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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아메리카노 어쩌면 민트초코 - 달콤 쌉싸래한 다섯 가지 러브픽션
사토 시마코 외 지음, 강보이 옮김, 한성례 감수 / 이덴슬리벨 / 2013년 12월
평점 :
이 책에는 사랑이야기가 있고, 설레임과 따스함이 공존한다. 하지만 한 편에는 공허함도 존재하고, 그리고 왜인지 모를 황량함도 존재하는 듯 하다. 커피처럼 생활 속에서 익숙한 것이 또 있을까 싶지만, 사실 나는 커피의 맛은 알다가도 모르겠다. 많이 즐겨 마시지 않는 탓도 어느정도 있겠지만, 좋은 원두가 어떤건지 어떻게 마시면 커피가 맛있는 건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누군가 "이 집 원두가 맛있는 것 같아"라고 얘기하면 왜인지 있어보이고 부럽고 하지만, 굳이 내가 커피를 배워보려고 하거나 한 적은 따로 없다. 그건 살아가면서 경험처럼 쌓이는 게 좋은 거라고 생각해서다. 배워서 알고 지식이 늘어나는 것보다 내가 부딪혀서 경험해 보는 게 더 오래 기억에 남고 나한테는 좀 더 좋은거라는 걸 알고 있으니까. 커피의 맛을 알아보려면 되도록 많은 커피를 마셔보는 게 중요한데, 커피를 마시면 밤에 잠을 잘 못자는 나란 사람에게 아직까지 커피는 친해지고 싶지만 쉽게 다가가기 힘든, 안면만 아는 조금 어색한 반친구 같다.
그래도! 커피와 절친은 아니지만, 내게도 바라는 것은 있다. 이 책에 나오는 '카페 바토' 같은, 혹은 K마을의 '사강의 집' 같은 그런, 여기저기 발 닿는 곳마다 자리하고 있는 거대 프렌차이즈 카페가 아닌, 직접 바리스타가 커피 한 잔 한 잔을 정성스럽게 내려주는 손맛이 담긴 단골 카페를 만드는 것이 그것이다. 음.. 스미레 씨와 렌게 씨가 운영하는 카페 바토가 내가 추구하는 곳의 가장 이상적인 이상향같다. 첫번째 이야기가 꽤 무겁고 황량한 느낌까지 나서 조금 이상한 기분을 안고 다음 이야기로 넘어갔는데 그 다음 이야기가 스미레씨와 렌게씨의 이야기였다. 스미레씨나 렌게씨는 모두 백발이 성성한 할머니로 나오는데, 호호 할머니가 직접 내려주는 맛있는 커피와 젤리라니. 이렇게나 멋진 가게가 실제로 존재한다면 나는 그 주변에 다닐 학원이라도 만들어서 출근도장을 찍고 싶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젤리의 탱글탱글함이 좀 이상해서 개인적으로 좋아하지 않는데, 렌게 씨가 만들어주는 제철 과일 젤리는 꼭 먹어보고 싶달까. 꼭 파슬리가루가 장식되어 있는 그 제철 과일 젤리를 말이다.
사실, '단골'이라는 의미가 그런것 아닌가. 가게의 주인과 손님인 내가 유기적인 관계를 맺는 것. 그것이 지나가는 인사말일 수도, 진지한 고민상담이나 인생상담 같은 것일 수도 있지만, 그것이 무엇이든 내가 찾아갔을 때 반갑게 맞아주면서 살갑게 서로의 안부를 물을 수 있는 사이. 친구사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친구사이만큼이나 가까울 수 있는 사이. 그런 끈끈함이 좋은 것 같다. 그래서 두번째 이야기속 하루카가 부러웠다.
언젠가 스미레씨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당신처럼 젊은 사람은 몸에 아직 쓴맛이 배지 않아서 몸이 쓴 맛을 찾는 거겠죠."
"스미레 씨 몸에는 쓴맛이 많이 배였나요?"
"그럼요. 긴 세월에 걸쳐서 조금씩 배였지요. 날마다 잠자리에 들어 모로 누워 있노라면 쓴맛이 목까지 차올라요. 그럴땐 달짝지근한 걸 마셔줘야 한답니다."
p.44
위의 구절은 마음에 들어서 체크해 뒀는데 알고보니 표지의 뒷쪽에 적혀져 있더라. (에디터랑 나랑 통한듯ㅋㅋ)
내가 이 책에서 가장 추천하는 부분이 바로 두번째 잔, <제비꽃 커피와 연꽃 젤리> 부분이다. - 스미레 라는 이름은 일본어로 제비꽃을 뜻하고 렌게라는 이름은 연꽃을 뜻한다고 한다. 스미레씨는 늘 커피를 내리고 렌게씨는 늘 젤리를 만든다고 하여 이야기의 제목을 그리 지었다고 각주가 달려 있다 - 할머니들의 이야기는 폭신폭신한 느낌이다. 그녀의 사랑 이야기도, 그리고 숨어있는 약간의 반전도. 언젠가 짧은 단막극에 옴니버스 형식으로 들어가도 예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첫번째 이야기는 개인적으로 잘 이해가 되지 않는 이야기였고, 세번째 이야기는 커피 향으로 인해서 추억하는 옛 사랑에 관한 이야기, 네번째 이야기는 웹상에서 만난 사랑이야기였다. 한 잔 더,라는 카테고리는 하루에 있었던 일들을 적어놓은 일기 같기도 하고, 커피와 관련된 글들이 모여져 있는 느낌이기도 하고.. 연애할때의 그 의례 달달하고 가끔은 손발 오그라들 정도의 닭살스러움도 겸비하고 있었다. 한 작가가 쓴 글이 아니라서 그런지 글들에서 각자의 느낌이 뚜렷하게 드러나니까 금방 읽게 된다.
사랑은 에스프레소처럼 쓸지도, 생크림이 가득 담긴 마끼아또처럼 달지도, 그러면서도 기분좋은 고소함이 존재하기도 하고, 가끔은 너무 뜨거워서 데기도 하고, 식으면 처음의 그 맛이 나지 않아 버리기도 하고, 부드럽기도 하고. 커피가 수 천가지로 자신의 모습을 변화시키듯이 사랑도 그럴 수 있다는 점이 닮았다. 늘 뜨겁기만 한 커피도 없듯이, 사랑도 그렇다. 어떤 커피를 마시고 싶은지 선택하는 것은 커피를 마실 본인의 선택이다. 사랑도 마찬가지 아닐까. 어떤 사랑을 할건지는 본인의 선택에 따를 뿐- 그래서 사랑은 아메리카노 어쩌면 민트초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