제일 먼저 도서관에서 빌려봤었다. 어김없이 신청한 책이 들어왔다는 문자를 받고 향했던 도서관에서, '신간코너' 속 작은 책 한권- <내 머리 사용법>이었다. 그때까지는 내 책읽기는 소설에 한정되어 있었다. 가끔씩은 떠나고 싶은 내 마음의 염원을 담아 여행에세이를 보는 정도. 근데 이 책으로 인해서 좋아하는 독서 방향도 한가지 더 생겼다. 새롭고 신선한 시각이 가득한 책. 그래서 카피라이터나 창작활동을 했던 이들의 책들을 보면 다리를 멈추고 꼭 책을 들춰보곤 한다.

 

그렇게나 좋아하는 작가의 신작이라니!

나의 기대감은 최고조였고, 이 책은 내 기대감을 충족하고도 남을만큼의 이야기였다.

 

 

 

 

 

 

 

"죽는 날까지 가져갈 당신의 단어는 무엇입니까?"

책은 이 물음으로 시작된다. 당신에게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단어를 3개만 꼽는다면 어떤 것을 꼽겠냐고. 수천 명의 사람들이 선택한 여러가지 단어들이 정철의 생각과 만나 책에 펼쳐져 있다. 수천 명의 사람들이 보내준 단어들을 통계내서 제일 많이 선정된 44개의 단어들과 작가가 임의로 선정한 6개의 단어를 합한 총 50개의 단어들의 이야기. 

 

가족, 사랑, 나, 엄마, 꿈, 행복, 친구, 사람, 믿음, 우리, 열정, 너, 도전, 지금, 희망, 돈, 건강, 자유, 이름, 추억, 감사, 밥, 아버지, 여유, 웃음, 실패, 재미, 생각, 시작, 책, 마음, 여행, 변화, 다름, 배움, 만남, 일, 다시, 오늘, 왜, 보통, 휴식, 매력, 길 + 그러나, 굳은살, 자식, 술, 스무살, 그냥.

 

 

정철은 설문 결과에 대해 정리해 놓으면서 마지막에 이렇게 이야기 한다.

 

어떻습니까? 동의하십니까? 수긍이 가는 것도 있고 고개를 갸웃거리게 하는 것도 있을 것입니다. 상관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 단어들을 거울로 놓고 나를 비춰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만의 목적어를 찾는 것입니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넘기기 전에 말입니다.     - p.14

 

나만의 목적어. 이 단어들이 굉장히 무겁게 다가왔다. 평생의 모토로 삼을 단어를 고르기가 쉽지만은 않은 것 같다. 책을 다 읽어나간 지금도 단어를 고르기 쉽지 않다. 내가 욕심이 많아서일까.

 

 

 

 

 

 

 

가족에 관한 단어들, 자신의 주변에 관한 단어들이 많이 존재한다.

엄마, 아버지, 나, 너, 우리, 가족, 친구, 사람.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 관한 단어들이 순위에 있다는 것은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 아직까지도 우리는 가족이라는 카테고리를 중요시 여기고 있다는 의미가 되고, 이런 결과가 나온 것에 퍽이나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본문에 보면

 

세상에서 가장 큰 우산을 들고 있는 여자 엄마.

엄마를 네 글자로 표현하면, 미안해요

열두 글자로 표현하면, 미안하다고 말하지 못했어요.      - p.20~21

 

끝까지 아빠라 부르고 싶었떤 사람 아버지.     - p.214

 

우리는 이상하게 '엄마'는 영원히 '엄마'인데 어느순간 '아빠'는 '아버지'가 된다. 엄마와의 거리는 날이 가면 갈수록 줄어드는 느낌인데, 아빠와의 거리는 생각만큼 줄지를 않는다. 슬프게도 현재 아빠들의 마음을 대변하는 '아버지 사직서'가 아빠라는 단어의 카테고리에 들어 있다. 읽으면서 여러번 울컥했다. 현실의 아빠들이 느끼는 마음들이 고스란히,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 말들이 한가득 조곤조곤하게 적혀 있기 때문이었다. 가장 마음이 아팠던건 아빠라는 자리를 떠나면서 남기는 마지막 문장. "큰 의미는 없겠지만 한때 아버지라 불린 사람이 너희들 곁에 있었다는 것을." 여기서 마음이 팡 터졌던 것 같다. 그래서 그 아래에 손글씨를 적어 두었다. "아빠 딸이어서 행복해"라고 쑥스러워 평소엔 절대 전하지 못할 말을 말이다.

 

 

 

 

내가 가장 마음에 들었던 파트들이 나와 관련된 주변의 것들이라 그렇지 읽다보면 심하게 감정이입을 할 부분들이 꽤 된다. 작가는 별 것 아닌 것들로 사람의 마음에 있는 자물쇠를 여는 힘을 가졌다. 그래서 한순간에 무장해제가 되는 듯 했다. 그게 작가의 가장 큰 장점이기도 하고..

 

작가는 에세이를 계속 쓸 생각이라고 했다.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분야라서 그렇다고. 사물을 오래 두고 관찰하는 특성상 자신은 눈으로 글을 쓴다고. 눈으로 쓰는 그의 다음 글을 기대하며 다시 한 번 책을 편다. 생각했었으나 읽느라 미뤄뒀던 내 생각들을 조금 적어 넣고, 나도 관찰을 시작한다. 내 인생의 목적어, 무엇으로 정하면 좋을지.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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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를 위하여]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남자를 위하여 - 여자가 알아야 할 남자 이야기
김형경 지음 / 창비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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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한가득 적어뒀던 적개심이 가득한 리뷰를 싹 지워버리고 하얀 메모장에 다시 글을 써 내려간다. 리뷰를 다 써 놓고 나니 '정말 이 책이 그렇게나 남자들에 대해 안좋은 쪽으로 적은 책인가'란 생각이 들었고 내 리뷰에 대한 의구심이 들었다. 그래서 리뷰를 지워버리고 책을 다시 뒤적거렸다. 그래서 아까의 감정과는 한발자국 떨어져서 다른 쪽을 좀 더 들여다 보기로 했다. 분명 작가가 의도한 바가 내가 느낀 적개심은 아닐테니 말이다.

검색을 통해서 작가는 중년의 남성들에 대한 칼럼을 써 두었던 것을 모아서 책으로 냈다는 사실을 알게됐다. 그러니까, 이 책의 이야기는 모든 남성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작가 또래의 중년 남성에 대한 시선이라는 얘기가 된다. 가부장적인 가족 제도가 존재했을 때에 이루어진 생각들로 현재를 살아가는 중년에 대한 이야기. 이렇게 생각하니까 내가 가졌던 적개심을 걷어낼 수 있었다. (21세기의 남자들은 책 속의 이야기와 많이 들어맞지 않아 가졌던 적개심이었으니.)


적개심을 걷어내고 내가 포커스를 맞춘건, 태초부터 이어져 내려온 남자들의 어깨에 짊어진 그 책임감이었다. 세상이 많이 달라졌고 여자들의 사회진출도 늘어났건만, 아직까지도 남자들에게 가족을 지키고 보호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요구한다. (똑같은 일례로 여자들의 사회진출이 늘어났음에도 집안일을 도맡아 해야 하는건 여자에게 요구하는 또 다른 책임감일테다.) 그러나, 남자에게서 그런 책임감의 의무를 없애버리면 남자는 자신의 자존감을 잃어버린다고 '셔터맨'의 예를 통해서 책은 이야기한다. 그러니까 남자는 책임감을 놓을수도 그렇다고 안을 수도 없는 애매한 위치에 서 있는 것이다.


그리고 늘 경쟁심리에 내던져 있는 남자들은 경쟁에 관한 한 아주 작은 것 하나에도 반응하고 신나하며 특히 자신이 다른이보다 우월하다 느끼기를 좋아한다는 것. 혈연관계라 할지라도 형제에게 느끼는 경쟁심은 끝이 없을 수 있다는 것.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도 존재하는 경쟁심이라는 것. 즐겁게 읽었던 건 이런 것들 정도. 


"남녀간의 조화로운 관계를 위한 조언"이라는 책표지의 이야기는 대체로 찾기 힘들었다. 오히려 작가와 나와의 생각차이를 꽤 많이 느꼈다고나 할까. 우리는 여러가지 책을 통해서 찌질하고 슬프고도 아픈 이야기들을 많이 접해왔다. 이 책에서 내가 공감했던 부분들은 이미 익히 알고 있던 부분들이었으니까. 남자들 입장에서 공감하기 힘든 부분들이 책 속엔 존재하고 그로인해 책의 껄끄러움도 존재한다. 



태어날때부터 남자다움을 강요받았던 지금의 우리 부모님 세대들과 지금은 많이 다를 것이다. 그래서 어쩌면 부모님들은 하지 않았던 고민을 지금 우리 또래들은 해야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것들을 미리 안다고 해서 얼마나 인생에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다. 작가는 자신의 조카들을 위해서 책을 엮었다고 했는데, 그부분에 있어서는 조금 회의적이다. 허나, 단 한가지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은- 남자라고 해서 세상이 정해놓은 틀안에 너무 갇혀있지 않기를 바란다는 거다. 세상이 원하는 그 틀이 버겁다면 자신만의 방법을 통해 다른 길을 충분히 찾을 수 있는 시대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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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또 사랑을 미뤘다 - 생각만 하다 놓쳐버리는 인생의 소중한 것들
김이율 지음 / 아템포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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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하다. 미루고 나서 그 다음에 하는 것은 후회하는 것-

그래서 이 책을 읽고 처음 느낀 감정은 '후회하다'였다.

 

어제 본 <꽃보다 누나>라는 프로그램 속 윤여정씨는 인터뷰 도중 이런 말들을 했다. 자신은 지금 이 인생을 처음 살아 보는데, 후회 같은 것이 어떻게 남지 않겠냐고. 만약 두번째 살아보는 거라면 이렇게는 안 살았을거라고. 하지만 그 누구든 어떻게 살아가든 오늘은 늘 처음 살아가는 것이기 때문에 미래는 불투명하고 두렵기 마련이고, 그래서 후회가 남기 마련이라고. TV 화면을 보면서 울컥했다. 그래, 누구든 헤매면서 살고 있는 것이 자신의 인생이고 나만 이렇게 힘든 것이 아니라는 자그마한 위로.

 

책을 읽고 나서 고개를 갸웃했던 나였는데, 오히려 여배우가 한 마디로 이 책이 정리가 됐다. <오늘 또 사랑을 미뤘다>라는 이 책은 미루지 않고 후회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적어 내려간 이야기들이었다.

 

 

 

후회라는 단어 자체가 갖는 느낌은 참 아쉽고 아쉽고 아쉬운 것 같다. "다시 그 때로 돌아가면 그렇게 하지는 않을텐데"라는 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 후회 없는 삶이란게 어디 있을까만은, 후회하지 않고 사는 사람은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음에도, 사람이라는 존재는 끊임없이 후회를 한다. 그래서 후회라는 단어에는 아쉬움이 늘 한 가득 묻어난다.

 

책 속에 후회를 하지 않기 위해 자신의 마음을 실천으로 옮긴 사람들의 이야기가 들어 있다. 물론 행동을 한 이야기 속 주인공들이라도 후회는 남을 수 있을테지만, 실천하지 못한 사람들이 보고 있노라면 지금의 나를 돌아보게끔 하는 그런 이야기들. 암에 걸린 누군가에게 했던 행동들, 나를 위해 했던 아버지의 행동들, 엄마와 관련된 이야기들,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들, 누군가를 잃은 사람들이 또 다른 후회가 없기를 바라면서 만들어간 행동들까지. 어디서 본 듯도 하고 꽤 유명한 이야기가 있기도 한 이 책에는, 유명한 명언들과 영화 책 속의 한 구절들이 속속 등장한다. '훌륭한 책들은 모두 지루한 부분이 있고, 위대한 삶에도 재미없는 시기가 있다. -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 함께 가려면 가장 느린 사람의 속도에 맞춰야 하고, 가장 느린 사람의 짐을 함께 들어주어야 한다. - 아프리카 속담'등의 유명한 명언들과 영화 세얼간이의 한 장면 그리고 <세상은 절대 당신을 포기하지 않는다>, <행복의 연금술사> 등의 책들까지. 이야기들과 적절하게 섞여 있는 한 구절들은 읽는 이에 따라 어떨때는 가슴을 울리는 힘이 될 수 있을만한 구절들이 여기저기 존재한다. 내가 유독 엄마, 아빠에 관한 이야기들에 울컥하는지라- 생선가게를 하는 엄마 냄새 이야기라던가 자신의 몸이 상하는지도 모르고 아픈 딸을 업고 뛰던 아빠의 이야기라든지의 이야기들은 역시 울컥할 포인트였다. (많~이 슬프지 않았다는 건 함정.)

 

아쉬웠던 건, (내가 작가의 전작은 읽어보지 못했으나) 책의 내용들이 자기 계발서의 그것들과 비슷한 느낌이었다는 점이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하고 있기는 하지만 결론적으로 이야기 하는 것은 '어떤 것이 더 좋아요'라든가 '어떻게 하세요'라고 되어 있는 식이라서, 에세이라는 카테고리에 넣기엔 자기 계발서 같은 느낌이 강하다는 느낌이 조금. 그리고 임팩트가 아주 쎄게 올만큼의 독특하거나 창조적인 이야기들이 아니라 어디서 많이 보던 것이라는 느낌이 강한 것도 내게는 아쉬움이었다.

 

그래도, 후회를 하지 않기를 바라는 작가의 마음은 충분히 전해지는 책이었다.

나 역시 살면서 후회하지 않으면서 살 수 있기를 바라지만, 아마 어느 누구보다도 많이 후회를 하면서 살아간다. 이제부터라도 조금이라도 먼저 행동하면서 살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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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아메리카노 어쩌면 민트초코 - 달콤 쌉싸래한 다섯 가지 러브픽션
사토 시마코 외 지음, 강보이 옮김, 한성례 감수 / 이덴슬리벨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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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는 사랑이야기가 있고, 설레임과 따스함이 공존한다. 하지만 한 편에는 공허함도 존재하고, 그리고 왜인지 모를 황량함도 존재하는 듯 하다. 커피처럼 생활 속에서 익숙한 것이 또 있을까 싶지만, 사실 나는 커피의 맛은 알다가도 모르겠다. 많이 즐겨 마시지 않는 탓도 어느정도 있겠지만, 좋은 원두가 어떤건지 어떻게 마시면 커피가 맛있는 건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누군가 "이 집 원두가 맛있는 것 같아"라고 얘기하면 왜인지 있어보이고 부럽고 하지만, 굳이 내가 커피를 배워보려고 하거나 한 적은 따로 없다. 그건 살아가면서 경험처럼 쌓이는 게 좋은 거라고 생각해서다. 배워서 알고 지식이 늘어나는 것보다 내가 부딪혀서 경험해 보는 게 더 오래 기억에 남고 나한테는 좀 더 좋은거라는 걸 알고 있으니까. 커피의 맛을 알아보려면 되도록 많은 커피를 마셔보는 게 중요한데, 커피를 마시면 밤에 잠을 잘 못자는 나란 사람에게 아직까지 커피는 친해지고 싶지만 쉽게 다가가기 힘든, 안면만 아는 조금 어색한 반친구 같다.

 

 

 

그래도! 커피와 절친은 아니지만, 내게도 바라는 것은 있다. 이 책에 나오는 '카페 바토' 같은, 혹은 K마을의 '사강의 집' 같은 그런, 여기저기 발 닿는 곳마다 자리하고 있는 거대 프렌차이즈 카페가 아닌, 직접 바리스타가 커피 한 잔 한 잔을 정성스럽게 내려주는 손맛이 담긴 단골 카페를 만드는 것이 그것이다. 음.. 스미레 씨와 렌게 씨가 운영하는 카페 바토가 내가 추구하는 곳의 가장 이상적인 이상향같다. 첫번째 이야기가 꽤 무겁고 황량한 느낌까지 나서 조금 이상한 기분을 안고 다음 이야기로 넘어갔는데 그 다음 이야기가 스미레씨와 렌게씨의 이야기였다. 스미레씨나 렌게씨는 모두 백발이 성성한 할머니로 나오는데, 호호 할머니가 직접 내려주는 맛있는 커피와 젤리라니. 이렇게나 멋진 가게가 실제로 존재한다면 나는 그 주변에 다닐 학원이라도 만들어서 출근도장을 찍고 싶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젤리의 탱글탱글함이 좀 이상해서 개인적으로 좋아하지 않는데, 렌게 씨가 만들어주는 제철 과일 젤리는 꼭 먹어보고 싶달까. 꼭 파슬리가루가 장식되어 있는 그 제철 과일 젤리를 말이다.

 

사실, '단골'이라는 의미가 그런것 아닌가. 가게의 주인과 손님인 내가 유기적인 관계를 맺는 것. 그것이 지나가는 인사말일 수도, 진지한 고민상담이나 인생상담 같은 것일 수도 있지만, 그것이 무엇이든 내가 찾아갔을 때 반갑게 맞아주면서 살갑게 서로의 안부를 물을 수 있는 사이. 친구사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친구사이만큼이나 가까울 수 있는 사이. 그런 끈끈함이 좋은 것 같다. 그래서 두번째 이야기속 하루카가 부러웠다.

 

 

언젠가 스미레씨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당신처럼 젊은 사람은 몸에 아직 쓴맛이 배지 않아서 몸이 쓴 맛을 찾는 거겠죠."
"스미레 씨 몸에는 쓴맛이 많이 배였나요?"
"그럼요. 긴 세월에 걸쳐서 조금씩 배였지요. 날마다 잠자리에 들어 모로 누워 있노라면 쓴맛이 목까지 차올라요. 그럴땐 달짝지근한 걸 마셔줘야 한답니다."

p.44

 

위의 구절은 마음에 들어서 체크해 뒀는데 알고보니 표지의 뒷쪽에 적혀져 있더라. (에디터랑 나랑 통한듯ㅋㅋ)

 

 

내가 이 책에서 가장 추천하는 부분이 바로 두번째 잔, <제비꽃 커피와 연꽃 젤리> 부분이다. - 스미레 라는 이름은 일본어로 제비꽃을 뜻하고 렌게라는 이름은 연꽃을 뜻한다고 한다. 스미레씨는 늘 커피를 내리고 렌게씨는 늘 젤리를 만든다고 하여 이야기의 제목을 그리 지었다고 각주가 달려 있다 - 할머니들의 이야기는 폭신폭신한 느낌이다. 그녀의 사랑 이야기도, 그리고 숨어있는 약간의 반전도. 언젠가 짧은 단막극에 옴니버스 형식으로 들어가도 예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첫번째 이야기는 개인적으로 잘 이해가 되지 않는 이야기였고, 세번째 이야기는 커피 향으로 인해서 추억하는 옛 사랑에 관한 이야기, 네번째 이야기는 웹상에서 만난 사랑이야기였다. 한 잔 더,라는 카테고리는 하루에 있었던 일들을 적어놓은 일기 같기도 하고, 커피와 관련된 글들이 모여져 있는 느낌이기도 하고.. 연애할때의 그 의례 달달하고 가끔은 손발 오그라들 정도의 닭살스러움도 겸비하고 있었다. 한 작가가 쓴 글이 아니라서 그런지 글들에서 각자의 느낌이 뚜렷하게 드러나니까 금방 읽게 된다.

 

 

사랑은 에스프레소처럼 쓸지도, 생크림이 가득 담긴 마끼아또처럼 달지도, 그러면서도 기분좋은 고소함이 존재하기도 하고, 가끔은 너무 뜨거워서 데기도 하고, 식으면 처음의 그 맛이 나지 않아 버리기도 하고, 부드럽기도 하고. 커피가 수 천가지로 자신의 모습을 변화시키듯이 사랑도 그럴 수 있다는 점이 닮았다. 늘 뜨겁기만 한 커피도 없듯이, 사랑도 그렇다. 어떤 커피를 마시고 싶은지 선택하는 것은 커피를 마실 본인의 선택이다. 사랑도 마찬가지 아닐까. 어떤 사랑을 할건지는 본인의 선택에 따를 뿐- 그래서 사랑은 아메리카노 어쩌면 민트초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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