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게 더 느리게 2 - 베이징대 인생철학 명강의 느리게 더 느리게 시리즈 2
츠샤오촨 지음, 정세경 옮김 / 다연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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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철학이라는 단어는 알면 알수록 어려운 것도 같아서 요즘에는 '철학'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책들에 눈이 많이 간다. 그래서 선택한 책 <느리게 더 느리게2>. '베이징대 인생철학 명강의'라고 표지에 적혀 있었고, 출판사 서평을 읽었을 때의 느낌도 괜찮았기에 선택했다. 결론을 먼저 말하자면, 아주 좋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좋은 책이었다. 이 책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인생철학은 행복이라는 것. 그리고 그 행복이라는 것은 포기하고, 내려놓고, 주고, 베풀면서 얻게 되는 것이라는 것.


살아가면서 인생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흔들려야 청춘이라는 말이 있듯이 요즘 청춘들은 더더욱 미래에 대해 앞길에 대해 많이 고민을 하는 시기다. 행복이라는 추상적인 것을 쫓아가기까지도 너무 버거운 단계를 거치고 있다는 얘기다. 앞에 놓인 한 계단을 올라가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생각을 하는지 과연 어른들은 알까. 흔들릴 때 혼자서 답을 찾을 수 없을 때는 여기저기서 답을 구해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그럴때 인생을 많이 살아온 누군가에게 조언을 얻는 것도 하나의 좋은 방법인데, 이 책이 그런 역할을 해 줄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눈길이 갔다. 


책의 내용은 일련의 자기계발서들이 그러하듯 그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베이징 대학교 출신의 학자 혹은 선현들의 말을 제목 아래에 적어놓고, 그에 관련한 이야기를 두 가지 정도 보태어 설명하는 식의 내용이다. 사실 이미 내 글을 보고 예상했을 지 모르지만 색다를 것은 없다. 하지만 적어도 그 같은 틀 속에서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이야기들이 나를 반긴다. 확실히 동양의 이야기라 그런지 조금 더 와 닿는 듯도 느껴지고, 너무 뜬구름을 잡는 이야기들이 아니어서 가깝게도 느껴진다. 가끔은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들에 '이게 뭐라고 구구절절 이야기를 늘어놓는거야'라고 생각할 때도 있지만, 여전히 학자들의 이야기는 돌직구이고 마음에 쿡쿡 와 닿는다.


가끔 커피에 설탕을 넣고도 제대로 젓지 않아 쓴맛에 진저리칠 때가 있다. 이럴 경우, 마지막 한 모금까지 마셔야 단맛을 느낄 수 있다. 인생도 이와 같아서 지금은 쓴맛밖에 느끼지 못해도 마지막에는 단맛을 느끼게 된다. ㅡ 쉬즈모   86쪽.


바깥의 적보다 두려운 것은 내부의 적, 즉 자기 자신이야말로 실패의 허다한 원인이다. ㅡ 루쉰   193쪽.


사실, 선현들이나 교수들의 이야기는 위처럼 좋은 이야기들이다. 하지만 제목으로 달린 것들이 꽤나 격해서, 언뜻보면 제목이 그들이 이야기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루쉰의 이야기를 예로 들면, "바깥의 적보다 두려운 것은 내부의 적, 즉 자기 자신이야말로 실패의 허다한 원인이다"라고 적은 위에 "자기 자랑이 지나치면 사방이 적이 된다"라는 제목이 있다. 훨씬 격한 제목에 시속 300km 돌직구... 제목이 모든 글을 함축하고 있어서 글을 이해해 나가는 데 어려움은 없지만, 제목만 읽어나가면 무서울 정도.

 

읽으면서 고개를 끄덕거리긴 했지만 행복이란 단어만큼 뜬구름 잡는 말도 없는 것 같다는 게 내 개인적인 의견이다. 추상적인 단어들이 갖는 애매모호함은 각자의 기준에 따라 변하기 마련이고, 그 기준을 어디에 놓느냐에 따라 추상적임이 구체적으로 바뀔 수도 있고 더 추상적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눈에 보이는 것들로 기준을 정해놓는다고 해서 행복하다고 말할 수 없고, 정신적으로라도 행복하다 느낄 수 있다면 그건 찢어지게 가난해도 행복하다 말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이렇게 정할 수 없는 것들이 가진 중의적인 것들이 싫어서 난 추상적인 단어들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행복이라는 단어 또한 내가 좋아하는 단어는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 단어가 아니더라도 한 번쯤은 읽어봄직한 책이라 생각한다. 꽤나 재미있는 일화들이 가득하니까. 거기다가 글쓴이는 동양 뿐 아니라 서양의 소설이나 시인들의 시도 인용하며 고금을 막론하는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는다. 배꼽 빠지게 재미있는 자기 계발서는 아니지만, 흥미로운 이야기들이라 읽기 시작하면 곧 빠져들거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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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이 원하는 것이란
데이브 배리 지음, 정유미 옮김 / 처음북스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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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표지가 굉장히 눈에 띄는 책이다. 샛노랑과 새빨강의 사이에 핑크색 헤어와 핑크립, 블루 썬글라스를 낀 꽤 눈에 확 띄는 독특한 비쥬얼의 여성이 보인다. 책방이나 서점에서 책들을 주욱 둘러 볼 때 단번에 찾아낼 수 있을 것 같은 비쥬얼. 이런 비쥬얼을 가진 책은 무슨 내용일까 마음이 동했던 게 사실이다. 데이브 배리라는 이 낯선 이름이 '스티븐 킹'이라는 굉장한 네임벨류의 사람이 재미있다고 칭찬할 정도의 글이라니. 표지에 적힌 스티븐 킹이라는 이름만으로 급 신뢰감 상승. 미국에서 가장 웃기는 사나이라고 지칭하던데, 안 웃기면 고소할거야...라는 마음으로 책을 읽어나갔다.

근데 이 아저씨, 꽤나 웃기다. 책을 읽으면서 피식 피식 새어나오는 웃음이 그걸 증명한다. 사람을 웃기기 위한 DNA라도 몸 속에 존재하는 건지, 서문부터 데이브 배리는 소소하게 웃음을 유발했다. 미국에서 가장 웃기는...까지는 모르겠고 글로써 여러사람 웃기는 사람인 건 확실했다. 예상 가능하지만 또 어김없이 터지는 포인트들이 산재해 있는 책 속에서 웃지 않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일단 글이 재미있으니 급작스레 재미를 느끼게 되고, 그래서 더더욱 몰입하게 됐고, 글쓴이 아저씨에게 호감을 가지기 시작했다.

글 속에 드러나는 화자는 글쓴이 본인이다. 이 화자는 굉장히 오락가락 하기도 하고, 자신의 마음을 숨기기도 하면서 뒤돌아서서 마음을 바로 바꿔 먹기도 한다. 혼자서 웅얼거리는 버릇도 있고, 굉장히 강조할때는 반어법을 즐겨쓴다. 이해심 많은 아빠 코스프레를 하고 있지만 속으로는 전전긍긍하는 딸바보의 전형성을 드러내면서 어떤 면은 좀 시니컬 하기도 하다. 사실 목차를 볼 때 '칼럼이랬는데 왜 이렇게 목차가 단출하지?'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생각보다 긴 분량의 내용들이 잘 이어지면서 글이 지루하지 않았다. 확실히 재미 하나는 보장되어 있는 책이다. 단 조건이 붙는다. 그 재미는 아주 소소하다. 기본적으로 나는 대한민국에서 나고 자란 사람으로서, 데이브 배리의 아저씨에게 호감을 가진 채로 글을 읽어도 극복되지 않는 한계는 분명히 존재했다. 아저씨의 유머가 대한민국의 정서와는 그리 부합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자학개그 비슷하게 하면서 허세도 좀 들어가 있고, 뭐라고 해야하지. 피식 웃을 수는 있으나 마냥 웃기지만은 않은 것..? 유머의 시작과 전개, 끝이 비슷하니까 책의 전체적인 분위기나 글의 흐름도 비슷해지고, 그래서 지루해지는 감도 없지 않았다. 데이브 배리의 유머코드가 나와 맞지 않았다는게 정답일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순 다섯이라는 나이를 듣고 글을 다시 읽으면, 이 아저씨는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시대에 뒤쳐지지 않은 마인드를 갖고 있으면서 절대로 강압적인 아빠나 어른의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나이가 무색하게 어린아이 같을 때가 종종 등장한다. 그 귀여움은 상상을 초월한다. 남자라면 비단 가져야 할 가장으로서의 권위를 위해, '남자다움'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 뒤의 꿍얼거림은 피식거림을 자아내기 충분하다. 데이브 배리는 자신만의 유머능력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통할만한 이야기를 끌어낼 줄 아는 사람이니까.

책의 제목은 그저 수록되어 있는 글들의 제목 중 하나일 뿐이라 제목에서 의의를 찾으려는 사람들은 책을 내려놓기를 바란다. 이 책엔 그런 거 없어-
자신의 생에서 사소한 글감들을 재미있게 풀어내고 있고, 읽으면 즐거우면서, 잠깐동안 근심을 덜어낼 수 있는 책. 생각할거리가 많지 않아서 머리가 복잡할 때 술술 읽어내려가는 것도 꽤 좋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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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걸었고 세상은 말했다 - 길 위에서 배운 말
변종모 지음 / 시공사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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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좋은 카메라를 장만하지 못한 내가 여행을 갈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여행간 곳과 잘 어울릴만한 음악들이 가득 담긴 mp3, 움직이면서도 끄적일 수 있는 작은 노트 이 두 가지다. 아, 그리고 정식 카메라보다는 많이 아쉽지만 조금은 도움이 되는 핸드폰까지-

 

여행을 하다 보면 생각하지 못하는 곳에서 울려오는 울림을 느낄 때가 있다. 그것은 아주 사소한 것일 수도, 한동안 머릿속에서 잊어버렸거나 혹은 잊혀진 것일 수도 있다. 그럴 땐 들고 간 노트를 꺼내서 끄적인다. 두서 없이 끄적이다 보면 마음이 정리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물론 여행에서 돌아 온 후 어느 날 읽어보면 전혀 알아볼 수 없기도 하지만.) 그 때 그 시간을 함께 해 주는 것은 음악이고, 이 음악들도 훗날 불현듯 여행의 기억을 데려와 주는 훌륭한 매개체다. 이보다 더 좋은 건 아무래도 카메라가 아닐까 싶다. 여행을 다니면서 자신의 기억들을 차곡차곡 찍어서 돌려보는 것. 어렸을 때 찍어뒀던 아이때의 나의 모습을 보면 새삼스러우면서도 즐거운 것처럼, 여행을 다녀온 뒤 그때의 모습을 돌아보면 '이런 적도 있었지..' 생각하면서 추억에 잠기게 하는.

 

이 책은 그런 것 같다. 작가가 이곳 저곳을 여행 하면서 끄적여 뒀던 글들을 모아둔 책. 그 끄적임들이 마음속의 단어들이라는 부제로 그룹을 나누고 있고, 그때의 어느 한 순간을 기억하는 글들이 'from 00'이라는 나라 이름과 함께 실려 있다.

 

작가는 정말 많은 나라를 돌아다녔던 것 같다. 책장을 넘길때마다 저마다 다른 색깔의 향기가 물씬 느껴지는 사진들을 보면서, 'from 00'이라는 단어 속에서 그다지 많이 겹치지 않는 나라 이름들을 보면서. 떠나야만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 있는데 혹시 작가도 그런 건 아닐까.

 

 

 

 

 

 

 

<안녕, 여행>이라는 책도 <나는 걸었고 세상은 말했다>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안녕, 여행>의 작가도 여행한 지 10주년을 기념하여 여기 저기 돌아다녔던 곳들의 기억들을 한데 끌어모아 낸 책이었으니까. 다만 다른 것은 변종모 작가가 좀 더 센치한 느낌이 강하다고나 할까. <안녕, 여행>도 꽤 센치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변종모 작가의 <나는 걸었고 세상은 말했다>는 그보다 센치함이 크다. 그 센치함의 정점은 '그대'.. 이 책에는 '그대'라고 지칭하는 말이 자주 나오는데, 그게 누구를 꼭 지칭하는 것 같지도 않은 느낌이면서도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있는 느낌도 난다. 읽는 이에 따라 굉장히 중의적으로 다가오는 이 단어. 사랑 이야기엔 꼭 들어가고, 사랑 이야기가 아닌 곳에서도 종종 나타나는 이 단어가 존재할 때의 그 글은 어김없이 센치하다. 작가는 '그대'에게 무엇을 그리 잘못한 것이 많은건지.

 

많은 단어들이 나온다. 여행지에서 보면 울컥할 단어들도 있고, 생각을 많이 해야할 단어들도 있고. 작가는 단어들에게 새로운 정의를 부여하면서 책을 써내려갔다. 자신이 겪었던 어떤 상황들을 종합해서 다시 정의 내리는 새로운 단어들. 정의를 새롭게 부여받는 단어들은 작가에겐 꽤나 새롭고 소중한 존재가 되지 않았을까.

 

변종모 작가의 사진은 굉장히 사실적이다. 왜곡이나 미화 없이 있는 그대로를 담아낸다. 사진의 색보정도 거의 하지 않은 듯 하다. 그래서 예쁘게 보이면서도 투박한 느낌과 날것이라는 느낌도 난다. 특히나 인물을 찍을 때는 더더욱 그러했는데, 그게 이 작가의 특징인 듯 했다. (변종모 작가의 책은 처음이라 어떻다, 정의 내리긴 힘들겠지만.)

 

 

 

 

 

 

 

개인적으로는 글의 톤이 왔다갔다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데, 이 책은 그 오락가락의 기복이 꽤 심하다. 그래서 별점을 그리 많이 줄 수 없던 이유... 그래도 읽다보면 마음에 담을만한 글들이 존재하며, 예쁘다기보다는 마음에 남을 만한 사진들이 존재한다. 여행을 하면서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느낄까 궁금한 사람들이나, 센치한 감성적 글들을 읽고 싶은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 다만, 여러군데의 모습이 한데 담겨 있기는 하지만 그곳에서의 어떤 사정같은 것은 들어볼 수 없으니 혹시 그런걸 기대한 사람들이라면 주의할 것.

 

 

 

 

 

 

 

가장 좋았던 글은 책의 시작.

위의 글씨체로 적힌 부분인데, 이 책을 함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 부분을 옮겨 적으면서 서평을 마무리한다.

(한 밤에 책을 다시 읽어보면서 서평을 쓰니 마음이 착 가라앉는 느낌이다.)

 

 

 

당신의 입술이 움직이지 않았지만 분명 눈은 더 크게 나를 불렀다.

마음이 안다. 우리는 말없이 가장 큰 소리를 나눴다.

부정이 고갯짓 할 허공이 없다. 빽빽하게 당신이, 그때의 우리가, 아직 내 안에 산다.

 

다하지 못한 말이 있었다. 그것은 끝내 삼키고 묵혔으나 세상에서 사라진 말이 아니다.

너에게도 나에게도 영원한 것이다. 지울 수 없는 것이다.

우리가 함께였다는 시간의 사실, 한사코 말을 누르며 마음만 키우던 반편의 사정.

그러니 너는 들었을 것이다. 말하지 않아도 이미, 벌써, 그때.

네가 내 전부라고 수도 없이 고백하던 그 소리를.

 

생각한다는 것은 마음에 지문을 찍는 것.

말한다는 것은 세상에 문신을 새기는 것.

그것들을 옮긴다는 것은 마음에 세상 지도를 달리 그린다는 것.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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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정의 히말라야 환상 방황]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정유정의 히말라야 환상방황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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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다 읽고 처음 든 생각은 이거였다.

"나는 절대 할 수 없어, 이런 여행-"

 

여행을 굉장히 좋아한다. 내가 사 들이는 책들 중 많은 부분이 여행과 관련된 책일 정도로 말이다. 직접 가지 못하는 대신 책으로 간접 경험을 원해서이기도 하고, 다음에 여행갈 곳의 맛보기로 생각하고 읽기도 하고, 떠나고 싶다는 마음을 다잡는 계기로 삼기도 하고. 그래서 많은 책들을 읽어봤었는데, 이 책은 좀 달랐다. 일단 지금까지 읽어왔던 여행지들과는 차원이 다른 장소 선정부터 말이다.

 

히말라야. 그 말로만 듣던 히말라야 산의 안나푸르나 종주. 엄홍길 대장이나 갈 법한 곳이라고 생각했던 그 곳에 일반인들이 갈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꽤 신선한 충격이었다. 프롤로그에 나오는 작가의 남편의 걱정의 잔소리들로 알 수 있듯이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히말라야는 말도 안되는 산이니까 말이다. 근데 작가는 꽤 열심히 여행을 진척시켰다. (나는 여행 일정 짜는 게 제일 힘들어서 같이 가는 사람에게 일임(?)하고는 하는데 말이다.) 갔다왔던 사람들을 만나보고, 이야기를 열심히 듣고, 등반 코스를 짜고, 현지 가이드 해 줄 사람도 찾고. 생각보다 작가의 여행준비는 착착 되어갔던 것 같다. 그리고 정말 네팔로 작가는 떠났다.

 

 

책을 읽어가면 읽어갈수록 꽤 치열했던 작가의 모습이 상상됐다.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 중 아주 낮은 산이라도 안 올라가본 사람은 없을테니, 간접적인 경험은 모두 있을 터- '힘듦'을 그리 자세히 서술해 놓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그 모든 것이 느껴지는 꽤 신기한 체험이었다. 힘들다는 이야기는 그리 자주 나오지는 않는다. 단지 현재 가야할 곳의 높이와 전해들은 이야기, 몸의 상태들을 나열하는 것만으로도 그 힘듦이 오롯이 느껴졌으니 말이다. 직접 서술하지 않고 빙 돌려 이야기했는데도 직접 와 닿아서 읽는 내내 '얼마나 힘들었을까'를 생각하게 됐다.

 

 

 

 

 

 

 

책의 첫 페이지에 닮겨 있던 라운딩 코스 단면도. 작가는 프롤로그에서 제일 높은 곳 '쏘롱라패스'가 가장 통과하기 어려운 곳이라고 먼저 다녀왔던 사람에게 전해들었다. 그래서 작가가 가장 걱정했던 곳도 이 곳이었다. 저기는 런지라 불리는 휴게소가 없고 차가 다닐 수 없기 때문에, 만약 쏘롱라패스에서 다치거나 고산병 때문에 포기해야하는 상황이 오면 헬기를 불러야만 하는데, 그때 드는 돈이 장난 아니게 비싸서 깡통을 차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 때문이었다. 몸 때문이 아니라 돈 때문에 걱정을 해야 하다니 좀 슬픈 느낌도 없지 않지만.. 다행히도 작가는 고산병 증세는 있었으나 작가는 '쏘롱라패스'를 잘 '패스'했고, 이 책을 낼 수가 있었다.

 

 

 

작가는 걸으면서 참 많은 생각을 했다. 사람이 아무 생각없이 걷게 되면 오히려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게 되고, 한 가지 일들에 비슷한 일들이 주렁주렁 열매를 맺어 추억이라 불리는 기억들이 알알히 맺히곤 한다. 그런 것들을 재미있게 글로 풀어내놓기는 참 힘들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이런 기억을 잘 풀어낸 글을 좋아하는데, 이 책이 딱 그런 식이다. 역시, 정유정이었다. 

 

그런 고로, 현지의 어떤 상황에서 기억이 점프해서 한국에서의 에피소드와 연결하는 내용들이 꽤 인상 깊었다. 엄마의 임종에 대한 기억, 영화배우 J씨가 금광을 준다고 결혼하자 했던 꿈의 기억, 아들을 위해 나무에 올라가서 매미를 잡으려다 추락했던 기억, 간호사로 일할 당시 최루탄에 쏘였던 아찔한 기억까지. 자연스러운 점프, 그리고 꽤나 코믹적인 결론들. 기억의 조각은 자신의 편의대로 재정비되는데, 작가의 기억은 늘 유쾌한 듯 하다. (근데 소설은 그렇지 않단 말이지.. <이동진의 빨간책방>에 등장했을 때 느꼈던 그 시원시원함이 글에서도 느껴져서 책은 생각보다 유쾌하고 즐겁다.)

 

 

 

 

이 낯선 세상에서 오만가지 일로 허둥대는 내 꼴이 우스웠다. 여기에 왜 왔는지, 기억해보려 해도 생각이 모이질 않았다. 원하는 '무엇'이 있으리라 믿었던 것 같은데, 삼십 일도 아닌 단 사흘 만에 의심이 모락거리고 있었다. 정말로 믿었는지조차 확실하지 않았다. 그저 달아나고 싶었던 건지도 몰랐다. 세상으로부터, 인간으로부터, 아니 나 자신으로부터.     81쪽

 

나는 세상으로 돌아가 다시 내 인생을 상대할 수 있을까.
어떤 목소리가 답해왔다.
죽는 날까지.
189쪽

 

281쪽에도 비슷한 글을 작가는 실어놓았다. 위의 두 개의 글은 작가가 왜 히말라야까지 가야 했었는지에 대한 답을 간단히나마 보여줄 수 있는 문장들이다. 작가는 자신을 치열하게 한계까지 밀어붙였고, 거기서 답을 찾았다. 답을 찾는 여행, 꽤 좋아보였다.

 

 


달빛이 창문을 밀치고 들어와 무릎 위에 올라앉았다.      225쪽

 

짙푸른 녹음 속에선 뻐꾸기가 울어댔다. 히말라야 뻐꾹이는 네팔 말로 울 줄 알았는데 유창한 한국말로 운다. 뻐꾹뻐꾹.     89쪽 

 

사람의 성질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내 생각을 밝히자면, 어렵게도 변하지 않는다. 타고난 성질은 완강한 항상성을 유지한다. 변하는 쪽은 성질이 아니라 '어떤 이유'로 획득한 사회적 자아일 것이다.     285쪽

 

마지막의 글 뒤에 붙은 이야기는 꽤 코믹하다. 책을 읽어볼 사람이라면 이 부분을 잘 읽어보기를. 눈에 띄는 작가의 글솜씨에 밑줄을 쳐 놓았던 부분들이다. 이렇게 유쾌한 사람인 줄 왜 진즉 몰랐을까.

 

 

 

 

난 절대 히말라야에는 가지 않을 것이다. 모름지기 내게 여행은 나를 다시 재충전 하러 가는 곳이고, 그렇기에 이런 극기 훈련에 버금가는 곳에는 가지 않을테니 말이다. 하지만 언젠가 나도 이렇게 나를 극한으로 밀어붙이고 싶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긴 했다. 내게 필요한 열정을 충전해야 할 때 말이다. 작가의 말 305쪽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어린아이가 삶을 배워가는 존재라면 어른은 죽음을 배워가는 존재다." 스티븐 킹이 자신의 소설에서 한 말이란다. 그에 따르면, 우리는 죽을 때까지 아이인 동시에 어른 인 셈이다. 삶을 배우면서 죽음을 체득해 가는 존재라고. 배우고 싶을땐 떠나라- 매번 차일피일 핑계를 만들어서 떠나기를 주저하는 나에게 조금은 자극이 됐던 책이었다.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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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지와 대화하기 - 애견 언어 교과서
미동물행동심리학회(ACVB) 지음, 장정인 옮김 / 처음북스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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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책이 굉장히 묵직했다. 목차를 보고 선택했을 때만 하더라도 이렇게나 두꺼운 책이 배송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었지.. 단순히 우리 집에 강아지(라고 하기엔 많이 늙은 할아버지 개)가 살고 있기 때문에 '읽어볼 필요성이 있지 않을까'란 생각에 의해서 선택하기도 했지만, 목차의 여러가지 이야기들중 노견에 관해 다룬 부분도 존재하기에 지금 우리 집에 함께 사는 개에게 좋은 팁이 있을 것 같아서의 이유가 더 크다. 물론 책을 읽고 대처하는 것보다 좋은 선택은 집 주변의 동물병원을 자주 드나들면서 우리 집 강아지의 주치의를 만들어주고 수시로 건강체크 하는 것이고, 이와 마찬가지로 여러가지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곳에서 훈련을 받고나서 같이 사는 것이다. 그러면 아마 강아지는 말썽도 안 부리고 튼튼하게 같이 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냥' 강아지를 키우고 있고, 설사 교육을 받았다 하더라도 키우다 보면 여러가지 문제점들이 생기기 마련이다. 같이 살고 있는 이들은 '살아있는 생물체'이기 때문에 어떤 순간이 다가올 지는 예측 할 수 없는 부분이고, 미래의 어떤 상황에 대해 당황하지 않도록 최대한 상대쪽의 입장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는 게 내 입장이다. 그래서 눈이 갔던 건지도 모르겠다.....라고 적어보지만 역시, 강아지와 대화한다는 게 궁금해서이기 때문이다. 강아지와 대화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하는 건 강아지를 키우고 있는 모든 애견인들에게 해당되는 말일테니 말이다.

 

 

 

이 책은 생각보다 내용이 꽤 본격적이다. 일반 시중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이렇게 하세요~' 혹은 '어떤 문제가 있으세요?' 따위의 것들이 아닌, 정확한 실험방법을 기초로 여러가지 행동 패턴을 파악해서 분석한 자료들이었다. 총 14가지의 이야기들이 있는데, 각각 연구한 사람들이 다르고, 하나의 이야기들마다 자세한 용어 설명과 실험방법 설명, 모티브를 뒀던 예시들에 이르기까지 모두 다 적혀 있고, 동물들의 행동을 연구하는 집단이라서 행동에 대한 자세하고도 깊이 있는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머리말과 서문만 읽어보면 알 수 있다. 이 책을 저술한 집단이 얼만큼 공부를 한 집단이고, 여기에 담긴 글이 얼마나 많은 임상실험을 통해 도출된 결과인지 말이다. 그래서 얼마나 전문적일지 한 장을 채 읽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그래서 이 책은 '그게 무슨 말이에요?'라는 박스를 만들어 단어를 설명하고, 마지막 부분에 '함정을 피하고 궤도를 유지하기'라는 소제목으로 간과할 만한 것들과 주의점을 일러주며, '우리가 뭐라고 말했나요?' 부분에서는 앞에서 장황하게 설명한 부분들을 꽤 간략하게 정리해 두었다. (앞부분을 읽지 않으면 알 수 없을만큼의 딱 그만큼의 간추림과 부연설명이다.) 중간중간엔 사진들도 첨부되어 있는데, 실험을 하면서 찍었던 사진들인 듯 하다.

 

한 번에 다 읽는 건 딱딱함에 거부감이 있을지도 모르니, 시간 날 때마다 한 챕터씩 읽어두는 걸 추천한다. 모르는 용어들과 맞딱드리면 꽤 당황스럽기도 하거니와, 찬찬히 보면서 나와 있는 예시들을 모두 떠올려보고 하는 게 훨씬 내용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한 번에 후루룩 읽을 생각이라면 그만 두는 것이 좋다)

 

강아지들을 집에 데려오기 전 알아둬야 할 강아지들의 종류에 대한 이야기부터 한 가지 행동을 하는 강박행동을 보이는 강아지들에 대한 이야기까지. 다루고 있는 케이스가 꽤 스펙타클하다. 범위가 넓긴 하지만 세세하지는 않아서, 이 책에서도 강아지가 어떤 문제행동을 보이거든 의학적인 문제를 동반할 수도 있으니 무조건 병원에 가보라고 권한다. 강아지와 같이 오래 살 수 있는 방법으로 '강아지의 마음을 잘 알아주는 수의사'를 꼽을 정도니 말 다 했다. 물론 모든 문제적 행동이 의학적인 문제를 동반하는 것은 아니지만, 의학적인지 아닌지가 확인이 돼야 원인을 알아서 행동교정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장 관심이 있었던 노견 부분은 생각보다 분량은 적었다. 그러나 가끔 똘이할배에게도 보이는 증상이 언급돼서 읽으면서 순간 덜컥,하기도 했다. 앓아누운 적이 없는 할배라서 동네의 수의사와는 친하지 않은데, 조만간 할배를 데리고 병원에 찾아가 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CDS라고 사람으로 치면 알츠하이머와 비슷하다고 했다. 강아지들은 나이가 들면 들수록 CDS일 확률이 늘어나고 거의 모든 개들이 겪게 된다는 것... 사람이나 동물이나 늙으면 인지기능과 뇌기능이 저하되고 그로 인해 불안감과 공포가 늘어나는 등의 행동들은 비슷해 보였다. 예를 들었던 노견들의 경우 14, 15세 정도였는데 똘이 할배가 내년이면 보내게 되는 시간들이다. 이렇게 오랫동안 같이 살았던 반려견은 똘이가 처음이라 우리 가족도 많이 낯설지만, 책에서 언급한대로 약물치료와 함께 병행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최대한 지원해주고 싶다.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건 강아지의 언어는 의외로 복합적이고 상황에 따라 다의적이기 때문에 주인으로서 그 의미를 알아채기는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들이 표현할 수 있는 것은 한계적이니 다의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고, 잘못 해석한 주인의 잘못으로 서로의 신뢰관계가 깨질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좀 더 강아지에게 귀를 기울이고 바람직한 행동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옆에서 돕는 것이 주인이나 반려견이나 서로 행복한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물론 전문가의 도움은 필수라는 점~

 

안방에서 자고 있는 똘이 할배가 괜스레 보고싶은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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